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915
00918 918화
이젠 서로 간에 깊은 신뢰가 쌓여 있었다.
그사이 바이탈 확인을 마친 이선정 간호사가 다가왔다.
“누가 보면 오빠 동생인 줄 알겠어요.”
“이 정도 나이 차이면 거의 오빠 동생이죠.”
태수가 넉살 좋게 받아치자 이선정 간호사가 한 소리 했다.
“경찰서가 112였나?”
“큭큭.”
윤사라가 상상을 하며 웃자 태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시다니.”
“제가 좀 세상의 때가 많이 묻어서요. 그보다 차트 좀.”
“여기 있습니다.”
태수가 차트를 건네자 이선정 간호사는 바로 확인한 혈압, 맥박, 체온, 소변량 등을 기입했다.
그저 싱거운 농담일 뿐이란 걸 서로 알기에 미소 띤 얼굴은 여전했다.
잠시 기다리자 이선정 간호사가 태수에게 차트를 다시 내밀었다.
“여기 확인해 보세요.”
“그럼 잠시.”
태수는 이선정 간호사가 기입한 수치들을 확인했다.
그런데 맥박에 비해 혈압이 유독 높았다. 얼핏 봐도 살짝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확실한 건 여기서 이야기할 수 없단 점이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윤사라에게는 최대한 안정을 보이는 게 중요했다.
탁.
차트를 덮은 태수가 윤사라에게 말했다.
“그럼 푹 쉬고 있어. 이따가 올게.”
“네, 이따 봬요. 전 좀 잘게요.”
윤사라는 몇 번 손을 흔들고는 눈을 감았다.
병실을 나선 태수가 이선정 간호사에게 물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모르겠는데요. 전보다 더 밝아지지 않았어요?”
“밝아진 건 맞는데…….”
태수는 말끝을 흐렸다.
그것도 잠시였다.
바로 들고 있던 윤사라의 차트를 다시 펼쳤다.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탓이다.
사락사락.
태수는 지금 진찰한 내용뿐만 아니라 그 전 기록까지도 모조리 확인했다.
그사이 이선정 간호사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왜 그러세요?”
“…….”
태수에게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아니, 이선정 간호사의 질문을 듣지 못했다. 차트를 앞뒤로 뒤적거리며 뭔가를 확인하기에 바빴다.
이선정 간호사는 그런 태수를 가만히 바라만 봤다. 저렇게 집중하고 있을 때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듣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선정 간호사가 지켜보는 사이 태수는 차트를 계속 비교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우선 혈압.
2~3일 동안 상승과 하강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태수가 바로 알아채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윤사라는 하루 동안 여러 의사들에게 진단을 받는다.
대표적으로 내과의 공우혁과 이번 수술 어시스던트로 내정된 성재경이었다. 그 외에 이선정 간호사가 몇 시간에 한 번씩 바이탈 수치를 확인한다.
태수도 일전에 윤사라의 혈압이 올라간 건 확인했었지만 곧 안정을 찾았기에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약이 투여되면 일시적으로 혈압이 상승하는 경우가 있는 탓이다.
그런데 그 상승 폭이 점점 커져 가고 있었다.
고혈압이라고 의심해도 될 정도.
그 부분을 확인한 태수는 쉽게 차트를 놓지 못했다.
게다가 방금 확인한 거미혈관종과 황달, 지금 혈압의 변화를 확인한 것까지 더하자 눈빛이 점점 깊어져 갔다.
이런 증상은?
태수는 통상적인 경우부터 추측하기 시작했다.
여러 상황에서 스스로 환자를 돌본 경험, 머릿속에 저장된 카프레네와 제임스의 임상 기록, 카프레네의 기억까지 천천히 둘러봤다.
‘음.’
이 모든 현상들이 일치되는 병이 하나 떠올랐다. 만약 지금 머릿속에 떠오른 그 병이 맞는다면 이대로 넘어갈 일이 결코 아니었다.
탁!
차트를 거칠게 덮은 태수가 이선정 간호사를 다급하게 바라봤다.
“지금 검사실 쓸 수 있습니까?”
“네? 갑자기 검사실은…….”
“빨리 알아봐 주세요.”
태수의 눈빛과 목소리가 진중했다. 절대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직감한 이선정 간호사의 표정도 심각하게 변했다.
“바로 전화드릴게요.”
타다닥.
