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45
00246 246화
“조카도 좋지만 최 선생도 슬슬 결혼 생각해야지. 남의 자식 백날 예뻐해 봐야 내 자식보다 못해.”
“아직 여유가 없습니다.”
“나 여태 살면서 지켜보니까 여유 있어서 결혼한 사람 없어. 일단 하고 봐.”
“그건 나중에. 잠깐 혁권 씨 좀 빌려가겠습니다.”
태수의 말에 배건형은 고개만 끄덕였다.
허락을 받은 태수는 곧장 김혁권을 당겨 병실 밖으로 나갔다.
병실을 나서자마자 김혁권이 툴툴 거렸다.
“옷 늘어나. 그만 좀 당겨요.”
“그보다 보행기는…….”
“아, 그거.”
김혁권은 슬쩍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태수는 얼른 한마디 했다.
“보행기 가격 장난 아니던데요. 이거 죄송해서 어떻게 합니까.”
“좀 좋은 걸로 사려니까 진짜 비싸기는 오지게 비싸더만.”
“그러니까요.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좀 싼 걸로 샀으니까 걱정 마요.”
김혁권의 말에 태수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감사하죠.”
“그럼 됐어요. 이야기 끝. 난 또 무슨 일이라고.”
김혁권은 끝까지 툴툴거리며 얼른 병실로 쏙 들어가 버렸다.
태수는 그런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분유를 보낸 사람은?
이젠 누군지 알만했다.
“그랬냐?”
태수는 일부러 모르는 척하고 있을 뿐이다.
그때부터 태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그 마음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걸 마음이 아니라 말로 전하고 싶었다.
정민수에게 다시 물어도 이야기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냥 묻어 두려니 마음이 무거워서 안 될 거 같았다.
그때 태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띠리릭.
확인하자 하석준 과장의 전화였다.
“네, 과장님.”
“잠깐만 내 방으로 와.”
“바로 가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태수는 일단 하석준 과장의 방으로 향했다.
이내 방으로 들어간 태수가 하석준 과장 앞에 섰다.
“찾으셨습니까?”
“조카 생겼다며?”
“정 선생이 이야기했습니까?”
“아니, 송 선생이.”
“아, 그렇군요. 그런데 저는 무슨 일로.”
태수가 묻자 하석준 과장이 사람 좋은 얼굴로 변했다.
“그래도 조카가 태어났는데 삼촌이 얼굴을 비춰야지.”
“안 그래도 이야기를 했었는데, 거절당했습니다. 산후조리원에 있어서 번잡스럽다네요.”
“그럼 나중에 집으로 가면 이야기해. 내가 이틀 정도는 빼 주도록 할 테니까.”
하석준 과장이 선심을 쓰자 태수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염치없지만 그때는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이렇게 선뜻 받는 것도 하나쯤은 있어야지. 그럼 됐으니까 가 봐.”
“실례하겠습니다.”
태수는 인사를 마치고 돌아섰다.
이런 사람들.
너무 좋았다.
그렇게 일과를 마친 태수가 의국에 들어섰다.
끼익.
안으로 들어가자 레지던트들이 가볍게 목례하고는 공부를 이어가고 있었다.
전혀 모르는 척하는 눈치들이다.
태수도 같이 모르는 척하며 자리에 앉았다.
“공부 잘하고 있냐?”
태수가 흘리듯 이야기하지 레지던트들 모두 어깨를 움찔거렸다.
“아, 그게…….”
“농땡이 친거야?”
“아닙니다!”
당연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한꺼번에 의국을 울렸다.
태수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분유값은 해야지. 그런 의미로 내일부터 또 빡세게 돌아보자.”
“헉!”
“수고.”
태수는 일부러 자리를 비켰다.
숙직실에 들어선 순간 의국에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송 선배. 이제 어떻게 합니까?”
“뭘 어떻게 해. 빡세게 굴러야지.”
송민규 목소리에 홍진만이 투덜거리는 소리까지 이어서 들려왔다.
“그러니까 분유 말고 다른 걸로 하자니까요.”
“그럼 뭘 해줄 건데?”
“그거야 모르죠. 제가 애 아빠도 아니고.”
“그래도 마음은 전했으니까 열심히 굴러보자고.”
“아, 우리 치프도 너무하시지. 원래 감동을 받으면 사람이 좀 풀어주는 게 있어야 되는데, 더 조이시니. 에휴.”
홍진만의 한숨 소리를 마지막으로 레지던트들은 조용해졌다.
태수는 흘러 들어오는 이야기를 들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각 의과의 인턴이 바뀌는 시기인 탓이다.
