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613
02616 2616화
태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어서 다른 인물에게 전화했다. 그건 다름 아닌 충효종합병원으로 복귀한 한승훈이었다.
“어, 최 팀장,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냐고. 그런데 왜?”
“한 선생, 응급의료대 OB 모임이 오늘 그랜드 타워에서 있을 예정이야. 지금으로부터 30분 후에 말이지.”
“……충효가 아니라 응급의료대 OB야?”
“싹 끌고 와. 충효에서 허락한다면.”
태수는 그럴 리 없다고 말했지만 한승훈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그래. 청화에서 구겨진 이미지, 이번에 아주 제대로 쇄신해 보자.”
“복귀하더니 성격 많이 변했네.”
“그럴 리가. 지금 한 말은 병원 입장이야. 내 입장은 응급의료대 OB지. 최대한 빨리 출발할게.”
뚝.
한승훈도 급한 마음인지 먼저 전화를 끊었다.
개의치 않은 태수는 휴대폰을 잠시 내려다봤다.
모두 서울 지역 광역외상센터로 지정된 병원들이었다. 그리고 또 한 군데 지정된 병원이 있었다.
거리낌?
사람이 죽어 가는데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태수는 바로 전화번호를 찾아 상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상대는 강서종합병원 고준규 부원장이었다.
뚜루루.
몇 번 신호가 가더니 곧 껄끄러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 팀장이 나에게 전화를 하다니.”
“실례란 거 알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강서는 안 오십니까?”
“이미 정희와 성호가 자리를 잡았는데, 들러리라도 하란 의미라면 사양하지.”
“그게 그렇게 중요하십니까? 그럼 성호는 메인 자리를 양보하겠습니다.”
태수가 단번에 약속했지만 고준규 부원장의 목소리는 오히려 의구심이 깊어졌다.
“그렇게 단언하는 이유…… 이번에도 같나?”
“물론입니다.”
“하나만 더 묻지. 왜 환자를 위해 그렇게까지 하냔 상투적인 질문은 아니야.”
“말씀하십시오.”
“이렇게까지 하면 자네에게 어떤 대가가 돌아가는 거지?”
고준규 부원장은 의미심장하게 질문했다.
태수는 솔직하게 말했다.
“오늘 발 뻗고 잡니다.”
“훗, 그런가?”
“믿지 못하시는 모양입니다. 그럼 제가 한 가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좋아. 나도 물었으니 질문도 받아 봐야지.”
의외란 목소리로 수락하자 태수는 바로 물었다.
“부원장님은 단 한 번도 환자로 인해 눈물로 밤을 지새운 적 없으십니까?”
“…….”
“없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있다면…… 어떤 행동을 해야 하실지 잘 아신다고 생각합니다.”
“흠.”
“괜히 말이 길어졌습니다. 제가 바빠서 이만.”
뚝.
이번엔 태수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강서종합병원이 올까?
온다면 좋은 일이고, 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었다.
태수가 현장을 지휘하고 있다고 타 병원을 억지로 동원할 권한은 없었다.
그때였다.
띠링.
문자 도착과 동시에 확인하니 의외로 고준규 부원장이 보냈다.
-어느 병원이든 응급실은 열려 있어.
확인한 태수가 옅게 미소 지었다.
그 말이 당연할지 몰라도 의미는 상당히 깊었다. 응급 여하에 따라 수술실도 개방한단 의미가 담겨 있던 탓이다.
서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서종합병원의 의료 수준을 태수도 알고 있다.
최소한 안정적으로 수술할 병원이 추가됐으니 만족할 일이었다.
고준규 부원장이 놀랍도록 양보한 큰 호의였다.
물론 태수도 돌려줄 작정이었다.
이렇게 되면 성호, 정희에 이어 연성, 충효, 강서까지.
현재 서울에서 최고로 꼽히는 병원들이 다시 한 번 모두 집결하게 된다.
청화대교 붕괴란 국가적 재난을 이겨 낸 병원들이다.
그랜드 타워 화재가 그보다 더 중대한 사건이라 해도 이겨 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태수는 이 순간 또 한 명을 떠올렸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화상을 입었으니 그에 대한 전문가를 초빙하는 건 당연했다.
그런 이유로 태수는 조기한 원장에게 전화했다.
바로 그의 퉁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바로 전화 받으시네요.”
“전화 올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역시 그의 성격대로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답변이 들려왔다. 태수 또한 똑같은 대화법으로 말했다.
