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459
00462 462화
그 뒤로 몇 차례 서영우가 시간을 알려 줬다.
그사이 태수는 마스크 속으로 입술을 몇 번이나 깨물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결과는 좋았다.
다행히 시간 내에 혈종을 제거하고 괴사한 조직들까지 대부분 제거할 수 있었다.
신장 표면에 들러붙은 혈전들도 떼어 냈다.
물론 평소에 비하면 무척이나 느린 속도였다.
중간중간에 홍진만이 돕지 않았다면 시간 내에 끝내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이번 수술로 홍진만이 얼마나 많이 성장했는지 알게 됐다.
그러는 사이, 태수는 마지막으로 구멍 난 신장의 앞뒤를 흡수성 봉합사로 꼼꼼하게 봉합했다.
그 과정이 끝난 직후였다.
“30분 남았습니다.”
서영우가 마지막으로 남은 시간을 크게 소리 내 알렸다.
태수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브레드 김에게 향했다.
“신장은 봉합까지 끝났습니다. 그쪽은요?”
“비장과 소장은 모두 봉합했고, 복막염도 거의 마무리됐어.”
“그럼 갈까요?”
“빨리 와.”
브레드 김이 태수를 재촉했다.
서로 더는 시간을 끌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태수와 홍진만, 그리고 송현미 간호사가 얼른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급격히 움직이자 몸이 살짝 휘청거렸으나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다들 힘들 터였다.
지금은 누구 한 사람이라도 쓰러지면 도미노처럼 쓰러질 확률이 높다.
서로서로 심적으로 의지하고 있기에 여기까지 진행된 수술이다.
그걸 알기에 쓰러질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태수만의 생각이 아니다.
브레드 김과 서영우도 같은 마음이었다.
절대 먼저 쓰러져서 수술에 지장을 줄 수 없다.
그런 생각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그사이 태수가 도착했다.
바로 비장과 소장, 복막염 수술 경과부터 확인했다.
브레드 김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다음 수술 과정을 머릿속에 정리하기 위해서다.
‘역시 브레드야.’
비장이 깔끔하게 수술되어 있었다.
남은 부분이라면 복막염의 아주 작은 부분이 아직 제거되지 않았다.
태수가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25분 남짓이다.
신장을 연결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남은 염증을 제거하고 복부를 닫는 것까지 진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태수가 홍진만과 안성훈을 바라봤다.
이 수술을 보조한 만큼 많이 성장했다는 걸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이젠 믿고 맡길 때도 됐다.
결정을 내린 태수가 홍진만과 안성훈에게 말했다.
“둘은 복막염을 마저 제거하고, 브레드는 저와 신장 연결하시죠.”
“오케이. 바로 움직여.”
브레드 김이 다그치듯이 말했다.
그 소리에 맞춰 의사들이 자리를 잡고 섰다.
서로 대화도 없었다.
그저 반사적으로 수술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태수와 브레드는 온 신경이 신장에만 쏠려 있었다.
동맥과 정맥, 요관까지 제대로 연결해야 한다.
하나라도 틀어진다면 지금까지 노력한 모든 수고가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그건 아무래도 좋지만, 재수술에 들어가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재수술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체력이 방전된 의사는 교체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체력을 쏟아 수술을 견뎌 낸 환자는 바꿀 수 없다.
재수술을 하려면 최소 며칠을 회복해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한 번에 확실하게 끝내야 한다.
그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태수와 브레드 김이었기에 시선을 마주칠 시간도 아끼며 신장을 연결하는 데 온 정신을 쏟았다.
아니, 지금은 신장밖에 보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끝을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동맥과 정맥을 간신히 연결시킨 후였다.
“10분 남았어. 이제 닫아야 해.”
서영우의 말에 태수와 브레드 김이 멈칫했다.
아직 요관도 연결하지 못했다.
그런데 닫을 순 없었다.
태수가 빠르게 서영우에게 물었다.
“10분이라도 더 연장할 수는 없습니까?”
“기껏해야 5분. 그 이상은 정말 힘들어.”
“연장해 주세요. 그사이에 어떻게든 마무리 짓겠습니다. 그쪽은 어때?”
태수가 홍진만과 안성훈에게 물었다.
홍진만이 대표로 대답했다.
“염증은 모두 걷어 내고 장폐색 방지 작업 하고 있습니다.”
