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420
02423 2423화
그 순간 태수가 송진아에게 말했다.
“전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도 차 한 잔이라도 드리고 싶었어요.”
“지금 그 말도 전하면서 제가 대접하면 되겠네요. 쉬세요.”
인사한 태수는 조기한 원장을 뒤쫓았다.
잠시 후.
원내 커피전문점에 태수와 조기한 원장이 자리했다.
어제 백성현 흉부외과장과 앉았던 바로 그 자리였다. 그런데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오후라 그런지 커피전문점 내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문제는 그 사람들의 시선이 태수에게 향해 있단 점이었다.
“저기 최태수 팀장님이야.”
“병원에서 보기 힘들다던데. 진짜 운 좋은 날이다.”
“앞에 계신 분도 포스가 장난 아닌데? 혹시 어디 의과 과장님이신가?”
사람들은 이래저래 호기심을 보였다.
하지만 무턱대고 다가오진 않았다.
태수가 혼자 있거나 응급의료대 중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모를 일이었다.
전혀 모르는 인물과 함께 있고,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몰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거기에 조기한 원장의 날카롭고 거친 분위기도 한몫했다.
커피를 마시던 조기한 원장이 슬쩍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확실히 유명 의사는 사람들이 보는 시선부터 다르네.”
“감사하고 부담스럽고 그렇습니다.”
“이젠 익숙해진 표정인데?”
조기한 원장이 꼬집어 말하자 태수가 슬쩍 미소 지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삽니다.”
“음, 응급의료대라. 확실히 주목 받기 좋은 조건을 많이 갖추고 있지.”
“인정합니다.”
태수가 수더분하게 답하자 조기한 원장이 오히려 놀란 표정으로 변했다.
“아니라고 할 줄 알았는데.”
“발족부터 여러 현장들을 날아다녔으니까 알려지기 좋았죠. 알려지길 바라기도 했고요.”
“유명해지고 싶으면 연예인을 해. 그 얼굴이면…… 매력적인 악당 역할은 끝없이 들어올 거 같은데.”
“제 얼굴이 착한 느낌은 아닌가 보네요.”
태수가 얼굴을 쓸며 묻자 조기한 원장은 수더분하게 답했다.
“얼굴에 고집이 한 가득이야. 선량한 역할하고는 안 맞아.”
“저도 가끔 거울 보면서 느낍니다.”
“그런데 왜 환자 앞에서는 그렇게 쭈글이가 되나?”
조기한 원장의 표현은 역시 거침이 없었다.
태수는 그 성격이 솔직히 너무 좋았다. 이것저것 재고 따질 필요가 없으니 대답도 마음속에 담아 둔 그대로 튀어나왔다.
“의사가 환자를 무서워하지 않으면 뭘 무서워합니까?”
“그거…… 카프레네란 양반이 한 말 아닌가?”
“아십니까?”
“잘 알지. 내 또래가 한창 박박 구를 때 그 양반이 세계 최고였는데.”
조기한 원장이 답하자 태수가 미소 지었다.
“그럼요. 지금도 세계 최고십니다.”
“지금도? 뭔가 그 양반하고 연관이 있는 모양인데.”
“깊죠. 특히 카프레네 저서들의 첫 문구에 적힌 ‘참 의사’란 단어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뜁니다.”
“혹시 참 의사란 말이 환자에게 설설 기는 의사를 뜻한다고 생각하나?”
“아닐까요?”
태수가 반문하자 조기한 원장은 뜬금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반응이라면 최 팀장이 환자를 대하는 행태가 이해돼.”
“잘못 이해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요.”
“물론 그건 해석하기 나름이니까. 그 해석은 사람마다 달라질 수도 있는 거고.”
그의 말투가 뭔가 묘했다.
태수는 고민 없이 바로 꼬집어 물었다.
“원장님은 어떻게 해석하셨습니까?”
“좋은 건 좋다,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의사.”
“음, 역시 그 문구를 보셨네요.”
“내 또래 의사들 중에 그 문구 모르는 놈 있으면 외계인이라고 의심해도 돼.”
“그 정도였습니까?”
태수가 놀란 표정으로 묻자 조기한 원장의 대답이 바로 들려왔다.
“당연하지. 특히 레지던트 시절에는 카프레네 저서 한 권 안 봤으면 상종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렇군요.”
“나도 그걸 봤고, 내 나름대로 정의를 내렸어. 백 과장도 그랬고, 지금 부원장이라지? 강현필이도 그랬고.”
그 소리에 태수가 멈칫했다.
“진짜 연성…… 출신이십니까?”
“몰랐어?”
“과장님이 이젠 연성과 상관없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정답을 말해 줬네.”
