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the World Tree RAW novel - Chapter 23
두견낙화(杜鵑落華) (5)
오후. 대인전 수업.
자리에 눌러 앉아 시합장을 둘러보며 검과 마법이 난사하는 그 장소를 바라본다.
이세영의 빠른 대처 덕분에 나는 신체 부상을 명목으로 훈련을 빠질 수 있었다.
-챙! 챙!
한창 겨루기를 진행 중인 시합장. 생도들의 검과 검이 서로를 겨눈다. 거리를 벌리기 위해 바쁘게 발을 음직인다.
나는 그러한 생도들의 모습을 한 폭의 사진처럼 머릿속에 눌러 담았다.
이 현장감을, 꾹꾹 집어넣었다. 코끝을 스치는 자욱한 철의 냄새. 흥을 돋우는 기합 소리.
일어나는 불꽃의 열기, 흘러내리는 물의 유려한 자태. 날카롭게 빚어진 바람.
신체의 마력을 조작하며 머릿속으로 수십 차례씩 검술을 반복한다.
절로 웃음이 튀어나왔다.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지금까지는 관록이 깊지 못했기에 모든 검술과 마법을 빼앗는 것은 시도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실력이 붙은 지금이라면 가능했다.
내 재능, 높은 잠재력.
이 자리에 서 있는 생도들의 모든 검술과 마법을 내 눈 안에 담는다.
천재의 재능은 태산을 휘하에 두고 하늘을 우습게 넘어서니, 그들의 형질을 눈에 담는 것 만으로도 새하얀 도화지처럼 그 색을 차차 흡수해나갔다.
붉고, 푸르고, 노란,
개성 있는 재능들이 한데 뒤엉켜, 자유분방한 도화지였던 그것은 각 개성의 색감이 뒤섞여 검게 물든 벼루와도 같은 형태를 띠었고.
그 위로 새까만 먹물이 점차 솟아 오르니. 그 그릇마저도 힘을 제대로 감당치 못했다.
뇌리를 스치는 영감은 그칠 줄을 모르고.
나의 것을 개선해감에 따라 신경이 붉게 타오른다.
-스륵.
손가락에 느껴지는 따가운 감각. 반사적으로 오른 검지가 음직거린다.
그 고통을 따라 마력이 흘러 자연히 그릇을 넓힌다.
부상의 고통마저도 힘으로 승화 시키니.
어느덧 나는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기술을 깨닫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가히 폭력적인 재능이다.
-우웅! 웅!
전신에 느껴지는 거친 진동.
잠깐 감았던 눈꺼풀을 조금씩 들어 올린다.
-파르르르.
내 손가락 위에서 검은 마력이 얼렁이고 있었다.
완성되었다고 생각했었던 내 첫 번 째 능력.
그러나 이마저도 1초 뒤의 나에 의해 완전히 파훼된다.
심장의 주위에서 검게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나는 그리 중얼거리는 것 이었다.
“부족해,’’
아직 멀었다.
*****
꺾이는 어깨를 보고 검로를 읽어 역수로 쥔 검을 휘두른다.
一휘익!
뻔한 공격을 그대로 받아치는 산수유.
검과 검이 서로 부닥치기 직전, 검을 쥔 손목을 꺾어 흘려보낸다.
꺾인 검이 그대로 방향을 틀어 검등을 후려치고 산수유의 손목에서 검이 떨어진다.
“……!”
피부 표면으로 느껴지는 샛노란 산수유의 마력.
검을 놓친 산수유가 전신에 마력을 끌어올리더니, 빠르게 내 품으로 파고든다.
속도는 내가 이기지 못하기에 바로 검을 포기하고 팔꿈치로 산수유의 주먹을 막았다.
-파앙!
두 마력이 얽혀 터진다.
각자 뒤로 물러서 검을 주운 우리는 숨을 몰아쉬며 서로의 안색을 확인했다.
“계속할까?”
“계속‘”
입을 떡 벌린 채 숨을 흘려대는 산수유가 상대를 재촉했다.
체력적으로는 산수유가 훨씬 우월함에도 그녀가 먼저 지친 이유는 아마 내 검술의 압력이 상당하기 때문이겠지.
두 손에 쥔 검을 산수유의 방식으로 바꾼다. 그에 산수유의 얼굴에 약간의 감정이 감돌었다.
질투일까. 그 감정을 짐작해보지만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워낙 순수하고 무표정한 여자니까.
