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the World Tree RAW novel - Chapter 252
왜 이러세요
-디이이잉!
들려오는 알람에 눈을 감았다 뜬다.
주변이 환해진다. 첫 번째 시련이 끝을 맞이하면서 던전 밖으로 전이된 모양이다.
돌아온 대기실. 주위에는 교관과 교회의 주교들이 우리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끝났다.”
“뭐야. 우리 버틴 거 맞지?”
“하, 진짜 죽는 줄 알았어.”
어안이 벙벙한 생도들의 혼잣말.
첫 번째 시련의 끝이다.
주변을 확인하니 상당히 많은 숫자의 생도들이 줄어 있었다.
시련에 참가하기 직전만 해도 생도들이 모여 북적거렸던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약간 한산하게 느껴진다.
“시언.”
어느새 내 옆에 따라붙은 산수유가 내 팔을 살포시 잡아당겼다.
“방금 거 시언이가 했어?”
그때 매화를 제압했던 기술.
나는 산수유를 내려다보았다. 볼따구, 손으로 산수유의 볼을 집어 잡아당긴다.
말랑한 감촉에 힐링 되는 기분을 느끼며 장난스레 답했다.
“그거 네가 한 거 아니야?”
“…?”
“도저히 싸우기 힘드니까, 막 너도 모르는 힘이 튀어나온 거지.”
“또 나 놀리려고 그래. 언제까지 그럴 거야?”
내 손을 탁 때리며 혀를 내미는 산수유. 이제 안 통한다.
실실 웃으며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산수유는 내게서 벗어나려 낑낑대면서도, 막상 또 그것이 싫지는 않은지 내 팔을 두른 채 살짝 거리를 가까이 좁혀왔다.
말랑한 볼살이 내 팔에 짓눌리자 기분이 좋았다. 떡볶이를 좋아하니 몸이 떡처럼 말랑해진 건 아닐까.
“잉….”
숨이 조금 막힌지 작은 손으로 낑낑 내 몸을 민다.
‘어디 보자. 탈락한 사람들이….’
산수유의 숨통을 풀어주며 주변을 넓게 확인한다.
태양과 아오리를 비롯한 서울 아카데미 생도들. 나를 보자 손을 흔드는 걸 보니 멀쩡히 살아남은 모양이다.
대부분의 국목들은 멀쩡히 살아 있었고. 개중에는 마로니에도 보였다.
-….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내 시선을 눈치채곤 나와 눈이 마주친 마로니에.
귀여운 인형같은 얼굴이 깜짝 놀라더니, 휙 하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때 일은 나도 아직 가물가물하다.
‘……내 평생 그때만큼 정신 놓고 행동했던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바오밥나무. 나를 보자마자 눈을 가늘게 좁혀왔다. 약간이나마 적대감이 느껴져 몸을 떨었다.
엘 아카데미의 생도들은 전부 통과한 모양이었다. 아카데미의 주도로, 어떻게 행동해야만 시련을 쉽게 통과할 수 있는지 집중 교육을 한 것이 잘 먹힌 듯하다.
“?”
저 녀석은 그렇지 않겠지만.
나를 본 구슬이 해맑게 방실방실 손을 흔든다. 일주일 동안 어디서 뭘 했으면 몸이 깨끗하다.
저 녀석이 어디서 굴러들어온 녀석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플라워일 확률이 가장 높았다. 첫 번째 시련은 물론 그 이상 나아갈 실력도 충분히 갖춘 년이다.
녀석의 발랄한 손짓에 썩소로 화답해준다.
어쨌든 이번 첫 번째 시련만으로 절반 이상의 생도들이 탈락했다.
며칠간 숙소에서 짐을 빼는 생도들이 많아지겠다.
슬슬 입을 열며, 연설을 시작한 주교를 보며 나는 몸을 풀었다.
오늘은 좀 쉴 수 있겠다.
* * * * * * * * * *
쉴 수 있겠다.
여유가 생긴 내게 무슨 일이 찾아오는 것은 이젠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인가.
“야.”
-쿵!
벽쿵을 당했다.
조금 억울하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시련을 무사히 마무리한다는 뜻의 연설이 끝나고. 밥을 먹은 뒤. 피곤해진 산수유가 자기 방으로 쫄랑쫄랑 들어가길래 나도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 했던 참인데.
“할 말 없냐?”
즉시 내 방까지 찾아온 바오에게 존나 카리스마 있는 벽쿵을 당해버렸다.
“…왜 이러세요. 이거 범죄인 거 아세요?”
