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69
00372 372화
다른 의사들과 간호사들도 일제히 존경심을 표했다.
그러고 난 뒤.
김정철 환자의 신장이식 및 자가이식에 대한 수술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참관실에는 외과장을 포함해 이추명 과장, 그리고 여러 의사들이 자리한 상태였다.
지금 병원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해도 제임스의 수술에 얼굴을 보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언뜻언뜻 태수를 바라보는 시선이 날카로웠다.
그러나 누구도 그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수술만 참관할 뿐이었다.
서울에서 한창 수술이 진행 중일 무렵이다.
같은 시각, 동학사 근처에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 석정현 이사장이 풍경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이내 훤칠한 체격의 중년인이 다가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좀 늦었습니다, 아버지.”
고개를 든 그는 서울에 있어야 할 석재봉 과장이었다. 석정현 이사장은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방금 왔다. 앉아라.”
“네. 그보다 소식은 들으셨죠?”
“그래. 서울에 가서도 한 건 한 모양이더구나.”
석정현 이사장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석재봉 과장도 같은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 갔다.
“바람 잘 날이 없는 친구입니다.”
“그런 이야기하려고 네가 이 시간에 내려온 거 같지는 않고.”
“사실은 스카우트 움직임이 있습니다. 연성대는 말할 것도 없고, 저희 정희의료원에서도 준비 중입니다. 아마도 다른 병원 역시 마찬가지겠죠.”
석재봉 과장의 말에 석정현 이사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그렇게 큰일인 거냐?”
“두 가지 때문입니다. 하나는 제임스 박사님과의 관계 때문이죠. 한국에는 아직 그런 의사가 없으니까요.”
“다른 이유는?”
“기사에 난 그대로 환자를 위하는 의사란 인식 때문입니다. 그런 의사는 병원 간판으로 내걸기에 좋으니까요.”
“병원 간판으로 세운다라.”
“좋은 의미는 아닙니다. 결국 환자를 더 유치하려는 욕심 때문이니까요. 다만 최 선생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석재봉 과장의 말에 석정현 이사장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네 생각은 어떠냐.”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환자를 위한 결정이 되겠죠. 최 선생은 그런 의사니까요.”
“그렇겠지.”
대답하는 석정현 이사장의 표정이 어느 순간부터 어두워져 있었다.
그걸 간파한 석재봉 과장이 의아하게 물었다.
“혹시 언짢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준비하시는 일에 무슨 문제가 있다든지요.”
“그런 건 아니다.”
“그런데 표정이 너무 안 좋으십니다.”
석재봉 과장이 계속 걱정을 내보이자 석정현 이사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 환자의 상태를 들어 보니 가슴이 좀 아파서.”
“아…….”
석재봉 과장도 뭔가 짐작 가는 게 있는지 탄식을 내뱉었다.
그때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던 석정현 이사장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맘때였지. 벌써 20년이 훌쩍 지나갔어.”
“…….”
석재봉 과장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석정현 이사장을 바라봤다.
그때 석정현 이사장이 지갑을 꺼내 펼쳤다.
지갑 속에는 단란한 가족사진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사진 속 아들은 총 세 명이었다.
앳된 석재민 사장과 석재봉 과장, 그리고 또 한 명의 아들이 있었다.
다른 두 아들들보다 총명한 눈빛이 인상적인 얼굴이다.
석정현 이사장이 사진 속 얼굴을 가볍게 쓸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재성아.”
목소리가 어느새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석재봉 과장이 그 모습을 보고 얼른 말했다.
“아버지가 계속 그러시면 재성이도 편히 눈감지 못할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 가슴에 묻은 막내를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니.”
이 세상에 없는 석재성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자 석정현 이사장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아들을 잃은 부모 마음은 강산이 두 번 변해도 여전히 미어질 뿐이었다.
석재봉 과장도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죄송합니다.”
“아니다. 다 내 탓이야.”
석정현 이사장은 회환으로 가득한 목소리를 낼 뿐이었다.
