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411
Chapter 179화.
이내 태수도 무전기 전원을 끄며 쓴 미소를 지었다.
“이런 민폐 집단이 없네요.”
“그 대장이 닥터 최입니다.”
“그건 사실이지.”
김혁권과 정민수는 얼른 태수에게 모든 책임을 미뤘다.
이젠 그런 말은 자극도 되지 않았다.
척.
태수는 철제 의자에 반대로 돌아 앉았다.
그리고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얘기부터 정리하시죠.”
“그럽시다.”
“일시불로 계산하시겠다면서요.”
“그러면 안 됩니까?”
김혁권이 뚱하게 문자 태수가 미간을 좁혔다.
“저희는 그만한 현금이 없습니다.”
“맞아요. 혹시 몰라서 비상금을 가져오긴 했지만요.”
정민수도 거들었다.
실제로 그런 거액을 들고 다닐 리가 없었다.
그때였다.
투둑.
김혁권이 조용히 두툼한 상의를 열었다.
그리고 비밀주머니에서 현금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 금액이 상당했다.
한데 뭉친 현금을 까불리며 김혁권이 말했다.
촤르륵.
“이게 얼마인지는 내가 잘 압니다.”
“절대로 잘 아실 분이죠.”
“두 분이 가진 현금도 대충 알고요.”
“네.”
태수가 차분히 답하자 김혁권도 바로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계산해 보니까 얼추 될 거 같더라고요.”
“넉넉하진 않을 겁니다.”
“그럼 디스카운트로 후려치면 될 겁니다.”
대답과 동시였다.
척척.
다가온 그가 책상에 현금을 내려놓았다.
처음이다.
그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는 걸 보는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거금을?
태수는 눈동자가 흔들릴 정도로 동요했다.
“혁권씨.”
반면 김혁권은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전쟁 중이니까……. 뛰는 거 알죠?”
“뭐가 뜁니까?”
“이율.”
“네?”
태수는 순간 이해를 못했다.
그러자 김혁권의 표정이 돌연 삐딱하게 변했다.
“어이, 형씨. 남의 돈을 쓰셨으면 이자까지 쳐서 돌려주셔야지.”
“네. 뭐, 그렇죠.”
“우리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니까 적당히 받을게. 20프로 정도로 합시다.”
“헐.”
태수는 어이가 없어 눈을 끔뻑거렸다.
그건 정민수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 거지?”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반면 김혁권은 태수만 노리고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알겠습니다.”
“저기…….”
“서로 돈 몇 푼에 피 보지 맙시다. 앙?”
“아니, 저기…….”
태수가 다시 말하려하자 김혁권이 인상을 다시 팍 찡그렸다.
“이 형씨가 말을 못 알아들으시나. 진짜 깽판이 뭔지 보여줘?”
“저도 말 좀 합시다.”
“뭔 말?”
“계약서 안 써도 되냐고요.”
태수가 흔쾌하게 수락함과 동시였다.
뻣뻣하던 김혁권의 허리가 바로 굽어지며 표정도 미소가 가득했다.
“무슨 계약서까지, 신용사회 아니겠습니까.”
“그럼 됐습니다. 장부에 잘 달아두세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후후. 잘 알아모시겠습니다.”
김혁권은 때 아닌 수지를 맞은 듯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태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이제와 김혁권의 저런 모습에 놀라는 게 더 이상했다.
그러나 정민수는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이게 무슨…….”
얼떨떨함 그 자체였다.
태수는 적당한 선에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일단 따뜻한 숙소 텐트로 돌아갑시다.”
추운데서 덜덜 떨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잠시 후.
창고 천막에서 헤어졌던 세 사람은 다시 숙소 텐트에서 모였다.
다들 따뜻한 커 피를 들고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약간 멍했다.
갑작스러운 전쟁소식 탓이었다.
“나 참.”
“별 거지 같은.”
그런 각자의 상념은 곧 지워졌다.
전쟁은 남의 일이다.
