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711
711화
“젠장! 자, 잡아!”
헌터 중 하나가 사슬을 놓치는 바람에 구속되어 있던 네피림이 함정에서 빠져나와 날개를 펼치고 위로 솟구치려 했다.
카아아아악!
네피림이 괴성을 내지르자 헌터들이 결계 장치를 작동시켰다.
결계가 굉음을 흩어 버리자 헌터들이 장창을 들고 네피림의 옆구리를 찔렀다.
콰드드드드!
초진동 창날이 옆구리에 틀어박히자 네피림은 더 이상 몸부림치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헌터들은 몸체가 완전히 무너진 것을 확인한 후, 결계 장치를 끄고 사슬을 다시 채워 네피림을 구속했다.
“빌어먹을, 정신들 똑바로 차려! 이게 얼마짜리인 줄이나 알아!”
공격대장이 소리치자 다른 헌터들이 머쓱한 표정으로 구속한 네피림을 우리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던전 내에서 한차례 전투가 끝나자 헌터들은 물러나고 대기하던 짐꾼들이 나와 부산물들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천계대전 이후 대륙에 수없이 생겨난 던전들에는 사라진 문명 속의 유물들과 진귀한 재료들이 존재했다.
이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면 큰돈이 되기 때문에 초기에는 모험가들이 너도나도 던전에 달려들었었다.
하지만 천계대전 이후 새롭게 생겨난 던전은 모험가 시절의 고대 던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천계대전 이후 대륙에 숨어든 천사들이었다.
살아남아 대륙 곳곳으로 퍼져 나간 천사들은 힘을 회복하기 위해 던전으로 파고들었고, 그곳에서 자신들의 피를 이용해 네피림들을 만들어 가디언으로 삼았다.
초기에 던전에 들어갔던 모험가들은 이 네피림들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대로 던전들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자들이 가져 나온 유물과 부산물들의 가치가 너무 컸던 것이다.
결국 새로 생긴 던전들을 정복하기 위해, 모험가들은 새롭게 조직을 개편하고 ‘헌터’라는 이름으로 공격대를 만들었다.
파티 형태로 던전에 들어갔던 과거와 달리 헌터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네피림들을 사냥하고, 안쪽에 있는 유물과 재료들을 수거했다.
이러한 형태가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사냥한 네피림 자체가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천사의 성혈로 만들어진 네피림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었다.
모두 훌륭한 마법 재료로 활용되기 때문에 많은 인원이 조직적으로 움직인 뒤 수익을 나누어도 과거 모험가 파티였을 때보다 더 큰돈을 만질 수 있었다.
실제로 이쪽 사업에 빨리 뛰어든 헌터 길드는 소규모 왕국의 일 년 예산을 달마다 벌어들이기도 했다.
그로 인해 작은 왕국의 기사들 중에서는 헌터로 전직을 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자색 기사 정도면 헌터계에서 크게 대우를 받는 정도였는데, 요즘은 청색 기사들을 보는 것도 꽤 흔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이전과 달리 헌터의 등급으로 강함의 척도를 가늠하는 것이 더 일반적으로 통용됐다.
바야흐로 기사의 시대가 저물고 헌터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었다.
상급 헌터 길드 중 하나인 제페토 길드에 소속된 짐꾼 노아 역시 헌터를 꿈꾸는 지망생 중 하나였다.
델포아 왕국 출신인 노아는 본래 마법사를 배출하는 가문의 막내였다.
천계대전 이후 이십 년이 지나며, 전 대륙적으로 마법 공학이 크게 발전을 이뤘다.
그리고 마법 강국으로서 콧대가 높았던 델포아 왕국은 그와 함께 오히려 점점 쇠락해 가고 있었다.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마법 체계만을 고수하다가 점점 도태되어 간 것이었다.
마도사 가문으로 유명한 니르바나가 마법 공학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며 발전시켜 가는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였다.
그러다 보니 델포아 왕국의 쇠락한 마법사 가문들은 헌터 길드에 포섭되어 고대 유물을 가공하는 일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노아의 가문은 이런 흐름조차 거부했다.
결국 과거에는 델포아 왕국의 수석 마법사를 배출했을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 명문가였지만, 지금은 쇠락하여 가문의 영지조차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거 체계대로 마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마법 공학으로 만들어 낸 집적회로를 사용하면 훨씬 적은 비용으로 효과적인 마법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했다.
