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242
Chapter 010화.
그 순간 정민수가 움찔하며 물었다.
“그게, 그게 어떻게 돼?”
“흠.”
“왜 답이 없어.”
정민수는 답을 재촉했다.
그런 그의 목소리가 상당히 불안했다.
태수는 그걸 콕 짚어 말했다.
“대답하는 건 쉬워. 그런데 그건 내가 찾은 답이야.”
“그, 그럼 난?”
“너? 네가 찾아야지.”
“…….”
정민수는 말없이 하늘만 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수의 표정이 어느새 굳어졌다. 이런 대답으론 끝이 없을 거 같단 느낌 탓이었다.
그래서 태수는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일어나.”
“어?”
“일어나라고.”
스윽.
옷을 잡아 끌어올리기까지 했다.
뜬금없는 태수의 행동에 정민수는 영문 모를 얼굴로 일어났다.
“왜?”
“따라와.”
휙.
태수는 정민수를 이끌고 곧장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장소는 수술 텐트였다.
얼떨결에 들어온 정민수의 두 눈이 크게 흔들렸다.
“여, 여기는…….”
“기다려. 곧 올게.”
태수는 대답도 듣지 않고 바로 나갔다.
정민수가 당황한 목소리로 불렀다.
“야, 야.”
“…….”
태수는 이미 멀어졌는지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그런 기다림은 다행히도 잠깐이었다.
펄럭.
가림막이 열리며 태수가 다시 들어왔다.
동시에 태수는 울상인 정민수를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너 뭐냐?”
“야, 그렇게 막 가버리면 되냐.”
이제야 안도가 되는지 정민수가 버럭 소리쳤다.
태수는 그 한마디로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했다.
“이정도면 ‘microcardia.’ 아니야?”
“어?”
“소심증 말이야. 심장 사이즈 멀쩡하세요?”
태수가 어이없단 듯이 묻자 정민수가 흘겨봤다.
“이상한소리 말고, 그건 뭐야?”
“소심증 특효약.”
“그거, 술?”
정민수의 눈이 어느새 휘둥그레 떠졌다.
태수가 들어 보인 건 정말 술이었다.
그냥 술도 아니고 깔끔한 유리병에 들은 양주다.
척.
태수가 정민수에게 내밀며 말했다.
“정확하게는 위스키야.”
“이게 어디서. 아니, 이걸 왜?”
“약이라고 했잖아. 환자가 떠난 날에 마시는 써전들의 특효약.”
어느새 태수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그저 하는 말이 아니다.
제임스 박사가 직접 가르쳐준 방법이었고 상자로 선물도 받았다. 이 위스키도 그 선물들 중에 하나였다.
턱.
정민수는 일단 받아들었지만 쉽게 믿지 못했다.
“진짜 이게 약이라고?”
“마셔보면 알아.”
“그, 그래?”
“그럼 약이랑 좋은 시간 보내.”
태수는 쿨하게 돌아섰다.
그때 당황한 정민수가 바로 물었다.
“같이 안 마셔?”
“혼자 마셔야 효과가 더 좋아. 그럼.”
휙휙.
태수는 머리 위로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태수는 숙소 텐트 테이블에 김혁권과 마주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앞엔 커피가 놓여 있었다.
투박한 스테인리스 컵을 들어 올린 김혁권이 쓴 미소를 지었다.
“커피라.”
“아이스 커피입니다.”
“맹물 섞은 커피입니다. 아이스 커피는 얼음이 들어가는 거라고요.”
“뜨겁지 않으면 찬 거죠.”
태수의 독특한 해석에 김혁권이 어이없단 얼굴로 그저 미소만 지었다.
사실 여기서 얼음을 구한다는 건 무리긴 했다.
“틀린 말은 아니네.”
그때였다.
옆 텐트에서 투박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흐어엉.
당연히 정민수의 음성이었다.
김혁권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나약함에 심한 불만을 토로할 줄 알았지만 의외로 안타까워했다.
