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d Newbie RAW novel - Chapter 100
100
신앙의 도시
게이밍 섹션의 진실을 알고 나니 사람들과 연관되고 싶지 않아졌다.
끈 떨어진 연 신세라지만 저들 중 상당수는 권력자와 닿아 있는 자들이다. 어떤 식으로든 접촉은 최소화하고 싶었다.
그리고 꼭 연 떨어진 자들만 있으라는 법도 없다. 한창 현역인 사람이 취미 삼아 게이밍 섹션에 드나드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게이밍 섹션이 패배자와 도망자들의 집합소라 해서 만들어지는 게임이 재미없어지는 건 아니다. 게임은 여전히 충분히 매력적인 유희다.
그 매력은 권력자들을 사로잡기에 부족하지 않다. 게이밍 섹션에 있는 권력층 자제들이 그 증거다. 여자부터 마약까지 골고루 즐겨봤을 자들이 게임에 열광하고, 게임에 미쳐있다.
“쯧, 구경이나 가끔 해야지.”
게이밍 섹션의 진가를 즐기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현은 숙소에서 플레이할 요량으로 콘솔과 타이틀 몇 개를 구입했다.
가게를 나가는 현의 눈에 검은색 헬멧이 보였다. 헬멧에는 신작 가상현실 게임 전용기기라는 설명이 떡 붙어 있었다.
“가상현실 게임 최초로 온라인 서버를 구현했다는 게임입니다. 관심 있으십니까?”
안드로이드가 현에게 질문했다.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르고 있는 것뿐이겠지만, 목소리와 표정은 인간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너는 다른 안드로이드와는 조금 다르군.”
“서비스업에 투입되는 안드로이드는 다른 안드로이드보다 상위의 논리 회로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설명이나 해봐.”
“지구의 미래 공상 과학 판타지를 배경으로 한 게임으로 우주를 무대로 합니다. 여행하며 일어나는 각종 일을 해결하는 것이 주체로 무한에 가까운 콘텐츠와 자유도가 보장되어 있으며, 최대 천 명이 한 서버에서 온라인 플레이를 즐길 수 있습니다.”
“고작 천 명?”
“가상현실 기기를 구매해 사용할 여력이 있는 사람이 현재로선 몇 없다는 분석입니다.”
현이 기기의 가격을 봤다. 확실히 유흥 하나를 위해 구매하기엔 다소 비싼 감이 있었다. 치장용 장식품의 가격에 비하면 새 발의 피긴 하지만, 보석과 장식품은 예전부터 가치를 인정받아온 것들이고, 장식하는 것만으로 역할을 다한다.
반면 게임은 사면 시간을 투자해 즐겨야 한다. 그것도 적지 않은 시간을. 기기를 구입해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즐겨야 할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설령 있더라도.
“설명 잘 들었어.”
“구입하지 않으십니까?”
“뇌에 직접 손대는 건 좋아하지 않아서.”
능력과 지위를 지닌 사람이라면 뇌에 직접 자극을 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냥 연결도 위험한데 저건 온라인 서버에 연결해야 하는 게임이다.
게임 개발자가 악의를 품으면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뇌를 구워버릴 수도 있다. 그런 출력이 안 나온다면 그냥 전기로 뇌를 헤집거나. 둘 다 치명적이긴 매한가지다.
현은 자기 목숨을 남에게 맡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가게를 나가기 전 현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이 게임, 현재까지 몇 개 팔렸지?”
“게이밍 섹션만 계산해 150대가량이 판매되었습니다.”
“그래.”
현은 150명이나 자기 목숨을 남에게 맡기는 등신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과학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그런 정신 나간 선택을 하지는 않을 건데. 아니면 목숨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해볼 정도로 가상현실 게임이 재미있다는 걸 수도 있다.
후자라면 조금 관심이 생겼다. 훈련용으로 써봤던 증강 현실 기술은 진짜 전투를 방불케 했다. 뇌에 직접 신호를 보내는 완전 가상현실 기술의 완성도는 어느 정도일까.
궁금했지만 해볼 마음은 안 들었다.
‘해봤다는 사람이 있으면 감상이나 물어볼까.’
게임기와 게임을 비닐 가득 채운 현이 숙소로 돌아갔다.
***
도시 중앙에서 버섯구름이 올라왔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수십 마리의 드래곤이 창공에 나타났다. 그들은 범인 찾기에 나섰다.
“과학 반응은 아니었다.”
“마력을 이용했다는 뜻이군.”
“난 후폭풍부터 처리하지.”
수백 개의 마법이 지평선 너머까지 뻗어 나갔다. 지상을 태우던 열복사가 사라졌고, 녹아가던 땅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폭발의 방아쇠로 쓰인 핵분열에서 나온 얼마 안 되는 방사능이 처리되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치료되었다.