그러나 마을의 환자들은 자신의 일이었다.
그 우선순위는 잊지 않았다.
태수가 먼저 움직였다.
김혁권이 내어준 현금부터 잘 보이는 곳에 올려놓았다.
거기에 소유한 현금을 몽땅 꺼내 그 위에 얹었다.
착.
한층 더 풍성해진 현금에 만족하며 입을 열었다.
“회의 마무리 합시다.”
태수의 목소리가 숙소 텐트 속을 가득 울린 후였다.
기다릴 것도 없이 정민수가 다가왔다.
현금 뭉치에 자기 돈을 더하며 두 손을 들어보였다.
“나도 이제 개털.”
자칫 예민할 수 있는 돈 문제였지만, 이들에게는 깔끔했다.
이어서 곧바로 회의에 들어갔다.
태수가 노트를 펼치며 서둘러 말했다.
“갑자기 쏟아진 소식에 정신이 없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자, 우선 가장 급한 부분만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태수가 운을 떼자 정민수가 바로 짚어냈다.
“혈액 샘플들.”
“혈액냉동고에 넣자, 자리 있지?”
태수가 묻자 정민수가 눈을 굴리며 답했다.
“이걸 이렇게, 저걸……. 대충 사이즈 나와.”
“안 나와도 쑤셔 넣어.”
“그런데 혈액을 계속 얼려 놓기만 할 순 없어.”
정민수가 이어진 문제를 꼽자 태수가 바로 답했다.
“라쿠가 오면 그 편에 보낼까 해.”
“결과를 어떻게 받아보려고?”
“무전기.”
태수의 대답에 정민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대왕 잔머리.”
“뭐, 이번엔 인정.”
“그런데 라쿠가 정말 여기까지 올 수 있을까?”
정민수가 대뜸 부정적인 말을 꺼냈다.
“…….”
“…….”
태수와 김혁권은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전쟁이 이미 시작되었다면 너무도 많은 경우의 수가 생겨난 탓이다.
그 부정적인 견해를 꺼낸 정민수가 괜히 움찔한 얼굴로 덧붙여 말했다.
“그래. 내가 부정적인 성격인 거 인정 해. 소심하고 또……. 아무튼 그래. 그런데 무조건 좋은 일만 생길 순 없잖아.”
“맞아.”
“그……. 그렇지?”
정민수가 눈치 보며 묻자 김혁권이 한 소리 했다.
“여기서 무슨 눈치를 보고 그럽니까?”
“쟤요. 쟤, 성격 이상한 애.”
“아, 다시 눈치 좀 봐요. 혹시 주먹 날아올지 모르니까.”
김혁권이 이상한데서 동감을 표했다.
태수는 이제 그런 험담은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심드렁한 얼굴로 정민수에게 말했다.
“네 말이 맞아. 최악의 경우도 생각하고 대비해야지.”
“그러면 어떤 대책이 있는데?”
“오늘은 좋은 생각만 하자.”
태수가 엉뚱하게 말을 돌렸다.
갑자기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하자니 너무도 머리 아플 만큼 복잡했다.
이번엔 정민수와 김혁권도 태수의 말에 동의했다.
“그래. 오늘은 패스.”
“정신 좀 차리면, 그때 합시다.”
그렇게 미룰 건 과감하게 미뤘다.
그래도 아직 상의할 내용은 많았다.
“그건 그렇게 하고……. 또 뭐가 있죠?”
태수가 묻자 김혁권이 자기 노트를 앞뒤로 뒤적이며 말했다.
정민수도 이어서 물었다.
가만히 지켜보며 태수는 머리를 굴리다 곧 소리쳤다.
“올 스톱.”
“네?”
“급한 수술들부터 해결하고 그 다음에 진행해도 늦지 않습니다.”
태수가 선을 분명히 그어 말했다.
정민수와 김혁권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래. 수술이 우선이지.”
슥슥.
노트에 짤막하게 요약정리까지 했다.
