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239
Chapter 007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났다.
말없이 듣기만 하던 칸도르 촌장의 얼굴에는 비통한 표정만이 가득했다.
태수는 그런 그에게 마지막 말을 건넸다.
“저희 실력이 너무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
칸도르 촌장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때 줄곧 통역하던 김혁권이 뜬금없이 한마디 곁들였다.
“내가 뭘 모르지만 말입니다. 닥터 최가 그냥 두 손 놓고 있다가 이렇게 된 건 아닙니다. 그건 장담합니다.”
“혁권씨.”
태수가 부르자 김혁권이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막았다.
스윽.
그리고 침묵하는 칸도르 촌장을 향해 덧붙여 말했다.
“내가 이 사람들하고 같이 일한다고 편드는 거 아닙니다.”
“압니다.”
“안다고요?”
태수를 변호하던 김혁권이 움찔했다.
칸도르 촌장은 천천히 수술실을 둘러보며 억센 발음으로 말했다.
“엉망이네요. 정신없던, 순간들이, 그려질 정도로요.”
“…….”
“#^$%#%#$%.”
이어서 뭐라고 길게 말했다.
그걸 귀 기울여 듣던 김혁권이 멈칫했다.
“음?”
“…….”
태수는 말없이 기다렸다.
그때 김혁권이 침착하게 칸도르 촌장의 말을 통역해줬다.
“구조했을 때 모두 직감했다네요.”
“직감이요?”
“이런 일이 처음이 겠냐고, 우리는 어려서부터 많은 죽음을 봐 왔다고요.”
“흠.”
태수의 마음이 한층 더 무거워졌다.
그런 사이에도 칸도르 촌장의 말은 계속됐다.
“$^#%#$.”
그리고 김혁권이 귀를 바짝 세우며 실시간으로 통역해줬다.
“바슈는 너무 좋은 사람이었답니다.”
“@%#.#%/.”
“그래서 신의 눈에 들어 빨리 데려간 거라고, 아픔 없는 곳에서 행복 할 거라고 하네요.”
“^#$%$.”
“당신들의 다급한 표정, 행동, 손길. 그게 진심이란 걸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도 하고요.”
김혁권은 어렵사리 통역해줬다.
그런 반면 칸도르 촌장은 깊은 눈빛으로 태수를 바라봤다.
그 속엔 어떤 원한과 원망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래서 태수는 더욱 할 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그게 전부였다.
그때 칸도르가 다시 영어로 태수에게 더듬더듬 말했다.
“닥터, 당신을 보세요.”
“저……. 요?”
의아한 태수가 자신을 살피다 멈칫했다.
온몸이 혈흔으로 가득했다. 수술대를 깨끗하게 할 생각만 가득해 자신이 어떤지 이제야 확인했다.
그런 태수의 귀에 칸도르 촌장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노력에는, 흔적이 남습니다. 당신과 동료들, 안 봐도 압니다. 닥터의 말에 거짓이 하나 없습니다.”
“…….”
“다른 사람들, 계속 부탁합니다.”
“계속 진료해도 된다고요?”
“물론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필요합니다.”
스윽.
칸도르가 태수의 손을 잡았다.
피와 소독약으로 엉망이 된 손이었다.
“엇.”
태수가 놀라 빼려고 했지만 칸도르 촌장이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태수를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이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건넨 모든 말이 진심이란 의미가 분명했다.
그 순간 태수의 두 눈이 뻘겋게 충혈됐다.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은……. 꼭……. 꼭…….”
“…….”
톡, 톡.
칸도르 촌장은 말없이 손등을 두들겨줬다.
그는 이해해줄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러나 보호자는 아니었다.
칸도르 촌장은 숨길 일이 아닌 터라 곧 보호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 뒤를 따라 몇몇 마을 사람들이 들어왔다.
침통한 표정들이었다.
그 중 보호자는 수술대에 하얀 천을 보고 믿지 못했다.
두 눈에 초점이 흐려졌다.
온 몸이 떨려왔다.
그럼에도 보호자는 비틀거리며 수술대로 향했다.
터덕, 터덕.
“@#$%#@.”
보호자의 입에서 허탈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태수는 김혁권을 조용히 바라봤다.
“…….”
“…….”
그는 고개 돌려 태수의 시선을 피했다.
툭.
태수는 가볍게 김혁권을 건드렸다.
들어야 했다.
그게 어떤 말이라도.
그건 선택이 아닌 의무였다.
김혁권도 더 밀어내지 못하고 고개 돌린 채 나지막이 통역했다.
“아니야, 아닐 거야……. 거짓말이지.”
태수의 시선은 보호자에게 향해 있었다.
보호자는 어느새 수술대에 도착했다.
스윽.
하얀 천을 열어 바슈의 얼굴을 본 어머니는 부정하며 오열했다.
“허어어어!”
꽈악.
하얀 천을 으스러지게 쥐고 비틀거렸다. 고정되지 않은 터라 쓰러지면 잡아줄 게 아무것도 없었다.
태수는 반사적으로 그녀에게 뛰어갔다.
“엇.”
다행히 늦지 않게 부축했다.
그때였다.
확.
표독스럽게 돌아본 보호자는 태수에게 원망을 쏟아냈다.
“!#!%@#$%, 아아아악! !@#$@.”
“살려……. 에이, 씨발.”
김혁권은 차마 통역하지 못하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아예 입술까지 꼭꽉 깨물었다.
어떤 말을 해도 통역하지 않겠단 각오의 표현이다.
태수도 부탁하지 않았다.
보호자의 눈에서, 목소리에서, 이미 자신을 향한 원망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저 원망 정도가 아니었다.
턱.
보호자가 세운 손끝이 태수의 가슴을 직격했다.
