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the World Tree RAW novel - Chapter 376
코르너스 토벌전 (3)
전쟁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붉은 재앙이 땅과 만나면, 온 주변이 쑥대밭으로 변한다.
뼈 하나 남기지 않은 채로 그대로 입자 채 변질되거나.
복사열에 불타고, 화학 물질에 중독되며, 평생을 고통과 함께해야만 한다.
-콰아아아앙!
천막이 자리 잡던 야영지 위에는 거대한 화구만이 남았다.
마력의 발견과 발전 이래로 전술 무기의 가능성은 더더욱 높아졌다.
전술핵의 이상(異象).
방사선에 변질된 땅과 환경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이 세상의 이론은 이미 아득히 먼 곳에 다다랐으니.
그리하여 보다 더 특수한 형태로 자리 잡은, 마력과 과학이 망라된 무기는-
-빠지직!
-이윽고 헌터들의 비정상적인 근력에 기댄 생체병기를 창조했다.
일인 군단의 경지(境地).
거대한 포격에 저항한 몸 부위의 기갑이 서서히 녹아든다.
단 한 명을 잡기 위해 포(砲)의 형태가 뒤바뀐다.
그 포격을 견디기 위해 방공(防空) 시설을 소형화시켜 자신을 걷는 요새로 만들었다.
전술과 전략은 무수히 바뀌며 바이러스처럼 시대마다 그 형태를 매번 다르게 잡아나갔다.
개개인의 무력이 천차만별인 이 세상에서는 군인의 사기도, 보급이나 그 무엇도 일정하지 못하다.
미지수의 요인과 변수, 전투의 불확실성이 몇 번이나 겹쳐나가며 손익을 추산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금까지 세계수는 단 한 번도 자신의 권력을 빼앗긴 적이 없었다.
전쟁에 있어, 그 모든 요인을 완벽히 깨우치고 전쟁을 이끌어나갈 천재들이 모습을 비춘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 목령왕조차 이루지 못한 위업이었다.
그렇기에 이 세계의 전쟁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되는 재해.
하나의 벙커 안을 때려 부수기 위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콰가가가!
진창에 뒤덮여 격발된 총이 깨부숴지는 듯한, 말로 표현하기 힘든 포격 소리와 비명이 잇따랐다.
상대는 가문 하나.
그 자리에 있던 헌터들의 뇌가 엔돌핀이 감돌며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자그마한 벙커 하나 순식간에 부수어내지 못하는 지금.
플라워와 전쟁을 시작한다면… 무슨 재앙이 일어날까.
아, 세상이 망할 수도 있겠구나.
세월을 걸쳐 강해진 그들의 몸을 감당하기엔 이 대륙은 너무도 비좁았다.
-쿵!
소리와 함께. 쏟아지는 붉은 구체.
마력과 아티펙트로 최대한의 방벽을 구축하려던 그때. 한 노인이 앞서나가 가볍게 검을 빼내 들었다.
소리가 일지 않고 일어난 공간의 일렁임.
지각을 녹여버릴 듯이 쏟아지는 포격이 멈추었다.
“말도 안 돼….”
경외에 가득 찬 공포가 곳곳에 터져나온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하늘의 별이 된 포격들이 그 자리에 멈춰 잘려나갔다.
흰 실선.
아득히 먼 곳까지. 구름마저 잘려나가며 세상에 하나의 지평선을 긋는다.
무궁이 전장을 걸었다.
“몸도 못 풀겠군.”
세상에 단 셋.
스스로 기적을 일구어낸 세 거성 중 둘이. 그 전장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걷고 있었다.
* * * * * * *
전시 상황이 일어났을 때.
전선이 자리 잡고 그것이 제 기능을 할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선제 공격이 일어났을 때를 기준으로 불과 40초 남짓이다.
아무리 거리를 짧게 잡았고. 전선이 늦게 배치되는 장소를 성지호에게 전해 들었음에도 아슬아슬하다.
