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175
03179 3179화
그 후로 인큐베이터엔 한별이를 찾는 김수정의 목소리가 계속 반복됐다.
태수도 이젠 한쪽에 자리한 채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반응이 눈에 띄게 나타나진 않았다.
다행이라면 더 떨어지진 않았다.
그 수치로만 판단해 보면 한별이가 싸우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건 추측이었다.
아직 결과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아침까지는 앞으로 서너 시간 정도 남았다.
뿌연 새벽같이 결과도 뿌옇게 가려져 있었다.
그렇게 지켜보던 중이었다.
태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소회의실이고 인큐베이터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그 외에 다른 아무도 없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인큐베이터 주변에 박종석 병원장과 박성민, 그의 형제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뒤에선 제임스와 스미스가 눈을 반쯤 감은 채 대기 중이었다.
분명히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태수의 얼굴에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때 뒤에 누군가 다가선 느낌이 들었다.
돌아보려 했지만 목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 태수의 귀에 아련한 목소리가 울리듯이 들려왔다.
-거봐. 내가 자네는 할 수 있을 거라고 했잖아……. 진짜 의사가 된 걸 축하해, 닥터 최태수.
이 음성은?
카프레네?
두 눈이 흔들릴 틈도 없었다.
태수가 벼락같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소리쳤다.
“카프레네 박사님!”
하지만 더는 아무런 소리도,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당혹감이 가득할 때였다.
흔들, 흔들.
자신의 몸이 거칠게 좌우로 흔들렸다.
그 느낌과 동시였다.
번쩍!
태수가 두 눈을 떴다.
그 앞엔 박성민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야, 괜찮아? 태수야, 우리 태수, 이 손가락이 몇 개로 보이는지 이 형한테 한번 자세하고 세세하게 대답하지 않으련?”
“후우, 후우. 네?”
“얘, 이거 어떻게 하지? 아버지, 우리 태수 망가졌나 봐요. 이거 어디 가서 A/S 받아야 될까요?”
그때였다.
퍽!
박성민을 온몸으로 밀어 버린 박종석 병원장이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최 팀장, 저 썩을 녀석 말은 한 귀로 흘려버리고, 내 눈을 바라봐. 내 눈을……. 아니, 진짜 괜찮아?”
“네, 네……. 괘, 괜찮습니다.”
“아이고, 이 땀 봐. 이거 사람 미안하고 민망하게시리 이렇게 땀을 흘리면서 졸면 고개 아플 텐데, 목은 괜찮고?”
“네. 아니, 그러고 보니까…… 표정이 좋으신데요?”
태수는 그의 장황한 말투와 환한 표정에 어리둥절했다.
그때 박종석 병원장이 와락 태수를 끌어안았다.
꽈악!
“태수, 이 녀석…… 너 내 새끼 해라. 막내랑 맞트레이드 하자.”
“네?”
“자식, 이 녀석. 이 착하게 나쁜 놈!”
표현이 너무도 이상했다.
목소리가 떨리는 건 더 의아했다.
그런데 그때 태수의 눈에 인큐베이터 ECG가 눈에 들어왔다.
삑, 삑, 삑.
일정하고 안정적인 소리.
그래프와 수치까지도 평온했다.
그걸 본 태수의 눈이 점점 크게 떠졌다.
“그럼?”
“한별이 살았어. 이겨 냈어!”
“아…… 아…… 아아아!”
가슴에서 끌어 올린 격한 기쁨의 함성과 함께 박종석 병원장을 같이 껴안았다.
꽈악!
태수의 반응에 박종석 병원장의 목소리도 더 환하게 바뀌었다.
“하하하! 그래. 넌 얼마나 기쁘겠냐. 얼마나……. 아, 아파. 으윽! 태수야, 아, 아프다니까…….”
“하하하, 아하하! 한별이 살았습니다. 수술 성공했어요!”
“그, 그래. 그런데 나 아파……. 이 녀석아, 내 갈비……. 아이고, 박종석이 살려. 최태수가 사람 잡는다!”
“아하하!”
박종성 병원장의 비명에도 태수는 가슴 시원한 웃음을 가득 터트렸다.
세계 최초로 SAS 수술 성공.
물론 중요했다.
그보다 아기가 내일을 볼 수 있음에 태수는 더욱 기뻤다.
의사.
