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d Newbie RAW novel - Chapter 117
117
마법적 유전자
이성철은 도망가고 있었다. 사의가 언데드를 불러냈다. 그건 사의가 진짜로 위험하다고 판단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나서서 아는 척하진 않았지만, 이성철은 사의를 알고 있었다. 함께 행동한 적도 있었고, 사의에게 치료받은 적도 있다. 잠깐 스쳐 지나간 리센보다는 사의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았다.
침식은 도시 중심부에서부터 일어났다. 그러면 일단 무조건 멀어져야 한다. 사태 파악은 그다음이다. 이성철은 일단 달렸다. 그리고 그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건 바로 드러났다.
멀리서부터 빠르게 들이닥치는 좀비떼, 정체불명의 좀비가 해일처럼 도시를, 사람을 집어삼켰다.
이성철은 좀비를 보자마자 저게 네티가 말한 역병을 뿌리는 죽음임을 알았다. 좀비가 뿜어내는 녹색 안개가 가장 큰 증거였다.
도망가며 이성철은 소형 드론을 날렸다. 인공지능 드론이 알아서 목표를 찾아 날아갔고, 이성철은 태블릿 PC를 꺼내 참상을 확인했다.
좀비의 감염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다. 근원 세계에서 일어날 리 없을 거라 생각했던 좀비 아포칼립스가 일어나고 있었다.
‘근원 세계가 근원 세계했군.’
다른 것도 아니고 좀비다. 무공과 마법을 익히지 않은 사람 한정으로 역병급의 전염성을 보여주는 좀비가 약점을 극복해서 나타났다.
저걸 무슨 수로 치우라는 건지 어이가 없었다. 그가 나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회귀자로서 이성철이 가진 패는 많지만, 그게 모든 사태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여기는 근원 세계다. 이성철은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걸 언제나 염두에 둔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면, 지체 않고 도망간다. 공간이동 스크롤을 수십 개씩 챙겨두는 건 언제 도망갈 일이 생길지 몰라서이다.
전생에 이 시점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는 망설이지 않고 도망갔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권능과 권능의 융합. 그리고 두 번째 시험. 넘길 수 없는 일이 두 개나 겹쳐 있다. 그리고 우군도 있다. 경험 많은 뉴비 둘과 리센이라는 거물.
네티와의 문답으로 이성철이 확인한 것 중에는 그레이트 다운타운 내에서 리센의 영향력이 어떤지에 대한 것도 있었다.
네티의 대답은 놀라웠다. 리센, 그러니까 보스의 정체를 몰라 섣불리 건드리지 못하고 있지만, 리센의 세력 확장 속도에는 그레이트 다운타운의 거물들도 경계심을 보였다.
1, 2년 후면 삼대 세력에도 비빌 수 있는 세력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네티의 예상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사의와 역병 의사도 있다. 뼛속까지 의사이고 의원인 두 사람이 역병이 관련된 일을 보고 지나칠 리 없었다. 역병의 천적과 같은 두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일이 배는 쉬워질 것이다.
‘역병 의사는 스스로 나설 거고, 사의는… 협상해 봐야 하나.’
현과 에이네 쪽은 놔둬도 알아서 움직일 것이다. 저쪽에 있는 사람들은 이성철이 조언을 받았으면 받았지 조언을 해줄 사람들이 아니었다. 알아낸 정보나 꾸준히 보내주면 된다.
이성철은 인적 드문 골목으로 들어갔다. 언데드화가 끝난 골목길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신언神言과 신언信言을 외워 무기와 방어구를 소환하고 아공간 주머니에서 다른 장비까지 꺼내 완전 무장을 마친 이성철은 어두운 낯으로 좀비 사태가 일어나는 중앙을 보았다.
길게 숨을 내쉬어 몸에 힘을 빼고, 다음 순간 전신에 힘을 준 이성철이 좀비들에게로 뛰어들었다.
***
현과 리센이 모니터를 보며 좀비 사태의 피해를 분석하고 있는 사이, 역병 의사가 좀비 한 마리를 잡아 왔다.
재질을 알 수 없는 실에 묶여 꿈틀대는 좀비를 보고 에이네가 물었다.
“이거 괜찮은 거지? 역병이잖아.”