그는 수더분하게 대답했지만 태수는 오히려 궁금해졌다.
“이런 말씀 실례겠지만…….”
“왜 나왔냐고? 내가 말했잖아. 대형 병원은 내 체질이 아니라고.”
“어떤 점이요?”
“옳고 그른 기준이 모호했으니까. 아니, 병원의 입장이 더 중요했지. 성형외과 하나를 봐도 알 수 있는 거고.”
“이해가 잘 안 됩니다만.”
태수가 의구심을 보이자 조기한 원장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이어서 말했다.
“성형외과가 외과에서 파생되어 독립된 기원을 되짚어 보면 답이 나오지 않나?”
“음, 성형외과가 치료 목적에서 미용 쪽으로 치우친 게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모양이네요.”
“별 관심 없어.”
“방금…….”
“다른 놈들이 그걸로 돈을 벌든 뭘 하든 난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거야. 너무 관심이 없어서 병원에 붙어 있고 싶지 않았고.”
조기한 원장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목소리에 고저도 없었다.
정말 관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자기 길만 고집하며 뚝심 있게 살아온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시군요.”
“최 팀장 생각은?”
“전 미용으로 활용되는 건 자기만족이란 부분에선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자신을 꾸미고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을 테니까요.”
“음…….”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겠죠. 너무 과하면 본래 취지를 잊고 거기에만 집착할 거고, 그건 싫습니다.”
태수는 평소 생각을 솔직히 밝혔다.
조기한 원장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럼 내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제가 왈가왈부할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마음에 드네.”
“방금 말씀하셨잖습니까. 생각은 누구나 다른 거라고 말입니다.”
“물론이지. 굳이 획일적으로 맞출 이유는 없는 거야.”
조기한 원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 잔을 들었다.
이번에는 태수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생각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말했다.
“이런 부분이 잘 맞아서 원장님과의 대화가 즐거운 거 같습니다.”
“그건 나도 비슷한 거 같은데.”
“다행입니다. 그런데 수술 자국은 얼마나 지워질 거 같습니까?”
태수가 슬쩍 묻자 조기한 원장이 뜬금없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그가 짓궂은 표정으로 답했다.
“팀장이 직접 확인해 봐.”
“그냥 알려 주시면 안 됩니까?”
“그럼 재미없을 거 같은데. 내가 무조건 대답해야 할 이유도 없고.”
그건 그의 말이 옳았다.
태수는 더 채근하지 않았다.
겪어 보니 대답하기 싫으면 죽어도 안 할 성격이었다.
굳이 같은 주제로 입씨름할 이유가 없었다.
그때 태수가 멈칫하며 물었다.
“그런데 왜 선뜻 나서신 겁니까?”
“음, 좋아. 그건 대답하지. 사실 백 과장 전화 받고는 황당했어. 오랜만에 전화해서 대뜸 아직 의사 하고 있냐고 물었으니까.”
“아…….”
“대충 몇 마디 안부 나누고, 최 팀장을 보낼 테니까 얼굴 보고 알아서 하래.”
조기한 원장의 말에 태수가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얼굴은 보셨고.”
“보니까 어중이떠중이는 아닌 거 같더라고. 직접 찾아왔단 것도 상당히 좋게 작용했고…….”
“또 있습니까?”
“결정적으로는 눈빛. 난 환자가 최 팀장 가족이나 지인이라고 생각까지 했으니까.”
“제 눈이요?”
태수는 자신의 눈동자를 본 적이 없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조기한 원장은 소탈하게 대답했다.
“절절하더라. 그런데 말하는 거 대충 들어 보니까 전혀 모르는 그저 환자였고. 직접 만나 봐도 역시 서로 모르는 사이였고.”
“…….”
“좌우간 의사 중에 그런 눈빛을 한 놈은 여태껏 만나 본 적이 없었어. 그래서 호기심도 들고 해서 여기까지 와 봤지.”
“그래서 아직도 제 눈빛이 잘 살아 있습니까?”
태수가 진심으로 묻자 조기한 원장은 핀잔부터 했다.
“지금은 동태 눈깔이야.”
“네?”
“피곤해 보인다고. 여기 앉아서야 상당히 피곤하단 걸 직감했어.”
“만난 지 2시간은 훌쩍 넘었습니다.”
태수가 변명했으나 조기한 원장에겐 씨도 안 먹혔다.
“그때까지 내 눈을 잘 속였든지, 아니면 피곤함을 보일 틈이 없었겠지.”
“그런…… 가요?”
태수가 슬쩍 볼을 쓸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조기한 원장은 부드럽게 덧붙여 말했다.
“아무튼 날 찾아왔을 때 그 눈빛은 지금도 좀 인상적이라고 생각해.”
