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548
02551 2551화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난 후였다.
이젠 심장이 오므려져 봉합까지 마무리되어 있었다.
태수와 정민수가 동시에 손을 뺐다.
그리고 태수가 짧게 말했다.
“봉합 끝.”
“후.
그 순간 정민수가 짧고 굵은 날숨을 내뱉었다.
그때까지 시간을 보고 있던 노지연 간호사가 상황을 말했다.
“1분 전이에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태수는 한숨 돌릴 여유도 없이 다음 순서를 언급했다.
“바로 심장 돌려야겠습니다. 정 선생.”
“잡고 있어.”
“과장님.”
“……그래, 잡았어.”
대답이 한 박자 늦었다.
그게 이상했다.
하지만 물을 때가 아니다.
태수는 재빨리 시선을 돌려 서영우를 바라봤다.
척.
엄지를 내밀었다.
돌려도 된단 사인이었다.
옆에 선 공우혁은 고개만 끄덕였다.
태수는 반대에 위치한 인공심폐기사를 바라봤다.
그가 바로 답을 줬다.
“언제든지요.”
“그럼 바로 심장 돌리겠습니다. 대정맥 돌립니다.”
말함과 동시에 쥔 밸브를 반대로 돌렸다.
솨아악.
우심방으로 혈액이 쏟아져 들어간다. 그 모습을 볼 순 없지만 우심실이 부풀어 오르는 걸로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다.
이어서 우심실이 부풀어 올랐다.
그걸 본 순간 정민수가 손을 움직이며 높게 소리쳤다.
“폐동맥 전환 시작합니다!”
슥.
밸브의 방향을 바꾸자 우심실까지 채운 혈액이 폐동맥을 통해 좌우 폐로 이동했다.
태수의 시선은 그 혈행을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좌우 폐에 도달한 태수의 눈빛이 살짝 굳어졌다. 좌측 폐의 특정 부위에 허연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던 탓이다.
저게 폐부종이다.
폐에서 물을 빼내야 했던 원흉이다.
그리고 폐를 오가는 혈관이 뭔가 어색했다.
그건 폐정맥 색전과 협착 증세였다.
예정상으로는 폐의 문제까지 해결하는 거였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게 마음을 무겁게 했다.
태수의 기분이 가라앉는 사이에도 혈액은 계속 쏟아져 들어갔다.
“양쪽 폐를 돌고 있어.”
좌우 폐에 손가락을 댄 정민수가 그 느낌을 말해 줬다. 그리고 그 증거로 옅어진 색이 진해져 갔다.
그렇게 양쪽 폐를 거친 혈액은 폐정맥을 채우며 좌심방까지 채웠다.
이젠 심장에도 혈색이 짙어져 갔다.
하지만 안심하긴 일렀다.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혈관 속엔 공기가 들어가면 안 된다.
공기가 돌고 돌아 심장에 도달하면 갑자기 심부전을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심장 수술을 할 때 가장 조심하고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바로 공기를 빼내는 작업이었다.
그건 백성현 흉부외과장이 자청한 상태였다.
그 또한 유심히 관찰하며 혈액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었다.
이젠 자신의 차례.
상행대동맥은 막아 놓은 상태였다. 좌심실이 혈액으로 차오르면 공기는 어디로도 갈 곳이 없어진다.
지금 그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내부 압력이 높아진 상행대동맥이 빵빵하게 부풀었다.
거기까지 기다린 백성현 흉부외과장은 들고 있던 얇은 주사기로 상행대동맥을 찔렀다.
동시에 피스톨을 당기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건 잠시였고, 실린더 안으로 혈액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자잘한 공기가 뒤섞여 빠져 나오는지 실린더 안에 거품도 끓어올랐다.
그 현상은 곧 지나갔고, 실린더 속은 잔잔해졌다.
“좋아. 그럼 대동맥 전환 시작하지.”
만족한 백성현 흉부외과장이 주사기를 빼고 밸브를 돌렸다.
이제 심장 속엔 혈액이 가득해졌다.
