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the World Tree RAW novel - Chapter 467
걸어다니는 악몽 (4)
흑색 마력을 품은 검이 에이비의 미간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피하기는 힘들다. 손에 쥐고 있던 창을 놓은 에이비가 주머니 속 마석에 손을 얹었다.
에이비의 두 번째 힘. 그건 힘의 방향을 흘리는 것. 많은 마력이 필요하지만 발동할 수만 있다면, 방심한 상대를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특이한 종류의 권능이었다.
【 환피(換?) 】
수종을 바꾸다. 자신이 입는 데미지를 고스란히 상대에게 전달한다.
방향을 바꾸지 않고 검날이 뻗어왔다. 당연했다. 설령 왕이라 한들 이 힘을 알 수는 없었다.
에이비의 얼굴에 희락이 감돌았다.
-서걱!
검이 무언가를 깔끔하게 베어내는 소리.
왕과 에이비의 희비가 교차했다.
‘…뭐.’
오른쪽 눈에 찾아온 격한 통증. 시야의 한 쪽이 단숨에 붉게 물들었다. 에이비의 오른쪽 눈이 반으로 잘려 나간 것이다.
‘권능이, 통하지 않는다고?’
그럴 리가 없다. 권능은 신이 가질 힘과도 같은 것이다. 세상의 이치를 무시하며 그렇기에 위협적인 것.
자신보다 격상의 상대를 제압하는 상황에서, 권능은 필수일 정도이다.
‘그렇다면…. 마력이 부족한 건가?’
말도 안 돼. 에이비는 경악했다.
검날을 따라 빗겨나오는 흑색의 마기.
에이비의 얼굴에서 터져 나온 한 줄기 핏물이 주변에 흩뿌려졌다.
‘…괴물이야.’
그는 괴물이다.
에이비는 헛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전신이 실감해 팔과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여왕을 눈앞에 두고도 멀쩡했던 그가, 처음으로 목숨의 위기를 느꼈다.
‘어쩐지, 반야가 인원을 줄이자더니. 이대로 도망치는 수밖에.’
에이비는 앞으로 발길질하여 방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우우웅!
하지만 왕이 이를 보고도 가만히 있을 리 있나.
치켜든 검이 종으로 뻗어 나가더니, 그 방향을 따라 세찬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익숙한 형질의 마력인데 구분할 여유가 없었다.
-콰아아아!
저택 째로 베어버릴 기세의 검격. 에이비는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해내려 애를 썼다.
그런 그의 노력에도 불구, 에이비의 오른팔이 말 그대로 뜯겨져 나갔다.
잘리는 것을 넘어 한 차례 폭발이 인다. 저택 바깥으로 빠져나온 에이비는 반신이 완전히 부수어진 채 바닥으로 떨어졌다.
몸에 마력이 달라붙어, 치료를 가로막는다.
‘이건… 위험할지도.’
이정도의 힘을 가진 것으로 보아 이미 ATU의 요원들은 철수를 했을 것이 분명하다.
판단을 내린 에이비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목에 걸려있던 공간 마법이 담긴 아티펙트가 빛을 발했다.
* * * * * * * * * * *
“스으읍….”
깊은 숨이 입 밖에 터져나왔다.
입맛이 떨떠름하다. 아무리 다셔도 가시지 않을 씁쓸함에, 나는 한숨 한 번으로 다시 정신을 다잡았다.
“후.”
잡생각을 떨쳐내니 갑갑했던 머리가 멀끔하다.
머리 위의 가시관이 사라졌다. 민감해진 감각이 다시 둔해지면서, 체감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아저씨….”
“왜.”
“안… 쫓아 가요?”
“내버려 둬.”
나는 얼굴을 만져 인피면구의 가죽이 달라붙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변장은 충분하다.
고개를 돌려 시바를 바라본다. 척 보기에도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끔찍하게 낭자된 상처들이 시바의 몸 곳곳에 남아있었다.
에이비는, 내버려둔다.
벌레를 근멸할 때는 원인을 잡아야 한다. 몸에 붙여둔 마기가 그 역할을 해줄 것이었다.
-파르릇.
공간 마법으로 도망간 에이비의 위치를 느낀 뒤, 대충 방향을 짐작했다.
‘팔은 다시 쓰지 못할 거고.’
의수를 붙여둔다고 해도 이번처럼 설치지는 못하겠지.
“…….”
나를 바라보는 흑단의 머리를 두드렸다. 흑단이 나를 보는 표정이 무언가 이상했다.
아무리 봐도 화난 것 같은데, 티를 내지 않으니 궁금한 거겠지.
“잘 들어.”
이건 지금껏 내가 가르친 것 중,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아무리 눈이 돌아가도, 차분해야해.”
설령 가족의 목이 베인들 이는 변치 않는다.
조심스럽게 흑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시바의 사이를 궁금해하는 듯한데, 나중에 천천히 알려주도록 하자.
-저벅.
한 발자국 다가섰다. 쓰러지기 직전의 내 딸을 바라보았다.
“……왕.”
