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085
03089 3089화
쪼르르.
긴장 가득한 얼굴로 재빨리 다가서 태수 부모님이 주는 김밥을 건네받았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최 팀장 부모님이셔. 새벽부터 손수 준비해 오신 거야.”
“헉! 안녕하십니까. 흉부외과 정유현입니다.”
정유현은 빠릿빠릿한 자세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런 인사가 잦았는지 어머니가 슬쩍 하나 더 가운 주머니에 넣어주며 말했다.
“하나로 부족할 거예요. 더 드세요.”
“이거 엄청 묵직한데…….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태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아닙니다, 어머님. 최 팀장님께 항상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정유현이 격하게 부정하며 사실을 알렸다.
다른 쪽에선 아버지가 레지던트에게 김밥을 건네고 부탁하고 있었다.
“태수 밑에서 고생이 참 많습니다.”
“아닙니다. 항상 본받고 또 존경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 녀석 애비입니다. 그 까칠한 성격을 제가 모르겠습니까.”
“진짜 아닙니다.”
“우리 태수가 성격이 좀 드세고 불같지만 나쁜 마음은 없는 녀석이니 어여삐 봐주십시오.”
아버지는 레지던트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 소리를 얼핏 들은 태수 표정이 쓰게 변했다.
“누가 보면 내가 사고치고 부모님이 뒷수습하시는 줄 알겠네.”
“정답.”
스윽.
서강재가 나타나며 말하자 태수가 흘겨봤다.
“뭐 어떻게 된 거야?”
“내리막길 끝까지 내려가는데 트럭이 올라오더라고. 아버님이 운전하시길래 뒤에 말씀드렸더니, 바로 차 돌려서 올라온 거지.”
“박사님들은?”
태수가 제임스와 스미스 소식을 묻자 서강재가 찡긋 미소 지었다.
“지금 김밥이란 새로운 한식에 심취해 계시지. 영양 균형이 응축 된데다 맛 좋고 간단한 최고의 식사라고 말이야.”
“그래?”
“그렇다니까. 나도 이렇게 먹고 있고. 얌!”
서강재는 손에 들고 있던 김밥을 야무지게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고 보니 사방에서 김밥을 들고 다니고 있었다.
테이크아웃 커피 저리가라 할 모습이었다.
태수의 시선은 어느새 다시 부모님에게로 향했다.
부모님 얼굴 가득 행복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 기쁨과 반대로 눈두덩이 꺼멓게 다크서클이 보였다.
밤새 준비해서 가져온 게 분명했다.
그 이유도 짐작이 갔다.
언론으로 태수의 활약상이 대대적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물론 자식 자랑하러 온 건 아니었다.
아버지의 평소 지론처럼 벼가 익어가니 고개를 숙이는 거였다.
태수의 활약 저변에 희망병원 모두가 함께 노력했단 걸 알아주고 고마움을 표현하러 온 게 분명했다.
태수는 그저 부모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툭.
서강재가 슬쩍 건드리며 물었다.
“안 가봐?”
“응.”
“왜?”
“지금 내가 나타나면 분위기 이상해져.”
그건 태수의 판단이 옳았다.
이럴 땐 한 걸음 물러나는 게 배려였다. 그리고 태수의 시선은 슬쩍 석정현 회장에게로 향했다.
그가 의료진들 앞에 나섰기에 어색함이 사라졌다.
부모님이 난처하지 않을 수 있게 해준 석정현 회장의 깊은 마음에 또 한 번 감복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저쪽에서 가운을 펄럭이며 나타나는 의사들 모습에 태수가 입을 쩍 벌렸다.
“아…….”
“병원장님, 부원장님, 과장님들도 오시네. 태수야, 일이 점점 커지는 거 같은데 어쩌냐?”
서강재가 빙글 웃으며 묻자 태수가 흘겨봤다.
“대책 없는 내 얼굴 안 보이냐?”
“하하. 자식……. 어? 뭐야. 와!”
서강재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탄성을 크게 내뱉었다.
같은 장면을 본 태수는 이젠 머리가 아파왔다.
“회장님도 참.”
“이야. 역시 회장님답다고 해야 하나? 병원장님하고 부원장님에게 딱 인계하시네.”
“난 왜 머리가 아프냐.”
“그러게 머리 좀 아프겠다.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저 간식카트는 진짜 무적이다. 무적이야.”
서강재는 진하게 미소 지었다.