하지만 대정맥과 대동맥은 불독 클램프에 막혀 혈액이 온몸을 순환할 수가 없었다.
이젠 그걸 풀 차례다. 그래야 혈액이 완전히 순환을 시작하고 심정지액도 그 속에 녹아 쓸려 가게 된다.
그 후에 심장이 뛴다.
지금이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순간이었다.
이게 심정지 수술의 마지막 고비다.
“…….”
“…….”
다들 긴장했다.
마른침을 삼키는 시늉도 못했다.
무조건 돌아온단 믿음은 한순간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그래도 긴장되는 건 간암이라는 엄청난 복병이 아직 건재한 탓이다.
수술실 가득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그때 태수가 대정맥을 묶어 둔 불독 클램프를 잡으며 말했다.
“풀겠습니다.”
“같이 하지. 신호 보내.”
턱.
백성현 흉부외과장이 대동맥을 가둬 둔 불독 클램프를 잡으며 권했다.
태수는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셋, 하면 풉니다. 하나…… 둘…… 셋.”
척, 척.
태수와 백성현 흉부외과장이 동시에 손을 움직였다.
불독 클램프로부터 자유가 된 대동맥과 대정맥은 이제 혈액을 운반해 줄 터였다.
그럼 심장이 뛸 거다.
뛴다.
뛰어야…….
속으로 응원을 보내던 모두가 멈칫했다.
뛰지 않았다.
심장은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런 상황에 비해 모두의 표정이 다급하지 않았다.
이미 수없이 경험한 일이었다.
환자의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수술한 후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자전적으로 혈액이 돌지 못해 심정지액이 심장에 머물러 있는 경우이기도 했다.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턱.
태수는 바로 심장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처음엔 부드럽게, 그리고 점점 빠르고 강하게 쥐기 시작했다.
숙숙숙.
인위적으로 펌프 현상을 만들어 심정지액을 마저 쓸어버리는 행동이었다.
열 번, 스무 번.
반복하고 반복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꿈틀.
손바닥에서 자신의 움직임과 다른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태수의 눈빛이 자그맣게 번뜩였다.
생명의 반응이다.
반응이 왔을 때 탄력을 붙여야 한다.
태수는 좀 더 힘을 주고 쥐는 속도도 올렸다.
슉슉슉.
평균적인 심장 박동의 횟수를 훨씬 웃도는 움직임이었다. 자극을 줘야 하기에 그 속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툭, 툭, 투둑.
심장에서 한 번씩 반응이 오더니 점점 빨라졌다.
경운기에 시동을 거는 느낌과 같았다.
곧 심장이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덕, 쿵덕.
태수는 손에 힘을 빼고 있었다.
심장이 뛰는 그 느낌을 이렇게 손바닥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태수만 그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삐비빅, 삑.
ECG가 심장이 움직이는 걸 소리로 또 그래프로 표현해 줬다.
그 변화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때 ECG를 집중해 관찰하던 서영우가 난데없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돼…… 됐다. 돌아왔다!”
“돌아……. 어후!”
“아이고, 내 심장이야.”
“좋아. 끝까지 가는 거야!”
누구는 한숨으로 또 누구는 소리쳐 이 순간의 안도와 기쁨을 표현했다.
자신을 믿고, 팀원을 믿었다. 그래도 만약이란 이름으로 품고 있던 긴장감을 이제야 놓을 수 있었다.
“푸우우.”
“일단 한숨 돌리죠.”
“그래요. 바이탈도 좀 더 회복되어야 하니까. 우선 한 고비 넘겼습니다.”
“여기까지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아직 남은 수술이 많지만 그래도 이 순간 찾아온 안도감까지 밀어내지 않았다.
그렇게 무거운 공기가 조금 가벼워져 갔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태수만이 유일하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심장에 손을 얹고 있는 모습도 변함이 없었다.
정민수가 이상함을 직감하고 물었다.
“팀장, 왜 그래?”
“…….”
“뭐가 이상해?”
정민수의 목소리에 다시 긴장감이 서렸다.
그 소리에 마음을 내려놓은 모두가 다시 바짝 조였다.
