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037
03041 3041화
여기까지 수많은 고비를 넘어온 환자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리고 더 안전하게 쉬게 해 주고 싶었다.
더는 이런 차가운 수술실에서 보고 싶지 않았다.
환자가 미국 국무부 차관이란 건 아무도 의식하지 않았다.
그냥 환자다.
희망병원에 희망을 찾아온 환자 중 한 명이었다.
그렇기에 의료진들도 모든 환자들에게 그러하듯이 성심과 열정으로 수술에 임했다.
그 성심과 열정의 손길에 환부는 하나씩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2시간 후.
“푸우우우.”
태수의 길고 긴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게 기폭제였는지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이고, 나 죽는다.”
“후우! 팔 아파.”
“수술하는데 왜 전 허벅지가 당기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랑 나랑 겁나게 뛰어다녀서 그래.”
수술대 밖에서도 난리가 났다.
“으윽! 내 눈, 눈 빠질 거 같습니다, 서 선생님.”
“공 선생은 눈 감으면 되지. 난 지금 주사기 밀대를 얼마나 밀었는지 엄지손가락이 퉁퉁 부었어.”
“끄응, 전 인공심폐기사란 직업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싶습니다.”
수술대 뒤쪽에서 인공심폐기사가 기계 위에 축 늘어져 있었다.
누구 한 사람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의료진들은 엉망이었다.
그만큼 수술실 내부도 난리가 났다.
중간중간 치울 시간도 없었다.
발에 밟히는 건 빈 수액과 주사기, 거즈 등등이었다.
그리고 썩션통을 얼마나 뒤집었는지 수액들과 뒤섞여 특수 하수 처리 장치로 향하는 핏물이 시냇물을 이루었다.
그 모든 걸 다들 보고만 있었다.
아니, 긴장이 탁 풀려 움직일 생각조차 못했다.
그렇게 다들 늘어진 몸을 추스를 마음조차 없이 이 공허함을 여유롭게 맛보고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여유로운 건 수술대 위의 환자 모습으로 증명할 수 있었다.
모든 수술이 끝나 피부까지 모두 봉합되었다.
수술대를 짚은 정민수가 환자를 쭉 훑어보며 말했다.
“간을 3분의 1을 들어낸 건 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설명드릴게요.”
“횡행결장하고 작은창자도 좀 잘라 낸 건 왜 빼먹어.”
“유 선생, 나 숨 좀 쉬면서 말하게 해 주라.”
정민수가 탁 풀린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웬만하면 유병태가 받아쳤을 텐데 전혀 그럴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쉬면서 해.”
“엄청 고맙다.”
화기애애한 두 사람을 향해 태수가 슬쩍 한마디 얹었다.
“그런데 둘 다 비장비대는 왜 빼먹냐?”
“오른쪽 부신에 복막염 번져서 대망 걷어 낸 것도 말씀 안 하셨습니다.”
“막판에 담석 발견도 잊으셨습니다. 저도 담석 한 번 생겨 봤는데…… 진짜 엄청 아파서 굴러다녔습니다.”
“그런데 아까 간 말씀하셨을 때 간경화로 인한 정맥류 출혈도 말씀 안 하신 거 같은데요.”
후배들이 슬쩍 한 마디씩 얹자 듣다 못한 정민수가 빽 소리쳤다.
“이 자식들이. 정말 하나하나 다 따져 볼까? 하나씩 다 읊어 봐?”
“조용조용히 좀 말해라. 열 낼 힘이 아직 있냐?”
태수가 가볍게 한마디 하자 정민수가 더더욱 핏대를 세웠다.
“최 팀장아, 쟤들 말하는 거 못 들었어?”
“팀장아?”
“나도 이제 팀장이거든.”
“웃자고 하는 말이야. 죽자고 달려들지 말고 그냥 웃어.”
태수가 옹호하자 후배들이 떼꾼한 눈가에 눈웃음을 지으며 동조했다.
“옳소.”
“민수 형, 형은 저하고 동기거든요?”
“저희에게도 1년 선배입니다. 사회에서 1년 차이는 친구라면서요.”
은근슬쩍 기어오르는 후배들의 모습에 정민수가 인상을 찡그렸다.