카프레네.
그 무엇도 필요없었다.
자기 손으로 그 아픈 사연을 세상에 내놓았단 사실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곧 소식을 들은 팀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푸석푸석한 태수는 안중에도 없단 듯, 다들 한마음으로 기뻐했다.
“만세!”
“이겨 냈다!”
“아자잣!”
얼싸안고 겅중겅중 뛰던 모습 속에 숨길 수 없는 기쁨이 가득했다.
그들 마음도 태수와 똑같았다.
세계 최초의 수술 성공은 뒷전이었다.
명예?
물론 인간이기에 욕심 나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전에 하나가 먼저 자리했다.
작은 몸으로 거대한 병마와 싸워 이겨 낸 한별이가 정말 고마웠다.
그런 팀원들에게 박종석 병원장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꼬옥.
의료진 손을 한 번씩 강하게 잡으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다들 고생했어요. 고마워요.”
“병원장님도 참. 우리가 남입니까?”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맙고. 내가 조만간 꼭 근사하게 초대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요. 그날 빠지면 나 진짜 섭섭할 겁니다.”
박종석 병원장은 뭉클한 얼굴로 다짐을 보챘다.
다들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잔잔하게 미소 지었다.
박종석 병원장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된 탓이다.
반대의 경우라면 어땠을까?
자신이 박종석 병원장이라면?
굳이 듣지 않아도 안다.
알기에 더더욱 뿌듯했다.
조용히 자리하던 서영우가 팀원들을 대표해 나섰다.
“병원장님께서 초대해 주신다니 배 속 말끔히 비워 놓고 기다리겠습니다.”
“그래요. 서 선생님, 그리고 다들…… 다시 한 번 정말 고맙습니다.”
꾸벅.
박종석 병원장이 예의를 갖춰 모두에게 고개 숙였다.
예상하지 못한 그 모습에 다들 멈칫했다.
“엇?”
“어…….”
다들 놀라는 사이 김혁권이 인상을 팍 찡그리며 박성민에게 눈짓했다.
얼른 말려 보라는 의미다.
그 시선을 눈치챈 다른 팀원들도 합세했다.
그런데…….
“고마워요.”
꾸벅.
박성민은 오히려 같이 고개 숙였다.
박성철과 박성국도 함께였다.
이 순간 그들은 한별이의 보호자였다.
만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다고 해도, 한별이가 모르는 일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들에게 한별이는 이미 손주였고, 또 자식이었다.
그때 태수가 모두를 바라봤다.
모두가 함께 태수의 시선을 마주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는 마음으로.
이들의 방식이다.
곧 차분한 얼굴로 보호자를 마주한 심정을 담아 마주 고개 숙였다.
“축하드립니다.”
“귀한 목숨 믿고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로 훈훈한 모습이 잠시 이어졌다.
수술 성공은 이런 것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흐르는 정이 더욱 깊어져만 갔다.
잠시 후.
끼익.
태수와 팀원들이 밖으로 나왔다.
다들 떼꾼한 얼굴들이다.
왜 아니 피곤하겠는가.
발길이 천근만근이고 손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마음속은 후련하고 개운함이 가득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미소가 계속 입가에 감돌고 있었다.
태수는 시간을 확인한 후 모두에게 말했다.
“아침 일과까지 얼마 안 남았습니다. 다들 꼴이 말이 아니니까 개운하게 씻고 시작하시죠.”
태수의 말은 이대로 일과를 강행하잔 뜻이다.
그건 너무 빡빡한 일정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 말에 대해서 반발하지 않았다.
찌익!
기지개를 크게 켠 유병태가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으아! 그래. 얼른 내려가서 씻고 다시 올라와서 오늘 일정 소화해야지.”
“오늘 아침 수술 누구야?”
“정 팀장하고 홍 선생, 그리고 이 팀장하고 도 선생도 수술 있지 않나?”
유병태가 둘러보며 묻자 호명된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정민수가 먼저 말했다.
“난 아름이가 잠깐 올라온다고 했어. 이 팀장은 진료실에 옷 가져다 놓은 거 있다고 했던가?”
“응. 며칠은 괜찮아. 도끼는?”
“나도 출동 가방에 있는 내의로 갈아입으면 돼.”
한 명씩 대답할 때였다.
순서상 이제 홍진만의 차례였다.