“그거 끝나는 대로 두 사람 모두 봉합 준비해. 나하고 브레드가 손 떼면 바로 달라붙어.”
“네!”
홍진만도 기운을 쥐어짜 대답하고는 손을 놀렸다.
언제나 묵묵한 안성훈도 손을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졌다.
태수와 브레드 김은 마지막으로 요관 연결을 시작했다.
브레드 김이 희망적인 이야기를 했다.
“요관은 완전히 연결하지 않아도 돼. 소변이 새지 않을 정도만 하면 무조건 붙어.”
“그만 말씀하세요. 요관 흔들립니다.”
“내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닥터 최 시야가 흔들리는 거야.”
브레드 김이 면박을 줬지만 손끝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태수의 시선도 같이 떨리고 있다.
이젠 체력이 아예 없었다.
정신력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멈추지 않았다.
아예 손끝과 시선이 흔들리게 놔뒀다.
대신 그 속도를 일정하게 서로 맞췄다.
서로 흔들리다 보니 오히려 멀쩡하게 보이는 묘한 현상이 일어났다.
태수와 브레드 김은 그런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았다.
체력이 고갈된 수술을 한두 번 경험한 게 아니다.
그런 수술을 진행하는 방법을 자신도 모르게 터득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았다.
그래도 끝까지 요관 연결에 힘을 쥐어짰다.
듬성듬성 요관을 연결한 후였다.
정맥과 동맥을 막고 있던 지혈겸자를 풀었다.
이제 수술한 신장 속으로 피가 여과될 터였다.
태수는 니들홀더를 내려놓고 손으로 직접 신장을 쥐었다.
서서히 따뜻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너무 힘들어 차갑게 식어 버린 감정이 다시 솟아오르는 기분이다.
이거다.
바로 이 느낌이 지친 태수를 몇 번이나 되살아나게 했다.
그사이 브레드 김은 혹시 모를 출혈을 확인하며 서영우에게 물었다.
“바이탈은요?”
“아직 낮아요. 그런데 최소한 출혈은 없는 거 같습니다. 그보다 5분 지났어요. 이젠 봉합해야 합니다.”
“오케이. 닥터 최.”
브레드 김이 부르자 태수가 바로 대답했다.
“피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물러나.”
그 말과 동시에 태수와 브레드 김이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생각과 달리 움직이는 발 때문에 스텝이 꼬였다.
털썩.
태수와 브레드 김은 수술대에서 멀어져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 사이를 홍진만과 안성훈이 메웠다.
“봉합 시작합니다.”
홍진만과 안성훈이 동시에 봉합을 시작했다.
그리 커다란 상처는 아니지만 감염을 대비해 꼼꼼하게 봉합해야 했다.
두 사람이 봉합하는 사이였다.
태수는 그대로 수술실 바닥에 누워 버렸다.
봉합 방법까지 알려 줘야 할 만큼 미숙한 레지던트들은 아니다.
이젠 뒤를 맡겨도 될 후배들이기도 했다.
차가운 타일의 느낌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후우.”
태수는 그대로 누워 조금이라도 체력을 회복했다.
너무 기운을 빼 손발이 모두 풀렸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그땐 야간조를 호출해야 할 것 같았다.
브레드 김도 마찬가지로 수술실 바닥에 누운 채 일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봉합 끝났습니다.”
홍진만의 목소리가 수술실을 크게 울렸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서영우의 목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마취 종료. 그리고…… 잠시 대기.”
바이탈 사인이 회복되는 걸 지켜보기 위한 시간이다.
그 소리에 태수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끄응.”
절로 앓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끝까지 몸을 일으켰다.
직접 눈으로 봐야 직성이 풀릴 일이다.
“으으윽!”
반대쪽에서 비명과 같은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브레드 김도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태수와 브레드 김은 똑바로 설 힘이 없어 수술대를 잡고 억지로 버텼다.
대략 1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잠깐 누워 있었다고 다행히 볼썽사납게 다리가 떨리진 않았다.
그래도 초조한 마음은 지워지지 않았다.
태수와 브레드 김뿐만이 아니다.
홍진만과 안성훈, 간호사들까지.
모두 긴장된 얼굴로 서영우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였다.
돌아선 서영우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후우! 집에는 택시 타고 가야겠지?”
“네?”
“퇴근 준비 하자고.”
