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296
296화
지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황금빛 광채를 내고 있는 부드러운 털이었다.
‘응? 뭐지?’
고개를 들어 보니 산군의 털 속에 파묻혀 누워 있던 것이었다.
그때 미쉘이 깨어난 지크에게 다가와 눈물을 흘리며 매달렸다.
“흐어어엉! 기사님! 산군님을 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지크는 마지막 순간 자신이 정화에 성공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울부짖는 미쉘의 어깨를 붙잡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아까와는 달리 나무에 몸을 기댄 채 앉아 있는 산군의 모습이 보였다.
산군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지크에게 말했다.
『정말 고맙구나. 덕분에 다시 내 신위를 찾을 수가 있었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신수인 산군이 지크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지크는 그런 산군을 보며 마주 인사했다.
“정화에 성공해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산군님의 몸에 박혀 있던 그 마기는 무엇입니까? 일반적인 마기와는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지크의 말에 산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부터 인간들이 산맥 곳곳에 마기를 담고 있는 말뚝을 박아 넣기 시작했다. 산맥에 흐르는 정기를 끊고, 내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였지. 그러다가 어느 날에는 산맥의 중추에 사악한 힘이 담긴 뭔가를 파묻어 내 몸에 독이 흐르도록 했다.』
산군의 말을 들은 지크는 뭔가 떠오른 것이 있었다.
‘제국 놈들. 거인산맥에서도 곳곳에 피와 광기의 기수의 힘이 담긴 아티팩트로 바바리안들의 영역을 약화시켰었지.’
바바리안들의 영역에서 있었던 일이 이곳에서도 일어났던 것이다.
지크는 산군을 보며 말했다.
“아까 말씀드린 마족들의 힘을 현상계에 불러오려는 자들. 그들이 산맥의 정기를 끊고 사악한 힘을 파묻은 것입니다.”
산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대로 현상계에 무엇인가가 일어나려는 것 같구나. 성유물의 힘이 필요할 때란 바로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겠지.』
산군이 몸을 일으켜 지크의 머리 위에 큰 손을 올렸다.
『강인하고 순수한 기사여. 내가 감사의 의미로 줄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뿐이군. 그대가 가려는 험난한 길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산군의 손에서 옅은 녹색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 기운이 지크의 몸에 스며들었다.
지크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칭호 ‘신수의 은혜’를 획득했습니다.] [칭호 ‘신수의 은혜’의 영향으로 스킬 ‘길들이기(B)’가 스킬 ‘교감(A급)’으로 변화했습니다.] [패시브 스킬 ‘한계 돌파’의 영향으로 성화기의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성화기가 숙련도 상승으로 성광기(S+)로 변화합니다.]신수의 힘을 받자 칭호가 생겨나고 스킬들이 변화했다.
‘위험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잘 풀려서 다행이군.’
그때 산군이 손바닥에 쥐고 있던 것을 지크에게 건넸다.
표면에 이끼가 잔뜩 낀 오래된 상자였다.
“이게 무엇입니까?”
『오래전 내가 산에 군림하는 존재로 있었을 때 나를 두려워하던 이들이 바친 보물들이다. 나에게는 별로 가치가 없는 것들이지만 그대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지크는 산군이 건네 상자를 받아 열어 봤다.
‘이건?’
놀랍게도 그 안에는 고대의 아티팩트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지크는 아티팩트들 하나하나를 용안으로 들여다보며 정보를 읽어 봤다.
그중에서 지크는 의외의 물건을 찾아냈다.
낡은 반지였는데 인장의 역할을 하는지 반지 윗부분에 문양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화려한 다른 가문의 문장과 다르게 그곳에는 하나의 검만 문양에 새겨져 있었다.
지크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반지의 정보를 확인해 봤다.
―반지 정보―
설명 : 드레이커 가문을 상징하는 인장
고유능력 : ???
특이 사항 : 절대검가 드레이커 가문을 만든 섀턴 드레이커가 만든 반지.
반지의 정보를 확인한 지크가 깜짝 놀랐다.
‘절대검가 드레이커 가문?’
지크의 머릿속에서 드레이커는 항상 용살자 가문이었다.
절대검가라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지크는 이전에 테라칸 드레이커가 가문에서 반죽음이 되어서 쫓겨났다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테라칸 이전의 드레이커 가문. 그 당시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규칙과 모습을 갖추고 있었을지도.’
그때 지크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발견한 드레이커의 인장에 의해 업적 퀘스트가 갱신됩니다.]―업적 퀘스트(연계)―
[검성 섀턴 드레이커의 심득이 남아 있는 비동을 찾으시오.] [절대검가 드레이커 가문의 마지막 유산을 찾으시오.] [퀘스트 미션 보상 : 검성의 마지막 심득] [퀘스트 미션 보상 : 특수 혈계 능력]지크는 떠오른 메시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절대검가의 마지막 유산? 보상으로 특수 혈계 능력?’