더군다나 누가 아군이고 적인지조차 구분되지 않는 상태.
전력또한 최소한 아껴놔야하기 때문에, 나와 태양은 그 흔한 공간파악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가 하는 건 최대한의 기척을 감추는 것 뿐.
-탁, 탁! 탁!
아오리의 발짓에 흙이 패여 먼지가 튀었다.
“…….”
그런 그녀의 등을 따라 뛴다.
초원을 맨발로 밟아, 마력을 써가며 주변 적을 파악하고 루트를 마련하는 길잡이.
어찌 보면 초석을 마련하는 담당이며 매우 중요하다.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위험한 일이었다.
“왕님. 오른쪽 능선으로 오를게요. 앞쪽에 사람이 좀 많아서요.”
아오리가 몸을 기울이면 철새처럼 모두가 그 뒤를 따랐다.
나 역시 주변을 살핀 후 정령 두 마리를 등에 업었다.
[…주인님?] [아무래도 시작했나 보군요.]눈치 빠른 루시의 말에 엘레오노르가 바짝 긴장한다.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유일하게 죽어도 되는 두 존재다.
그렇다고 두 정령이 약한 편은 아니었다.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기준이 너무 높을 뿐이지.
엘레오노르와 루시가 모습을 감추며 주변을 넓게 확인했다.
-타타탁!
더 빨라지는 속도. 포격 소리가 더욱 더 커져나가고 있다.
빠르게 마련되는 앞쪽 전선을 향해 기척을 감춘 아오리가 고개를 낮추고 전력으로 뛰었다.
아마도 여덟 정도로 이루어진 용병들.
우리는 속도를 조금 늦추었고. 아오리가 먼저 달려들었다.
-…잠깐. 누가 오는데?
-야, 앞!
기척을 감지했을 때는 이미 아오리가 그들에게 접근한 상태.
중앙에 있던 용병의 발목에 태클을 걸자, 남성이 뒤로 넘어간다.
아오리가 바닥에서 회전하듯 발을 돌려 발꿈치로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뚜둑!
발꿈치가 닿은 곳의 머리가 함몰되며, 척추가 뽑혀나왔다.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 일에 바로 검을 빼들고, 신호를 알리려고 입을 연 용병 위에 루시가 샛노란 검을 투척했다.
이마에 검이 꽂히고, 남은 용병을 차례차례 정리한 아오리가 허벅지부터 정강이까지 묻은 피를 훔치며 이쪽으로 손짓했다.
“상황 정리 했어요.”
민첩하고 빠르다.
어느 정도 합을 맞춰본 적이 있고 그때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역시 이 둘은 소재가 수상할 정도로 강하다.
나보다 훨씬 전부터 왕의 힘을 받아들이고 운용했으니 지당한 일인가.
모습은 저택이나, 지하에 벙커의 형태를 갖춘 그곳으로 접근한다.
시체들을 숨길 시간은 없다.
저택의 아티펙트가 모두 가동되기 전인 지금만이 기회.
벽에 하나같이 달라붙은 우리는 성지호의 정보를 따라, 저택의 벽면을 짚어보며 비교적 연약한 장소를 찾아냈다.
“여기 부분쯤인데.”
“맞네요.”
저택 전체가 아티펙트이지만, 잘 보면 한 두군데가 작업이 되어 있어 부수기 쉽게 술식이 뒤틀려 있었다.
일전에 참피가 산수유를 만나기 위해 작업을 해둔 것과 비슷한 방식.
그러나 안쪽에서 헐겁게 해두었기 때문인지 그때보다 더 출입이 간편했다.
벽을 부수기 직전 태양이 말했다.
“여기부터는 교전이 잦을 거니까…. 미리 짜둔 계획대로 움직이면 됩니다.”
산수유를 구하는 건 시간 싸움.
시간이 조금이라도 지체된다 싶으면 누군가를 시간 벌이로 이용해야만 한다.
