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874
02878 2878화
그걸 눈치챈 정민수가 힐끔 태수를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노렸지?”
“물론.”
“하여간 잔머리.”
정민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태수는 상관없었다.
주변 정리 끝났으니 남은 건 앞으로 나아가는 일뿐이었다.
“제임스, 부탁드립니다.”
“오케이.”
“그럼 한 걸음씩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갑시다.”
태수의 다부진 목소리와 함께 수술이 재개됐다.
이어지는 수술 분위기는 조금 가벼웠다.
제임스란 세계적인 써전의 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특히 태수와 정민수가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슥슥.
움직이는 손길에 조금 속도가 올라갔다.
또 한층 과감해졌다.
오가는 대화에 날카로움도 상당히 무뎌졌다.
“그쪽 됐어?”
“아직. 1분!”
“늦어. 좀 더 속도 올려.”
태수가 다그치자 정민수가 힐끔거리며 한마디 했다.
“조금 전까지 숨도 못 쉬게 해 놓고.”
“너도 만만치 않거든?”
“시끄럽고……. 곧 끝나니까……. 됐어. 이쪽 오케이!”
“그럼 빨리 이쪽으로 와. 자꾸 한 박자씩 늦지 말고.”
태수가 계속 타박하자 정민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진짜 확 속도 올려 버려?”
“그러다 혈관 터지면 책임질 거야?”
“어쩌라고!”
“조심히, 그리고 꼼꼼하게, 그리고 적당히 빨리하면 돼……. 이번엔 이쪽!”
태수가 손의 위치를 바꾸며 낮게 외쳤다.
정민수는 어이없어할 틈도 없었다. 잠시 노려보던 시선을 접고 혹시나 늦을세라 얼른 따라붙으며 어시스던트를 이어 갔다.
두 사람이 흥이 난 이유를 직감한 김혁권이 어이없이 바라봤다.
“이 닥터들이 아주 막가네. 이젠 제임스가 있으니까 문제가 생겨도 커버할 수 있단 겁니까?”
“맞습니다……. 켈리 부탁합니다.”
“너무 당당하시네……. 이거나 받아요.”
김혁권이 어이없단 얼굴로 수술 도구를 건네줬다.
하지만 수술 자체가 가벼워진 건 아니었다. 수술은 여전히 난제 속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했다.
한편, 제임스는 아직 수술에 본격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아무리 세계적인 써전이라 해도 진행하고 있는 수술에 무작정 끼어들 순 없었다.
수술의 흐름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처음 시작은 분명히 그렇게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수술 과정을 그려 본 제임스의 눈빛이 살짝 반짝였다.
‘이런 환자를 수술한다고?’
속으로 황당함을 삼켰다.
눈앞에서 수술이 진행 중인데도 미심쩍어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태수와 정민수의 수준이 예상보다 훨씬 발전해 있었다.
작년 황진호를 수술할 때와 또 달랐다.
불과 반년이다.
의사들에게 어떤 변화가 찾아오긴 정말 짧은 시간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질 정도로 달라졌다.
수술이 한창 진행 중인 지금은 물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젠 시간에 쫓기지 않고 언제든 대화할 수 있었다.
그 생각으로 일단 호기심을 접었다.
태수에게도 그렇듯 제임스에게도 수술이 먼저였다.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한 제임스의 조언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아이리스를 한 손에 쥐고 그 끝으로 짚어 가며 말했다.
“닥터 최, 이 혈관은 그쪽이 아니라 여기로 연결해야 BP(혈압)가 고루 분산돼.”
“바로 옮기겠습니다.”
“계획 자체는 아주 좋아. 내가 봐도 임기응변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잘 꼬집었어. 그런데 균형이 맞지 않아서 옮기란 거야.”
“신경 쓰지 마시고 팍팍 말씀하십시오. 저도 사실 좀 불안했거든요.”
태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찡긋 미소도 보였다. 그리고 그 말 그대로 태수의 입에선 한마디 군말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이타심 따윈 없었다.
자신의 계획이라고 자존심을 내보이지도 않았다. 제임스의 조언에 진심으로 응하며 활기차게 손을 움직였다.