그러더니 김혁권이 바로 이어서 물어왔다.
“닥터 최. 그래서 식사는 어쩌자고요?”
“우선 저희 거부터 풀어야죠.”
“저쪽은?”
“알리고 협조를 부탁해야죠. 수술 끝나고.”
태수는 분명한 단서를 달았다.
김혁권도 그건 바로 수긍했다.
그보다 돌아가는 상황이 조금 어이없는 모양이었다.
“임시 공동체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렇겠죠.”
“물과 기름도 섞이긴 하나 보네요.”
김혁권이 비유적으로 표현하며 노트에 요약해 적었다.
그 부분은 일단락 됐다.
조용해진 틈에 정민수가 노트에서 뭔가를 보곤 태수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까 마을 히스토리에 대해서 좀 들었다고?”
“그건 나도 궁금합니다.”
김혁권도 동참했다.
태수는 순간 앓는 소리를 했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될까요?”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중국령 쪽에서 산을 넘어온 정도가 중요합니다.”
“오케이. 오늘은 여기까지.”
김혁권도 더는 머리 쓰고 싶지 않은 거 같았다.
태수와 정민수도 마찬가지였다.
탁.
동시에 노트를 덮었다.
회의가 끝난 순간 태수는 야전침대로 직행했다.
풀썩.
다이빙하듯 야전침대에 엎드린 태수는 나지막이 숨을 내쉬었다.
“후, 정신이 하나도 없네.”
진짜 머릿속이 어질어질 했다.
뭐 하나 깔끔하게 풀리는 일이 없었다.
꼬이고 또 꼬여가니 편두통까지 일어나는 거 같았다.
그래서 그냥 그대로 눈을 감았다.
옷을 벗고 침낭에 들어가는 것도 지금은 귀찮았다.
‘몰라.’
지친 머릿속부터 재충전 하고팠다.
태수뿐이 아니라 정민수와 김혁권도 마찬가지였다.
정민수는 혈액샘플만 혈액냉동고에 쑤셔 넣고 곧장 야전침대로 직행했다.
풀썩.
“으으으.”
“불 끕니다.”
탁.
김혁권은 대답도 듣지 않았다.
통보와 동시에 불을 끄고 야전침대에 누웠다.
털썩.
“아으으.”
허리가 펴지는지 앓는 소리가 입에서 절로 흘러나왔다.
모두 잘 준비가 된 후였다.
어두컴컴한 텐트 속에서 태수의 목소리가 울렸다.
“고생하셨습니다. 쉬세요.”
“내일 일은 내일 해가 뜬 후에, 바이.”
“굿나잇입니다.”
정민수와 김혁권의 목소리가 차례로 들려왔다.
그리고 1분이나 지났을까?
“드르렁.”
“푸우.”
다양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눕자마자 잠든 모양이다.
고단한 하루였다.
10일보다 더 길게 느껴졌던 하루가 이제야 끝이 났다.
다음날 아침.
조정민이 일찌감치 찾아왔다.
자리를 잡고 앉음과 동시였다.
태수와 정민수가 함께 현 상황부터 알렸다.
“어제 저녁에 좀 안 좋은 소식을 접하게 됐습니다. 그 소식은…….”
정민수도 옆에서 조금씩 거들었다.
“그래서 저희는…….”
그 설명들을 듣는 조정민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갔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였다.
태수가 길고 긴 설명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런 대책까지 세워놓고 진행중에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설마 이 산골까지 전선이 확대되겠습니까.”
정민수도 씩씩하게 거들었다.
하지만 조정민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저희 때문에 이렇게 남아서…….”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자책의 말을 내뱉었다.
그때 태수가 그 책망이 더 이어지기 전에 차단했다.
“이미 돌아갈 길이 막혔다니까요.”
“맞아요.”
정민수도 얼른 장단을 맞췄다.
거짓을 말하는 두 사람 표정은 한 톨의 찡그림도 없었다.
이건 모두를 위한 거짓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