“…….”
“…….”
아무도,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태수가 뭔가 파악하고 있는 중이라면 절대 방해해선 안 된다.
이건 불문율이었다.
그런 긴장감으로 태수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태수는 자신에게 쏟아진 시선을 개의치 않고 정민수를 바라봤다.
“…….”
“왜, 왜 그러는데.”
답답한 정민수가 결국 재촉해 물었다.
그제야 태수의 입이 열렸다.
“느끼는 중이야.”
“그러니까 뭘, 도대체 뭘 느끼고 있는데?”
“생명.”
“…….”
정민수의 입이 딱 다물어졌다.
다른 팀원들 또한 마찬가지였고, 눈빛이 가늘게 흔들리기까지 했다.
태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날 살아가게 하는 힘.”
“…….”
“죽음을 딛고 수술실에 들어올 수 있는 이유.”
“…….”
“매번 반복된 순간이겠지……. 그럴지도 몰라. 그런데…… 왜 난 매번 이 순간에 눈물이 날까?”
태수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져 갔다.
똑같은 수술?
그런 건 없었다.
증상이 같을 수는 있다.
수술 과정이 같을 순 있다.
하지만 주체가 되는 환자가 달랐다.
살아온 과정, 환경, 주변 인물, 가족 관계까지.
그 모든 게 똑같을 순 없었다. 그러니 이 수술대에 누운 그 사람은 이 세상에 유일한 존재였다.
다들 차분히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태수가 못다 한 말이 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절대…… 절대 먼저 포기하지 말자. 그 어떤 누구라도.”
“…….”
“흐음.”
태수는 가슴을 크게 들썩이며 울컥한 마음을 달랬다.
엉뚱한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다시 뛰는 심장을 느낀 이 순간, 그 무한한 감동에 대한 솔직하고 순수한 표현이었다.
그 말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 거다.
지금껏 그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각오였다.
환자를 위해서.
그리고 태수, 자신을 위해서.
쿵덕, 쿵덕.
지금도 손바닥 가득 느껴지는 심장의 격동이 태수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잠시 후.
태수는 수술대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날리는 중이었다.
태수가 물 컵을 내리자 김혁권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보일 정도로 다가와 있었다.
그 모습에 놀란 태수가 멈칫했다.
“아, 깜짝이야.”
“……이제 좀 진정됐습니까?”
“네, 아주 양호합니다. 추했습니까?”
“아니요. 감명 깊었습니다. 가장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위치에서 순수함을 느끼는 게 쉽지 않으니까.”
김혁권은 여전히 냉철하게 분석해 말했다.
태수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저도 사람입니다. 한 번씩 삐걱거리는 게 정상입니다.”
“그래서 좋습니다. 시종일관 똑같으면 재미없으니까.”
“그건 또 그렇죠. 그보다 간 팀은 언제 도착한답니까?”
태수가 묻자 김혁권이 바로 답했다.
“5분 내에 들어올 겁니다. 지금 손 씻고 있다니까.”
“그럼 우리도 다시 기운 차려야죠. 아자!”
태수가 어깨를 넓게 펴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삑삑삑!
ECG가 갑자기 돌변했다.
동시에 서영우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아까부터 신경 쓰이더니!”
“뭡니까?”
“뭐긴 뭐야, 폐정맥이지!”
“네?”
“전부하가 심해. 산소 포화도도 결국 뚝 떨어졌다고!”
서영우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그사이 태수는 김혁권의 도움으로 새로운 수술 가운을 입고 있었다. 헤어캡과 마스크는 이미 교체한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수술 장갑을 착용하며 태수가 다급하게 오더했다.
“혈전 용해제!”
“여태까지 인공심폐기 돌리면서 와파린을 투여 안 했을까!”
“항부정맥제!”
“그건 벌써 투여했어!”
“……젠장.”
말하는 족족 막히자 태수도 답이 없었다.
손 놓고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른 방법은?
태수의 눈빛이 굳어지며 마스크 속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어떻게 되살린 심장인데.
이대로 넋 놓고 있을 수 없어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