그건 정민수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모두 평생 야전을 전전하며 쌓아 온 제임스의 수술 경험과 노하우를 신뢰했다.
그리고 신기할 정도로 합이 좋았다.
그건 당연했다.
예전에 PKO 캠프에서 가끔 이렇게 수술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자신들처럼 열정과 패기가 솟구쳤다.
그러나 모든 게 그때와 똑같을 순 없었다.
약간 달라진 점도 있었다.
“닥터 최, 그쪽 혈관은 저쪽…….”
“제임스, 거기 혈관이 너무 약해서 이쪽으로…….”
“그렇다면 닥터 최 판단이 옳아.”
태수의 이유 있는 항변엔 제임스가 양보했다.
그건 정민수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정민수는 때론 태수보다 한술 더 떠서 제임스를 움직이게도 했다.
“닥터 정, 여기 잡았으니까…….”
“어? 제임스, 아니요. 조금 옆으로요.”
“이렇게?”
“네. 그대로 계십시오.”
슥슥.
양해를 구한 정민수가 곧장 손을 움직였다.
처음 이해하지 못한 제임스도 그 손길을 본 순간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한 건 단 한순간도 어색함이 없었다.
모든 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 속엔 서로에 대한 배려와 믿음, 그리고 확신이 담겨 있었다.
제임스는 태수와 정민수만 신경 쓰는 게 아니었다.
두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그는 폭 넓게 관여했다.
“Anesthesist(마취의), 마취 강도 조금 더 올려 줘요.”
“닥터 공, Transfusion(수혈)에 좀 더 집중하는 게 우선입니다.”
“거기 닥터 양, 너무 힘을 줬어. 조금만 여유롭게……. 그렇지.”
“닥터 남, 조금만 옆으로 이동해. 그래야 집도의가 움직이기 좀 더 편하니까……. 그 정도면 됐어.”
그렇게 한 명씩 일일이 챙기며 전체적으로 조율했다.
그럼에도 한 번도 집도의 권한을 넘나들지 않았다. 수술이 잘 이어질 수 있는 윤활제와 같은 역할만 이어 갔다.
태수와 정민수는 그 유연한 지적과 조언에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왜?
수술이 수월해지는 걸 가장 확실히 느끼고 있던 탓이다.
“이건 못 따라해.”
“어림도 없어. 경험치가 달라.”
두 사람은 깔끔하게 인정했다.
수술에 뛰어들어 손을 움직이는 건 자신 있다.
하지만 제임스처럼 전체적으로 상황을 매끈하게 조율하는 건 정말 어려웠다.
각 포지션의 역할을 모두 숙지하고 있고, 엄청난 경험이 더해져야 가능할 모습이었다.
갑자기 함께하게 된 제임스였지만, 어느새 절대로 필요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다른 팀원들도 그 분위기에 조금씩 젖어들어 가더니 곧 익숙해졌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은 불만이었다.
그건 태수를 보조하며 통역까지 해야 하는 김혁권의 인상 쓴 모습이었다.
“그 인간이 없으니까 내가 떠들고 있네. 좌우간 내 인생에 공짜 없습니다. 수술 끝나면 최소한 커피 한 잔씩은 삽시다.”
계산적인 척 툴툴거렸지만 통역은 완벽했다.
그 모습이 확실히 김혁권다웠다.
그런데 마냥 좋은 순간만 계속될 순 없었다.
수술이 진행됨에 따라 잠재되어 있던 문제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걸 가장 먼저 파악한 건 여성현이었다.
삐, 삑, 삐, 삑.
“어? 심장이…….”
“뭐야! 갑자기 왜 다운됐어!”
공우혁이 얼른 눈에 담고 크게 소리쳤다. 그 소리에 제임스도 ECG를 확인했는지 태수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맥박이 저렇게 떨어졌으면 Myocardial Infarction(심근경색)일 가능성이 높아.”
“음.”
“혹시 Thrombus(혈전)이 발견됐었나?”
“아니요. 그런데 체력이 바닥이었습니다.”
그 소리에 제임스가 짐짓 놀랐다.
“그런 환자를…….”
