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606
02609 2609화
그렇게 브레드 김과 정충현 과장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위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투다다다!
헬기의 로터음이 가까워져 귀를 자극했다.
지금 이 상황에 이렇게 낮게 헬기가 접근한다?
어떤 미친놈이?
누구랄 것도 없이 다들 인상이 구겨졌다.
동시에 상식 밖의 상황에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번쩍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그와 동시였다.
후두둑!
헬기에서 로프들이 광장 뒤쪽, 그러니까 경찰들이 쳐 놓은 바리케이드와 의료 천막 사이에 떨어져 내렸다.
그 공간이 그리 넓지 않았기에 의도적으로 로프들을 내린 거라면 헬기 조종사는 베테랑 중에서도 베테랑일 터였다.
그런데 로프만 떨군 게 전부가 아니었다.
촤아악!
로프들을 타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강하하고 있었다.
“저 새끼들은 뭐야!”
“잡아와! 저 새끼들 잡……. 어?”
바리케이드 밖에서 눈살을 찌푸리던 사람들의 얼굴이 점점 환하게 변해 갔다.
가장 먼저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인물이 누군지 알고 있던 탓이다.
청화대교 부상자 수습의 주역.
응급의료대의 초대 팀장이자 현재도 팀장을 역임하고 있는 인물.
의사들을 병원 밖으로 꺼낸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선두주자.
그리고 이런 사고의 순간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사.
바로 태수란 인물이었다.
태수의 등장만으로도 애타는 사람들은 절망을 뚫고 희미한 희망을 품게 했다.
“최태수다!”
“왔다, 드디어 왔어!”
“하아!”
반색하며 애써 불안감을 억누르는 사람들도 있고, 또 안도감이 몰려와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 못지않게 기자들도 서둘러 카메라를 돌렸다.
“역시 왔네, 역시 왔다고.”
“늦은 거 아니야?”
“뭔 소리야? 응급의료대가 아니라 성호에서 오는 거라고. 같이 떨어지는 멤버 봐 봐. 김혁권, 송현미, 유병태, 최소현이잖아.”
“아, 다들 성호로 돌아갔다고 했지.”
“응급의료대 도착하고 아직 10분도 안 됐어. 거리를 감안하면 거의 동시에 출발했다고 봐야 해.”
그렇게 목청 크게 옹호하는 기자들이 있었다.
그런 반면 부정적인 기자들도 있었다.
“그런데 저 인원이 전부야?”
“에게, 장난하나.”
“진짜 저게 다라고? 어디……. 헬기가 더 없네? 겨우 저만큼 와서 뭘 어쩌자는 거야?”
일부 기자들이 뒤에서 툴툴거릴 때였다.
그때 휴대폰을 든 어떤 남자가 그 기자들을 싹 훑으며 혼잣말을 했다.
“다들 지금 똑똑히 들으셨죠? 바로 저 기자들입니다. 입만 살아 나불나불거리면서 도와주러 온 분들 뒤에서 욕하는 기자들이요.”
그 소리를 험담하던 기자들 중 한 명이 듣고 바로 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당신, 뭐야?”
“그러는 그쪽은 어느 방송사의 누구신지?”
“당신이 알아서 뭐하게! 그 휴대폰은 또 뭐야? 뭘 찍고 있는 거야? 안 치워?”
기자가 위협했지만 휴대폰을 든 남자는 오히려 딴소리를 내뱉었다.
“대한방송국 전주민 기자님이시네요.”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요? 제 방송 시청자분 중 한 분이 알려 주셨는데요.”
“뭐?”
“인터넷 실시간 방송 중입니다. 할 말 있으면 더 해 보세요. 뒤에서 어떻게 뉴스가 만들어지는지 제 시청자분들이 알 수 있게요.”
말하는 남자는 인터넷 BJ인 모양이었다.
일부 BJ들의 무분별한 콘텐츠 남용으로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렇게 허를 찌르는 상황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방송 중이니 따지던 기자는 오히려 뜨끔했다.
문제는 그 한 명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곳의 소란이 알려졌는지 사람들의 눈빛이 따갑게 변하고 있었다.
그 날카로운 시선을 받은 기자는 난감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 웃으며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스윽.
고민을 거듭하던 기자는 슬쩍 다른 기자들 사이로 숨었다.
그 모습에 BJ가 통쾌해하며 말했다.
“제가 최태수 팀장님 열혈 팬인 건 다 아시죠? 어디 제 앞에서 최 팀장님 욕을 하는지, 좌우간 전 오늘 여기서 끝까지 방송 켜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비장했다.
어쩌면 남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 한낱 BJ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자리에 선 건 자신의 방송에 시청자 수를 올리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꼿꼿이 서서 이 현장의 참담함을 알리려는 노력만큼이야 다른 기자들보다 더 열정적이었다.