우리를 따라온 흰개미의 일부 전투원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장 깊숙한 쪽 방. 저희 역할은 형님을 데려다 주는 게 최선입니다.”
“어.”
“그다음부터는 형님이 어떻게든 해야 해요. 그 지점이 중간이 될 수도 있고. 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을 상기시킨 태양이 즉시 벽에 힘을 주었다.
자그마한 마력이 터지며 벽이 파편째로 녹아들었다.
벽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열에서 열다섯 정도로 되어 보이는 길드의 헌터 무리들.
미리 짜둔 성지호의 작전이 무산되었는지. 바닥에는 이미 죽은 용병들이 고통스런 얼굴로 눈을 까뒤집고 있었다.
-움찔.
태양과 내가 시선을 교환하기도 아주 잠시.
상대방과 우리가 동시에 움직여, 각자 팔을 뻗었다.
일어난 마력과 마법. 권기와 검격이 벽 안쪽 복도를 휩쓸었다.
-파확!
저택의 내부에 육편과 피가 튀었다.
* * * * * * * *
자신의 목숨을 바칠 정도로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커다란 축복이 어디있을까.
투명한 약물이 이어지는 관을 바라보며, 성지호는 두 손을 모았다.
바깥에서 느껴지는 굽이치는 마력은 언제 어느 순간에 우리를 죽일지 모르고. 지금은 방에 다가오는 인물마저 믿을 수 없었다.
-콰당 탕!
먼저 공격하고 준비한 것은 분명 우리인데 저택 내부는 혼비백산이었다.
그 정도로 상대가 까다롭거나, 혹은 내부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겠지.
‘지금은 뭐든 상관 없나.’
성지호는 더이상 고뇌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내린 결단이 옳기를 바랄 뿐, 그는 담배를 입에 물어 서서히 그 연기를 빨아들였다.
절망감의 색채에 잠시나마 쾌락이 더해진다.
진득한 감정을 훌훌 떨쳐내며, 그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쾅!
두 세명으로 이루어진 연구원들이 방 안에 들이닥쳤다.
“아가씨는 어디에 있지?”
폐쇄된 방 안.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온 그들이 성지호에게 물었다. 성지호는 바로 옆에 누워있는 그녀에게 턱짓했다.
“가주 명령이다. 아가씨를 데려오라더군.”
“아직 치료 도중인데.”
“닥치고 비켜.”
“뭐, 이번엔 심장이라도 빼갈 셈이야?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 없는데.”
산수유의 몸은 더없이 망가져 있었지만, 지난 실험의 정수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를 이 안식처에 버린 시점에서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필요가 생긴 걸까.
성지호는 담배를 뱉었다.
떨어진 꽁초를 짓밟으니 구둣발 아래에서 연기가 피어나왔다.
“비켜라.”
한 연구원이 신경질적으로 다가오더니, 의식하여 어깨를 부딪히곤 산수유의 침대를 잡았다.
밀려난 성지호는 연구원에게 끌려가는 산수유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눈이라도 한 번만 더 떠주었으면 하는데.
그건 너무 크나큰 욕심일까.
“이거 두고 간 거 같은데.”
“뭐?”
성지호의 말에 연구원들의 고개가 거의 동시에 돌아갔다.
자신의 허리춤에 잠시 손을 뻗더니, 단 한 번의 손짓이 공간에 일어났다.
-서걱!
연구원들의 머리가 미끄러지듯 바닥에 떨어진다.
성지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더 문 후, 솟구친 핏물에 미끄러지는 이동식 침대를 잡았다.
짧은 소란에 산수유의 눈꺼풀이 올라갔다.
“으응.”
식물인간으로 변한 줄 알았던 그녀가, 눈을 다시금 떴다.
“……아가씨?”
당황한 성지호가 그녀에게 말했다. 산수유는 여전히 빛 한 점 없는 눈으로 주변을 훑더니, 이내 성지호와 눈을 마주쳤다.
“미호?”
이름.