“어쩔 수 없었으니까요. 그보다 제임스.”
“알아. 잠시 실례하지.”
스윽.
제임스가 처음으로 태수의 곁을 떠났다.
삐, 삑. 삐, 삑.
한층 느려진 ECG 소리가 계속 신경을 자극했다.
그때 정민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춰?”
“아니. 계속 진행하자.”
턱. 슥.
태수가 답하고 먼저 움직이자 정민수도 함께했다.
이미 각오하고 들어온 길이다.
멈춰야 할 순간이 되면 제임스가 신호를 줄 터였다. 그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움직여야 수술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렇게 제임스를 믿고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갔다.
그런데 그 시간도 오래가지 못했다.
삑, 삑.
ECG에서 맥박이 더 느려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의 동시에 다시 옆으로 다가온 제임스가 양손으로 환자 심장을 압박하며 소리쳤다.
푹, 푹!
“Cardiotonic(강심제)!”
“준비…… 투여 시작합니다!”
짧은 몇 마디는 여성현도 영어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건 누구의 관심사도 아니었다.
태수도 이쯤 되니 수술을 멈춰야 했다.
“스톱. 제임스, 제가 하겠습니다.”
“훅, 훅. 이 정도도 못할 상태는 아니야. 훅훅, 원인부터 찾아.”
제임스는 CPR을 이어 가며 짤막한 말로 밀어냈다.
그 순간 태수와 정민수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런데 딱히 어떤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단 게 문제였다.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순 없었다.
우선 바이탈부터 확인했다.
“저 정도면…….”
“CPR 멈추면 끝이야.”
“……남선우, Defibrillator(제세동기) 가동. 양정한, 유 선생하고 최 간호사 들어오라고 해.”
태수의 날카로운 오더와 함께 둘이 동시에 움직였다.
파박!
태수는 이어서 머리를 굴렸다.
그때 정민수가 물었다.
“병태는 왜?”
“CPR.”
“아…… 제임스지.”
제임스는 수술 중인 집도의와 메인 어시스던트를 철저하게 보호하는 성격이었다. 집도의가 힘이 빠지면 전체적인 수술에 지장을 줄 수 있던 탓이다.
그건 그가 집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본인이 CPR을 하는 이유도 같았다.
그때 남선우가 제세동기를 끌고 와 전원을 올렸다.
“충전 중. 얼마로 맞춥니까?”
“200줄부터!”
“200줄로 세팅합니다.”
그륵!
제세동기가 구동되고 조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끝날 때쯤 양정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 선생님 2분 안에 들어오신답니다!”
“…….”
태수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지 그 말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정민수가 대신 오더를 내렸다.
“공 선생님 보조해.”
“네!”
타다닥!
양정한은 반대쪽으로 또 한 번 부리나케 뛰어갔다.
간호사들은 어느새 제임스에게 다가가 있었다.
“선정아, 제세동기에 젤부터 뿌리고 대기!”
“네. 남 선생님, 이리 내미세요!”
“그럼 나는…….”
휙.
김혁권은 빠르게 무언가를 결정하고 몸을 움직였다.
그사이에도 제임스는 CPR 중이었다.
태수는 그 옆에서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반면, 특유의 넓은 시야로 수술실을 둘러본 정민수가 태수를 찾았다.
“태수야, 이상해.”
“뭐가?”
“ECG 떨어지는 게 정상적이지가 않아.”
“정상이면 안 떨어져.”
태수가 반사적으로 대답하자 정민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정상 말고, 너무 뚝뚝 떨어지고 있어.”
“뭐?”
의아한 태수가 ECG를 확인했다.
모두의 반응대로 심박 수가 급격히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어?”
정민수의 말대로 정말 무언가 이상했다.
그때였다.
그릉!
수술실 문이 열리더니 유병태와 최소현이 손을 위로 올린 채 번개같이 들어왔다.
“왔어! 어디로 가!”
“CPR!”
“그게 내 스타일이지……. 제임스, 팔팔한 제가 왔습니다!”
유병태가 변죽 좋은 인사를 영어로 외치며 다가갔다.
최소현 간호사는 빠르게 둘러보고 알아서 자리를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