노아의 가문은 그런 마법 공학을 거부하며 전통을 고수하다가 가진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쇠락해 지금의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그리고 노아는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가문의 기조를 거부하고 헌터가 되기 위해 집에서 뛰쳐나와 제페토의 짐꾼으로 자원한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헌터가 되어 성공할 거야.’
노아는 다른 짐꾼들과 달리 야망이 있었다.
그는 남들보다 적게 자고, 더 많이 움직였다.
덕분에 던전 내에서의 실적도 확연히 높았다.
물론 그렇게 해서 받는 인센티브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그 조금의 차이가 나중에는 큰 차이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노아는 짐꾼으로 돈을 모아 남부 제도에 위치한 판노티아의 아카데미에 지원할 생각이었다.
판노티아 아카데미는 마탑이나 기사 아카데미와 달리 실전적인 커리큘럼으로 교육이 이뤄지기 때문에 헌터 길드에서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고 들었다.
노아는 반드시 그곳에 들어가 수석으로 졸업해 유명 헌터가 되어 보란 듯 가문의 어른들을 비웃고 싶었다.
‘성공한다. 꼭 성공한다.’
노아는 이를 악물고 열심히 부산물을 주워 배낭에 담고 또 담았다.
그런데 그런 노아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이게 뭐지?’
흙 속에 석판 같은 것이 파묻혀 있었다.
영민한 노아는 섣불리 석판을 건드리지 않고 관리자를 불렀다.
“관리자님! 뭔가를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곧 길드의 관리자가 다가와 노아가 발견한 석판을 살피고서는 급히 헌터들을 불렀다.
석판 앞으로 모여든 헌터들은 겹쳐 있는 문자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확실해, 이건 이중 던전의 표식이야.”
천계대전 이후 생겨난 던전들은 악신 메타트론에 의해 과거의 문명들이 소환된 것이었는데, 그중에서 가끔 문명과 문명이 교차되어 소환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경우 이렇게 석판에 문자들이 겹쳐서 나타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이중 던전일 경우 일반적인 던전보다 더 귀한 유물과 부산물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제페토의 헌터들이 탐욕에 젖은 눈빛을 반짝였다.
공격대장이 헌터들을 보며 말했다.
“이중 던전이라면 지금 발견한 것보다 더한 것들이 무수히 쏟아질 거야. 이거 한 방으로 은퇴가 가능하다는 거지.”
헌터들은 공격대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상부에 보고하지 말고 이중 던전으로 내려가 유물을 가져온 뒤 입을 씻자는 말이었다.
물론 그러려면 그 외 목격자들을 다 죽여야 했지만, 던전 내에서의 사고는 일상다반이었기에 보고를 조작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욕심에 눈이 먼 헌터들은 공격대장의 말에 동의하고서 이중 던전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공격대장은 은밀하게 마법 공학자를 불러서 석판이 발견된 곳을 탐지하도록 했다.
탐색기를 가지고 움직이던 공학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중 던전으로 내려가는 입구를 찾았다.
공격대장은 헌터들과 짐꾼들을 데리고 서슴없이 입구 아래로 내려갔다.
짐꾼들이야 헌터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이들이었기에 별다른 생각 없이 그들을 따랐다.
하지만 노아만은 달랐다.
‘분명 아까 낌새로 봤을 때는 이중 던전을 발견한 게 틀림없어. 보통 이럴 때는 상부에 보고를 올리고 탐색대를 먼저 보내는 게 절차야.’
그는 공격대장이 꼼수를 부리는 것임을 바로 눈치챘다.
노아는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주변을 경계하며 공격대 뒤를 따랐다.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면 곧장 던전 밖으로 도망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노아의 생각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대장! 안쪽에 네피림이 다섯 마리나 있습니다!”
공격대장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A급 헌터들이 앞장서라! 마법사들이 마력을 충전시킬 시간을 벌어!”
그가 외치는 그때, 날개를 펼친 네피림들이 헌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A급 헌터들이 이들을 막는 동안 마법사들이 마력이 충전된 초진동 창을 창잡이들에게 넘겼다.
숙련된 창잡이들이 네피림들을 향해 초진동 창을 던졌고, 그것들은 정확히 심장에 꽂혔다.
퍼어어억!
초진동 창에 맞은 네피림들이 쓰러지자 공격대는 일단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완전히 제압한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라면 마무리하는 데 크게 어렵진 않을 듯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우우우웅!
갑자기 벽면에서 균열이 생겨나더니 그곳에서 게이트가 생겨났다.
이를 본 공격대장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젠장! 천사가 깨어났다!”
