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612
02615 2615화
그건 잠시였다.
“후!”
짧고 굵은 숨을 억지로 토해 냈다.
슥슥.
소매로 눈을 거칠게 문질렀다.
그리고 다시 매서운 눈빛으로 옥상을 바라본 태수가 주먹을 꽉 쥐었다.
끝은 없다.
끝이 났다고 한다면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어야 한다.
그 순간이 찾아오지 않았기에 아직 시간이 있고 기회가 있다.
흔들리는 건 한 번이면 충분했다.
더는 이런 괜한 걱정으로 약해지지 않아야 했다.
운명 그까짓 거.
뭉개버리면 그만이다.
결정을 내린 태수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게 자신을 다시 다잡은 순간이었다.
무전기에서 높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좌측, 출구 확보!”
“우측도 지금 막 확보됐습니다. 진입합니다!”
“살수차 20층을 집중 공략합니다!”
“지하 주차장 돌입했습니다. 발화점으로 접근 중!”
순차적으로 들려오는 소식들에 희망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부아앙, 부웅!
커다란 엔진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소방차들과 구급차들이 다가서고 있었다. 일부러 소리를 줄이고 접근하는 듯했다.
도착한 소방차들은 간격 넓게 멈춰서고, 곧 소방관들이 달려가 호스로 물대포를 쏘아 댔다.
그 물줄기가 10개가 넘었다.
“5번 소방차, 3층 공략해!”
“10번 소방차, 거기 사람 있으니까 천장 쪽으로 겨냥하고 쏴!”
세세한 명령이 무전기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워낙 커다란 건물이라 아직 큰 효과는 볼 수 없었다.
다들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물줄기를 가늘게 바꿀 일은 없었다.
동시간에 도착한 구급차는 쉴 시간도 없이 앞서 구조된 응급 환자들을 싣고 정희의료원으로 내달렸다.
“경찰, 에스코트 부탁합니다!”
“경상은 2명씩 실어!”
“지원한다던 구급차들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하고, 근처에 응급실 있는 중형 병원도 수배해!”
구조대원들의 목소리도 무전기를 통해 따갑게 울렸다.
그렇게 모두 노력 중이다.
그저 직업이기에 하는 일이 아니다.
저 속에 가족이나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닐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방관들과 구조대원들은 누구보다 힘을 냈다.
그때였다.
타다닥.
한 무리의 구조대원들이 태수 근처를 지나쳐 갔다. 그들 모두 태수를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다 구해 오겠습니다. 그러다 저희가 못 나오면…….부탁드립니다.”
“이 새끼가 재수 없게!”
“응급의료대가 있으니까 우리가 그냥 돌진하는 거잖아!”
“누가 뭐래냐고. 다 아는 걸, 저기 최 팀장님도 아는 걸 왜 굳이 말하는데. 말이 씨가 된다니까!”
타다닥!
구조대원들은 서두르면서도 티격태격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척.
온몸을 방화 장비로 도배한 소방대원들이 태수 앞으로 다가왔다.
“팀장님, 저희도 들어갑니다. 2층으로 갈 겁니다.”
“안전 확보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후우, 후우. 한 마디만 해 주세요.”
그들도 긴장되는 얼굴로 태수에게 안전의 기원을 바랐다.
그 이유는 구조대원들과 똑같았다.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구하러 와 줄, 또 수술해 줄 든든한 배경이 앞에 있던 탓이다.
태수는 가슴이 강하게 죄여 왔다.
그러나 겉으로는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강하게 말했다.
“불이 뭐가 무섭습니까. 그딴 거 콱 눌러 버리세요.”
“크하하! 역시 화끈하시다니까. 가자!”
척척.
소방대원들은 묵직한 모습이 무색할 정도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
반면 태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방금 후회한 자신이 그렇게 나약해 보일 수가 없었다.
이런 믿음을 누구에게 받아 볼까.
다른 직업을 택했다면 절대 경험하지 못했을 터였다.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온 길은 틀리지 않았다. 그 생각이 다잡은 마음에 두툼한 방어벽까지 둘러치게 했다.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을 거다.
앞만 보고 갈 거다.
태수는 그렇게 한층 마음을 강하게 다스렸다.
그런 결심과 동시였다.
띠릭!