태수는 미동조차 없었다.
“…….”
하지만 칸도르 촌장과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깜짝 놀란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
“@%#$!”
재빨리 다가와 보호자를 태수에게서 떼어냈다.
보호자는 발버둥을 치며 오열했다.
“으아아악! #!#@#$@!”
“…….”
태수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아들을 잃은 슬픔이다.
지금 어머니에겐 원망할 상대가 필요했다.
그게 자신이다.
응급수술을 시작한 건 태수였기에, 그걸 받아들이는 마음도 겸허했다.
“죄송합니다.”
고개 숙여 사과한 태수의 등이 미미하게 떨렸다.
그리고 얼마 후.
수술대가 텅텅 비었다.
칸도르 촌장과 마을 사람들이 사망한 환자를 직접 데려간 탓이다.
보호자는 실신 직전 댁으로 옮겨졌다.
칸도르 촌장이 대신 태수에게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어머니의 슬픔, 이해 부탁합니다.”
그도 그렇게 중재하는 게 최선이었을 터였다.
태수는 십분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김혁권과 함께 수술실을 청소했다.
촤악, 좌악.
수술대를 엉망으로 놔둘 수 없어 씻고 닦아내는 거였다.
싫었다.
이 순간도 싫었다.
한심한 자신을 생각하니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분명한 건 바슈의 상태는 간이 너무 많이 손상됐고, 출혈이 엄청났단 점이다.
태수가 아닌 누구라도 설령 제임스라 하더라도 바슈를 살리긴 어려웠을 터였다.
카프레네 지식이 그걸 뒷받침해줬다.
태수도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게 위로나 핑계, 혹은 도피처가 될 순 없었다.
촤악.
무거운 마음을 씻어내려는 듯이 물을 뿌리는 손놀림이 매서웠다.
그런데 그때였다.
김혁권이 태수를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괜찮아요?”
“뭐……. 한두 번도 아니고요.”
“아니, 상처 말입니다. 거기 상처.”
스윽.
김혁권이 태수의 가슴을 가리켰다.
손끝을 내려다본 태수는 쓴 미소를 지었다.
“아셨습니까?”
“그렇게 손끝으로 내려치는데 멀쩡한 게 이상하지.”
“그런가요?”
스윽.
태수가 수술복을 걷어 올렸다.
가슴엔 거짓말처럼 다섯 개의 손톱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얼마나 강하게 내리쳤는지 피멍이 들어 있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한이다.
태수는 다시 수술복을 내리며 말했다.
“이 정도면 싸게 먹혔네요.”
“후. 몸뚱이는 뭔 죄야.”
“주인 잘못 만난 죄겠죠. 청소나 빨리 마무리 지으시죠.”
촤악.
태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물을 뿌렸다.
그 물살처럼 보호자의 비통한 심정도 빨리 시간에 쓸려가길 바랬다.
청소 시간은 짧았다.
아직 많은 환자들이 밖에 즐비해 있었다.
언제까지 샘 분대장하고 PKO군인들의 손을 빌린 순 없었다.
이제 다시 나가야 할 때였다.
“후.”
태수가 가림막을 바라보며 짧고 굵게 숨을 가다듬었다.
솔직히 편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런 태수에게 김혁권이 다가왔다.
“이쪽은 그렇다고 치고, 저쪽은 어쩔 겁니까?”
“저쪽, 젠장.”
태수는 멍한 정민수를 봤다.
두 눈에 총기가 전혀 없었다.
영혼이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남아있는 느낌이다.
태수도 의사다.
정민수의 현재 상태를 모를 리 없었다.
뼈저린 경험으로 너무도 잘 알았다.
하지만.
벗어나야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무조건 벗어나야 했다.
그러나 김혁권은 무정했다.
“진짜 피곤하게 군다. 피곤하게 굴어.”
“혁권씨.”
“뭐요. 내가 틀린 말 했어요? 그리고 이건 마냥 감쌀 게 아니라고 봅니다.”
김혁권은 태수를 향해 명확하게 자기 생각을 밝혔다.
태수도 동의했다.
“네. 맞습니다.”
“뭡니까. 사람 불안하게?”
“딱 1분만 주십시오. 무조건 1분내에 나가겠습니다.”
척.
태수가 검지를 단호하게 내밀었다.
그 표정이 그렇게 느긋하지는 않았다.
밖에 상황을 간과하지 않겠단 약속이었다.
김혁권은 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1분입니다.”
“절대 1분.”
태수가 확답했다.
그래도 김혁권은 마음에 안 드는지 정민수를 흘겨보며 투덜거렸다.
“에휴, 저건 그 이선정인가? 그 간호사보다 더하네.”
“경우가 좀 다릅니다.”
“내 눈에는 같습니다. 차라리 송간호사, 제길, 내가 뭐라고 씨불이는 거야.”
버럭 짜증을 낸 김혁권이 거칠게 밖으로 나갔다.
풀썩.
가림막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사이 태수는 정민수에게 다가갔다.
“…….”
여전히 껍데기만 남아 있는 모습이었다.
태수는 그런 정민수를 미안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자신이 수술에 들어오라고 이끌었고, 참여하라며 끌어당기기까지 했다.
밖에서 계속 응급처치를 시켰다면 이런 충격은 받지 않았을 거란 자책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태수의 미안한 표정이 사납게 돌변했다.
이유는 하나.
수술 중 정민수의 외침 탓이었다.
‘나 도망 안 가, 안 간다고.’
스스로 뱉은 말이다.
그 말은 분명 진심이었다.
그래서 태수도 마음을 독하게 바꿔 먹었다.
지금은 위로보다 질책이 정민수에게 필요했다.
“민수야.”
“…….”
“정민수.”
버럭.
따가운 외침과 동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