이선정 간호사가 빠르게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사이 태수는 차트를 내려다봤다.
설마.
진짜 설마다.
아니, 설마이고 싶었다.
말도 안 되는 억측만으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 태수의 얼굴 가득 떠올랐다.
마침 검사실에 여유가 있어 태수는 직접 윤사라의 병상을 밀며 검사에 같이 참여했다.
예정에 없던 검사에 윤사라가 의아해하는 건 당연했다.
“어디가 안 좋나요?”
“아니. 검사할 때가 됐잖아.”
“보통 전날에 말씀을 해 주셔서요.”
“아까 이야기한다고 해 놓고 내가 깜빡했어.”
태수는 변명으로 대화를 얼버무렸다. 좀 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윤사라는 약간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어제 검사한 여러 가지 결과가 모두 태수의 손에 쥐어졌다. 검사 결과가 늦었던 건 검사 종류가 달랐던 탓이다.
우선 혈액을 통한 간 기능 검사, 간 효소 측정, 조직 검사까지.
복부 CT, MRI는 기본이었다.
그렇게 간의 이상을 확인할 수 있는 검사들이 주를 이뤘다.
차분한 얼굴로 결과들을 확인하던 태수의 얼굴이 꺼멓게 죽어 갔다.
“이건…….”
그의 눈빛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가늘게 떨려 왔다.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liver cirrhosis.
간경변증.
다른 말로는 간경화증이라고도 한다.
간이 딱딱하게 굳어지며 기능이 저하되는 병이다.
다행이라면 아직 큰 문제로 발전하지 않았다. 간의 일부분에서 경화가 진행되고 있는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루푸스란 병이 사라지지 않은 지금 간경변증이 발견됐다는 건 좋지 않은 징조였다.
합병증이다.
그냥 환자보다 더더욱, 아니 상당히 심각한 케이스로 발전할 공산이 너무도 컸다.
태수는 혼자 고민하지 않고 우선 수술팀원들과 공우혁을 소집했다.
곧 소회의실에 공우혁과 성재경, 여성현 등등 수술팀원들이 모두 자리했다.
느닷없는 태수의 호출에 다들 긴장된 표정들이 가득했다.
“뭐 아는 거 있어?”
“어제 갑자기 이것저것 검사를 했다던데.”
“소식을 듣긴 했는데…….”
다들 서로를 바라보며 묻기 바빴다.
자리한 의료진 그 누구도 정확하게 어떤 검사들이 진행되었는지는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끼익.
이내 소회의실 문이 열리고 태수가 들어왔다.
“오늘은 좀 쉬라더니, 무슨 일이야?”
여성현이 바로 물었지만 태수는 고개만 가볍게 숙이며 회의실 한쪽으로 향했다.
그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며칠 사이 미소 지었던 태수의 모습과 대조적이라 여성현을 포함한 수술팀원들은 차분하게 기다렸다.
곧 노트북 앞에 선 태수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지 않은 소식입니다.”
“무슨 좋지 않은 소식?”
다들 안색이 변하자 태수는 노트북을 조작했다.
탈칵.
몇 번 마우스를 움직이자 소회의실 한쪽 벽에 빛이 비추더니 커다란 스크린으로 변했다.
그 속에는 여러 가지 검사 결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CT와 MRI도 있지만, 여러 수치들이 기입된 검사 결과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태수는 더 말하지 않았다. 다들 검사 결과를 한눈에 확인할 실력들이니 구태여 설명할 이유가 없었다.
그 침묵은 정확했다.
검사 결과를 확인한 수술팀원들의 눈이 점점 크게 떠졌다.
“저, 저게 뭐야?”
“간경화?”
“이게 무슨…….”
날벼락도 유분수였다.
윤사라는 이제야 차도를 보이며 건강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합병증이 일어났다는 걸 믿기 힘든 표정들이었다.
공우혁이 태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진짜 간경화가 맞아?”
“저도 믿고 싶지 않습니다.”
“음, 그래. 뻔히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 안 믿는 게 더 이상한 일이지. 그보다 어떻게 알게 된 거야?”
공우혁이 이어서 묻자 태수는 진중한 얼굴로 대답했다.
“제가 간의 이상을 의심한 건…….”
태수의 대답이 길게 이어졌다.
누구 하나 시선을 돌리는 수술팀원이 없었다. 이어지는 설명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지만 끝까지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모신 겁니다.”