막내아들인 석재성은 삼형제 중 가장 총명한 아들이었다.
경영에 뜻이 있어 석정현 이사장을 24시간 따라다니며 배움에 기쁨을 느끼는 자랑스러운 아들이기도 했다.
석정현 이사장의 포부에 따라 공주에 첨단 공장 부지를 알아보려고 내려왔을 때였다. 그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 좌심실비대증이라는 병에 걸린 것이다.
자각 증상이 없어 까마득히 모른 채 공주에서 부지런히 일하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동성의료원의 초대 원장이자 석정현 이사장의 아버지가 그 병을 겨우 알아냈다.
하지만 그 당시 공주는 의료 불모지였다.
아니, 지방에는 심장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없었다.
급히 서울로 올려 보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급격하게 악화된 증상으로 석재성은 이송도 못한 채 동성의료원에서 마지막 숨을 거뒀다.
불행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석정현 이사장의 아버지 또한 손자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다 결국 생을 마감했다.
그게 석정현 이사장의 한이었다.
의료 불모지라 아들을 잃어야 했고, 그로 인해 아버지도 떠나보내야 했던 게 쓰린 상처로 가슴에 남았다.
석정현 이사장이 지난날을 회상하다 석재봉 과장에게 물었다.
“넌 내가 왜 지방에 그렇게 집착하는지 이해하지?”
“그럼요. 아버지가 서울에 종합병원을 수도 없이 세울 재산이 있으셔도 떠나지 않는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래. 다시는 말이다, 내 다시는 재성이 같은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내가 아직도 이렇게 아프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아픈 법이니까.”
“제가 흉부외과를 선택한 것도…… 재성이 때문이니까요.”
석재봉 과장의 말에 석정현 이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최 선생을 생각하는 것도 사실 그래서야.”
“저도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생각합니다. 그때 최 선생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고요.”
“그럼 됐다, 됐어.”
자신의 마음과 아들의 생각이 같다는 것만으로도 석정현 이사장은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가라앉은 기분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때 석재봉 과장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아버지, 오랜만에 막내 보러 가시지 않겠습니까. 갑자기 너무 보고 싶네요.”
“그래. 그 녀석 좋아하던 막걸리에 파전도 사 가자. 가서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꾸나.”
석정현 이사장이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석재봉 과장이 얼른 부축했다.
하지만 석정현 이사장은 부축을 거부했다.
아직은 누군가에게 부축을 받을 때가 아니다.
자신의 한을 풀 때까지.
그때까지는 두 발로 당당히 서 있고 싶었다.
그게 또 다른 석재성을 만들지 않겠단 석정현 이사장의 미어지는 마음이었다.
몇 시간 후.
그르릉.
수술실 문이 열리더니 수술 가운과 헤어캡, 마스크를 착용한 의사들이 우르르 걸어 나왔다.
폐기물 수거함에 다가간 의사들이 동시에 헤어캡을 벗었다.
후두둑!
헤어캡 속에서 땀이 한 바가지 떨어져 내렸다.
이어서 마스크를 벗자 의사들 주변에서 단내가 풍겨 나왔다.
제임스와 태수, 조나단과 브레드 김, 이작손까지.
NGO 의사들이었다.
모두 하얗다 못해 꺼멓게 질린 얼굴들이다.
새벽까지 수술한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큰 수술을 치렀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인 피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렇게 지친 와중에도 태수가 먼저 제임스와 의사들에게 인사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닥터 최도 수고했어.”
“저는 제임스를 보조한 것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 수술에서 신장이식에 대해 너무 많이 배워서 감사할 뿐입니다.”
태수의 겸손한 말에 제임스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 말하는 사람이 수술실에서는 그렇게 차갑고 날카로운 의사가 되나?”
“아, 그게…….”
“그래도 그때 닥터 최가 빨리 발견해서 천만다행이었어.”
제임스의 칭찬이 끝나기 무섭게 조나단이 말을 거들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응급 상황에서 닥터 최의 대처 능력은 최고입니다.”