“안 되겠다. 니들 끝나고…….”
“우우, 독재는 물러가라.”
“술 좀 왕창 사 줄까 했는데 싫다면 할 수 없고.”
“무슨 말씀을, 역시 정 팀장님이 최고입니다.”
순간순간 달라지는 정민수와 후배들의 모습에 태수는 결국 고개를 저었다.
“에휴, 똑같은 놈들.”
“흠.”
“김 간호사님은 왜 또 절 그렇게 보십니까.”
“옛말에 주변을 보면 그 사람 성품을 안다고 해서요. 우리 캡틴 성품이 어떤지 확실히 알 거 같네요.”
“김 간호사님도 제 옆에 계십니다.”
태수가 딴죽을 걸자 김혁권이 미간을 와락 좁히며 중얼거렸다.
“이건 예상 못했는데…….”
아니라고 부정하는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태수는 그 말이 더 어이가 없게 느껴졌다.
그사이 이선정 간호사와 최소현 간호사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마무리를 위한 열정이었다.
두 사람은 꼼꼼한 손길로 환자의 환부 위에 소독약과 재생 연고를 듬뿍 발랐다.
그리고 그 위에 수술포까지 덮어 감염을 예방하며 소곤거렸다.
“내가 보기엔 다 똑같아.”
“저도 그래요.”
“어떻게 강산이 변해도 다들 그대론지 모르겠다니까.”
“그러니까요.”
작게 소곤거리는 것 같아도 모두가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그녀들이 이렇게 말한다고 눈치 줄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찔끔한 얼굴로 서로를 가리키며 놀렸다.
“너 말이야, 너.”
“아니야. 너야.”
“선배, 좀 잘하세요.”
“어쭈, 너는 잘해서 같은 취급 받냐?”
한 마디가 열 마디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다들 거칠게 지나온 시간을 서로 농담과 장난으로 다독일 때였다.
그릉.
갑자기 수술실 문이 열렸다.
반사적으로 돌아보니 백성현 병원장과 박성민 등 흉부 수술팀이 들어오고 있었다.
다들 수술복에 가운을 걸친 모습이었다.
아까와는 달리 깔끔한 모습들이었다.
돌발적인 상황도 아니다.
수술이 끝날 때쯤 태수가 노지연 간호사에게 부탁해서 호출했다.
이미 들어올 걸 알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다가온 백성현 병원장이 태수의 어깨를 가볍게 짚으며 말했다.
스윽.
“고생했어.”
“병원장님이 다 해 놓으셔서 마무리가 쉬웠습니다.”
“그런 사람들 얼굴이 이렇게 다 죽어가나.”
“금방 좋아집니다. 그런데 손 더러워지십니다.”
태수는 수술 가운이 어깨까지 축축해져 걱정했지만 백성현 병원장은 별일 아니란 듯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괜찮아. 그런 염려랑 말고……. 김 간호사도 수고했어요.”
“뭐 항상 하는 일인데 별거 있습니까.”
김혁권이 퉁명스레 대답했으나 백성현 병원장은 전혀 개의치않았다.
“항상 하는 일이 더 힘든 법이잖습니까.”
“아, 그렇죠. 그런 의미로…… 특별 보너스는 알아서 챙겨 주시겠죠.”
“하하, 그래요. 그 고생을 했는데 기분 좋은 보상이야 당연히 있어야지요……. 그리고 정 팀장도 수고했고…….”
백성현 병원장은 차례로 한 명씩 얼굴을 마주하며 인사했다.
그사이 박성민과 이기준, 도성민이 곁으로 다가왔다.
“…….”
“…….”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특히 누구보다 신나게 떠들어야 할 박성민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눈빛이 묵직하고 입술이 일자로 다물어져 있었다.
심각하디 심각한 상황에 처했을 때만 볼 수 있는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교대하기 전에도 비슷한 뉘앙스였다.
‘대체 왜?’
태수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히 수술은 성공했다.
달리 말해 희망병원과 엄수찬 장관이 난처함에서 벗어난 순간이라 박성민의 기쁨이 작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심각한 표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걸 물으려 할 때였다.
그릉.
수술실 문이 한 번 더 열리며 다른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 시작은 이정민 흉부외과장과 이영배 외과장이었고, 그 뒤를 외과 계열 과장들이 뒤따랐다.