업적 퀘스트가 연계된 것을 보니 섀턴 드레이커의 심득이 남아 있는 비동에 가문의 유산이 있는 듯싶었다.
‘섀턴 드레이커의 비동은 잊혀진 자들의 숲에 있었지. 절대검가의 유산이라.’
용살자 가문 이전의 드레이커는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지크였다.
그는 드레이커 가문의 인장을 따로 챙겨 넣고 상자를 통째로 인벤토리에 보관했다.
산군이 지크에게 말했다.
『신위를 회복하여 요정의 호수로 통하는 길을 여는 것이 가능하다. 지금 곧바로 가겠는가?』
지크 역시 정신력을 모두 회복한 상태였기에 바로 가도 문제가 없었다. 지크는 산군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산군이 입을 쩍 벌리고 황금빛 기운을 토해 냈다.
그러자 황금빛 기운들이 이리저리 흘러서 뭉치더니 곧 원형의 포탈을 만들어 냈다.
지크는 황금빛 포탈에서 흘러나오는 신비한 기운에 호기심을 느꼈다.
‘정화의 힘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그때, 산군이 황금빛 포탈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요정의 호수로 가는 길이 나올 것이야. 하지만 꼭 명심해야 한다. 눈앞에 보이는 유혹에 빠지면 다시 현상계로 돌아올 수 없음을 말이야.』
“알겠습니다.”
지크가 궁금증을 억누르며 천천히 황금빛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우우우웅!
지크가 포탈 안으로 들어가자 진동이 울리더니 곧 산군이 만든 포탈은 황금빛 무리로 흩어지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미쉘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기, 기사님이 어디로 간 겁니까?”
산군이 다시 나무에 기댄 채 말했다.
『현상계를 떠나 요정계의 경계선으로 간 것이다. 부디 그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려 보자꾸나.』
* * *
우우우웅!
포탈을 넘으며 터지는 빛무리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지크가 눈을 떠 보니 아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보였다.
‘여긴?’
주변을 둘러보니 끝없는 숲이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숲의 모습이 뭔가 이상했다.
마치 유화 물감을 이리저리 발라 놓은 듯 형태가 분명치 않고 나뭇잎 색이 수시로 변했다.
지크는 시시각각 변하는 나무의 모습에 어느 순간 의식을 놓고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지크가 고개를 내저으며 정신을 차렸다.
‘영령화 상태로 차원의 경계에 있을 때와 느낌이 비슷하다. 현상계의 존재가 여기에 오래 있으면 별로 좋을 것 같지 않군.’
지크가 몸을 돌리자 숲 사이로 쭉 뻗어 있는 길이 보였다.
지크가 천천히 길을 따라 위로 걸어 올라갔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나무들의 색이 더욱 화려하게 형형색색 바뀌며 마치 지크를 유혹하는 듯이 움직였다.
심지어 나무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까지 들렸다.
―까르르르르!
즐겁고 사랑스러운 웃음소리가 나무들 사이 곳곳에서 들렸다.
―이리 와, 나랑 놀자.
지크는 자신을 부르는 달콤한 소리를 애써 무시하고 묵묵하게 앞으로만 나아갔다.
나무 사이의 길을 쭉 걸어 올라가자 어느 순간, 큰 호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크는 천천히 호수가 쪽으로 다가갔다.
호수의 물 역시 마치 유화 물감으로 덧칠해서 그려 놓은 듯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물결이 칠 때마다 아름답게 색이 바뀌었다.
이곳에 앉아서 하염없이 물결과 나무들만 바라보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순간 지크는 다시 자신이 의식을 잃을 뻔했다는 걸 깨달았다.
‘정신 차리자.’
그는 재빨리 인벤토리에서 아가멤논의 마스크를 꺼냈다.
부서지기 일보 직전인 아가멤논의 마스크에는 이리저리 미세한 금이 가 있었다.
지크는 아가멤논의 마스크를 보고 고민에 빠졌다.
‘이걸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는 거지.’
―까르르르르!
다시 숲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지크는 웃음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외쳤다.
“나는 부서진 성유물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이곳에 왔다! 이 성유물이 제힘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가 소리를 쳤지만, 웃음소리만 메아리치며 들려올 뿐 대답은 없었다.
지크가 고민을 하다가 성배와 검집을 꺼내 세 가지의 성유물 모두를 호숫가 앞에 꺼내 놓았다.
그때였다.
우우우우웅!