그 분위기에 휩싸인 시청자들도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방송 끊기면 안 됩니다.
-말로만 하지 마시고, 제가 지금 외장 배터리 사 들고 갈게요.
-다 같이 갑시다!
-위에 분, 가길 어딜 가요. 구경났어요? 그냥 이렇게 응원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고요!
-제발 비극은 여기까지였으면 좋겠어요. 지금부터는 모든 게 잘 해결되길 바랄게요.
인터넷 방송의 채팅창에 쉴 새 없이 말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대부분이 응원이었다.
적극적으로 찾아가잔 의견도 몇몇 보였지만, 현장을 더 복잡하게 하지 말자고 만류하는 글이 더 많이 올라왔다.
사실 인터넷상에서 설왕설래하는 건 현장엔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걱정과 응원을 보내는 의미만큼은 순수했다.
한편.
지상에 착지한 태수는 서둘러 안전장치를 풀고 빠르게 내달렸다.
타다닥!
뒤따라 내려선 이들은 자연스럽게 부상자들을 향해 흩어졌다.
그렇게 홀로 의료 천막을 지난 태수는 브레드 김과 정충현 과장 앞에 도착했다.
꾸벅.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살짝 고개 숙여 인사를 대신했다. 그리고 태수는 브레드 김을 향해 낮고 빠르게 물었다.
“현재 현장 지휘는 누가 하는 중입니까?”
핵심만 묻는 태수의 목소리가 낮고 차가웠다.
무엇보다 저 눈빛.
날카롭다 못해 사나운 저 눈빛은 브레드 김도 오랜만에 마주했다. 특히 한국에선 처음 마주한 눈빛이었다.
멈칫한 브레드 김이었지만 뭔가 일이 있음을 직감하고 물었다.
“캡틴, 무슨 일…….”
“총지휘자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반복된 태수의 질문은 더욱 스산해졌다. 단지 굵은 목소리가 아니라 밀어내기 힘든 카리스마가 함께였다.
정충현 과장도 그런 태수의 모습에 말을 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
그럴 정도로 태수의 주변은 이 열기가 무색할 정도로 차가움만 감돌고 있었다.
지체할 상황이 아님을 직감한 브레드 김은 바로 말했다.
“아직 없어. 각 파트별 현장 지휘자의 오더에 의존하는 중이야.”
“흠……. 무전기 채널은 맞춰 놨습니까?”
“그건 했어. 아, 여기.”
브레드 김은 얼른 허리춤에서 무전기를 꺼내 내밀었다.
탁.
받아 든 태수는 그랜드 타워 쪽으로 다가가며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최태수입니다. 각설하고 현재 각 직업별 현장 지휘자는 제 앞으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시간…… 1분 드립니다. 이상.”
뚝.
무전을 마친 태수는 고개를 들어 불타는 그랜드 타워를 눈에 담았다.
과격하다고 해도 좋다.
성질 더럽단 소문도 상관없다.
오늘은 그 어떤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강압적으로 나가야 한다.
주먹을 강하게 말아 쥔 태수는 그랜드 타워를 감싼 불꽃을 삼켜 버릴 기세로 노려봤다.
약속, 아니 태수가 일방적으로 통보한 1분이 지났다.
어느새 태수의 앞엔 각 직업 특색에 맞는 복장을 갖춘 인물들이 서 있었다.
그들 중에 의료진 대표로는 브레드 김이 함께했다.
다행이라면 이들 모두 청화대교 때 남쪽 현장에서 만났었다.
커다란 사고가 발생한 만큼 그때의 주역들이 다시 모인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다.
태수는 그들과 한 번씩 눈을 마주쳤다.
그 눈빛은 여전히 냉정했다. 청화대교 사고 현장에서 만났던 태수의 모습과 비슷했지만 오늘은 더욱 시리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둘러선 모두 내심 긴장했다.
그때 태수가 움직였다.
꾸벅.
허리를 깊게 숙인 태수가 그 자세 그대로 말했다.
“미리 사죄드립니다.”
“네, 네?”
“지금부터 보여 드릴 제 모습이 때론 불쾌하실 겁니다. 그래서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태수는 그렇게 재차 사과했다.
그런데 그 사과가 너무 뜬금없어서 그런지 다들 힐끔거리며 서로를 쳐다봤다.
그때 태수가 못다 한 말을 브레드 김이 대신 전했다.
“저희 의료진 일부가 옥상으로 갔다고 합니다.”
“오, 옥상이요? 저길 어떻게…….”
자신들도 접근할 수 없다고 판단 내린 장소였다.
거기다 탈출구도 퇴로도 없는, 말 그대로 고립된 공간에 의료진들 일부가 뛰어들었단 소식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브레드 김이 추가로 설명하려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브레드, 시간 많으십니까?”
“…….”
따가운 태수의 질책에 브레드 김은 차분히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다들 크게 놀랐다.