“감사합니다.”
“나한테 칭찬받을 일은 아니고. 뭐, 응급의료대가 그저 사고 현장을 찾아가서 유명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지.”
“저보다 더 훌륭한 분들 많습니다.”
태수가 말한 순간 조기한 원장이 흘겨봤다.
“그 말도 진심이지?”
“물론입니다.”
“그렇게 바로 대답할 정도면 인정해야겠어.”
“감사합니다.”
“나한테 인사해서 뭐해.”
조기한 원장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태수는 달랐다.
“의사를 싫어하시는 분에게 인정받으면 더 기분 좋죠.”
“싫은 게 아니라 관심이 없다니까. 됐어. 그걸로 입씨름할 건 아니니까. 그보다 슬슬 백 과장이 내려올 때가 된 거 같은데.”
그가 시간을 확인하며 크게 두리번거렸다.
그제야 태수는 그가 왜 이곳을 택했는지 직감했다. 하지만 언제 약속을 잡았는지 까마득히 몰랐다.
그런 궁금증은 또 참지 못하는 태수라 바로 물었다.
“언제 약속하셨습니까?”
“잠깐 화장실 갔을 때. 오늘 진료만 끝나면 한가하다고 해서 술이나 퍼마시려고.”
“반갑고 즐거운 시간이 되겠습니다.”
“그건 모르지. 예전부터 만나면 으르렁대던 사이라서 말이야.”
조기한 원장은 투덜거리는 말투와 달리 미소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
한때는 상당히 친하게 지낸 모양이었다.
그 후로 몇 마디를 더 나눈 후였다.
백성현 흉부외과장이 두리번거리며 커피전문점에 들어오다 이쪽으로 곧장 다가왔다.
그쪽을 보고 있던 태수였기에 타이밍 맞춰 일어나 인사부터 했다.
“오셨습니까.”
“멀리서 봐도 분위기가 좋은 거 같은데.”
“네. 좋은 말씀 듣고 있었습니다.”
“조 원장이 좋은 말을?”
백성현 흉부외괴장이 놀라 바라보자 조기한 원장이 뚱한 얼굴로 반응했다.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싸우고 다니는 줄 알아?”
“그 성격에 쳐다봤다고 멱살 안 잡으면 다행이지.”
“과장 되더니 말재주가 제법 늘었어.”
“조 원장 성격은 여전해.”
“지천명 넘은 지가 언젠데. 이제 성격 변하면 개과천선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죽을 날 받아 놨단 거지. 그래서 잘 살았어?”
조기한 원장이 일어서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백성현 흉부외과장이 정겨운 미소를 지으며 맞잡았다.
“보다시피.”
“배에 기름 좀 낀 줄 알았는데, 주름만 깊어졌어.”
“신선놀음을 벌써 하긴 이르지.”
“하긴, 내 코도 석 자까지 빠졌는데. 아직 쉬긴 이른 나이지.”
두 사람의 대화가 계속 오갔다.
그런데 맞잡은 손을 놓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반가운 모양이었다.
전화번호는 알지만 일이 바빠 왕래가 뜸했을 터였다.
태수를 계기 삼아 연락했으니 나눌 해후는 밤을 새워도 모자랄 듯했다.
눈치 챈 태수는 슬쩍 말했다.
“전 이제 올라가 봐야겠습니다.”
“아, 최 팀장, 할 말이 더 있는 거 아니었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은 저보다 두 분 만남이 더 중요한 거 같은데요. 제가 얼른 눈치껏 빠져야죠.”
태수는 가감 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백성현 흉부외과장이 미소 띤 얼굴로 양해를 구했다.
“오늘은 좀 부탁하자고.”
“부탁이라니요. 당연히 그래야죠. 과장님, 좋은 시간 되십시오. 원장님은 제가 나중에 또 필요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태수의 소탈한 인사에 조기한 원장이 옅게 미소 지었다.
“부탁은 얼마든지, 들어주는 건 내 마음이니까.”
“또 절절한 눈빛으로 찾아가면 될 거 같은데요.”
“다음에도 같은 표정이면 자극이 약하지. 내가 움직일 만한 충분한 동기를 가져오면 그때 생각해 보자고.”
“그건 저도 그때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무튼 두 분의 반가움을 더 방해하지 않고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꾸벅.
태수는 깊게 인사하고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두 사람의 반가운 대화가 짧게 들려왔다.
“이게 몇 년 만이야?”
“10년 좀 넘었지. 그때…….”
“그랬지, 맞아. 그랬어. 내 기억으로…….”
“기억력 좋은 건 여전하네. 그래서 어떻게…….”
서로 본격적으로 안부를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