이때 레지던트들은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제발 멀쩡한 애들이 의과에 지원해라.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
자신들도 미숙한데 가르치기까지 해야 하니 레지던트들이 어쩔 수없이 느끼는 감정들이다.
다른 의과들 모두 어떤 인턴이 올지 고심하고 고대하던 때다.
외과 또한 다르지 않았다.
4명의 인턴들이 그동안 자신들을 보조해 줬지만 너무도 힘들었다.
이번에는 한 명이라도 더 지원해라.
바빠진 외과 레지던트들이 조금이라도 편해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그런 희망과 달리 여태까지 외과를 지원하는 인턴들의 숫자는 항상 저조했다.
희망을 갖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기대를 접은 레지던트들도 상당수 존재했다.
이제 각 의과에 지원한 인턴들이 들어올 시간이다.
끼익.
문이 열린 순간 태수가 먼저 들어오며 뒤에 말했다.
“들어와.”
태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원래 외과에서 교육받던 황경석과 조상준이 먼저 들어왔다.
레지던트들은 작게 미소 지었다.
한 번 같이 지내 봤으니 가르칠 게 적은 탓이다.
“야, 니들 반갑다.”
“또 한 번 죽어 보자.”
레지던트들이 반기는 사이 문을 통해 인턴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한 명…… 두 명…….
그렇게 들어온 인턴의 숫자는 모두 다섯 명이다.
앞서 두 명까지 포함하면 모두 일곱 명으로 크게 불어났다.
물론 남자들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평소 감정 표현이 적은 1년차 이석현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크게 떴다.
“정…… 정말 다 외과지?”
“네. 잘 부탁드립니다!”
인턴들의 씩씩한 목소리에 이석현의 얼굴 가득 화색이 돌았다.
“와아. 이제 좀 살겠다.”
“새끼가 빠져 가지고. 살기는 뭘 살아.”
홍진만이 딴죽을 걸자 이석현이 한 마디 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한가해질 거 아닙니까.”
“저런 일차원적인 인간을 봤나.”
“네?”
이석현이 이해를 하지 못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2년차 안성훈이 조리 있게 설명했다.
“치프부터 우리들까지 요즘 계속 수술 들어가잖아.”
“그러니까 인원이 많으면 좋은 거잖습니까.”
“교육은 누가 하고!”
“아!”
이석현 얼굴에 순간 그늘이 드리웠다.
아직 스스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데 인턴까지 돌봐야 할 상황이다.
그동안 배운 황경석이나 조상준은 앞으로 자기 몫은 해낼 거라 믿었다.
그러나 오늘 새로 온 다섯 명은 기존 시스템에 융화되려면 시간과 공부가 필요한 입장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때였다.
퉁.
태수가 가볍게 발을 굴렀다.
일순간 레지던트들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지방방송은 중앙방송 끝난 후에 해라.”
“알겠습니다.”
“각자 소개는 나중에 따로 하기로 하고, 인턴들.”
태수가 부르자 인턴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네!”
“외과에 왜 왔어?”
“…….”
순간 다들 입이 다물어졌다.
그때 키는 크지만 체격이 왜소한 인턴이 손을 번쩍 들었다.
태수는 가운에 수놓인 이름을 불렀다.
“임은상 선생? 대답해 봐.”
“돈 벌고 싶어서 왔습니다!”
“황 선생이나 조 선생에게 들었나?”
“네! 그렇습니다.”
임은상이 대답하자 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있는 인턴 오종빈에게 물었다.
“오 선생은?”
“외과가 멋져 보여서 왔습니다.”
“그것도 충분히 이유가 되지.”
그 이후로도 태수는 인턴들에게 각자 이유를 물었다.
제각기 대답했지만 결국은 요즘 동성종합병원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의과라 지원한 터였다.
모든 인턴에게 대답을 들은 태수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오늘부터 삼 일 동안 외과를 직접 경험해 보고, 혹시 이게 아니다 싶으면 이야기하도록. 다른 의과로 바꿔줄 테니까.
“…….”
“섣부르게 아니라고 대답하지 마. 경험해 보고 이야기해.”
“알겠습니다!”
인턴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하지만 아직은 자신만만한 표정들이다.
태수는 개의치 않고 2년차 레지던트들에게 말했다.
“이석현하고 강선호도 아직 헤매는 입장이니까 우선 2년차들이 친절하게 인턴들 교육시키도록.”
“얼마나 친절하게 합니까?”
김명철이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자 태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나처럼 친절하게 해 줘.”
“알겠습니다.”
“그럼 송 선생은 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하지.”
태수는 일부러 송민규를 불러냈다.
송민규도 눈치가 있기에 대답하기보다는 먼저 몸을 움직였다.