고온과 먼지로 멸망 직후의 세계를 떠올리게 하던 도시가 빠르게 복구되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돌아오기까지 폭발로부터 30초가 걸리지 않았다.
드래곤 수십 명이 힘을 합쳐 펼치는 마법은 흡사 신의 기적과 같았다.
드래곤, 살아생전 한 번도 보기 힘든 생물이다. 그런 생물 수십 마리가 허공에 떠 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드래곤의 거체가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도시를 덮었다.
“찾았다.”
하늘에 떠 있던 드래곤이 사라졌다. 남은 거라곤 폭발의 흔적과 드래곤들이 행한 기적 같은 마법의 잔재뿐이었다.
드래곤들은 폭발의 주동자들이 있는 공간으로 공간이동 했다. 투시 마법을 사용한 드래곤들의 눈에는 지하에 있는 범인들의 기지가 모두 보였다.
몇몇 드래곤이 눈을 가늘게 떴다. 기지의 모습이 특이했던 탓이다. 수소 폭탄을 개발할 능력이 있는 자들의 기지다. 그러나 막상 그 주인공들은 원시적인 증기기관을 발전시켜 마법과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수소 폭탄을 제조할 정도의 기술력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방금 터진 폭탄의 범인이 이들이라는 건 확실했다. 만들다 만 탄두 수십 개가 구석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반만 남기면 되겠지.”
정밀 사격이 시작됐다. 응축된 마법이 땅을 뚫고 들어가 지하에 있는 자들을 관통했다. 한 방에 하나. 예외는 없었다. 손가락 한 마디 지름의 초정밀 저격은 사람 몸뚱이를 폭탄처럼 터뜨렸다.
반응할 속도도 주지 않는 저격에 지하에 있던 과학의 신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미쳐가는 그들은 반격도 한 번 못 해보고 학살당했다.
지하 기지 인원이 정확히 절반으로 줄고, 저격이 멈췄다.
드래곤들은 지하 기지를 퍼 올렸다. 거대한 규모의 기지가 마력에 의해 강제로 땅에서 뽑혔다. 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개미집을 통째로 발굴하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개미집이 아닌 사람 집이고, 발굴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드래곤이었다.
개미집을 살피듯 지하 기지를 살피던 드래곤 중 하나가 뇌와 심장이 폭발한 시체를 발견했다.
‘자살인가?’
드래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비밀 보호를 위해 자살하는 경우는 흔했다. 죽음의 신자에게 말해 되살리면 될 일이었다. 사도급은 없지만, 위원회 요원 중에는 죽음의 신자도 있었다.
다양한 권능을 가진 재앙의 신자들과 무조건 적대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드래곤은 그 시체만 따로 보관해두고, 심문을 시작했다.
***
프로만 리슈타인은 캡슐을 열고 나왔다. 징징 울리는 머리를 흔들며 그는 생각했다.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더 개량해야겠어.’
그가 특수한 향신료를 귀에 대자 프로만의 뇌에 있던 뇌충이 기어 나왔다. 프로만은 뇌충을 짓밟아 터뜨렸다.
보존액을 치우는 신자들 사이로 보고서를 든 신자가 다가왔다.
“실험은 어떠셨습니까?”
“전조 없이 터뜨렸는데 27초 만에 발각됐다. 무슨 수를 써도 핵폭탄은 일회용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놈들이 괜히 쓰지 않는 게 아니야. 노선을 유지해 역병과 마력에 연구에 더 치중한다.”
“알겠습니다.”
“유티안 쪽은 어떻지?”
“기기의 총판매량이 500대를 넘어섰습니다. 그중 게이밍 섹션에서 팔린 것만 150대 정도가 됩니다. 평균 동접자가 100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500대 팔린 기기에서 평균 동접자가 100명. 예상을 뛰어넘는 수치였다.
“가상현실의 유지는?”
“현재까지는 문제없습니다. 유티안 님이 잘 조절해주고 계십니다.”
“생체 서버, 생물의 진화 혁명을 일으킬 중요한 실험이다. 한 시도 눈을 떼지 말고 모든 걸 기록해라.”
“알겠습니다.”
신자가 떠나고 프로만은 다시 캡슐에 보존액을 채웠다. 다음 호문쿨루스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 그는 역병의 신자의 도움을 받아 다른 뇌충을 머리에 집어넣고는, 다시 캡슐로 향했다.
캡슐에 들어가기 전 프로만이 말했다.
“알파 타입 항체를 가진 호문쿨루스를 준비해라.”
알파 타입. 그건 그들이 완성한 역병의 신자가 되는 독의 이름이었다.
캡슐에 누운 프로만이 눈을 감고 머리에 마력을 집중했다. 뇌충이 뇌에서 나오는 전자 신호를 빨아들여 다른 뇌충에게 전달했다.