태수의 연장자 대우는 자신들도 직접 경험해서 잘 알고 있었다. 깍듯하고 차분히 설득을 하는 스타일인데 지금은 완전히 달랐다.
그런데 의외로 거부감을 보이는 이들이 없었다. 어쩌면 전과 달라진 태수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감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태수가 서로를 힐끔거리는 그들을 향해 낮게 말했다.
“주목.”
“흠흠.”
낮은 헛기침으로 마주한 시선을 흩트린 모두가 태수를 바라봤다.
태수는 차가운 그 눈빛 그대로 핵심만 물었다.
“경찰대장님, 현재 교통정리 상황은요?”
“음…… 우선 일대 교통 통제는 거의 완료했고, 그 주변으로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아직 진행 중이라는 게 어느 정도입니까?”
“그게, 그러니까…….”
“1분 드립니다. 확실하게 파악하세요.”
“잠시만요.”
가명진 경찰대장은 서둘러 휴대폰을 들었다.
그사이 매정하게 말을 마친 태수는 조순형 소방대장에게로 향했다.
“가스 차단 안 했습니까?”
“당연히 했습니다. 내부에 공급된 잔존 가스 폭발이었고, 중, 고층에 유리창 몇 장이 깨진 상태입니다.”
“내부 사항은……. 진입이 우선이겠네요. 위에서 보니까 진입이 불가한 거 같던데, 출입구 확보는요?”
태수가 앞서 살핀 걸 묻자 조순형 소방대장이 미간을 좁히며 애써 답했다.
“지금 저기 보시다시피 유리벽을 해머로 때리고 있지만, 여의치 않습니다.”
“지하 주차장을 통해선 접근 안 됩니까?”
“화재가 거기서 시작된 거라 유독가스가 가장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건물 내 소화 시설 가동은요?”
태수가 쉼 없이 물었지만 소방대장의 대답도 바로 이어졌다.
“1차 스프링클러, 2차 방연벽 시설이 가동했을 거라 추축합니다만, 현장에 들어갈 수 없어 정확하진 않습니다.”
“소방 점검 때 혹시 사람들이 잠시 머물 장소가 있었습니까?”
“네, 있었습니다. 저희가 현재까지 요구조자들의 생존율이 높다고 판단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럼 생존율이 더 떨어지기 전에 1층 출입구부터 확보해 주십시오.”
태수의 말이 탁상공론처럼 들렸는지 조순형 소방대장이 답답한 얼굴로 항의했다.
“저기 보시라고요. 특수 제작된 강화유리라서 해머로 쳐도 금이 가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저희 애들이 노는 건 아니잖습니까.”
“소방차로 밀어 버리세요.”
“뭐, 뭐요?”
“못 들으셨습니까?”
태수가 더 날카롭게 묻자 조순형 소방대장이 숨을 거칠게 들이쉬더니 뒷머리를 긁으며 항의했다.
“말이 쉽죠. 소방차가 망가지면…….”
“저한테 청구하세요. 됐죠? 부탁합니다.”
딱 자른 태수는 구조대장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반면, 소방대장은 황당한 얼굴로 뻐끔거리다 간신히 중얼거렸다.
“저거 한 대에 얼만데……. 아니, 차가 중요한 게 아니지.”
얼른 황당함을 털어 낸 조순형 소방대장은 무모하지만 확실한 방법에 눈빛을 빛냈다.
그사이 태수는 방주석 구조대장에게 차갑게 말했다.
“천막 세우라고 오시라 한 거 아닙니다.”
“알지만, 출입구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놀 순 없는 거 아닙니까.”
방주석 구조대장이 답답한 듯 대답하자 태수가 명쾌하고 간결하게 나갔다.
“저기 2층, 3층, 4층까지는 인명 구조 매트로 받을 수 있잖습니까. 깨진 유리창으로 뛰어내릴 수 있을 거고요.”
“가능한데 현재 보유 중인 매트 수가 너무 적습니다. 그리고 열기에 매트가 녹아 버릴 수 있어서 설치가 제한됩니다.”
“열기가 적은 쪽으로 단 하나라도 일단 까세요. 그리고 나머지는 뛰어서라도 가져오셔야 할 거 아닙니까!”
태수가 강하게 질책하자 방주석 구조대장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부탁합니다.”
할 말을 마친 태수는 몸을 돌려 이번엔 브레드 김에게 물었다.
“응급의료대 몇 명 출동했습니까?”
“20명, 10명은 상황실 대기.”
“정희의료원에서는요?”
“30명 정도. 레지던트가 좀 더 많아.”
“레지던트는 응급의료대 지원, 응급처치는 전문의 중심으로. 그리고 의료 텐트 5개 중에 2개는 임시 수술실. 구급차 이동로 확보되면 환자부터 정희의료원으로 옮깁니다.”
“오케이.”
브레드 김이 바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