던전에 숨어든 천사는 보통 힘을 회복하기 위해 동면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종종 천사들이 깨어나 헌터들을 공격하는 경우가 있었다.
공격대장은 벽면에 열린 게이트를 가리키며 마법사들에게 소리쳤다.
“뭣들 하고 있어! 초진동 폭탄을 빨리 퍼부어! 있는 대로 다!”
천사가 게이트에서 나오면 이 정도 전력 가지고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공격대장의 명령에 마법사들이 허겁지겁 초진동 폭탄에 전원을 켜고 게이트를 향해 던지려 했다.
그런데 그때 게이트에서 거대한 파동이 밀려왔다.
쿠르르르르르―
마치 파도처럼 밀려온 파동이 공격대 전체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러자 놀랍게도 헌터들이 들고 있는 무기들이 전부 전원이 나가며 작동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 이런…….”
헌터용 무기들이 없다면 당장은 네피림조차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헌터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게이트에서 무엇인가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공격대장은 물론이고, 헌터들 모두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서, 성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천사가 아닌 천계대전 때 살아남은 성좌 중 하나였다.
두꺼운 갑옷과 빛에 휘감긴 날개, 여러 개의 팔을 지닌 위압적인 존재가 안광을 번뜩이며 자신의 안식처를 침범한 인간들을 내려다봤다.
【하찮은 미물들아…….】
그들의 머릿속으로 성좌의 의지가 전달됐다.
그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등급이 낮은 헌터들은 귀와 코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짐꾼들은 생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로 널브러진 상태였다.
오러를 쓸 수 있는 A급 헌터들만이 검을 치켜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성좌에게 검을 휘두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기사가 아닌 헌터의 시대가 되면서 오러를 제대로 수련하기보다는 더 비싼 헌터용 장비를 구입해서 다루는 쪽을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성좌가 완전히 게이트에서 나와 헌터들 앞에 서자 아까보다 더한 위압감이 이들을 짓눌렀다.
공포심에 미쳐 버린 A급 헌터들이 반쯤은 실성하여 성좌를 향해 검을 들고 달려 나갔다.
“으아아아아!”
성좌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헌터들을 향해 손을 한번 휘저었다.
퍼버버버벅!
그 순간, 마치 벌레가 터져 죽는 것처럼 A급 헌터들은 즉시 모두 잔해가 되어 흩어졌다.
쿵!
성좌가 한 발을 내딛자 진동이 공동 전체에 퍼져 나갔다.
그러자 그 순간, 그곳에 있던 공격대와 마법 공학자, 짐꾼들이 죄다 한 줌의 혈수가 되어 녹아내렸다.
헛된 욕망을 품다가 목숨까지 내던진 것이었다.
침입자 모두를 죽이고 다시 게이트로 돌아가려던 성좌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듯 고개를 돌렸다.
【아직 남은 벌레가 있나.】
성좌의 말에 바위틈 사이에 숨어 있던 노아가 입을 틀어막았다.
그는 가문에서 도망치기 전 훔쳐 온 아티팩트를 이용해 안전지대 마법을 펼쳐 간신히 살아남은 상태였다.
어렸을 적 가문에서 마법을 익혀 2서클까지는 마스터했기에 아티팩트를 발동시킬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무시하던 구시대 마법 덕분에 죽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성좌는 노아가 펼친 마법을 꿰뚫어 봤다.
쿵! 쿵! 쿵!
5미터가 넘는 거대한 체구의 성좌 걸어오자 동굴 전체가 울렸다.
노아는 안전지대 마법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제발, 제발, 제발.’
그때 노아가 숨어 있던 바위가 굉음을 내며 터져 나갔다.
콰콰쾅!
성좌가 바위 사이에 숨어 있던 그를 발견한 것이었다.
【미물아, 같잖은 재주를 부리는구나.】
노아는 자신을 향해 손을 내뻗는 성좌를 보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성좌의 거대한 손이 그를 향해 다가왔다.
파지지지지직!
안전지대의 결계에 막힌 성좌의 손이 잠시 멈추었다.
하지만 성좌는 그것을 비웃으며 그대로 노아와 결계를 함께 짓누르려 했다.
쿠구구구!
결계가 점점 찌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노아는 죽음이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것을 깨달았다.
그가 삶의 마지막을 느끼며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한 순간이었다.
촤아아아악―
무엇인가가 날아와 성좌의 팔을 날려 버렸다.
노아는 마지막 순간 비명을 내지르는 성좌와 검을 휘두르는 푸른 안광의 기사를 보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