태수의 상황 설명이 끝난 후 여성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최 선생 생각은 뭐야?”
“그동안 미뤘던 수술 날짜를 이젠 잡아야 할 거 같습니다.”
“음, 빨리 수술하는 게 이익이라는 건가?”
“지금까지 확인된 결과로 보면 가급적이면 빨리 수술하는 게 좋습니다.”
태수가 대답하자 이번에는 공우혁이 반대 의견을 냈다.
“당장 수술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아무리 루푸스 경과가 좋아졌다고 해도 완치는 꿈도 못 꿀 상황이야. 게다가 아직 수술을 이겨 낼 체력이 부족해.”
“저도 그 말씀에는 동감입니다. 그래서 단시일에 최대한 체력을 끌어올린 후에 수술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기간은 어느 정도로 예상하지?”
공우혁의 물음에 태수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걸 지금부터 의논해야죠.”
“우선 최 선생 생각은?”
“윤사라의 경과를 봐야겠지만 최소한 5일 내로 수술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태수의 말에 다들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쉽게 의견을 낼 수 없는 일인 탓이다.
침묵이 좀 더 이어진 후였다.
검사 결과를 뒤적이며 몇 가지를 더 확인한 성재경이 태수를 향해 나지막이 물었다.
“이런 상황이라도 간경화를 늦출 수 있으면 수술을 며칠 더 미룰 수도 있다는 거야?”
“무작정 미룰 수는 없어도 하루 이틀은 더 미뤄도 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반대라면?”
“무조건 당겨서 들어가야죠.”
태수는 간단하게 대답했지만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그때 가만히 두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공우혁이 입을 열었다.
“우선 내가 집중적으로 체력을 올리도록 하지.”
“예상 기간은요?”
“글쎄. 나도 섣부르게 입 밖으로 내뱉을 상황은 아닌 거 같아.”
“음.”
태수가 신음을 흘리자 공우혁이 차분하게 이어서 말했다.
“우선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다 진행할 테니까 희망을 갖고 기다리자고.”
“알겠습니다. 그래도 가급적이면 5일 이상은 시간을 끌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노력해 보자고.”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그걸 모두가 알지만 누구 하나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아직 경미한 수준이라지만 간경화라니.
루푸스도 이제 겨우 최악의 상황을 벗어났을 뿐이다.
이제 조금 수술의 희망을 맛본 수술팀원들이라 더욱 맥이 빠지는 기분이다.
회의실을 나선 태수는 한 번 더 상태 확인을 위해 윤사라에게로 향했다.
병실에 들어선 태수가 꼼꼼하게 이것저것 살펴봤다.
윤사라는 그런 태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태수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왜?”
“제 몸에 무슨 이상이 생겼나요?”
“약간.”
태수가 덤덤하게 대답했지만 윤사라의 표정이 뚱하니 변했다.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윤사라는 다시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수술하기도 힘든 정도예요?”
“아니.”
“진짜요?”
“…….”
순박한 눈망울에 태수는 말문이 막혔다.
루푸스 환자의 간경화 수술.
그리고 루푸스 수술을 연거푸 해야한다.
솔직히 수술 성공률이 그렇게 높진 않단 판단이다.
윤사라의 체력이 올라가고 모두가 수술 준비를 더욱 철저히 한다면 조금이나마 성공률은 올라갈 지도 모른다.
그건 예측일 뿐, 현재 상황과 분명히 다르다.
태수는 단순한 추측만으로 그런 거짓말까진 할 수 없었다.
태수의 침묵이 길어지자 윤사라가 더욱 또렷한 눈빛으로 재촉했다.
“사실대로 말씀해 주세요.”
“어려운 수술이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도 먼저 듣고 싶어요.”
윤사라의 목소리가 너무도 선명했다. 꼭 듣겠단 의지가 담긴 눈빛까지 보이자 태수도 더 이상 얼렁뚱땅 넘어갈 수 없었다.
환자는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특히나 보호자가 없는 윤사라이기에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이 상당히 중요했다.
그런 선택의 자유를 빼앗을 권리가 태수에게는 없었다.
머릿속을 정리한 태수는 윤사라의 질문에 대답했다.
“솔직히 전보다 좀 더 수술이 어려워진 건 사실이야. 아니, 좀 많이 어려워졌지.”
“아…….”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태수가 물었지만 윤사라의 대답이 바로 들려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