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664
02667 2667화
잠시 후.
급조된 수술 공간에 기본적인 준비가 마무리됐다.
구조대원들의 도움이 너무 큰 역할을 해 줬다.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도 환자들과 주변인들이 수술 장면을 절대 볼 수 없게 자리를 옮겨 주고 있었다.
“조금만 옆으로 옮겨 드릴게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기서 뭔 수술을 해요.”
환자들의 반박에 구조대원들이 성의껏 달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럼 어쩝니까. 당장 병원으로 모시고 갈 상황이 아닌 걸요. 봐서 좋을 거 없으니까 신경 끄세요. 그게 좋습니다.”
“아이고, 그래요. 그리고 고마워요.”
사람들은 다소 불편하고 귀찮을 텐데도 군말 없이 따라 줬다.
의사와 구조대원.
이들 모두가 자신들을 위해 옥상까지 올라왔단 걸 알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불평 자체를 늘어놓지 않았다.
혹시라도 누군가 조금 삐딱하게 굴면 바로 사방에서 날카로운 시선들이 쏠릴 정도였다.
그렇게 주변은 순식간에 한가해졌다.
하지만 의료진들은 더욱 바빠졌다.
수술 준비도 해야 하고, 환자 상태도 좀 더 전문적으로 파악해야 했다.
어느새 각각 누운 환자의 팔엔 자동 혈압 측정기가 부착되어 있었다. 건전지로 작동하는 방식이라 이런 야외에서도 사용이 가능했다.
띡, 띡.
한 차례씩 소리가 울리자 김혁권과 송현미 간호사가 각각 확인 후 목소리를 높였다.
“폐 환자는 혈압이 거의 안 잡혀요. 맥박도 너무 떨어지고 산소 포화도도 낮아요!”
“복부 환자분도 이대로는 얼마 못 버텨요!”
그들의 반응과 동시였다.
환자들 가운데에 자리를 잡은 서영우가 소리 높여 말했다.
“측정기들 저한테 어서 주세요. 어디 보자……. 후우! 우선 둘 다 승압제하고 리도카인 투여. 그리고…….”
서영우는 투여할 약들을 순서대로 읊었다.
그 준비를 도와줄 노지연 간호사가 기진맥진해 혼자 진행 중이었다.
대신 박성민과 태수가 그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각각 환자의 팔에 IV를 연결 중이었다.
그 두 사람 중 박성민이 먼저 고개를 들며 주사기로 손을 뻗었다.
“서 선생님, 이쪽 연결 끝났으니까 투여할 거 주세요……. 네. 하나씩 투여하겠습니다.”
“이쪽도 연결했으니까 주사기 주세요……. 황 선생, 수혈팩 라인은 아직이야?”
태수는 받아 든 주사기의 피스톤을 누르며 고개를 들어 빠르게 물었다.
독촉을 받은 황경석은 난간 위 철창에 수혈팩을 다느라 진땀을 뺐다. 그 옆엔 앞서 매달아 놓은 수액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빠르게 손을 움직이던 황경석이 수혈팩 라인 하나를 태수에게 건네며 말했다.
“여기, 됐습니다……. 박 팀장님도 받으시고요.”
“자식, 타이밍 좋네!”
박성민은 재빨리 수혈팩 라인을 받아 IV에 추가했다.
태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신속하게 각기 다른 라인을 하나로 합친 후 주변을 둘러봤다.
커다란 종이 상자 속엔 수술에 필요한 기본적인 의약품들이 들어 있었다. 그중에서 거즈와 식염수가 반 이상 차지하고 있었다.
반면 수혈팩은 몇 개 없었다.
더구나 각자 혈액형이 달라 혈액을 공유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저 상황이 이렇다고 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출혈이 있는 환자들을 응급수술해야 할 상황이라 몇 배는 더 필요했다.
태수는 그 부분에 대해 황경석에게 들었지만 한 번 더 물었다.
“헌혈은 진행 중이라고?”
“네. 설국진하고 이성혁이 진행 중입니다. 이분은 돌잔치, 이분은 가족 모임. 이렇게 일가친척들이 대부분 여기에 있어서 헌혈도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고요.”
“이걸 이분들 복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태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괜스레 곱씹었다.
그러던 태수가 혹시나 싶은 얼굴로 거즈를 뭉텅이로 꺼내는 황경석에게 한 번 더 물었다.
“혹시 신랑, 신부들이 다치진 않았겠지?”
“턱시도와 웨딩드레스 입은 분들은 뵀는데, 엄청 상심했단 거 말고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오죽할까.”
태수가 고개를 저었다.
축하로 가득해야 할 날이 암울해졌으니 허탈할 터였다.
예식장도 하나가 아닌 터라 상심한 신랑, 신부들도 그만큼 많을 터였다. 그래도 부상을 입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인 상황이다.