“가슴 찢어지겠지.”
“한마디 하실 줄 알았는데요.”
“내가 그렇게 냉혈한은 아닙니다.”
“아, 네.”
태수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 순간 김혁권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왜 대답에서 불만이 느껴지는 겁니까?”
“자식이. 좀 조용히 울어라. 우리는 술도 못 마시고 커피 마시는데 말이야.”
태수가 딴소리를 했다.
원래대로라면 태수와 김혁권도 술을 마셨을 터였다.
한잔 할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건 혹시 모를 응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때 자기 말이 씹힌 김혁권이 대놓고 뒤끝을 부렸다.
“저쪽은 좀 덜하네. 여기 계신 분은 엄청 화려하게 술주정하던데.”
“네? 아니, 혁권씨. 그때는…….”
“그러게요. 그때는 닥터가 그쪽 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취하는 바람에 나만 가슴 졸였던 기억이 나네요.”
“크, 크흠.”
태수가 헛기침을 쥐어짰다.
그렇다고 김혁권이 태수 눈치를 볼 성격은 아니었다.
“그때 왜 그랬는지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까지 정신줄을 놓아버리나?”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하시죠?”
“뭘 그만해요. 내가 할 말이 얼마나…….”
김혁권이 계속 말하려 하자 태수가 번개같이 잔을 내밀었다.
“자, 짠.”
“커피로?”
“나중에 두 배로 마시죠. 제가 쏩니다.”
번뜩.
태수가 결연한 눈빛으로 약속했다.
공짜 술?
김혁권의 비아냥거림이 눈 녹듯이 사라지며 부드럽게 잔을 들었다.
“짠.”
“에휴.”
“불만 있습니까?”
“아니요. 드시자고요.”
챙.
스테인리스 잔을 부딪친 두 사람은 그대로 커피를 마셨다.
그런 태수의 시선은 어느새 옆 텐트로 향해 있었다.
– 흐어어엉.
희미한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태수는 무거운 눈빛을 보내며 속으로 읊조렸다.
‘그래. 그렇게 다 토해내.’
그게 최선이었다.
앞서 자신도 경험한 순간이다.
환자의 죽음.
그건 두 사람뿐이 아닌 세상 모든 의사들에게 찾아올 순간이기도 했다.
그때 갑자기 김혁권이 스테인리스 잔을 들어 옆 텐트 쪽으로 내밀었다.
이어서 마치 정민수의 술병에 부딪치듯 행동한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닥터 정, 야전에 온 걸 환영합니다.”
그 순간 태수의 머릿속에 띵. 하고 한 문장이 떠올랐다.
“웰컴 투 야전?”
“뭡니까. 그 되도 않는 소리는?”
김혁권이 어이없이 바라보자 태수가 어깨를 들썩였다.
“그냥 딱 떠올라서요.”
“콩글리시 좀 적당히 합시다. 그런데 이상하게 입에 붙긴 합니다.”
“그러니까요. 앞으로 많이 써먹을 거 같기도 하고요.”
턱.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스테인리스 잔을 부딪쳤다.
그렇게 정신없던 사하드의 첫날밤이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사하드에서 맞이한 첫 번째 아침이었다.
고로롱.
태수는 야전침대에 누워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어제 무리한 탓인지 해가 떴는데도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삭, 삭.
텐트 밖에서 정체 모를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이어지던 중이었다.
번뜩.
돌연 눈을 뜬 태수가 벌떡 일어났다.
피곤함에 퉁퉁 부은 얼굴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그런데도 태수는 멍한 얼굴로 좌우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뭐지?”
“뭘 쓸어내는 소리 아닙니까?”
옆에서 태수 만큼 꽉 잠긴 김혁권의 얼떨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윽.
고개를 돌리자 역시나 얼굴이 퉁퉁 부은 김혁권이 목을 긁적이고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가운데 야전침대가 비어 있었다.
눈을 끔뻑이다 발견한 태수가 멈칫했다.
