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419
02422 2422화
정말 대단할 정도로 시원한 성격이었다.
태수는 그 모습이 조금은 부러웠다. 그에 대해 물을까도 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송진아가 안정하는 거였다.
태수는 눈빛으로 조기한 원장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송진아에게 가까이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왜 그렇게 우세요?”
“나…… 흑, 나빠요.”
“네?”
“팀장님…… 진짜…… 흑흑, 진짜 나쁜 사람이에요.”
뜬금없는 송진아의 비난에 태수가 눈을 끔뻑거렸다.
확실한 건 크게 놀랐단 점이다.
그건 사과해야 했다.
그런 마음으로 태수가 차분히 말했다.
“먼저 상의를 했어야 하는 건 맞는데, 사실 가능한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원장님이 보셔야 정확하게 판단 내려 주실 수 있겠죠. 그러니까…….”
태수가 설득하던 중이었다.
송진아의 목소리가 그 틈을 뚫고 들려왔다.
“너무…… 너무 미안하고…… 흑, 감사하고…….”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습니다.”
“상관없어요. 아무래도 좋은데…… 진짜…… 흑흑.”
송진아는 몸을 돌릴 수도 없기에 양손으로 울음 가득한 얼굴을 가렸다.
태수는 오히려 난감했다.
“일단 확인이라도 좀 해야 하는데, 이거 참.”
“됐어. 울게 놔둬.”
조기한 원장이 태수를 뒤로 잡아끌었다.
얼떨결에 끌려온 태수는 미안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좀 더 기다리셔야겠네요.”
“지금 저 상황이면 당연히 기다려야지.”
“많이 놀란 거 같죠?”
태수가 어색하게 웃으며 묻자 조기한 원장이 황당한 표정으로 변했다.
“팀장, 바보야?”
“네?”
“저게 어디가 놀란 거냐고. 딱 봐도 감동해서 눈물이 안 멈추는 거잖아.”
“벌써 감동…… 할 게 있습니까?”
“갑자기 마음에 안 드네.”
조기한 원장이 뚱한 목소리로 몰아붙이자 태수가 멈칫했다.
“왜요?”
“주변에 여자 없어?”
“많습니다. 그것도 엄청.”
“여자 말이야, 여자! 엄마, 누나, 여동생, 동료 말고 그냥 아는 여자 없냐고.”
“환자요.”
태수는 시원하게 답했지만 조기한 원장은 어이없는 시선으로 변했다.
“멀쩡하게 생겨서 이상한 데서 덜떨어졌네.”
“…….”
태수는 말문이 막혔다.
그래도 조기한 원장의 독설은 멈추지 않았다.
“됐다. 내가 저 나이까지 덜떨어진 사람한테 무슨 말을 해.”
“귀에 자극적인 말씀입니다만.”
“그렇게 들었으면 잘 들었어.”
“…….”
태수가 멍하니 바라보자 조기한 원장이 옆으로 밀어냈다.
“비켜 봐. 내가 말할 테니까.”
그리고 그는 곧 얼굴을 두 손으로 덮은 송진아에게 다가갔다.
이어서 자세를 낮춰 누운 송진아에게 가까이 접근했다.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몇 마디 하는 거 같았다.
태수가 궁금해할 즈음이었다.
송진아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 그럴게요.”
그리고 얼굴을 가린 두 손을 내리고 살짝 배를 걷기까지 했다.
태수는 짧은 시간 변화한 송진아의 모습에 두 눈을 끔뻑거렸다.
조기한 원장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걸까?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바로 나중으로 미뤘다. 조기한 원장이 거즈를 들어 환부를 살피기 시작한 탓이다.
태수는 얼른 옆으로 다가가 그와 같은 곳에 시선을 뒀다.
송진아의 고운 피부를 길게 가른 수술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출혈이 없는 건 진피층을 매몰법으로 봉합해서였다.
그렇게 태수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차분히 기다리던 중이었다.
조기한 원장의 시선이 갑자기 태수에게로 향했다.
“최 팀장, 여기 봉합 누가 했어?”
“정민수란 써전입니다. 봉합은 끝내주는 실력자입니다.”
“딴소리 말고, 당장 그 자식 불러.”
그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그 순간 태수는 얼른 차분하게 말했다.
“봉합 방법이 잘못됐다면 저에게 말씀하십시오. 제가 그렇게 오더해서 진행한 거니까요.”
“팀장이 오더했다고? 그럼 왜 이렇게 했는데?”
“그건 장시간 혈전 용해제…….”