시바는 앞선 싸움이 꽤 고난이었는 듯 피로 범벅이었는데, 특이하게도 몸에는 그렇게 많은 상처가 남아있지 않았다.
끽해야 어깻죽지의 관통된 부상과, 목덜미의 자상(刺傷)이 전부다.
‘회복력이 지나치게 빠른데.’
목인의 특징이라고는 하나, 이정면 치유의 권능이 필요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굳이 치료를 할 필요는 없다.
이런 일에 의심을 사서는 안되니까.
“흑단.”
“네.”
“귀목을 데려간다. 준비해라.”
나는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렸다. 그래야만 했고, 내버려두는 것이 내 나름의 정답이었다.
“…왕.”
동백을 향해 한 발자국 다가가니, 기를 잃은 시바가 중얼거렸다.
“그 애, 건들지 마.”
명백한 분노가 나를 향해왔다. 딸이 아버지에게, 사실 그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신경 쓰지 않고 문 옆에 넘어져 있는 동백을 향해 다가갔다.
“건들지-”
-탁, 탁. 탁.
등 뒤에서 들려오는 노골적인 발 소리.
말하지 않아도 안다. 동백을 일으켜 세우려던 흑단이 검을 빼들어 시바를 향해 달려갔다.
흑단이 옆차기로 시바의 명치를 찔렀다.
“오지 마.”
“으윽!”
-퍽!
벽으로 밀려난 시바가 맥없이 고개를 아래로 숙인다. 의식이 멀어지는 듯, 입이 열리고 그 밑으로 피가 흘러내렸다.
“안, 돼.”
눈이 서서히 감기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엄, 마.”
그 짧은 한마디로, 격정적이었던 시바의 감정이 끝났다.
지금은 그렇게 기절해 있으면 된다.
“업어.”
“네.”
흑단이 동백을 업었고, 나는 벽에 등을 기댄 채 기절한 시바를 향해 다가갔다.
무릎을 꿇으니 피떡이 된 머리카락과, 눈물 자국이 먼저 보였다.
“…….”
가까이서 이 모습을 보는 게 얼마만일까.
“…왕.”
흑단에게 업힌 동백이 다급히 소리쳤다.
“그 아이는-”
“안 죽여.”
“……!”
“너, 이 녀석이랑은 무슨 사이지?”
말문이 닫힌 동백은 자신의 처지를 아주 잘 알고 있는지, 흑단의 등에서도 발버둥을 치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슬픔과 체념이 서려 있는 목소리였다.
“…친구에요.”
나는 시바의 볼을 엄지로 닦아냈다.
볼에 있던 잔상처가 단숨에 아물었다.
“그러냐.”
뭐.
그럴 수도 있겠지.
“….”
“…….”
침묵이 계속되는 동안. 나는 시바의 찢어진 옷에 손을 집어넣어 배를 만졌다.
마력을 조금 집어넣어 단전의 상태를 파악했다.
‘구조가 조금 다르긴 한데.’
핏줄을 따라 이루어진 회로들, 일부 구역을 마사지해주며 아직 형성되지 못한 틀을 만들어주었다.
스스로의 훈련이 기반되지 않으면 몸이 마력을 버티지 못하겠지만, 단련된 정도를 보니 충분했다.
3년 만에 이루었다고는 보기 힘든 몸이다.
‘이정도면 됐고.’
손을 뗀 나는 마지막으로 손가락에 마력을 띄운 다음, 바닥에 자그마한 마법진을 그렸다.
-펑!
한 차례 울림이 느껴지더니, 멋진 깃털을 뽐내며 나타난 나무발바리 한 마리가 방방 뛰었다.
오랜만인 그 녀석이다.
‘엘레오노르.’
[주인님, 주인님이당! 쭈인님~ 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쓰다듬어 줘요. 만져줘요!]‘가만히 있어 가만히.’
[토닥토닥!!]-짹, 짹.
강렬한 요구를 하는 나무발바리. 거의 몇 달만이라 그런지 엄청 흥분했다.
말소리가 새어나갈 걱정은 없다. 흑단이나 동백에겐 단순한 조류의 울음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새소리를 들은 흑단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문스런 얼굴로 이쪽을 지켜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생각을 통해 엘레오노르에게 명령했다.
‘이 아이 보이지?’
[네? 네, 이 아이는 누구에요? 주인님이랑 비슷한 느낌이 나는데….]‘얘랑 계약해.’
세상이 무너진 듯 우는 새.
짹. 당황한 엘레오노르의 찹쌀만한 눈이 우수에 차 촉촉해졌다.
[주, 주인님. 아무리 주인님 명령이라도….]녀석은 날개를 활짝 펼치곤, 바둥바둥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전 평생 주인님이랑만 할 생각으로…!]‘뭘 하는데?’
[토, 토닥토닥이랑…. 마력이랑.]‘내가 언제 이 애한테 귀여움받으랬냐? 그냥 계약만 하라고.’
그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숙이는 엘레오노르.
하라면 할 것이지 말이 많다.
나는 엘레오노르의 날개를 붙잡았다.
[쭈인님…?]마력 주입.