“공기로 전염되는 일은 없으니 괜찮습니다. 안개를 뿜어내는 능력은 제거했고요.”
“방법을 찾을 수 있겠나?”
리센이 역병 의사에게 물었다. 역병 의사가 침울한 목소리로 답했다.
“시간을 들이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얼마나 피해가 날지…… 제 불찰입니다. 사의에게 충고를 들었을 때부터 준비했어야 했는데.”
“준비하면 뭐가 달라지나?”
“그것도 그렇군요.”
역병 의사가 허탈하게 말했다. 좀비를 잡아 오며 좀비를 조사했다. 좀비의 구조는 상상 이상으로 난해했다. 역병을 치료하는 의사로서 수많은 역병을, 역병의 권능들을 접했지만, 좀비에 적용된 역병의 권능을 파악하지 못했다.
권능 자체가 복잡한 건 아니다. 다만 사용된 방식이 기존과 너무 달라 분석이 힘들었다.
그가 보아온 어떤 역병의 신자도 이런 식으로 권능을 다루진 않았다. 대비한다고 대비되는 재앙이 아니었다.
“저는 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역병 의사가 좀비를 끌고 사라졌다. 현이 역병 의사가 나간 문을 보며 말했다.
“사의는 뭔가 알고 있는 눈치던데.”
“찌란이 사의를 찾고 있다. 포섭할 수만 있다면 일이 쉬워질 거다. 대신 우리가 어려워지겠지.”
“왜?”
“어플에 들어가 그레이트 다운타운의 삼대 세력을 찾아봐라.”
현은 바로 어플에 접속해 삼대 세력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모두 기업을 표방하고 있으며, 기업답게 여러 분야에 손을 뻗치고 있었지만, 각자의 전문 분야가 따로 있었다.
마약, 사람, 장물.
그중 사람을 취급하는 기업의 소유주는 죽음의 사도였다.
“…… 이 악물고 사의를 죽이려 하겠군.”
사의와 역병 의사는 같은 재앙의 신자들 사이에서도 척살 대상일 정도로 각자의 재앙과 사이가 좋지 않다.
사의에게 일을 방해받은 걸 알면 죽음의 사도는 사의를 죽이려 할 거다. 사의는 죽음의 신자다. 사도급으로 권능을 다룰 수 있다지만 사도는 아니다. 사도와 신자 사이에 성립하는 상하 관계가 성립한다.
사의는 사도를 상대로 도망칠 수는 있어도 정면에서 대항하진 못한다.
“사의가 치료법을 찾을 시간을 벌면서 죽음의 사도까지 상대해야 한다. 좀비떼가 도시 밖으로 나가는 것도 막아야 하지. 저게 한 번 퍼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거다.”
“이런 게 싫어서 위원회에서 나오려고 했는데.”
현이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하나하나 나열해도 힘든 일이 줄줄이 기다린다. 한창 바쁠 때의 위원회에 있는 것 같았다.
현이 리센에게 물었다.
“방법은 있는 거겠지?”
“위원회 방식대로.”
“여기는 위원회가 아니야.”
위원회의 방식은 힘이다. 권력이든 무력이든 힘을 이용해 문제 자체를 찍어 눌러 찢어버린다. 문제가 많은 방법이다. 그러나 문제로 생기는 문제까지 힘으로 해결해버리는 게 위원회가 가진 힘이다.
절대적인 힘을 가진 위원회이기에 가능한 방법이고, 어중간해서는 엄두도 못 내는 방법이다.
“지하에 있는 물건들을 쓸 거다.”
“그거 비장의 패 아니었냐?”
“삼대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쓸 생각이었지만… 여기서 써야 한다면 그게 운명이겠지.”
믿음 때문에 발이 묶인 현은 그렇다 쳐도, 리센은 이 사태를 정리할 책임이 없다. 혼란스러운 그레이트 다운타운에서 이득만 취해도 된다. 리센에겐 그럴 힘도 능력도 있다. 그런데 리센은 이득보단 사태 수습을 택했다.
누군가에게 떠밀린 것이 아닌 오롯한 그의 선택이었다.
‘대단한 놈.’
남을 챙기며 근원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현으로선 혀가 내둘러지는 선택이다.
“너도 참 독하다.”
“네 오지랖만 할까.”