우리는 서로를 향해 거리를 좁혔다.
“거기서는 발을 좀 좁히고,”
검을 받아친다.
“힘을 주는 건 좋지만 중심이 조금 어긋났어.”
검격 이후 다리를 뻗어 그녀의 정강이를 노린다.
산수유는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이번에는 너무 멀리 갔고.”
검을 쥐지 않은 손을 쫙 펴, 산수유의 배를 두드린다.
-파앙!
빠르게 복부에 마력을 두른 산수유가 내 힘에 밀려 쭉 밀려났다.
오늘 처음 맞대보는 검이지만 나름대로 재미와 희열이 있었다.
“많이 늘었네.”
“……너 뭐야?”
산수유는 기겁한 얼굴이었다. 언제나 무표정했던 그 표정에 균열이 생기는 것이 볼만 했다.
“저번이랑. 많이 달라.”
“그렇겠지.”
외모를 포기한 대가는 언제나 강렬한 법이다.
“그래도 아직 너한테는 안 되겠네.”
나는 검을 거두며 한숨을 쉬었다.
놀리는 게 아니라 모든 마력을 쏟아붓는다는 전제 하에 나는 실제로 산수유보다 약했다.
기본 능력치도 훨씬 낮고. 마력의 차이도 심했다. 축 처진 어깨와 느껴지는 나른함이 마력 탈진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반면 산수유는 지치긴 했지만 여전히 피부가 반짝였다. 아름다운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
마나통이 썩어 넘친다는 소리이리라.
“너. 너무 빠른것 같아.”
“어?”
“성장 말이야.”
하지만 산수유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 었다.
그녀는 땀 한 방울을 흠치며 나를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봤다.
“시한이…… 기만자야?”
“아니 무슨.”
“마력도 거짓말이고, 실력도 거짓말이야.”
남들이 보면 그런 느낌인가. 요즘 내 성장이 지나치게 빠르긴 했다.
그런데 기만자라니, 산수유가 할 말 인가?
이 여자가 누군가.
온갖 영약이랑 영약은 다 잡수신 고결한 산수유나무가 아닌가.
그 재능이 무색하지 않게 산수유는 내가 내건 피드백을 자신의 검술에 완벽하게 반영했었다.
기술적으로 완벽히 우위에 있던 내가 조금씩 밀리는 걸 보면, 산수유의 재능은 불세출의 경지에 있다 봐도 무방했다.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 아니야?”
그래서 말을 꺼냈다.
산수유든 나든, 이번 대련은 한 경지를 넘어갈 수 있는 기연이 되어주었으니까.
뚱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산수유는 입술을 앙 다물더니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인정.”
“그렇지?”
아무튼 대련은 여기서 끝.
이 정도면 어디서 얻어맞고 뒤지지 않을 정도는 성장한 것 같다.
이 이상 성장하려면 능력치를 올려야 하는데 그러기엔 시간적 여유가 없고.
결국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군을 포섭하는 것 뿐이었다.
‘진달래를 지킬 능력이 있는 사람.’
정시우. 산수유.
이 둘은 이레귤러라서, 아마 눈앞에 적이 나타나도 간단히 쓸어버릴 것이다.
이는 이세영이 보증해준 것이기도 했다.
-1학년 수석이랑 차석? 개들은 현직 영웅이랑 비교해도 전혀 안 꿀려.
기본적인 출력 자체가 다르니 그 둘은 진달래의 근처에 붙여둘 필요가 있다.
나 같은 경우 일시적으로 출력을 끌어 올릴 수 있지만 금세 과열이 되고 만다.
완성 직전인 그 기술을 사용하면 몇 초나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최신식 CPU에 싸구려 쿨러를 달아둔 격 일까.
최대 줄력의 공격을 가하려면 치고 빠지기를 반복해야 한다.
그러니 내가 직접 진달래를 지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복잡하네.’
“션. 무슨 생각해?”
“션이 아니라 시헌.”
“……시헌.”
나는 고개만을 돌려 산수유를 바라봤다. 샛노란 눈이 깜빡였다.
“너 진달래 알아?”
“누구?”
“진달래, 어… 핑크 머리?”
“핑크… 핑챙? 본 것같아.”
움찔.
“그건 또어디서 들었어?”
“인터넷에서.”
“어디?”
“트리사이드? 트리인사이드?”
“어… 그 사이트는 어쩌다 들어간 거야?.”