“뭐래 미친.”
어이없으면서도 두려워하는 반응에 얼굴을 찌푸린 바오.
“지랄 말고, 너 끝까지 말 안해줬잖아.”
그녀의 물음에 나는 말투를 조금 풀었다.
“뭘?”
어차피 자신이 국목인 것이나, 신분에 아무 신경도 안 쓰는 것이 눈에 보였기에. 원래 하던 것처럼 반말을 했다.
바오는 눈이 뒤집어지기 직전이었다.
“우리 오빠 어딨냐고.”
“아 그거…. 근데 진짜 모른다니까.”
계속 물어보지만, 솔직히 나라고 해도 무슨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연락처.”
“없어. 아니 있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네가 오빠 찾는다고 말하면, 연락처를 갈든 하지 않을까?”
“…….”
“그 사람들 움직이는 게 하루 이틀이냐. 눈 깜짝하면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게 도원향인데.”
황도의 공간 마법과, 그녀가 외우고 있는 좌표들은 내 한계치에 절대 비할 바가 못 된다.
내가 평소 최대 일곱 군데의 좌표를 외우고 다닌다면 황도는 최소 일백은 넘게 외우고 있다.
소재나 마석을 얻기 편한 던전들의 위치를 전부 꿰고 있으니, 황도의 존재가 얼마나 이레귤러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네가 어떻게 그 인간들을 잡겠냐. 무슨 수로?”
바오는 말 없이 내 말을 들었다.
“만나면 뭐, 그 아저씨를 끌고 올 수는 있고?”
“…끌고 올 수 있어.”
무리다.
나도 대충으로밖에 못 봤지만, 밥의 강함은 상상 이상이다.
권능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니까. 제대로 권능을 사용하면 정말 건물만큼 크기가 커지지 않을까.
“그래도 방법은 없어.”
포기해라.
그런 의미로 말했으나 바오는 여전히 벽에 쥔 주먹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그럼.”
머지않아 그녀의 입이 벌어졌다.
“…걔들이 오게 하지 뭐.”
“뭐?”
“널 잡아 가두고 기다리면 알아서 오빠가 찾아 오지 않을까? 너 도원향이라매.”
이 새끼 진심인가?
“문 열어.”
진심인 듯하다.
“나 좀 쉬고 싶은데.”
“쉬던가. 내 옆에서.”
말하는 것만 보면, 어디서 여자 여럿 울린 놈이 할만한 말이다.
아까부터 이상하게 시선이 느껴진다 싶더라니. 이걸 벼르고 있었구나.
내 방문 앞까지 찾아와서 꼭 이런 짓을 해야해? 어차피 한동안 숲지기 선발전으로 한참을 여기서 상주해야 하는데.
놔둬도 도망가지는 않는데 말이다.
‘그때 탈락을 시켰어야 했나.’
간부에게 신고를 넣을까.
“허튼 움직임 보이지 마.”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럼 거짓말로 보이냐?”
위협적으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오는 바오. 그 탓에 눈앞의 거대한 가슴이 출렁였다. 옷이 찢어진 탓에 가슴골이 훤히 보인다.
주변을 지나치는 생도들이 우릴 보며 쑥덕이기 시작했다. 소란이 커지기 전에 일단 들어가자.
도어락을 열어 비번을 두드리며 나는 녀석을 쏘아보았다.
-디리릭!
방 안에 들어와 불을 켠다.
어렴풋이 안에 남아 있는 산수유의 모유향에 깜짝 놀라 뒤돌아보자, 다행히 바오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우선 방문을 닫고 침실로 들어왔다. 그때까지 바오는 여전히 가슴 아래에 팔짱을 낀 채,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어디 말이나 한 번 제대로 들어보자.
침대에 대충 걸터앉아, 무릎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었다.
“그래서, 왜 그렇게 니 오빠를 못찾아서 안달인데?”
“너한테 말할 이유가 있나? 너는 그냥 얌전히 잡혀 있으면 돼.”
“숲지기 선발전에서? 농담도 마.”
“농담 아니야.”
바오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굳었다. 내가 얼마전까지 이 녀석을 털어먹은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눈치다.
설마 다시 붙으면 이길 수 있다고 착각이라도 하는 걸까.
오산을 해도 너무 잘못 생각했다.
나는 한숨이 튀어나오려던 것을 막았다.
“어차피 전세계 떠돌아다니는 것도 지겹고… 당장 도원향 출신인 네가 있는데. 너랑 붙어있으면 언젠가는 만나겠지.”