태수는 출혈의 위험을 진피층을 봉합해 줄이려 했고, 표피는 이후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놔뒀다고 설명했다.
“……그런 이유로 제가 오더했습니다. 혹시 문제가 있다면 저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태수가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조기한 원장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한 번 더 물었다.
“진짜 이게 전부 최 팀장의 오리지널 아이디어라고?”
“네, 확실합니다.”
태수의 대답은 확고했다.
조기한 원장의 표정으로 보면 뭐라고 한마디 할 분위기였다.
그런데 정민수를 내세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비난을 들어도 자신이 감당하는 편이 옳았다.
그런 생각을 굳힐 때였다.
조기한 원장이 갑자기 어깨 높이까지 손을 들어 올렸다.
그 기세가 상당히 빠르고 거칠었다.
태수는 꼿꼿이 서서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조기한 원장이 우두커니 멈춰서 태수에게 물었다.
“뭐 해, 손 안 들어?”
“네?”
“하이파이브 몰라?”
“때리시려는 줄 알았습니다.”
태수의 말에 조기한 원장이 아차 했다.
“미안. 내가 흥분하면 바로 손을 드는 버릇이 있어서. 성격이 더럽다고 누굴 함부로 때리진 않아.”
“저도 그렇긴 한데요. 그보다 흥분하셨다니요?”
“아주 나이스한 오더였어. 표피까지 꿰맸으면 흉터 못 없애. 그런데 진피만 꿰맸으면 가능하지.”
그 소리에 태수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진짜요?”
“그럼 내가 여기까지 와서, 그것도 환자 앞에서 거짓말을 하겠어?”
“그럴 분이었으면 안 모시고 왔습니다.”
“그런데 뭐 해? 손들라고.”
“아, 그렇죠.”
태수가 슬쩍 손을 들었다.
그와 동시에 조기한 원장은 있는 힘껏 손바닥을 부딪쳐 왔다.
짝!
“아주 잘했어!”
“흐음, 네.”
태수는 손바닥이 얼얼한 통증에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러나 조기한 원장은 개의치 않고 이어서 말했다.
“오늘은 내가 하는 거 잘 보고, 며칠 그대로 따라 해. 그리고 몇 가지 적어 줄 테니까 성형외과에 보여 주면 될 거야.”
“노하우를 알려 주신다고요?”
“어차피 죽을 때 싸 들고 갈 것도 아니고. 그리고 최 팀장이 성형외과도 아닌데 뭔 상관이야.”
“저야 하나라도 더 알면 좋죠.”
태수야 언제나 환영이었다.
조기한 원장은 그런 태수를 흘겨보면서 으름장을 놓았다.
“내가 가난한 놈이라 수업료가 엄청 비싸.”
“저희 병원 소문 못 들으셨습니까? 초청 의사 수당은 한국 최고입니다.”
“그런 건 좋네. 이제 쓸데없는 대화는 나중에. 가서 필요한 거부터 챙겨 오자고.”
“가시죠.”
태수가 바로 안내하자 조기한 원장도 지체 없이 뒤따랐다.
잠시 후.
두 사람은 김혁권과 함께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조기한 원장은 직접 송진아의 복부에 처치를 시작하며 설명도 곁들였다.
“이건 우선…….”
“네. 음, 그렇군요.”
“……진액이 흘러나오면…….”
“그 약을 그렇게도 사용할 수 있네요.”
태수는 녹음기로 그의 말을 모두 녹음하며 대꾸했다.
성형외과도 분명 외과에서 파생된 의과였다. 때문에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의약품이나 의료도구는 대부분 비슷했다.
그런데 같은 의료도구와 의약품임에도 불구하고 사용처가 전혀 달랐다.
거기에 성형외과에서 전용으로 사용하는 약품이 몇 가지 추가되며 부수적인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태수에겐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출동 현장에서 응용할 수 있는 부분들도 상당했다.
아낌없이 말해 주는 조기한 원장의 표정도 신이 나 있었다.
김혁권은 그런 조기한 원장을 보조하며 자신도 모르게 한 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뇌와 입이 동시에 움직이나?”
“머리를 안 써요.”
“흠, 미안합니다.”
김혁권이 바로 사과했지만 조기한 원장은 오히려 옅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미안해하면서 미안하다고 합시다.”
“…….”
“그리고 난 생각한 걸 말하는 게 아니라 느껴지는 그대로를 말하는 겁니다. 머리가 아니라 이 가슴과 입이 연결되어 있다고.”
“…….”
“김 간호사, 대충 삽시다. 복잡해 봐야 나만 피곤하지. ……최 팀장, 계속할게. 그러니까…….”