[쭈인… 응흣. 응호오오옷?!?]곧바로 자지러지는 엘레오노르.
새 부리가 벌어지면서,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날개와 다리를 떨었다,
[…오, 오랜만에 이렇게나 크게에…. 이렇게 많은 걸 한 번에 받으며언….]‘마력. 더 받고 싶지?’
나는 흥분한 엘레오노르의 부리를 톡톡 두드렸다.
몇 번을 생각해도 이 마력은 마약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쩔래?’
자신만만하게 말하니 곧 그녀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짹… 째그응♡]긍정의 답이었다.
* * * * * * * * * *
나와 이미 계약한 엘레오노르를 시바와 이중 계약시킨 것은 두 가지의 의도가 담긴 일이었다.
첫째로, 시바의 위치와 몸 상태 확인.
요람을 습격할 때도 느꼈던 거지만, 시바의 행보는 자꾸만 위험한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알바의 도움을 받아 시바를 감시하는데, 그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시바가 모르는 사이에 일방적인 계약을 걸면. 엘레오노르를 통해 원활한 위치추적이 가능했다.
만에 하나의 경우 엘레오노르가 소환되어 시바를 보호해줄 수도 있으니.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둘재는 시바의 정령감응의 향상.
정령과의 연결이 이어지면, 그 재능에 따라 마력의 성장을 엿볼 수 있다.
정령 자체부터 마력으로 이루어진 생명체이니, 그 감응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마력의 운용도 능숙해지는 것이다.
시바의 성장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된다고 볼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전부다.’
나머지는 스스로 해야한다.
-쿵.
데스칸소 가든은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내가 귀목을 확보하면서, ATU는 완전히 철수했고. 시바도 며칠 뒤에 한국으로 돌아갔다.
ATU의 경우, 도망간 에이비의 방향을 파악해 ATU 본부의 위치를 어느 정도 특정했다.
적대적이든 우호적이든, 차후 ATU와의 교류가 있을 때. 그 방향이 일방통행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진일보를 했다 볼 수 있었다.
세계수는 아직 반응이 없었다.
첫 번째 귀목은 내어주겠다는 건지, 아니면 이미 두 번째 귀목의 확보를 실시했는지는 모른다.
단 하나 확실한 건.
잠깐이나마 평화를 되찾았다는 것.
“……개소리.”
내 판단에 구슬이 딴지를 걸었다.
“왜.”
“평화는 개뿔, 내 몸 이렇게 된 거 안 보여?”
아 그래.
혹시 내가 늦을 때를 대비해, 시바에게 보내둔 구슬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내가 모르는 녀석에 의해 된통 당해버렸다.
“당하다니!”
“그럼 뭔데.”
“내가 조금 더 때렸어. 진짜야. 믿어줘.”
“…….”
구속구를 세 개나 개방하고도 이 정도로 털렸다면, 부끄러움을 좀 알아야 한다.
“와 진짜 이시헌… 내가 어이가 없어서.”
“흑단이도 멀쩡한데 네가 왜 그러냐?”
“……상대가 상대였어. 그리고, 흑단이는 네가 버스 태웠잖아!”
“전쟁에 버스 태운다는 게 말이냐?”
고개를 돌린 구슬이 볼을 부풀렸다.
구슬이 상대했던 녀석은 레라드. 삼재(三災) 중 한 명으로 아오리와 구슬과 동일 선상에 놓인 인물이다.
수년 전부터 무수한 악업을 세웠는데 그 잔혹함이 삼재 중 제일이라 하고, 당연히 목에 걸린 현상금 또한 가장 많다고 한다.
실력의 우위는 잘 모르겠는데. 이 녀석 몸뚱아리 상태를 보면 알 법도 하다.
“아니야.”
“얘가 이상하게 자존심을 세우네.”
하긴 구슬은 해방을 해야만 그 힘이 진가를 발휘하니, 억울할 법도 하다.
근데 그 해방. 일대 다수 전용이잖아.
“…아냐!”
“그래. 알았어.”
다친 애한테는 오냐오냐가 답이다.
온 몸이 붕대로 감긴 구슬에게 치유의 권능을 사용해주며, 나는 두꺼운 에너지바를 입 안에 쑤셔넣었다.
“죽은…?”
“없어.”
“내가 눈물이 없는데…진짜 억울해서 눈물이 다 날라 그러네.”
에너지바를 오독오독 씹어먹으며, 분을 삭이는 구슬이.
말은 저렇게 해도 감정이 둔해서 정말 슬픔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만나러 가게?”
“어.”
구슬의 요양실을 가뿐히 나와, 문제의 그 녀석을 만나러 향했다.
그렇게 실력이 뛰어나지도 않고, 팔과 다리도 없기 때문에 며칠째 도망갈 생각도 못하는 녀석.
한동안 뒤처리를 하느라 시간이 없던지라, 이제서야 만난다.
-덜컥.
문고리를 꺾여 문을 연 나는 침대에 누워 있는 녀석에게 말했다.
“귀목.”
“…….”
동백.
그녀와 이야기를 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