“민수는요?”
“내가 먼저 잠들었습니다만.”
“실례.”
휙.
태수는 이불을 걷어내며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펄럭.
가림막이 걷히며 태수가 밖으로 나왔다.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끄는 건 투박한 빗자루를 든 정민수의 모습이었다.
삭, 삭.
몇 번 더 쓸던 정민수가 태수를 발견하고 멈췄다. 그리고 푸석푸석한 얼굴로 어정쩡하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
태수가 빤히 바라만 보자 정민수는 눈치를 보다 슬쩍 덧붙여 물었다.
“잘, 잘 잤어?”
“성격이 한 번에 바뀌겠냐.”
“응?”
“아니야. 그런데 아침부터 뭐하냐?”
태수의 물음에 정민수가 쥐고 있던 빗자루를 들어 보였다.
“좀 더러운 거 같아서. 어제 껌껌해져서 진료 끝나고 제대로 청소 못했잖아.”
“음주청소 아니야? 그건 범칙금 없냐?”
“다 깼어.”
정민수가 반사적으로 답했다.
태수는 그런 정민수를 빤히 바라봤다.
‘벌써?’
양주 한 병을 모두 마셨다면 시간상 깨어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거짓말하는 거 같진 않았다.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제일 중요한 건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느냐 였다.
사람이 결심을 세우면 분명 변화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때 뭘 발견했는지 태수가 슬쩍 눈썹을 들썩거렸다.
“훗. 그래?”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아니야. 아침 운동으로 청소만 한 게 없지.”
태수가 얼렁뚱땅 넘어가자 정민수는 어정쩡하게 수긍했다.
“그, 그렇지 뭐.”
“적당히 끝내고 들어와, 오늘도 할 일이 많아.”
스윽.
태수는 그대로 뒤돌아 다시 숙소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김혁권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가왔다.
“어제 술까지 먹였는데 저러면 곤란한 거 아닙니까?”
“보셨습니까?”
“살짝 걷어서요.”
그가 가림막을 가리켰다.
가볍게 미소 지은 태수는 김혁권을 지나치며 말했다.
“밖에서 열심히 청소하니까, 우리도 얼른 식사 준비 하시죠.”
“닥터 최. 지금 여기에 청소부가 필요한 게 아니잖아요.”
“걱정 없습니다.”
“왜요. 일어나자마자 청소하면서 진료할 준비를 하고 있어서?”
김혁권이 따갑게 물었다.
그러나 태수는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아니요. 저 녀석 손등에 반창고 보셨죠?”
“다친 모양이지요.”
“아뇨. 링거 자국입니다.”
태수가 차분히 대답했다. 동시에 투덜거리던 김혁권이 멈칫했다.
“링거? 정맥주사? 혼자? 왜?”
“포도당을 투여하면 혈중알콜농도가 떨어지거든요.”
“또, 또 그렇게 어렵게 말한다. 아니지. 그렇게 되면 술이 깨는 거 아닙니까?”
김혁권이 이리저리 끼워 맞춰 물었다.
그 예상이 옳았다.
“역시 짬밥, 아니 소독약 밥을 먹어본 분이라 딱 맞추시네요.”
“말에 뼈가 있습니다만.”
“별말씀을. 전 그럼 식사나 준비합죠.”
태수의 말이 거창했지만 전투식량 상자가 쌓인 장소로 향했다.
칭찬받은 김혁권이 은은하게 미소 짓다 움찔했다.
“잠깐만, 술 취해서 자기 손에 정맥주사 꽂았다고? 의료법 위반 아니지, 그 정도면 자해 수준 아닙니까?”
“지 몸인데 누가 뭐랍니까.”
“그건 또 그렇……. 그게 아니지. 어후, 닥터 정도 독한 구석이 있네.”
김혁권은 살짝 어깨를 떨었다.
그러나 태수는?
‘그 정도 독기도 없으면 곤란하죠.’
속으로 중얼거리며 은은하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