조기한 원장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계속 처치와 설명을 이어 갔다.
태수는 그에 집중하느라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런 두 사람과 달리 김혁권의 표정은 조금 복잡했다. 예기치 못하게 한 방 크게 얻어맞은 표정이었다.
그때 조기한 원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즈.”
“여기.”
김혁권은 반사적으로 거즈를 찾아 건넸다.
조기한 원장은 수술 도구로 받아 들며 한마디 덧붙였다.
“바로 이렇게. 다음은 소독약 준비해 주고요.”
“…….”
김혁권은 입을 다문 채 소독약을 건넸다.
하지만 눈치 빠르고 비상한 두뇌를 가진 김혁권이라 조기한 원장의 말뜻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바로 달라진 건 없었다.
그러기엔 시간이 필요한 법이었다.
한편, 조기한 원장은 태수라고 조용히 넘어가지 않았다.
“어차피 녹음기가 녹음하고 있잖아. 거기서 듣는 척만 하지 말고 와서 좀 잡아.”
“네! 지금 갑니다.”
“최 팀장, 왜 나랑 아까 둘이 얘기할 때랑 달라? 환자 눈치 보고 사나?”
“약간이요.”
태수가 솔직하게 대답하자 조기한 원장의 독설이 여지없이 날아왔다.
“왜 그러고 살아? 나도 사람, 환자도 사람. 똑같이 기분에 살고 기분에 죽는 거야. 때로는 화도 내고 신경질도 부려. 의사도 사람이라면서 왜 사람처럼 안 하냐고.”
“…….”
태수는 눈만 끔뻑이며 보조를 이어 갔다.
오랜만에 듣는 핀잔이다.
신선했다.
그리고 상당히 자극적이었다.
기분 나쁜 자극은 절대 아니었다.
조기한 원장이야말로 자기 멋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벌이에 연연하지 않고 명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 거대한 병원 한복판에서도 처치하는 손길에 거침이 없을 정도로 당당했다.
솔직히 멋졌다.
이런 상대를 만나는 게 처음은 아니었다.
제임스에게서, 또 황석찬 병원장에게서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신선하게 느끼는 건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이기 때문이다.
약간 호감이 있는 타인이기에 더 정확하고 선명하게 그런 점을 느낄 수 있었다.
태수는 오늘 의학적으로도, 또 인간적으로도 많이 배우는 느낌이었다.
그냥 일회성 배움으로 만족할 일이 아니었다.
배웠으면 자기 걸로 만드는 게 중요했다.
지금은 처치 중이라 생각을 미뤘지만,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접근해 볼 작정이었다.
조기한 원장의 성형수술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치를 마무리한 조기한 원장이 수술 장갑을 벗으며 부분 마취중인 송진아에게 말했다.
“느낌이 어때요?”
“조금 스멀스멀한 느낌이에요.”
“반응 괜찮네. 혹시 그 느낌이 엄청 신경 쓰이거나 따갑진 않죠?”
“그런 건 없어요.”
“나중에 그런 느낌이 들면 최 팀장에게 말해요. 잘 도와줄 거니까. 그럼 할 건 다 했으니까 이제 가야지.”
조기한 원장이 무덤덤한 말투를 이어갔다.
그런 그를 향한 송진아의 눈빛이 복잡했다.
타 병원에서 여기까지 자신을 만나러 일부러 왔단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제가 뭘…….”
송진아가 몸까지 들썩이자 태수가 바로 다가갔다.
“제가 배웅할 거니까 너무 염려 마세요.”
“그래도 멀리까지 오셨는데요.”
“지금은 회복에 더 집중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태수가 차분하게 권했지만 송진아는 그러지 못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확실히 심성이 고왔다. 그리고 고마움을 표현한다는데 태수가 계속 막아서기도 난처했다.
그때 갈 준비를 마친 조기한 원장이 다가왔다. 그리고 송진아를 향해 그만의 거침없는 입담으로 말했다.
“나야 기껏 1시간 본 사람인데 뭘 그렇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합니까?”
“그래도 여기까지…….”
“정 그러면 최 팀장에게 고마워하면 되겠네. 그리고 또 볼 일 없을 거 같으니까 회복 잘하시고.”
“…….”
“내가 생겨 먹은 게 이러니까 기분 나빠하진 마시고. 좌우간 얼굴만큼이나 예쁜 마음 잘 가꾸며 살아요. 그럼 갑니다.”
조기한 원장은 할 말 마치자 바로 돌아섰다.
그리고 거침없이 병실 밖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