그런데 태수는 마음껏 웃을 수가 없었다.
백성현 병원장과 박남일 부원장이 카트로 의료진을 손짓하는 모습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석정현 회장도 대단했다.
그런데 태수는 결국 웃음 지었다.
부모님의 행복하고 즐거운 얼굴을 보고 울상을 지을 순 없었다.
이렇게 되면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나 저쪽 갈게.”
“안 간다며.”
“이 상황에 안 가면 난 불효자식 된다고.”
말만 투덜거렸지, 태수의 얼굴에도 잔잔한 미소가 지어졌다.
어쩌면 병원이란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일지 몰랐다.
시골적인 정서가 강한 분위기 탓이었다.
하지만 태수는 그런 순박한 부모님이 좋았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였다.
태수가 운전석에 자리한 아버지에게 아쉬운 소리를 했다.
“그냥 가신다고요?”
“더 내놓을 게 없으면 가야지.”
“그러지 마시고, 식사 하고 가세요. 사라도 같이요.”
“실습이 장난이냐?”
아버지가 따끔하게 말하자 태수가 멈칫했다.
“그건 아니지만 식사 한 끼 같이 할 시간은 뺄 수 있습니다.”
“그게 특혜야. 괜히 열심히 배우자는 애 바람 넣지 말고, 얼른 내려가 쉬어.”
“그럼 저랑 같이 가세요.”
태수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자 아버지가 흘겨보며 한 소리 했다.
“그 몰골로 뭔 밥이야.”
“겉만 이렇지, 속은 멀쩡합니다.”
“귀신을 속여라, 이 녀석아……. 그럼 간다.”
부웅.
아버지는 그냥 트럭을 출발시켜 버렸다.
참 아버지다운 반응에 태수는 결국 빙그레 미소 지었다.
“감사합니다.”
꾸벅.
멀어지는 트럭을 향해 깊게 고개 숙이며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가슴 가득 겸손을 품었다.
부모님이 직접 보여준 모습에서 느낀 바가 컸다.
모두의 칭찬으로 가득한 지금 태수가 그 유명세에 취하지 않는 건 역시 부모님 덕분이었다.
“하. 온 김에 슬슬 해봐.”
태수 기억에 석정현 회장의 말은 이미 사라졌다.
저녁 무렵 태수를 비롯한 의료진들이 나란히 차로 병원을 나섰다. 물론 김밥사건은 이미 다 떠든 후라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후였다.
조용히 앉아있던 태수가 박성민을 바라봤다.
“아차, 병원장님 안부도 못 여쭤봤네요. 무탈하시죠?”
“우리 아버지? 항상 투 머치 하시지.”
박성민의 간결한 대답에 태수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 그렇죠.”
“어째 나나 우리 아버지나 똑같단 말을 하고 싶은데, 그랬다간 주먹이 날아올 거 같아서 참는 분위기다?”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태수가 슬쩍 핵심을 피해가자 박성민이 옅게 미소 지었다.
“태수 네가 이제 처세가 뭔지 아는구나.”
“저도 살아야지요.”
“저러다 뚜껑 열리면 위아래가 없지.”
“제가 언제요.”
“와. 저 뻔뻔……. ”
박성민이 그렇게 말을 이어가려던 순간이었다.
끼익!
갑자기 차가 멈춰 서자 박성민의 몸이 크게 들썩거렸다. 그래도 안전벨트 아니, 생명벨트를 착용하고 있어 별 문제는 없었다.
그건 육체적인 문제였고, 정신적인 문제는 달랐다.
“크윽! 야이 시뻘건 자식아. 너 운전을…….”
박성민이 나무라는 순간 홍진만의 더욱 강렬한 짜증이 들려왔다.
“저런 개나리 새끼가 미쳤나, 왜 앞길을 가로 막고 지랄 옆차기야. 저걸 확 끄집어내서 병원에 입원시킬 정도로 후드려 패버려?”
“진, 진만아?”
“어후……. 어쭈? 쌍라이트를 켜? 넌 오늘 진짜 뒤졌다.”
벌컥!
홍진만은 정말 화가 나는지 그 길로 차에서 내려버렸다.
으르렁거리던 박성민의 표정은 어느새 걱정으로 변해 있었다.
“야, 우리도 내리자. 저 빨간 놈이 진짜 사람 얼굴 빨갛게 피 칠하기 전에 내리자고!”
