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767
02770 2770화
태수도 그런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면서 눈빛 한 번 흔들리지 않았다.
“병은 믿을 상대가 안 됩니다. 의리도 신뢰도 믿음도 없는, 싸가지 더럽게 없는 놈이 바로 병입니다.”
“…….”
“그런데 전 최소한 의리는 있습니다. 신뢰와 믿음은 함께 쌓아가야 하는 거고요.”
태수 말에 황정수 목소리가 대놓고 떨렸다.
“그렇긴 한데, 정말 저희 진호를…….”
“네. 여기서 저희 모두가 함께 노력해 보고 싶습니다. 물론 허락해 주신다면요.”
태수는 일부러 뒷말을 덧붙였다.
그건 보호자들에게 확답을 받기 위함이었다.
황정수와 명주희는?
꽈악.
서로 손을 얼른 맞잡았다.
얼마나 힘을 많이 줬는지 하얗게 변해가는데도 아픔 따윈 느껴지지도 않는 듯했다.
그만큼 엄청난 기쁨만이 얼굴에 가득했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과 흐르는 눈물까지 똑같았다.
그렇게 눈빛으로 의견을 더한 두 사람은 동시에 태수를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 숙였다.
“감사합…… 니다.”
“고맙…… 습니다.”
그저 인사만으로는 부족했을까?
털썩.
소파와 테이블 사이의 좁은 공간에 무너지듯 내려와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들은 불편한 몸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걸 본 태수는 확신했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장애를 얻었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불편해도 자식은 더 건강하게 해 주려 노력하고 힘쓰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태수는 그걸 저들을 통해 느꼈다.
그리고 다시금 희망병원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확신했다.
물러서지 않는다.
절대로.
태수가 소리 없이 중얼거리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동시에 마음속에 담아둔 희망병원을 더더욱 키웠다.
그 마음속에 지어진 희망병원은 어떤 비바람에도 또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을 터였다.
그게 태수가 희망병원을 품은 신념이자 결의였다.
그 마음을 굳힌 태수는?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벌떡!
그리고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반대편에서 읍소하는 부부를 달래는 거였다.
“이러시면 제가 곤란합니다. 얼른 일어나십시오. 얼른이요.”
“아닙니다. 어떻게 그럽니까.”
“그럼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 있는 겁니까. 제발 좀 일어나세요. 진짜 곤란하다니까요.”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보호자들은 같은 말만 반복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태수는?
에라, 모르겠다.
그 심정으로 그들 옆으로 다가가 똑같이 몸을 낮춰 부탁했다.
“저희가 진호 잘 돌보겠다니까요. 제가 이렇게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시겠습니까?”
“어, 어이쿠! 팀장님, 이게 무슨, 얼른 일어나십시오. 얼른이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어서 일어나세요.”
“저희가 어떻게…….”
“그럼 저는 또 어떻게…….”
태수는 끝까지 먼저 일어나지 않았다.
보호자들의 고집도 만만치 않아 먼저 일어나길 거부했다.
그러니 똑같이 자세를 낮춰 권하는 말만 반복했다.
고석찬 지부장은 황당한 얼굴로 태수를 바라보다 이내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눈높이라.’
그는 짧은 시간이지만 큰 깨달음을 얻은 표정이었다.
잠시 후.
길고 긴 인사를 가까스로 마친 네 사람은 황진호의 병실로 향했다.
태수와 황정수, 명주희의 무릎은 똑같이 하얀 먼지가 묻어 있었다.
그중 황정수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명주희가 뒤에서 밀어 주었다.
태수가 하고 싶었지만, 원근감이 떨어지는 그녀에겐 오히려 무언가 잡고 움직이는 게 더 수월하기에 어쩔 수 없이 양보했다.
그렇게 걸어가는 모두의 얼굴이 처음보다 많이 밝아졌다. 특히 고석찬 지부장은 그 변화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고 있었다.
어느새 네 사람은 곧 황진호의 병실 앞에 도착했다.
드륵.
태수가 문을 열고 먼저 권했다.
“들어가시죠.”
“그…… 래도 팀장님부터…….”
“아, 여기서 한 번 더 누구 고집이 센지 해 볼까요?”
태수가 아주 기세 좋게 도발하자 황정수가 얼른 명주희에게 말했다.
“여보, 들어가자고.”
“그, 그래요.”
스릉.
휠체어 바퀴가 부드럽게 구르더니 병실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걸 본 태수는 득의만면한 얼굴로 고석찬 지부장에게도 손짓했다.