“그때까지 나를 잡고 있겠다고?”
“어.”
단답하는 바오.
“숲지기 선발전에서 탈락하면, 그때 내가 기권하면 되고.”
“그전에 네가 탈락하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밖에서 기다리면 되지.”
지 오빠를 찾는다는 이유가 없었더라면, 대단한 순애보가 납신 줄 알겠다.
이러니저러니 제멋대로고 내가 도와줄 이유가 없다.
“너무 건방진 거 아니냐.”
내쪽에서도 조금 목소리를 깔 수 밖에 없었다.
“싫다면 뭐, 다시 붙기라도 하게?”
“여기서는 마력을 쓸 수 없지.”
내 물음에 답하는 바오.
경미한 마력은 이용이 가능하나, 다소 문제시될만한 행동은 할 수 없다.
“그럼 내가 이겨.”
발견되는 즉시, 숲지기 선발전 참여 자격이 박탈된다. 호텔 안에서의 싸움 행위도 윗선의 귀에 흘러 들어가면 그러한 처사를 피할 수 없다.
“애초에 그것도 걸리면 문제일텐데.”
“걸리지 않으면 문제는 되지 않아. 그리고….”
이 새끼는 국목이다.
작정하고 면피책을 마련하려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어중이떠중이 국목이었으면 모르겠지만…. 바오밥나무는 국목 중에서도 S급으로 알아주는 녀석이니까.
‘허세같은데.’
다만 이 녀석이 숲지기 선발전에 연줄이 닿는지는 아직 확신이 가질 않았다.
바오도 밥처럼 머리가 근육이라 생각 없이 여기 들어온 것 같거든.
물론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맞붙는다고 얘가 내게 권력으로 제재를 가하거나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잠깐.”
나는 전투 태세로 돌입하기 직전의 바오를 멈춰세웠다.
“좀 평화적으로 해결하면 안 되냐. 나 피곤하다…. 이유만 좀 듣자. 그럴만한 이유면 내가 좀 도와줄 수도 있지.”
“…….”
이유가 뭐냐에 따라 다르다.
막 국가의 존속이 걸린 문제라거나. 가정이 파탄난다거나.
그런 류의 문제라면야 내 쪽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연결시켜 줄 수 있다.
“다짜고짜 날 패니 어쩌니 하면, 내가 미친 부처도 아니고 아. 예, 납치해주십쇼 하겠냐? 이유가 뭔데?”
바오는 끝까지 그 이유를 말하려 하지 않았다.
입을 앙다물고 나를 노려본다. 직모의 검은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아프리카에서 왔으면 보통 곱슬머리가 아니던가. 생긴 건 그냥 미인에 피부색만 바꿔놓은 모양이다.
‘세계수에 엘프가 있있던 세계니. 그래 뭐 다크엘프라는 게 있어도 이상할 게 없으니까.’
여튼 설득이 잘 먹혔기를 바란다.
감도는 침묵 속에서 바오의 안면을 살핀다.
여전히 나를 째려보는 듯한 노란색 눈동자. 그녀의 손이 슬그머니 올라갔다.
“싫어.”
정말 싸우자는 건가.
“내가 왜? 그냥 여기서 쓰러뜨리고 내 마음대로 굴리면 되는 건데.”
“진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자신만만하고 오만하게, 그리고 얼핏 보면 시원하게 웃는 바오. 어이가 없다. 저렇게 던전 안에 들어갔다가 자신이 무슨 짓을 당했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다.
이번엔 색공 없다.
제대로 자기 위치를 알려주지 않으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먹을 풀었다.
‘방 안이 버텨 주려나.’
마력을 쓰지 않으니 덜 한다곤 해도, 인간을 초월한 힘인데.
그건 바오도 인지하고 있을 테니. 어찌저찌 타격 부분을 최소화시키면 못 싸울 것은 없었다.
호기롭게 주먹을 말아쥐는 바오, 즉시 자세를 잡는다.
‘마력을 쓰지 않으면 내가 약해진다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전투형 신체에 더불어 높은 잠재력은, 조건이 열악해질수록 더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긴 검을 들고 동굴 안에서 마물과 맞서 싸울 때.
활과 화살을 꼬나쥐고, 근접전에서 상대와 부딪힐 때.
리치와 자신의 장점을 절대 살릴 수 없는 구간에서는, 내 능력이 훨씬 우월하다.
하물며 마력도 쓰지 않는 이상 질 리가 있나.
“그럼 오던가.”
전투는 시시하리만치 끝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