그 말과 동시에 서영우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척!
엄지까지 추켜든 모습을 보자 긴장이 순식간에 풀려 버렸다.
“에구구.”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앓는 소리와 함께 수술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진짜 기쁘다.
소리치고 날뛰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힘조차 없었다.
얼굴에 힘겨운 미소를 지은 수술팀이 서로를 바라봤다.
‘수고하셨습니다.’
눈빛으로 말보다 더 진한 마음이 전달되었다.
환자를 먼저 중환자실로 올려 보내고도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수술팀이 수술실을 나섰다.
다들 기운이 쭉 빠지다 못해 휘청거리는 모습이다.
태수는 흔쾌히 지원을 와 준 홍진만과 안성훈을 바라봤다.
이젠 헤어져야 할 시간인 탓이다.
태수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퇴근이 늦어져서 어째?”
“어쩌기는요, 치프가 술 사 주셔야죠. 비번 날 아주 진하게 사 주십시오.”
“그래. 코가 삐뚤어지게 마셔 보자고. 진짜 수고했다.”
“고생하셨고, 정말 많이 배우고 갑니다.”
홍진만과 안성훈이 깊숙이 고개 숙이고 돌아섰다.
수술실 밖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가벼워 보였다.
힘든 것과 별개로 이런 응급 수술에 참여한 자체가 기분 좋은 모양이었다.
그들이 목표에 한 걸음이라도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는 건 태수도 기쁘게 했다.
그때였다.
턱.
좌우에서 서영우와 브레드 김이 어깨를 걸쳤다.
“같이 가자. 컨퍼런스 룸까지 걸어갈 기운도 없어.”
“그런데 그거 꼭 해야 합니까? 솔직히 오늘은 진짜 하기 싫은데요.”
“어쩝니까, 그게 법인데. 로마는 아니지만 법대로 따라야죠.”
두 사람이 살짝 투덜거렸다.
태수도 같은 마음이다.
이렇게 기운이 빠진 날에는 컨퍼런스를 하는 것도 고문이다.
그러나 약속을 한 부분이기에 어길 순 없었다.
태수와 브레드 김, 서영우는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며 걸어갔다.
그 뒤를 지친 얼굴의 송현미 간호사와 김수진 간호사가 따랐다.
태수와 수술팀은 곧 컨퍼런스 룸 안으로 들어섰다.
‘수고했다.’
‘앉아서 좀 쉬어.’
기다렸단 듯 살가운 인사말이 들려올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태수와 수술팀이 살짝 기운 빠진 눈빛으로 컨퍼런스 룸을 둘러보다 멈칫했다.
하석준 팀장을 비롯한 의사들.
함은선 간호사를 비롯한 간호사들까지.
있기는 있다.
그러나 모두 자리에 앉아 엎드리거나 고개를 젖히고 있었다.
브레드 김이 깜짝 놀라 물었다.
“아니, 다들 왜…….”
그 소리에 엎드려 있던 박성민이 억지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양쪽 콧구멍에 휴지를 말아 넣은 모습이 한편으론 처량해 보였다. 보나마나 피로에 겨워 코피 꽤나 쏟아 낸 모습이다.
같은 처지인 태수로서는 웃지 못할 현실이기도 했다.
박성민은 탁 풀린 눈으로 브레드 김에게 말했다.
“보니까 그쪽도 만만치 않았던 거 같은데, 내 집은 아니지만 편안하게 앉아요. 차린 건 없지만 간식도 좀 드시고.”
그 말이 끝이었다.
풀썩.
쓰러지듯 다시 회의 테이블에 박성민이 엎어졌다.
태수를 비롯한 수술팀은 황당할 따름이었다.
그때 서영우가 먼저 몸을 움직이며 말했다.
“딱 보니까 우리랑 사정이 비슷해 보이는데, 일단 우리도 좀 쉽시다. 에그그그.”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은 서영우도 그대로 책상에 엎드렸다.
그제야 다들 어기적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태수도 지정된 자리에 도착한 순간 다리가 탁 풀렸다.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은 태수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이젠 움직일 힘도 없다.
그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컨퍼런스 룸은 말 그대로 정적만이 감돌았다.
다들 자는 건지 눈을 감은 건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앓는 소리도 없다.
그런 표현조차 할 힘이 없다는 게 옳았다.
벌떡 일어나 집에 간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