태수와 송민규가 의국을 나간 순간이다.
탁.
문이 닫히자 홍진만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웰 컴 투 헬이다.”
그날 이후 2년차 레지던트들은 인턴들을 쥐 잡듯이 잡았다.
“쉬는 시간? 아, 그렇게 행복한 거? 없어.”
“발이 보이네? 아이고, 손도 보이고.”
“니들은 약도 제대로 못 챙겨? 환자 이름은 외우지도 못했고? 장난 하냐?”
하루에 수십 번도 넘게 들려오는 말이다.
태수는 2년차 레지던트들에게 처음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자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한단 걸 알았다.
마침 안성훈이 지나가기에 태수가 불러 세웠다.
“안 선생.”
“네. 치프.”
“하나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야.”
“말씀하십시오.”
안성훈이 정중하게 대답하자 태수가 질문을 던졌다.
“내가 니들을 그렇게 괴롭혔냐?”
“…….”
“아니면 나만 니들에게 친절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그건 아닙니다만…….”
안성훈의 이마에서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허나 태수는 개의치 않고 이어서 말했다.
“뭐 알아서 하겠지만, 너무 굴리면 니들만 피곤해진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수고해.”
태수는 가볍게 인사를 마치고 돌아섰다.
인턴들이 외과에 적응한 지 3일째 되는 날 저녁이다.
다섯 명의 새로운 인턴들 중 한 명이 태수에게 따로 면담을 신청했다.
의사 휴게실에 따로 자리했다.
음료수를 내밀며 태수가 말했다.
“마시면서 이야기해.”
“아, 아닙니다.”
“긴장하지 말고. 그래서 무슨 일인데?”
태수가 묻자 인턴은 우물쭈물하기만 했다.
딱 봐도 강단이 있어 보이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주춤거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태수는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다.
이내 면담을 요청한 인턴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다른…….”
“의과로 가고 싶다는 거지?”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고, 어디로 가고 싶은데?”
“내…… 과를.”
“오케이. 이따가 연락주지.”
그릉.
태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인턴이 얼른 입을 열었다.
“실망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러니까…….”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돼.”
“…….”
“아, 그리고 실망은 기대가 있는 사람한테 하는 거야. 전혀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신경 쓰지 마.”
태수는 덤덤한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게 말하곤 몸을 움직였다.
***
태수가 옥상에 앉아 있자 이내 내과 치프가 도착했다.
“무슨 일인데 야밤에 사람을 불러내?”
옆으로 다가온 내과 치프가 털썩 앉으며 물었다.
여러 일을 겪은 두 사람이다.
요즘은 가끔 이렇게 옥상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사이 정도로 발전했다.
전문의들이나 의과 간에 알력은 아직 관심 둘 때가 아니다.
서로 잡아먹어야 할 사이도 아닌데다가 동기이기에 가끔은 서로 고충을 털어 놓기도 했다.
태수는 흘리듯 이야기했다.
“인턴 중 한 명이 내과로 보내달라네.”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그런 소리가 나와? 외과 애들이 너무 굴리니까 못 견딘다는 소리가 나오지.”
“그건 그렇지.”
“그렇게 계속 빠져나가면 어떻게 하려고.”
내과 치프는 진심으로 걱정을 보였다.
그러나 태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할 수 없지.”
“밑에 애들만 힘들어진다니까.”
“지들이 굴려서 내보냈는데 누굴 탓 해.”
태수의 말에 내과 치프가 학을 털었다.
“참 이럴 때는 이렇게 세상 걱정 없어 보인다니까.”
“할 마음이 없으면 오히려 우리가 더 곤란해.”
“그거야 그렇지.”
“그래서 받아줄 거야 말 거야?”
태수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내과 치프가 쓴 미소를 지었다.
“낙오자까지 받아줘야 해?”
“필요 없으면 다른 데로 보내야지.”
“아니야. 일단 보내 봐. 지켜보고 아니면 나도 버리지 뭐. 그거밖에 안 되는데 굳이 데리고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알아서 하시고.”
태수가 넉살 좋게 받아치자 내과 치프가 물었다.
“그런데 너희 곧 좋은 소식 있을 거라던데.”
“무슨 소식?”
“잘은 모르겠는데, 아까 낮에 외과장님이 우리 과장님 찾아오셨었어. 방밖까지 웃음소리가 났다는데?”
내과 치프 말에 태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젠 많이 친해지셨대?”
“솔직히 니가 문제지, 두 분 사이가 문제였어?”
“그런가?”
“하여간.”
“더 이야기해서 뭐해. 커피나 마시자.”
태수가 말하자 내과 치프는 어이없단 듯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