“부끄럽습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고. 종양 걷어 낼 때 우리를 도와준 것도 그렇고, 이젠 닥터 최 없이 어떻게 수술해야 하나 몰라.”
“그건 좀 너무 띄워 주시는 거 같습니다.”
태수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분명 위기에 강하다.
하지만 조나단이 더 기본적인 실력도 뛰어나고 경험도 풍부했다.
진심 어린 칭찬이라는 걸 알면서도 태수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태수가 부끄러워하자 브레드 김이 한 소리 했다.
“너무 겸손한 것도 상대에게 예의가 아니야.”
“브레드까지 왜 그러십니까.”
“아까는 진짜 멋지게 대처했으니까 칭찬 받아도 된다고.”
브레드 김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더 듣고 있기 민망해진 태수가 얼른 수술복을 벗으며 말했다.
“전 먼저 가 보겠습니다.”
“어딜?”
“중환자실에서 환자 깨어날 때까지 킵해야죠.”
회의 때도 이야기했듯이 수술 직후 관리가 제일 중요한 케이스였다.
혹시나 조금이라도 이식 거부 징조가 보이면 바로 대처해야 환자의 부담이 줄어든다.
태수가 자리를 벗어날 겸, 그리고 막내라서 얼른 자처하고 나섰다.
그런데 그걸 제임스가 막았다.
“닥터 김, 자네가 가는 게 어떤가?”
“제임스 오더라면 기꺼이.”
브레드 김은 두말도 하지 않았다.
제임스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다.
피곤하다는 것도, 자신이 막내가 아니라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태수는 갑작스러운 제임스의 말에 난처함부터 보였다.
“제가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닥터 최는 좀 쉬어야 해.”
“그래도…….”
“쉬어야 한다고.”
제임스는 재차 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의 눈빛에는 더 이상 이견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
더 고집부릴 상황이 아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는 호텔로 가지. 닥터 김, 별다른 문제 없겠지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바로 호출하도록 해.”
제임스의 말에 브레드 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쪽 의사들하고 대처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좀 더 수고하고. 환자 깨어나면 호텔로 돌아오도록. 우리 할 일은 거기까지니까.”
“걱정 마시고 푹 쉬십시오.”
브레드 김이 호탕하게 대답했다.
그 믿음직스러운 모습에 제임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움직였다.
태수는 살짝 갈등하고 있었다.
스윽.
조나단이 지친 얼굴로 태수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일단 호텔부터 가자. 나 진짜 피곤해서 쓰러지고 싶은 마음뿐이야.”
“알겠습니다.”
“닥터 최 마음은 여기 모두가 알아. 하지만 박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뭔가 이유가 있겠지.”
“그럼요. 그걸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
“그럼 가야지. 얼른 가자고. 진짜 다리가 후들거리니까.”
조나단은 태수의 등을 떠미는 게 아니라 반쯤 의지해 걸었다.
그는 제2집도의로서 자가이식을 담당했다.
신장이식보다는 까다롭지 않은 수술이지만 변수가 굉장히 많아 정신적으로 너무 지친 모양이었다.
태수도 신장이식과 자가이식을 오가며 응급 상황에 대처했기에 너무 피로했다.
이렇게라도 쉬게 되었으니 더는 말하지 않고 호텔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해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병원을 나서자 또 한 번 기자들의 집요한 추격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호텔 안까지는 쫓아 들어오지 못했다.
고객 사생활을 중시하는 호텔이고,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기자들도 무턱대로 들어오진 못한 것이다.
모두가 싱글 침대로 가득한 호텔 방에 도착한 순간이다.
풀썩, 풀썩.
조나단과 이작손은 말도 없이 그대로 침대로 다이빙했다.
“아이고, 수술보다 기자들 때문에 더 지친다.”
“지겹다, 지겨워. 한국 기자들이 제일 집요한 거 같아.”
“이젠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그렇게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감은 지 1분도 되지 않아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