“지부장님, 들어가시죠.”
“그래도……. 아니, 아닙니다. 나도 최 팀장 고집은 못 당할 거 같으니까 먼저 들어갑니다.”
뚜벅.
그도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에 느긋하게 들어가는 태수는?
‘아임 위너.’
모두의 고집을 꺾은 승자라 그런지 그 표정이 여유롭고도 당당했다.
그렇게 들어간 병실 안엔 몇몇 팀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박성민과 유병태, 그리고 송현미 간호사와 최소현 간호사였다.
그중 박성민의 모습이 독특했다.
병상에 걸터앉은 그는 한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과격한 소리를 입으로 내고 있었다.
“이렇게 피유웅! 하고 비행기가 머리 위로 날아오는데! ……우리 진호 같으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무서웠을 거 같아요.”
병상에서 밝은 남자아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성민을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집중하고 있는 아이가 바로 황진호라는 아이였다.
첫 인상은?
가슴이 저렸다.
6살이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체구가 작았다.
그리고 상체보다 하체가 좀 더 굵고 커다란 느낌이었다. 골형성부전증을 앓는 아이들의 전형적인 외형적 변화였다.
거기에 팔에 문제가 있었는지 오른팔에 부목을 댄 것처럼 반깁스를 착용 중이었다.
또 타까야수동맥염의 증상으로 얼굴은 물론 온몸에 부종이 상당했다.
그런데도 박성민을 향한 눈빛은 그저 초롱초롱하기만 했다.
딱 그 나이의 아이 같은 해맑은 표정을 바라보던 태수도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당연한 거겠지.”
“그럼. 아무리 아파도 애는 애야.”
유병태가 어느새 다가와 한마디 거들자 태수가 말했다.
“선배도 여전하시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데…… 딱 그 수준이 그 수준이야.”
“접수.”
“어. 어? 야, 너…….”
유병태가 순간 당황해 태수를 흘겨봤다.
그래도 태수는 끄덕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병태를 향해 진한 미소를 내보였다.
“내 입이 무거운지 가벼운진 네가 하기에 달렸어.”
“치사한 놈.”
“그러게 말을 가려서 했어야지.”
“넌 또 왜 이렇게 해맑냐? 아니, 다들 아까는 분위기가 엄청 무거웠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밝은 건데?”
유병태는 자신이 안내할 때와 달라진 보호자들의 표정과 분위기에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태수는?
툭.
“곰곰이 잘 생각해 봐.”
가볍게 숙제를 내주고 지나쳐 갔다.
유병태는 인상을 푹 찡그리며 낮게 투덜거렸다.
“내 어깨에 지분 있냐? 심심하면 건드리고 가네. 넌 하여간 선배한테 말만 해 봐. 네 어깨를 확!”
뒤에서 낮게 협박까지 했지만 태수는 이미 멀어져 간 후였다.
태수가 다가가는 사이에도 병상의 화기애애함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박성민의 구성지고 뻔뻔한 목소리가 가득했다.
“아무튼 그 야밤에, 그것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사투를 벌였다니까.”
“그렇게 큰 뱀하고 막 싸우셨어요?”
“야, 내가 말을 이렇게 해서 그렇지, 나중에 보니까 뱀의 길이가 이따만 했다고. 타머 주민들은 도망치기 바쁘단 그 뱀을 내가 사투 끝에 쓰러뜨렸단 거 아니냐.”
“와아! 그래서 최 팀장님을 구하신 거예요?”
황진호의 질문을 듣는 순간 태수가 멈칫했다.
타머, 뱀, 그리고 자신을 구해?
아무리 되짚어 봐도 태수의 기억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아이 앞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김혁권이 자리에 없어서 그런 건지.
아무튼 박성민이 그때 일을 풍선처럼 부풀리는 와중이었다.
박성민은 아직 태수가 들어왔단 걸 모른 채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진짜 내가 그 자리에 없었으면 우리 태수는…….”
“선배, 저요?”
태수가 슬쩍 다가가 자신을 알림과 동시였다. 박성민은 자신이 만들어 낸 소설에 심취해 있다가 화들짝 놀랐다.
“그렇지. 여기 있는 최 팀장이…… 최 팀장이……. 헙! 너, 너 언제 들어왔냐?”
“조금 전에 들어왔으니까요.”
“그렇지. 그, 그렇겠지? 들어왔으니까 여기 있겠지. 다, 다, 당연한 건데 내가 막 묻고 그랬네?”