“팀장, 나 윤주성이야! 부상자들 다수 발견! 이쪽에 불이 들이쳤었는지 환자 상태가 심각해. 바로 지원해 줘야겠어!”
윤주성 조장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NGO의 경력이 무색할 정도라면 엄청난 상황일 터였다.
이미 모든 걸 털어 낸 태수이기에 바로 무전기를 들고 답했다.
“곧 지원 갑니다. 응급의료대!”
태수가 이어서 찾자 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네!”
“전원 투입한다. 오늘 끝장 보자.”
“알겠습니다!”
그 대답 소리와 동시에 의료 텐트가 부산해졌다.
그런 시간도 잠시였다.
곧 준비를 마친 응급의료대가 모두 다가와 태수 주변에 섰다. 안에 투입된 인원이 빠져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들이 적단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당백은 어려워도 일당십은 문제없다.
태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가자.”
척, 척.
비장한 눈빛으로 응급 환자들이 가득하단 그곳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띠릭.
갑자기 무전기가 울리며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 팀장, 멈춰. 현장 지휘자가 그렇게 몸이 가벼우면 쓰겠냐고. 비켜. 이 형님이 이끌어 드릴 테니까.”
서강재의 목소리다.
그럼?
태수가 뒤를 돌아봤다. 남자들로만 구성된 의사와 간호사들이 넓게 늘어서서 다가오고 있었다.
맨 앞에서 모두를 이끄는 건 방금 무전한 서강재의 다급한 얼굴이 보였다.
곧 다가온 서강재가 태수의 어깨를 짚고 그대로 지나가며 말했다.
“응급의료대는 무적이냐? 한숨 돌리고 움직이라고 해.”
“서 팀장.”
“간다. 환자 잘 받아라.”
그렇게 서강재가 먼저 지나쳐 가고 바로 의료진이 함께했다.
그때 무전기가 또 한 번 울렸다.
“수술차 3대 모두 준비 끝났어. 임시 수술실 두 곳도 추가했고.”
하석준 팀장의 목소리였다.
휙!
태수는 재빨리 그쪽으로 시선을 돌려 봤다.
의료 천막이 지금도 설치 중이었고, 오른쪽 끝엔 수술차가 나란히 도착해 서 있었다.
태수 입가에 아주 작은 미소가 걸렸다.
그때 모여든 사람들을 밀어내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통제 중인 경찰에게로 다가섰다.
무언가를 보여 주며 몇 마디 나눈 그들은 곧 현장으로 들어왔다.
하석준 팀장이 그들과 몇 마디 나누더니 바로 무전기를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울렸다.
띠릭.
“두 번째 만남이라서 그런지 더 반갑다는데.”
그 말로 태수는 그들이 누군지 바로 알아챘다.
강남권 개인 병원 원장들이었다.
태수도 옅게 미소를 지으며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저도 반갑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런데 아직 수술할 정도의 환자는 없는 거 같아.”
“아마 그럴 겁니다.”
태수가 말을 마친 순간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띠릭.
“수술차 문 열어요! 전신 화상 환자입니다!”
정민수?
태수가 생각하기도 전이었다.
타다닥!
다른 출구에서 정민수와 김혁권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들과 거리를 조금 두고 구조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뒤따랐다.
정민수가 지나치며 태수에게 말했다.
“눈에 보인 건 페이크였어! 그 안쪽 상황이 더 심각했다고. 젠장! 진짜 전쟁이다.”
“알았으니까 얼른 들어가!”
“간다!”
타다닥.
정민수와 김혁권이 바로 지나쳐 수술차로 향했다.
태수는 뒤따라오는 환자부터 빠르게 확인했다. 그 순간 태수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강하게 찌푸렸다.
“흐으, 으으으.”
앓는 소리가 나오는 부분이 아마 입일 거다.
태수도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전신 화상 환자였다. 불구덩이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고 해도 믿을 모습이었다.
태수는 재빨리 무전기를 들어 호칭 떼고 이름만으로 거칠게 오더했다.
“집도 정민수, 보조 김혁권, 어시스던트 하석준, 보조 송현미!”
현재 외부로 나온 인원들 중 가장 정예였다. 그들이 모두 투입될 환자란 소식에 의료 천막 주변이 소란스럽게 변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최 팀장, 수술차 하나 더 열어!”