“……지후가 만화 보여줬어. 거기 댓글에 있었어. 핑크 머리는 핑챙이라고.”
비서님……
방금 내 안에서 비서의 평가 절하가 이루어졌다.
“그 사이트엔 들어가지 말자.”
“왜?”
“친구 말 듣자.”
“친구…”
산수유는 속으로 갈등하는 듯하더니 슬쩍 나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문화경험은 뭘해야 해?”
“뭐?”
“시후가 요즘 애들 문화는 배우라면서, 가끔 보라고 했어. 안 보면 뭘? 하면 돼?”
“어……”
나는 턱을 짚고 고민하다, 훈련장의 바깥을 엄지로 가리켰다.
“일단 밥이나 먹으러 갈까?”
“바깥에서 밥 먹지 말랬는데.”
“부모님 말은 어기라고 있는 거야.”
“그런 거야?”
이럴 땐 치맥이다.
훈련장을 두 시간 일쩍 나와 근처 호프집을 찾았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있지만 원래 낮술이 진짜 술인 법이다.
생맥주와 치킨이 도착하니 이를 바라보던 산수유의 눈동자에 의문이 끼었다.
“맥주.”
“응?”
“처음 마셔봐.”
나는 주문한 치킨의 닭다리를 직접 뜯으며 수유에게 권했다.
“이거 먹어?”
“젓가락 쓰지 말고. 손으로”
“손으로?”
산수유는 조심스레 닭다리를 집어 먹었다. 바삭- 거리는 소리와 함께 우물거렸다.
“집에서 먹는거랑 색달라.”
“밖에서 먹는 밥이 맛있다. 이게 국룰이지. 맥주까지 마셔봐.”
술을 꿀꺽꿀꺽 마신 산수유가 맥주잔을 내려놓더니 짧게 트림했다.
一픽
바람 빠지는 귀여운 소리다.
부끄러움은 느끼지 않는지 산수유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나 또한 치킨과 함께 맥주를 음미했다. 목젖을 치는 탄산과 기분 좋은 씁쓸함이 입 안에 맴돌았다.
“행복이 별 거냐? 치킨에 맥주면 그게 행복이지.”
“행복?”
“느껴져?”
“글쎄.”
고개를 저은 산수유는 자신이 쥐고 있는 잔을 바라봤다.
입구에 맺힌 물방울이 흘러가 그녀의 손목에 안착했다.
몇 번이나 보는 거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감정을 느끼는 건지, 아니면 정말 저렇게 자라온 건지. 이 녀석도 진달래과인 건 명확했다.
진달래가 너무 예민해진 쪽이라면 산수유는 너무 둔감해진 쪽이겠지.
“됐고, 마셔마셔. 모르면 알 때까지. 오케이?”
“오케…이.”
“자 파닭을 먹는 방법을 알려주마. 파를 이렇게 잔뜩 넣어서 입 벌려봐.”
“아-”
입안에 쏙 치킨을 집어넣은 산수유가 열심히 입을 움직이더니 슬쩍 눈가를 찌푸렸다.
다른 건 몰라도 매운 자극은 느끼나 보다.
“……코가 아파. 그리고 혀도 아파.”
“아아. 그건 매움이라는 것이다. 한국인의 문화지.”
우물우물- 볼을 열심히 움직이던 산수유가 검지로 눈물을 홈쳤다.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이게 문화?”
“그렇지. 이게 문화지.”
트리인사이드는 안된다. 이세계에 와서 거길 잠깐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그곳은 사람을 망친다.
산수유같이 순백의 여성은 조금만 엇나가면 오염이 될 수가 있다.
태어나기를 회색으로 태어난 녀석들은 검정을 좀 섞어도 티가 안 나지만 하얀색은 조금만 섞어도 그 본질을 잃는 법이니.
– 우물우물.
“아파.”
-우물.
“……아파.”
연속해서 파닭을 먹어치우던 산수유가 신음을 연발했다. 자극에 중독된 듯했다.
“괜찮지?”
식사를 끝내고 슬쩍 수유에게 물으니.
“응.”
수유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가에 살짝 눈물 방울이 맺혀 있었다.
나는 그런 수유를 보며, 슬쩍 운을 띄었다.
“그래서 부탁이 있는데”
적당히 비유를 섞어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자 산수유는 흔쾌히 승낙해주었다.
친구의 부탁은 들어주는 거라던가. 비서에게 그렇게 배웠단다.
내 안에서 비서의 평가가 다시 오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