프로만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기지의 호문쿨루스 보관고에 있었다. 프로만은 몸을 풀어주며 머리로는 다음 계획을 짜 올렸다.
***
오락은 유희지만, 정신력이 소모되지 않는 건 아니다. 특히 게임은 더욱 그렇다. 고급 구역에서의 게임 한 판은 에이네도 정신을 집중해야 할 정도로 치열하다. 그런데 이성철은 그 게임을 내리 사흘 동안 하고 있었다.
“저놈은 인간이 아니야.”
때론 다른 사람을 상대해주기도 했고, 혼자 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이성철은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에이네도 이성철에게 몇 번 도전했지만, 승패는 모두 같았다.
이러나저러나 이성철은 72시간, 다른 오락실에서 온 사람의 말에 따르면 거기서도 18시간 정도 쉬지 않고 달렸다고 했으니 90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화장실도 가지 않고 게임만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에이네가 봤을 때 게임기 앞에 앉은 저놈은 인간이 아니었다. 없던 존경심까지 생길 지경이었다. 저런 놈이 있으니 한국인이 신격화되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역시 한국인…….”
“한 번쯤 실수할 법도 한데, 또 퍼펙트야.”
“저건 인간이 아니야. 게임 하는 한국인은 다른 종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발로 밟는 종류의 리듬 게임을 하는 이성철을 보며 구경꾼들이 허탈해했다. 오락실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가득했다. 오랜만에 등장한 한국인이 100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는 건 사람들에게 금방 알려졌다.
등장하는 것만으로 화제인 한국인이 기행까지 벌이고 있으니 유명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삐. 이성철의 품에서 소리가 났다. 그는 양자폰을 꺼내보고는 아쉽다는 듯 오락실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뭐야? 가는 거야?”
“잘 놀기 위해선 컨디션 조절이 필수다.”
100시간이나 연속으로 했으면서 컨디션 조절 운운하는 이성철을 보고 에이네는 기가 막혔다. 저놈을 보고 있으니 현이 어쩌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설마 그놈도 저놈처럼 저러는 건 아니겠지?
호기심에 에이네는 현을 찾았다. 인터넷과 CCTV를 포함한 수색 결과 콘솔과 타이틀 몇 개를 구입한 이후 현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숙소에 있겠지.’
숙소로 향하는 그녀의 눈에 가상현실 기기가 눈에 들어왔다. 이성철이 위험하다고 했던 기계. 가상현실은 그녀에게도 익숙하고, 그 위험성도 알고 있지만, 역시 눈앞에 실물이 있으니 관심이 갔다.
특히 온라인이라는 부분이 신경 쓰였다.
‘어떤 원리로 작동하나 볼까.’
기기를 투사하던 에이네는 고개를 갸웃했다. 기기의 코어 부분, 메모리와 온라인 연결을 담당하는 부분에 있는 건 반도체가 아닌 벌레였다. 불량품인가? 그녀는 다른 기기도 살펴봤지만, 검은 헬멧에는 하나도 빠짐없이 벌레가 안에 들어 있었다.
불량은 아니다. 모든 기기의 핵심 부품이 있어야 할 자리에 같은 벌레가 들어가 있다면 그건 누군가의 의도라도 봐야 했다.
에이네는 안 된다는 안드로이드를 해킹해 침묵시키고, 헬멧 하나를 꺼내 머리를 썼다. 보기만 해선 벌레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직접 써보고 알아내는 수밖에.
이성철이 위험하다 했으나 그녀는 자신 있었다. 생물 분야는 특기가 아니지만 벌레는 메모리와 서버 연결 부품이 있어야 할 위치에 있었다. 그러면 역할도 비슷하다는 의미. 과학과 조금이라도 연관되어 있다면 최후의 안드로이드에게 실수는 없다.
나노 머신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어 체계를 작동시킨 후, 에이네는 헬멧을 썼다. 그녀는 나노 머신 일부를 이용해 벌레의 움직임을 관측했다. 기기가 작동함과 함께 벌레가 전자 신호를 발했다.
쇼트. 에이네는 본능적으로 벌레, 그리고 벌레와 연결되어 있던 기기를 모두 다운시켰다. 그녀는 헬멧을 부수고 안에 있던 벌레를 꺼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게 가능해?”
***
수백 마리의 뇌충을 조종하고 있던 역병의 사도 유티안은 초록색 피를 토했다. 달려온 역병의 신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무슨 일인지 묻는 신자들에게 그가 말했다.
“누군가 네트워크를 한순간에 박살 냈다. 연동되어 있던 모든 뇌충이 죽었다. 누가 가서 과학 측에 전해라. 더 이상의 실험은 어렵게 됐다고.”
과학과 역병이 야심 차게 준비하던 실험은 그렇게 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