브레드 김의 목소리였다.
방금 정민수가 뛰어온 그 길을 그대로 이어서 브레드 김이 달려왔다.
뒤의 환자는?
앞선 환자보다는 덜했지만 그래도 심각한 건 매한가지였다.
무전기를 다시 든 태수가 수술할 인원을 지목했다.
“집도 브레드 김, 보조 조현정, 어시스던트 성재경, 보조 박수영!”
“접수!”
목청 크게 대답한 성재경이 무전기를 옆으로 넘기고 수술차로 잽싸게 들어갔다.
이쯤 되니 태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다시 무전기를 들어 소리쳤다.
“방금 두 환자가 나온 장소에 계신 아무나 응답 바랍니다!”
“말씀하십시오!”
“어느 정도의 환자가 몇 명이나 더 있습니까?”
“가장 응급한 환자분들이 나간 거고, 앞으로 최소 10명, 아니 좀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시야가 제한돼 정확한 파악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끝이 아니었다.
윤주성 조장의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최 팀장, 이쪽도 이제 환자 나가. 응급처치는 했는데 역시 화상이 많고, 또 호흡 화상 환자도 상당해.”
“알겠습니다……. 신속대응센터, 화이트엔젤, 지금부터 모두 수술에 투입합니다. 집도의가 부족하면 레지던트 4년 차까지 집도 허용합니다.”
태수가 빠르게 오더하자 대답이 들려왔다.
“신속대응센터 접수.”
“화이트엔젤, 접수했습니다.”
그 대답 후 태수가 이어서 오더했다.
“응급수술입니다. 최소한 이동 시간만 벌어서 정희의료원으로 보내는 게 목적입니다.”
“알겠습니다!”
씩씩한 대답 소리와 함께 의료진들 천막이 부산해졌다.
태수는 바로 정충현 과장을 찾았다.
“정희의료원 정 과장님.”
“말해.”
“응급실 수용 가능 인원, 수술 가능 인원을 10분 단위로 알려 주십시오.”
태수의 한마디에 정충현 과장이 짧게 응답했다.
“그래.”
“그리고 개인 병원 원장님들, 수술실이 구비된 병원은 바로 알려 주시고, 정 과장님이 조율해서 최대한 분산시킵니다.”
“이쪽은 내가 계속 통제할게.”
정충현 과장이 대답 소리와 함께 저 멀리서 손을 흔드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그는 개인 병원 원장들을 불러 뭔가를 상의하기 시작했다.
그때 통보받은 환자들이 구조대원들의 손에 실려 나왔다.
타다닥!
그들은 잰 걸음으로 최대한 들것의 균형을 맞춰 의료진들에게 달려갔다.
그 수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제 1층이다.
아니, 고작 1층에서 나오는 환자들이 이렇게나 많았다.
이런 환자가 90층에 이른다면?
게다가 지하 주차장에 고립됐던 사람들도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
그렇게 추산해 본 환자의 수는 상상을 초월했다.
정희의료원과 성호종합병원의 앙상블로는 턱도 없었다.
태수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떠오른 인물에게 곧장 전화했다.
이내 휴대폰이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 받았습니다.”
“이 선생, 나야.”
태수가 전화한 건 다름 아닌 이기준의 목소리였다.
이기준은 동요 없는 목소리로 여전히 차갑게 답했다.
“네 전화번호는 저장되어 있어. 그보다 내가 보고 싶어 전화했을 린 없고……”
“보고 싶다면?”
“연성 손까지 빌리나?”
“지나가던 인턴이라도 납치할 상황이야.”
“강 너머라 간섭하지 않는 게 좋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봐.”
이기준의 목소리는 여전히 똑같았다.
태수는 그런 그의 마음에 작은 불을 질렀다.
“사람 죽어간다.”
“……최대한 빨리 소집해서 넘어갈게. 교통 상황이 어떤지 몰라서 1시간은 줘야 해.”
“경찰 보낼게. 30분 내로 와.”
“하여간 정신없는 녀석이라니까……. 가서 보자.”
뚝.
먼저 전화가 끊어졌다.
말만 태연했지, 마음이 급해진 모양이다.
겉으로만 차갑고 속은 뜨거운 이기준이란 인물?
여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