“그럼 그냥 오시면 되죠.”
“그냥 기웃거리는 것보다 불러서 가는 게 폼 나잖아.”
“폼 나게 오십시오.”
“마시던 커피는 마저 마시고 가야지. 1분만 기다려.”
뚝.
전화가 끊어진 순간 태수는 황당한 얼굴로 변했다.
“이 근처야?”
그래놓고 지금까지 들어오지 않았다니.
황당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오늘 같은 사고 현장엔 조기한 원장의 솜씨가 분명 빛을 볼 터였다. 기왕이면 그의 실력이 재평가됐으면 하는 바람도 약간은 있었다.
이렇게 호출은 끝…….
혜민병원이 떠오르자 태수가 멈칫했다.
전화를 하기도 그렇고, 하지 않기도 그런 상황이었다.
고개를 털어 낸 태수는 다시 휴대폰을 쥐었다. 그러나 막상 전화를 하려니 역시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태수의 고민이 깊어질 때였다.
띠릭.
무전기가 울리더니 심각하게 짧은 목소리가 태수를 찾았다.
“최 팀장, 나 왔어.”
흠칫 놀란 태수가 얼른 고개를 돌려 봤다. 그러자 의료 천막 옆에서 박성민의 둘째 형 박성국이 손을 들고 있었다.
태수는 얼른 무전기에 대고 물었다.
“혜민병원 흉부외과장님, 맞습니까?”
“맞아. 우리도 투입할게.”
“아니, 어떻게…….”
“병원장님은 수술 끝나고. 내가 먼저 왔어.”
역시 심하게 짧은 말이라 태수가 중간중간 끼워 맞춰야 했다. 그래도 알아들을 만큼은 말해 줘 다행이었다.
태수는 일단 무전부터 마무리 지었다.
“네. 혜민병원도 투입해 주십시오.”
“알았어.”
그게 끝이었다.
하지만 태수는 끝이 아니었기에 휴대폰으로 얼른 박성국에게 전화했다. 저 멀리 선 그가 태수를 의아하게 바라보고 전화를 받았다.
“왜?”
“저기, 선배 말입니다.”
“들었어.”
“아, 네.”
“막내가 문자 보냈더라. 너 온댔대서 걱정할 거 없다고. 그래서 걱정 안 해.”
박성국의 무심하고 딱딱한 말투보다 그 내용에 태수가 멈칫했다.
“감사…… 합니다.”
“막내가 전화 꺼 놓는대. 괜히 신경 쓸까 봐. 그리고 기다린대. 그러니까 올라가.”
“……네. 꼭, 꼭 올라가겠습니다.”
“고생.”
뚝.
박성국은 그렇게 전화를 끊고 아예 의료 천막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자기 친동생인데 걱정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도 걱정보다 믿음을 먼저 보여 줬다.
보답은 역시 무사 귀환이다.
태수는 쓰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
짧게 숨을 내뱉은 게 전부였다.
그리고 다시 무전기를 든 태수는 직접 현장을 크게 둘러보며 전체적인 조율을 시작했다.
이렇게 인원이 늘어났으니 이젠 좀 더 효율적인 진행이 가능해졌다.
그걸 태수는 십분 활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누군가 폴리스 라인을 지나 태수에게 다가왔다.
딱 봐도 꼬장꼬장한 얼굴에 가운을 걸친 조기한 원장이었다.
태수는 무전을 잠시 멈추고 그에게 다가갔다.
꾸벅.
“근처까지 와 계신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나도 사람 새끼야.”
조기한 원장의 독특하면서도 솔직 담백한 입담은 여전히 변함없었다.
태수도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핵심만 말했다.
“가운 입은 분들이 많은데요.”
“돈 좋아하는 놈들이 여기까지 왔을까.”
“다행히 그런 분들은 없네요. 자, 가시죠.”
태수는 직접 그를 의료팀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직접 정충현 과장에게 조기한 원장을 소개했다.
“성형외과의 은거 기인이라고 할까요?”
“그래?”
“화상 쪽에도 조예가 깊다고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라.”
애매한 정충현 과장의 반응에 기다리다 못한 조기한 원장이 나섰다.
“쓸 만하면 써먹고, 그렇지 않으면 버리시면 될 거 아니요.”
그 말에 정충현 과장이 놀란 얼굴로 태수를 바라봤다.
“왜 은거 기인인지 알 거 같아.”