“그러게요. 그보다 뒷얘기 계속하셔야죠.”
태수가 권한 순간 박성민이 갑자기 몸을 굳혔다.,
“그게, 그러니까 말이다, 이건…….”
그가 우물쭈물할 때 태수는 부종으로 퉁퉁 부운 황진호에게 대신 덧붙여 말했다.
“그때 선배가 안 계셨으면 지금 내가 여기 없었을 거야.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감사하고 또 멋진 분이시지.”
“그, 그으러엄! 내가, 내가 이렇게 타의 모범이 되는 선배란 말씀. 하, 하! 덥다, 더워.”
휙휙.
박성민은 이야기의 마무리야 지었지만, 손부채를 거세게 펄럭여 벌게진 얼굴부터 식혔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병상에서 멀어져 갔다.
여유가 생긴 태수는 좀 더 황진호에게 가까이 다가가 인사부터 했다.
“진호야, 반가워. 난…….”
“알아요. 진짜 알아요. 우와, 팀장님이다.”
황진호는 영웅을 만나듯 황홀한 눈빛으로 감탄했다.
태수는 더욱 진하게 미소 지으며 찡긋거렸다.
“실제로 보니까 더 멋지지?”
“아니요. 잘생긴 건 박 팀장님이 더 잘생겼어요.”
“……야.”
태수가 순간 어이가 없어 퉁명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그런 태수의 반응이 재밌었는지 황진호는 크게 깔깔거리며 웃었다.
“하하하! 팀장님도, 하하하, 팀장님도 멋있어요.”
“어째 별로 믿음이 안 가는 말인데.”
“하하하! 아니에요. 진짜로, 하하, 진짜로 멋져요.”
“계속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면 믿으란 거야, 말라는 거야?”
“하하하!”
황진호는 더욱 크게 웃다 못해 배가 당기는지 옆으로 몸을 돌리기까지 했다.
태수는 일부러 불쾌한 척하던 표정을 어느새 미소로 변화시켰다.
뭐랄까.
딱 그 또래의 아이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혼자 재밌어하고, 웃음엔 가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그게 놀라웠다.
자신의 아픔이 어떤지 모를 나이가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웃고, 놀리기도 잘하는 개구진 모습 속에 가식이 없었다.
그런데 정말 해맑기만 할까?
태수는 이상하게도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황진호가 일부러 밝게 웃는단 건 아니었다.
그 미소는 진심이지만, 그 속에 또 다른 면모도 있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더 가슴이 먹먹했다.
그런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황진호의 웃음이 조금씩 잦아들더니 눈물까지 훔치며 태수를 바라봤다.
“히히.”
“재밌냐?”
“네.”
“자식이.”
태수는 뚱하니 바라보다 손을 뻗어 머리카락만 가볍게 흩트렸다.
황진호는 그 손길이 기분 좋았는지 더 환하게 웃었다.
태수는 내심 누군가가 정말 고마웠다.
그건 박성민의 부단한 노력이 선행되어 더 순탄하게 살가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고마움을 뒤로한 태수는 황진호에게 물었다.
“진호는 여기가 좋아?”
“네, 좋아요.”
“어떤 점이 좋아?”
“다른 병원에선 이렇게 얘기해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제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도 물어보지 않았어요.”
황진호는 아이답게 마음 그대로 말했다.
깊게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저 말하는 그대로 들으면 그만이다.
이렇게 대화하고 묻고 떠드는 시간이 좋단 의미였다.
태수는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음 질문을 건넸다.
“그럼 여기 같이 있을까?”
“아싸, 좋……. 아니요.”
“왜 좋다 만 표정일까나?”
태수가 일부러 가볍게 묻자 황진호의 시선이 부모에게로 향했다.
“제가 여기 있으면 엄마하고 아빠가 힘들잖아요.”
“왜?”
“병원에 계속 못 있어서 집에 갔다 와야 되는데, 엄마하고 아빠는 아파서 힘들어요.”
“그럼 엄마하고 아빠랑 집에 있는 게 좋아?”
태수가 좀 더 부정적으로 묻자 황진호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그게…….”
“솔직하게 말해도 돼. 그래도 말하기 어려우면 우리 둘만 얘기할까?”
“아니요. 그건 아닌데요, 집에 있으면…… 엄마랑 아빠는 계속 일해야 해서 좀 심심해요.”
황진호는 부모 눈치를 슬쩍 보면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