그런데 그들이 끝이 아니라 내과 계열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과장님?”
“순환기내과장님이시잖아.”
“어어? 소화기내과장님도 오셨어?”
“마취과장님도?”
“영상의학과장님?”
“신속대응센터장님?”
그 외에 다른 의과장들도 있었다.
한마디로 모든 의과의 과장들이 총집합했다.
엡시디 차관의 수술이라 다 같이 병원에서 대기했다고 해도 이런 일은 흔하지 않았다.
특히 수술실 안까지 들어오는 일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리만큼 무거웠다.
다들 모니터링을 했다면 수술이 성공이란 걸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럼 더 시끌벅적할 텐데 시선을 마주치면 가볍게 손을 드는 정도가 전부였다.
다 들어왔다 싶었는데 또 있었다.
“크흠.”
뒤에서 묵직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태수가 무슨 소리인가 싶어 그쪽을 바라봤다.
어느새 의과장들이 좌우로 넓게 길을 비켜서고 있었다.
홍해처럼 의과장들이 갈라서자 수술실 문부터 수술대까지 뻥 뚫린 도로가 만들어졌다.
그 도로의 끝엔 가운을 입은 노인들이 서 있었다. 바로 황석찬 회장과 제임스, 그리고 스미스였다.
제임스와 스미스가 돌아왔단 사실은 태수도 모르고 있던 터라 눈을 크게 떴다.
“어?”
놀란 태수와 관계없이 원로들은 나란히 걸음을 맞춰 수술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를 전속 수행 의사인 서강재가 함께했다.
이렇게 되니 원내 주요 인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격이었다.
태수도 이런 상황이 전개되자 뭔가 큰일이 있음을 확신했다.
의심을 키우던 그때 제임스와 스미스가 태수 곁을 지나며 짧게 한마디 격려를 건넸다.
“이젠 닥터 최에게 우린 필요 없겠어.”
“그런 증상을 여기까지 해내다니, 존스홉킨스 녀석들이 이걸 봐야 되는데 말이야.”
흘리듯 그 말만 건네고는 환자 머리맡에 나란히 섰다.
이런 인사는 처음이라 태수는 낯설기까지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이러는 거야?’
궁금함이 커져가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수술실이 또 한 번 꽉 찬 순간이었다.
그런데 혼란은 어디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의과장들은 수술대에서 좀 떨어져 서 있었다.
수술대에는 오늘 수술한 팀원들이 빙글 원을 두르고 있었다.
원로들은 환자 머리맡에 그대로 서 있었다.
수술실에서 상석은 그 자리가 아니었다.
바로 집도의 자리였다.
그 상석엔 총집도의인 태수가 서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백성현 병원장이 제2집도의 자격으로 자리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태수는 원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자기 자리를 찾아 선 거였다.
그들의 모든 시선이 태수에게 향했다.
수술실에서는 양보 없는 태수라 해도 이런 시선은 부담스러웠다.
“이게 뭔 일인지…….”
난처해하는 태수를 향해 백성현 병원장이 차분하게 권했다.
“뭐 하나? 수술 마무리해야지.”
“제가요?”
“그럼 누가 하나?”
슥슥.
백성현 병원장은 원로들을 바라본 후, 슬쩍 눈짓까지 했다
언제까지 세워 둘 거냔 의미였다.
태수도 그건 원하지 않지만, 지금 나서야 하는 상황도 썩 반갑진 않았다.
그렇게 어색해하던 중 무언가를 눈에 담은 태수가 표정을 싹 굳혔다.
그건 환자였다.
수술실 온도는 항상 싸늘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제 막 수술이 끝난 환자가 스스로 방어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중환자실로 속히 옮기려면 수술을 끝맺음 지어야 했다.
“크흠!”
태수는 일부러 낮게 헛기침했다.
그 소리는 이 황당한 순간을 받아들이겠단 의미였다.
“…….”
“…….”
수술실은 지금껏 그랬듯 조용했다.
태수를 향한 시선도 똑같았다.
그걸 알고 있기에 태수는 차분한 얼굴로 배에 힘을 주고 모두에게 들리도록 씩씩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