“실력은 확실합니다. 자발적으로 오신 만큼 열심히 부려먹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하지. 그럼 이쪽으로 가시죠.”
정충현 과장이 안내하며 멀어져 갔다.
그 뒤를 따르던 조기한 원장은 힐끔 태수를 흘겨봤다.
“열심히 부려?”
“…….”
어깨만 들썩인 태수는 슬쩍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조기한 원장에 대한 걱정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비록 지금은 안내를 받는 입장이나 곧 현장에서 자기 목소리를 높일 거라 확신했다.
두 의사가 의료 텐트로 근접하자 태수도 이내 돌아섰다. 조기한 원장만 신경 쓸 만큼 현장은 안정을 찾지 못했다.
좀 더 세부적인 정리가 필요했다.
그걸 위해 몇 걸음 걸어갈 때였다.
“이러면 안 된다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 잘 들으라고! 그러니까…….”
큰 소리에 태수가 슬쩍 돌아봤다.
조기한 원장이 응급처치 중인 화상 환자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그 앞엔 레지던트들은 물론 전문의들도 함께였다.
그걸 본 태수가 낮게 중얼거렸다.
“바로 휘어잡으시네.”
별 걱정하지 않았기에 태수의 발걸음엔 변화가 없었다.
이후 광장 가운데로 돌아온 태수는 계속 무전으로 세부적인 걸 조율했다.
그렇다고 제자리만 고수하진 않았다.
여기서는 현장을 가장 넓게 볼 수 있지만 모든 걸 눈에 담을 순 없었다.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 예기치 못한 일들이 발생할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태수는 건물을 중심에 두고 빙 돌아 뒤쪽으로 달렸다.
타다닥!
달리고 또 달렸지만 웅장한 건물 규모에 돌아가는 시간만 해도 상당했다.
달리면서 다시금 드는 생각은 하나밖에 없었다.
“젠장. 헉헉! 더럽게 넓네!”
욕 나올 정도였다.
그래도 바지런히 달리니 뒤쪽에 도착하긴 했다.
이쪽도 경찰들이 지켜 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숨죽여 지켜보고 있고, 기자들은 틈이 있는지 기웃거렸다.
그들을 뒤로한 태수가 건물 쪽을 바라보자 출구에서 사람들이 구조되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을 위해 앞에서 연기를 밀어내는 소방대원들과 옆에서 부축하거나 옮기는 구조대원들도 함께였다.
그런데 부족한 게 있었다.
바로 의료진들이다.
태수는 무전기를 들어 재빨리 의료팀을 호출했다.
“정 과장님!”
띠릭.
“왜, 어디!”
“레지던트들을 최대한 사방으로 퍼트려 주십시오.”
태수의 말귀를 역시 노련한 경험자인 정충현 과장은 바로 알아들었다.
띠릭.
“거기서 1차로 응급처치하고, 이쪽으로 옮겨 와서 2차 응급처치를 진행하자고?”
“그게 효율적입니다.”
“알았어. 우리 쪽 레지던트들을 퍼트릴게.”
그와의 무전이 끝난 후 태수는 다시금 가명진 경찰대장을 찾았다.
“경찰대장님!”
띠릭.
“말씀하십시오.”
“버스를 수배해서 각 출구로 보내 주십시오.”
“버스라, 버스……. 의경들이 거의 도착했다니까 그 버스들을 활용하면 될 거 같습니다.”
“몇 대입니까?
“바로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가 무전을 잠시 보류했다.
그러나 태수는 여전히 무전기를 들고 있었다.
방금 오더하며 스스로 정리한 내용이 있었다. 혼자 알고 있는다고 될 일이 아니기에 얼른 목소리를 높였다.
“잠시 주목해 주십시오!”
“…….”
무전기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소방대원과 구조대원들 중 무전기를 든 이들이 태수를 힐끔거렸다.
그런 모습을 집중한 신호로 판단한 태수가 생각한 걸 말했다.
“구조자들이 밖으로 나오면 1차로 두 분류로 나눕니다.”
“…….”
“그 분류는 지금 각 출입구로 향하는 의료팀이 내릴 겁니다. 의료팀은 도착한 버스에 태울 구조자와 응급처치해야 할 구조자를 분류합니다.”
“…….”
“그리고 버스는 정희의료원 응급실과 강서종합병원 응급실로 각각 이동합니다. 방금 전달한 내용을 주변에도 알려 주십시오.”
홀로 길게 말한 태수가 무전기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