이게 얼마만에 들어보는 건지.
불과 몇 주만에 급격히 죽음에 다다른 산수유인 만큼, 더욱 미련이 남는 목소리였다.
“…미호 울어?”
“예? 아니, 아닙니다. 아가씨. 정신은 좀 괜찮으십니까?”
“미호 얼굴에. 피… 나는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동그란 눈을 껌뻑껌뻑.
성지호의 얼굴에 묻은 피를 보며 산수유가 놀라했다.
이 상황을 납득 시킬 말이 있을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성지호는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산수유에게 가볍게 목례했다.
그의 품에서 자그마한 주사기가 나왔다.
“아가씨. 조금만,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각성제는 아니지만…. 산수유가 걷게 할 수 있다.
“응…?”
주사에 맞는 건 이제 익숙한지 자연스레 팔을 내미는 산수유.
성지호는 감정의 격동에도 손 떨림 하나 없이 산수유의 팔에 약물을 주사했다.
“해드릴 이야기가 많습니다. 아가씨.”
“…실험은?”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왜?”
어린아이같이 속사포로 물어대는 산수유에게, 성지호는 할 말을 찾지 못해 입을 다물었다.
코르너스의 가문원인 산수유는 비원을 이뤄야만 하는 자신의 숙명을 이해하고 있다.
그 정신 속에 박힌 무언가를.
어떻게 해야 깨뜨릴 수 있을까.
태어날 때부터 머리에 익히고 있던 의무.
자신이 지금 이렇게 산수유를 돕는다 할지라도, 그녀의 머릿속의 우선순위를 완전히 뒤바꾸지 않으면…….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
그녀는 다시 코르너스의 품에 돌아가려 할 것이고. 돌아갈 자리가 없다면 스스로 비원을 성취하려 들 것이다.
“아가씨… 그게요. 전 그냥, 아가씨가 좀….”
그 방법을 모르는 사람으로선 자기가 할 말을 해주는 것뿐.
이시헌 그 인간도 이런 마음이었던가.
그 녀석이라면 아가씨를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모르겠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주제 넘는 발언이었네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할 뿐이었다.
“친구 만나러 가셔야죠. 아가씨. 이시헌이라는 분이 오고 있습니다.”
“시현인… 오지 말라고 했는데.”
“저도 그러려고는 했는데요. 워낙 고집이 강한 분이셔서. 저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성지호는 다가오는 무언가에 어떤 것을 직감했다.
그러나 그는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가씨가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시고. 되도록 아가씨가 하고싶은대로 해주세요.”
“하고싶은대로?”
거의 반평생을 모셨다.
어린 시절 활기찰 때부터, 은혜를 입고 진심으로 섬긴 뒤.
감정을 서서히 잃어가는 모습을 직접 지켜봤다.
작게 고개를 주억인 성지호는 산수유의 침대를 서서히 이끌었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었다.
성지호는 산수유의 눈을 가렸다. 무언가를 내뱉으려 했지만 그 말은 끝내 입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크릅-”
안에서 터져나온 피 끓는 소리.
기나긴 칼날이 살갗을 파고들며 창자를 유린한다.
뜨거운 고통이 물밀 듯 밀려오더니, 숨이 떨렸다.
“성지호.”
“…….”
“재밌는 일을 꾸며놨더군.”
굳고, 꺼림칙한 흑사(黑蛇)의 목소리.
산혁원의 검짓에 성지호의 목이 돌아갔다.
시야가 엎어진다. 천장이 기울었다.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던 성지호의 손이 치워지며, 그 광경이 산수유의 눈에 들어왔다.
“…….”
약이 돌았는지. 움직여지지 않던 산수유의 몸에 생기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주 느릿하게 고개를 꺾은 그녀의 눈동자에 빛이 돌아왔다.
“……지호?”
흰자위를 내보인 하나의 시체.
빛이 돌아온 산수유의 안구에, 약물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실핏줄이 터져 핏물이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