순간 호숫가가 일렁이더니 그 안에서 뭔가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뭐지?’
지크가 경계하며 성유물을 다시 집어 들었다.
형형색색의 물로 형상을 이루고 있는 존재.
그 존재가 서서히 지크 앞으로 다가왔다.
지크는 형체조차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그 존재에게서 강력한 힘을 느꼈다.
‘상위 요정인가. 네리사가 소환했던 정령과는 느낌이 다르군.’
호수의 형상이 지크 앞에 섰다.
지크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돌이킬 수 없는 약속된 힘으로 시간을 거슬러 온 불멸자여.』
지크는 호수의 형상이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내가 회귀를 한 것을 알고 있어?’
지금껏 크로노스를 제외하고는 그가 회귀를 했다는 사실을 아는 존재는 없었다.
크로노스도 직접 그 힘을 엘더 드래곤의 유물에 심어 두었기에 아는 것이었다.
지크는 호수의 형상을 보며 말했다.
“제 이름은 지크 드레이커. 말씀하신 대로 불멸자 클래스를 가진 자입니다. 저는 성유물을 회복시키기 위해 이곳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호수의 형상이 다시 말을 이었다.
『성유물은 법칙을 벗어난 힘. 역시나 법칙을 벗어난 불멸자가 그 힘을 가지게 되면 현상계가 무너지게 된다.』
“하지만 성유물의 힘으로 나락을 막지 못하면 현상계에 마왕이 부활할지 모릅니다.”
『법칙을 벗어난 힘이 생겨날수록 마왕의 부활은 가까워지는 것이다.』
“성유물의 힘이 마왕의 부활을 앞당길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호수의 형상이 고개를 내저었다.
『마왕의 부활을 앞당기는 것은 다름 아닌 불멸자. 바로 너다.』
순간 호수의 형상이 크게 몸을 부풀리더니 지크의 몸을 휘감았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지크는 어떻게 대처하지 못했고, 그대로 형상의 몸에 휘감겨 호수 안으로 빠지고 말았다.
호수에 빠지자 사방이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지크는 살면서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아아…….’
아름다운 풍경에 푹 빠진 지크는 마음이 편안해지며 모든 것을 잊게 됐다.
대륙 최강자나 아벨, 나락, 지멘스, 제국과 같은 일들이 모두 부질없이 느껴졌다.
지금 이대로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영원히 행복할 것 같았다.
그의 귓가에 형상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 들어왔다.
『불멸자의 힘은 이곳에서 잠이 들것이다. 다시 그 힘이 현상계에 나타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경이로울 만큼 아름다운 광경에 빠져 있던 지크는 형상의 몽환적인 목소리를 듣고 오히려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다.’
지크는 이대로 있다 가는 정말 정신을 빼앗길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을 느끼며,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가 인벤토리를 열어 무기를 꺼내고자 했으나, 아까와는 달리 인벤토리가 작동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지크가 계속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려고 했지만, 어떻게 해도 전혀 작동이 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권능 요행이 발동합니다.]유일하게 인벤토리에서 무언가가 빠져나와 지크의 손에 굴러들어 왔다.
바로 궁기의 둥지에서 얻은 영수의 알이었다.
‘왜 갑자기 이게?’
지크의 손에 쥐어진 영수의 알이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호숫물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물을 통해 호수의 기운을 흡수해서인지, 알의 표면이 알록달록한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순간 형상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 들어왔다.
『불멸자여!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게냐!』
지크는 호수의 힘을 흡수하는 영수의 알을 들고 형상의 목소리가 느껴지는 곳으로 휘둘렀다.
츠츠츠츠―
영수의 알이 더욱 영롱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형상이 소리쳤다.
『당장 그만두어라!』
형상이 지크와 알을 삼키기 위해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 냈다.
위험하다고 생각한 지크가 내뻗어 쥐고 있던 알을 품에 끌어안았다.
물결이 지크와 알을 순식간에 집어삼키고 흔들었다.
‘크으윽.’
그런데 그때, 지크의 품에 안긴 알이 그의 중단전과 반응했다.
중단전의 마나를 흡수하더니 오색 찬란한 빛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불멸자여! 당장 멈춰라!』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형상의 외침에 지크는 오히려 알에 더 큰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품고 있던 영수의 알 표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알이 깨지면서 그 안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빛과 함께 무엇인가가 날개를 펴고 나왔다.
오색찬란한 빛을 휘감은 존재가 지크와 함께 날아올랐다.
쿠구구구!
지크는 빛과 함께 호수의 위로 다시 솟구쳤다.
호숫가 위로 올라온 지크는 그제야 자신이 품은 알에서 나온 존재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저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