대화는 입으로만 할 뿐, 수술 준비는 착실하게 진행되어 갔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의료진들은 수술 가운을 걸치기 시작했다.
응급수술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진행이 느린 느낌이었다.
다들 알지만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1차 응급처치로 환자들이 버틸 여력을 마련해 놓았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여타 응급출동과 달랐다.
최근 응급의료대가 출동할 땐 최소 소형 발전기를 필수로 챙겼다. 그래서 썩션을 비롯한 전자 수술 도구의 사용이 가능했다.
지금은 그 모든 걸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어이없다 못해 웃기는 일이었다.
가장 현대적인 건축물이란 그랜드 타워 옥상에서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수술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핸디캡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철저히 준비한 것도 약간 늦어진 이유 중에 하나였다.
어쨌든 준비는 모두 끝났다.
그리고 모두 제자리에 섰다.
환자들의 머리맡엔 서영우가 홀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흉부 환자는 박성민과 김혁권이, 1미터가량 간격을 두고 누운 복부 환자 옆엔 황경석과 송현미 간호사가 자리해 있었다.
태수는?
환자와 환자 사이의 공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꽉, 꽉.
태수는 주먹을 쥐는 행동으로 장갑을 손에 맞게 정돈하며 말했다.
“말씀드렸듯이 전 양쪽을 오갈 겁니다.”
“괜찮겠냐?”
“위생은 무조건 철저히 지킬 겁니다. 수술 장갑을 자주 교체하면서 지체되는 시간이 있겠지만요.”
태수의 답에 박성민이 눈을 가늘게 뜨며 정정해 물었다.
“환자들 말고 너. 너 괜찮겠냐고 묻잖아.”
“뭐, 괜찮겠죠.”
“대책 없는 놈…… 이라고 하고 싶은데, 지금은 이런 포지션이 가장 이상적이란 걸 부정할 수가 없네.”
박성민이 씁쓸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런 그의 표정은 어떤 가리개도 없이 확연히 드러났다.
수술 가운과 수술 장갑은 착용했지만 그 외에 마스크나 헤어캡은 이미 다 썼다.
하지만 그 모습을 누구도 비위생적이라고 트집 잡을 수가 없었다.
위생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면 이 개방된 공간에서 수술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인 탓이다.
하면 위험하지만 안하면 환자가 죽는다.
그런 이유로 하는 수술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문제점을 모두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최악이지만 늘 최선을 희망하면서 한손 한손을 보탰다.
그 상황을 잘 아는 서영우가 각각 주사를 투여 후 말했다.
“항생제 방금 추가했고, 허용된 범위 내에서 최고로 빠듯하게 계속 투여할 예정이야. 수술할 때 먼지는…….”
“식염수와 거즈가 많습니다. 수술 중에 수시로 세척해야죠.”
“알았어. 좌우간 이쪽은, 잠깐만…….”
말꼬리를 늘인 서영우는 인튜베이션 된 환자들의 입에 각각 휴대용 산소호흡기로 한 번씩 호흡을 더해 줬다.
칙, 칙.
스프레이 형식이라 가스 새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고 난 후 수액과 수혈팩 등 IV를 확인하고 자동 혈압 측정기의 수치까지 파악한 후에야 서영우가 입을 열었다.
“양쪽 모두 빨리 시작하는 게 좋겠어.”
“엄청 바쁘시겠습니다.”
“그래도 메스 든 스트레스만큼은 아니야. 오랜만에 메스 들고 니들홀더 들었더니 손이 굳는 느낌까지 들었다고.”
서영우는 억지로 가볍게 말했지만 표정은 잔뜩 굳었다.
태수도 그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되지만 굳이 아는 척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선배, 시작하시죠. 우리도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태수는 간결하게 알리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송현미 간호사가 바로 메스를 건네줬다.
그걸 받아 든 태수가 환자의 복부를 가르는 행동으로 응급수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갈라진 복부 사이로 피가 몽글몽글 솟아올랐다.
그 출혈을 송현미 간호사는 두툼한 거즈로 빠르게 닦아 내고 액상 지혈제를 틈틈이 뿌려 강제 지혈시켰다.
문제는 그조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닦고, 뿌리고.
한 번 더 반복하고, 세 번째 반복될 땐 황경석이 거즈를 잡았다.
“제가 좀 돕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런데 좀 불편한 게 많을 거예요.”
“저도 응급 출동 경험이 좀 되다 보니까 감은 잡고 있습니다.”
“하긴. 내가 괜히 잔소리하는 건 좀 그렇죠?”
“전혀요.”
대답하는 황경석의 표정엔 어떤 표정 변화도 없었다.
인턴 때부터 봐 온 송현미 간호사였고, 도움을 엄청 많이 받았다.