기다렸단 듯이 홍진만이 리듬을 타며 말했다.
“요! 행복한 이 순간 기쁨으로 피곤을 날려 버려. 또 시작될 우리의 하루! 우릴 기다려 준 환자들과 또 다른 기쁨을 위해 수술실로. 피스!”
“…….”
다들 멍한 얼굴로 빤히 바라보자 홍진만이 흥이 나는지 어깨마저 크게 들썩이며 덧붙여 말했다.
“와이 낫? 아임 닥터 홍, 소외받은 영혼을 어우만질 수술실의 마에스트로.”
“홍 선생, 적당히 해.”
“오우 노. 닥터 김, 너의 그 딱딱한 얼굴, 그 메마른 감성. 그건 개성이 아닌 가면. 그 가면을 깨고 우리 함께 비트에 몸을…….”
쉭, 쉭.
홍진만이 몸을 까딱거리며 현란한 손짓까지 더하며 흥을 분출했다.
그때 태수가 아차한 얼굴로 얼른 말했다.
“홍, 다시 봉인.”
“……왜, 요! 그건 반칙, 형이 준 자유로 나는 날아올라. 저 하늘 끝까지!”
“두 다리 얌전히 땅에 붙여라. 내 주먹이 너한테 날아가기 전에.”
태수가 싸늘하게 경고했다.
찌릿.
매서운 눈빛까지.
순간 홍진만은 재빨리 바르게 서며 방긋 미소 지었다.
“이렇게 찰싹 붙어 있습니다.”
“자식이, 적당히를 몰라.”
“아니, 혀……. 팀장님이 봉인 풀어 주셨습니다.”
홍진만이 애써 저항했지만 태수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수술실에서만.”
“저 지금 억울하고 막……. 아닙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까 수술실에서만 봉인 풀어 주신 거 같습니다.”
홍진만은 태수가 강하게 주먹을 쥐자 얼른 반항을 수긍으로 뒤바꿨다.
한 번도 맞아 본 적 없다.
하지만 맞으면 최소 중상이란 걸 너무 잘 알고 있단 게 문제였다.
이제야 다들 차분해진 것 같았다.
그제야 만족한 얼굴로 변한 태수가 모두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오늘 하루도 힘차게. 파이팅.”
그런데 모두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다.
입술이 삐쭉 튀어나온 이선정 간호사가 한마디 했다.
“뭘 맨날 입으로만 파이팅이래요?”
“맞아. 이럴 땐 뭐 액션도 좀 있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에요?”
“힘이 나다가도 저러면 힘 빠진다니까.”
슬쩍 면박을 주며 투덜거렸다.
잠시 생각하던 태수가 가운데로 불쑥 손등을 내밀었다.
쓱.
“됐죠?”
“그래요. 이 정도는 돼야죠.”
척, 척.
태수 손등 위에 차곡차곡 손이 쌓였다.
그때 김혁권이 질색했다.
“유치…… 하긴 뭐가 유치해. 피곤할 땐 이런 파이팅이 필요하다고.”
턱!
괜히 반발하다 송현미 간호사의 눈짓에 얼른 꼬리 내렸다.
다들 알지만 웃음을 겨우 감추며 모른 척 넘어갔다.
그때 태수가 모두를 둘러보며 힘차게 말했다.
“새로운 하루, 힘차게 시작해 봅시다. 하나, 둘, 셋.”
“아자, 아자, 파이팅!”
씩씩한 외침만큼이나 흩어지는 모두의 걸음걸이가 다부졌다.
뒤따라 태수도 움직이려 할 때였다.
끼익.
문이 열리더니 박성철과 박성국이 외투를 걸친 모습으로 나왔다.
안까지 소리가 들렸는지 박성철이 먼저 소란스럽게 말했다.
“내가 딱 눈치챘잖아.”
“뭘요?”
“최태수 수술팀의 원동력은 바로, 바로, 바로 그 파이팅이었단 걸 말이지. 좋아. 나도 오늘부터 겁나게 파이팅을…….”
스윽.
박성철의 말이 끝나기 전에 박성국이 몸으로 막았다.
“형, 시끄러워. 미안.”
“무슨 말씀을요. 다들 즐거운 하루의 시작 아닙니까. 그런데 두 분은 올라가시게요?”
질문을 받은 태수가 옅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