“그래야겠습니다.”
탈칵.
태수도 뚜껑 열린 홍진만이 사고 칠까 우려하며 얼른 뒷문을 열었다.
차에서 내린 태수의 귀에 쌍소리가 거침없이 들려왔다.
“내려. 안 내려? 우와, 미치겠네……. 내리라고. 야!”
턱, 턱!
홍진만은 차량 유리까지 두들겨가며 소리쳤다. 그런데 검고 진한 선팅을 한 차량에선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그게 더욱 화가 나는지 홍진만의 손길이 더욱 거칠어 졌다.
텅! 텅!
“내리라고, 내려!”
그렇게 길길이 날뛰는 홍진만을 어느새 다가간 정민수와 도성민이 만류했다.
“진만아, 적당히 하자. 네가 그러면 긴장돼서 나오겠냐?”
“화나는 건 아는데, 일단 좀 진정해.”
한 마디씩 거들고 슬쩍 힘으로 억누르자 홍진만도 조금씩 이성이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홍진만이 화를 낼만 한 상황이었다.
태수가 양쪽 차량을 쭉 살펴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도로로 막 나가려는 차량 앞을 고의적으로 막아선 상태였다.
그렇게 상황을 파악하는 사이 옆으로 다가온 박성민과 김혁권이 한마디씩 했다.
“저 뻘건 놈이 정말 시뻘겋게 흥분했는데? 그나저나 이 십장생 같은 운전자는 왜 코빼기도 안 비추는 거야?”
“분명히 운전기사가 있는 차인데.”
“맞네요. 저런 최고급 세단은 본인이 운전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요.”
두 사람이 오랜만에 일치한 의견을 내놓았다.
태수도 살짝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었다.
의도적으로 막은 걸까?
상황상,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태수는 생각을 접고 행동에 나섰다. 기다리는 거보다 빨리 해결이 되는 게 속이 편한 탓이다.
뚜벅뚜벅.
태수가 상대의 차로 향하자 다들 걱정 어린 시선으로 변했다.
“어어, 태수 간다.”
“말려야 되는 거 아니에요?”
“저 인간이 듣냐?”
“구급차부터 찾아오는 게 빠를 거 같은데요.”
“진짜 전화해야 하는 거 아닌지 몰라.”
걱정은 분명히 걱정이었다.
뒤에서 팀원들의 이상한 걱정은 태수에게도 들려왔다.
이럴 때마다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따질 생각은 없었다.
가볍게 무시한 태수는 어느새 상대 차량의 근처에 도착했다. 그런데 차량 내부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밤이라고 해도 빛이 사방에 가득했다.
그 빛을 투과하지 못할 과한 선팅이었다.
그래도 안에서는 보일 터였다.
조수석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태수가 노크를 하려 손을 들었다.
그때였다.
지잉.
조수석 뒷좌석 창문이 부드럽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좌석에는 누군가 자리하고 있었다. 머리끝부터 보이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얼굴이 드러났다.
태수는 쓴 소리 좀 하려다가 눈빛이 차갑게 번뜩거렸다.
창문을 내린 그 상대는 다름 아닌 차경석 연성대학병원장이었다.
“…….”
입을 꾹 다문 태수였지만 눈빛은 미미하게 흔들렸다.
여기서 그를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만났으니 당황할만 했다.
그런 태수를 향해 차경석 병원장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자기 밑에 근무했던 태수였지만 역시나 존대로 시작했다.
“언제 뵈어도 활력 넘치는 분들이십니다. 박 팀장님 결혼식 때 뵙고 처음인가요?”
“아마 그런 거 같습니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흘렀네요.”
“네. 그런데 이렇게 만난 순간이 우연 같진 않습니다.”
태수가 대뜸 본론을 꺼내들었다.
장소와 시간까지 고려했을 때 불가능한 만남이라 못 박았다.
그건 태수의 판단이 백번 옳았다.
이 늦은 시간에 지방에서 차경석 병원장을 우연히 만난다?
확률상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차라리 이번 주 복권 번호를 찍어 맞추는 게 확률이 높을 터였다.
차경석 병원장은 의외로 순순히 인정했다.
“일부러 온 길입니다.”
“오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글쎄요. 욀까요? 왜 제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만남을 성사시켰을까요?”
차경석 병원장은 부드럽게 질문해왔다.
태수는 직감이 갔다.
어느새 그를 향한 태수의 눈빛은 한층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