시간이 많이 지나 자신이 전문의가 되었다고 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또 송현미 간호사는 여전히 건재했다.
황경석이 자신을 낮추는 게 아니라 엄연히 사실을 말하는 거였다.
태수도 잘 알지만 조용히 한마디 했다.
“많이 지체됐으니까 좀 더 서두르겠습니다.”
“네!”
짧은 대답 후엔 오가는 대화가 급속히 줄어들었다.
수술실에서 보다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한 순간이라 무섭게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그사이 등 뒤에선 박성민이 김혁권과 함께 개흉을 진행했다.
“……메스.”
“여기.”
“거즈.”
“내가 닦을게요. 여기 발포어 받으시고.”
두 사람의 오가는 목소리가 상당히 진지했다.
평소 주변을 질리게 만든 넘치는 개성이 사그라질 정도였다.
그 하나만 봐도 이번 응급수술에 임하는 마음가짐부터가 다르다는 게 한눈에 드러났다.
곧 좌우에서 개복과 개흉이 끝났다.
그리고 태수와 박성민이 각각 환자의 내부를 신속하고 꼼꼼하게 확인했다.
그중 태수가 입을 열어 내부 상황을 모두에게 알렸다.
“복부 환자분은 역시나 비장이 터졌고, 간이 찢어졌습니다. 처음 상처는 별거 아니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서 심각해졌고요.”
“이쪽도 그래. 일단 왼기관지를 차단해서 객혈은 막았는데…… 폐 손상이 생각보다 심해. 갈비뼈 조각들도 좀 꽂혀 계시고.”
“여긴 유리 조각들이 많이 보입니다.”
두 사람이 엎치락뒤치락 환자에 대해 알리는 사이 주변의 분위기가 서서히 묵직하게 가라앉아 갔다.
쉽게 말하는 것처럼 들릴지라도 절대 간단하게 해결될 증상들이 아닌 탓이다.
그렇게 파악을 마친 순간이었다.
띡, 띡.
자동 혈압 측정기 소리가 울리더니 서영우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의하고 의논할 시간은 없을 거 같아.”
“…….”
“복부 환자 바이탈이 훅 떨어졌어. 최 팀장, 우선 집중해.”
“알겠습니다.”
대답한 태수는 앞으로 손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송현미 간호사의 손이 환자를 넘어 믹스터와 니들홀더를 건넸다.
탁.
그걸 받아 든 태수는 황경석을 향해 낮고 빠르게 말했다.
“출혈을 최대한 빨리 그리고 많이 걷어 내. 그것만 집중해.”
“알겠습니다. 셀라인하고 거즈요.”
“셀라인 먼저 뿌릴게요.”
촤악, 후두둑!
송현미 간호사는 식염수부터 복부 안에 쏟아 부었다. 피가 식염수와 섞여 묽어지자 그 위에 하얀 거즈를 함박눈처럼 뿌렸다.
거즈가 복부 내로 들어간 순간 황경석이 끝이 기다란 인터네셔널 포셉으로 잡고 휘저으며 빼냈다.
분홍색에 가깝게 희석된 혈액을 흠뻑 머금은 거즈가 그 끝에 달려 있었다.
식염수는 더 이상 추가되지 않았고, 거즈만 계속 쏟아졌다.
그 거즈가 쌓이자 한 손으로는 부족했는지 왼손에 또 다른 포셉을 들고 양손으로 젖은 거즈를 번갈아 뽑아냈다.
태수도 믹스터로 한 손 더했다.
촥, 촥.
넓게 깔아 둔 천막 위에 핏물이 흘러내렸지만 신경 쓸 틈 따윈 없었다.
지금도 출혈은 계속되고 있다.
그렇기에 출혈이 흘러나오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야 환부가 확보될 수 있었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환부를 눈에 보일 때까지 같은 행동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은 반대쪽 흉부 환자도 마찬가지였다.
박성민이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오더를 내렸다.
“김 간호사, 거즈 더!”
“잠깐만요. 뜯어야 합니다.”
“뜯은 걸 벌써 다 썼어요?”
“내 말이요……. 자, 여기!”
후두둑.
김혁권은 얼른 멸균 처리된 봉투를 뜯어 거즈를 환부 속으로 뿌렸다.
박성민도 양손을 쉬지 않고 출혈의 양보다 더 빠르게 걷어 내려고 진땀을 뽑았다. 기약없는 반복 처치였지만 흔들림은 없다.
의사라면 적어도 외과의사라면 누구나 생명 앞에선 모든 걸 걸어야 했다. 박성민도 그런 의사였다.
그 모습들이 현대 의술과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지켜보던 서영우의 미간이 확 좁혀졌다.
“이대로는 끝이 없……. 아니, 우리가 먼저 지쳐.”
그의 감상평은 냉정하지만 솔직한 현실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