리센은 묵묵히 모니터를 보며 간간이 무언가를 메모했다. 모니터에서는 계속해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사의가 본격적으로 언데드들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건물이 움직여 좀비들을 격리했고, 땅과 빌딩에서 쏘아진 뼈창이 좀비들을 묶었다. 가시가 난 뼈창은 뽑기도 어려웠고 어설픈 공격으로는 부서지지도 않았다.
다른 언데드들이 난입한 건 그때였다. 고위 언데드가 좀비떼 사이에 난입했다. 그들은 좀비를 묶고 있는 뼈창을 부수고 앞을 가로막은 건물을 박살 냈다.
죽음의 사도가 부리는 언데드들이었다. 좀비 사태의 뒤에 죽음이 있다면 언데드가 빠지면 섭섭했다.
사의가 소환한 언데드는 땅이고, 산이고, 도시였다. 언데드와 일체화한 도시가 움직였지만, 좀비떼와 고위 언데드 군단을 막을 수는 없었다.
좀비는 가만히 놔둬도 늘어나고, 고위 언데드는 땅을, 산을, 도시를 부수는 놈들이다. 사의가 소환한 언데드와는 격이 달랐다.
“위험한데.”
“그레이트 다운타운이 현 체제를 유지하고 10년이 지났다. 10년 동안 세 개 세력의 세력은 반목을 반복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세 개 세력으로 유지되고 있지. 서로를 물어뜯는 것에는 도가 튼 놈들이다. 하나가 앞서가면 뒤에서 발목을 물어뜯는 게 삼대 세력의 일상이다.”
리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영상의 프레임이 모자라 구체적으로 뭐가 떨어졌는지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고위 언데드가 부서질 정도의 마력 폭풍이 몰아쳤다. 중간에 낀 좀비가 갈려나갔다. 살아남은 언데드들을 검은 알약 모양의 문양을 단 인원들이 난입해 정리했다.
다른 화면에서는 붉은 수레 문양이 달린 옷을 입은 각양각색의 마족들이 언데드를 상대하고 있었다. 좀비와 언데드를 가볍게 밀고 나가는 그들의 전력은 위원회 정예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다.
좀비들이 물러갔다. 급한 불이 꺼지는 걸 본 리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현을 보았다.
“너는 어떡할 거지?”
“나설만한 일이 있을 때까지 방관. 이성철하고 합류도 해야 하고, 저기 끼어든다고 딱히 할 것도 없으니까.”
“그럼 기다려라. 아마 일거리가 나올 것 같으니.”
리센이 방을 나가고 현과 에이네만 모니터가 가득한 방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현은 에이네를 보았다. 에이네의 눈동자에 깨알 같은 글자들이 지나가는 걸 보고 현은 말 걸기를 관뒀다.
대신 좀비들이 물러가고 있는 모니터를 보았다.
죽음의 사도가 이대로 물러날 거라곤 생각하기 힘들었다. 10년 동안 유지되던 균형을 깰 정도라면 만반의 준비가 끝난 후겠지. 이건 선전포고에 불과하다. 진짜는 이제부터다.
현은 자신이 가진 패들을 헤아렸다.
다행히, 그레이트 다운타운을 3번 몰살할 정도는 되었다.
***
그레이트 다운타운의 외관은 현대식 도시에 거대한 벽을 친 모습이다. 벽은 그레이트 다운타운과 외부를 단절하는 상징이었다. 단절은 양방향이었다. 그레이트 다운타운이 외부를 거절했고, 외부에서도 그레이트 다운타운을 거절했다.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두 세상이 벽 하나로 갈라섰다. 그게 그레이트 다운타운이다.
사의는 단절과 거부와 범죄의 상징인 그 벽 위에 있었다. 평범한 남자로 변장한 사의의 눈동자에서는 터질 듯한 귀화가 일렁였다.
“뭐냐, 바쁘니까 꺼지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하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초면 아니었나?”
고개를 돌린 사의가 이성철을 발견했다.
“너는 누구냐?”
“다회차 회귀자.”
이성철이 말했다. 전에는 목숨 걸고 숨겼지만, 주술을 잘 쓰는 하프 엘프인 프모 씨 때문에 개인 정보가 팔릴 대로 팔린 상태였다. 덕분에 스스로 회귀자라 떠들고 다닐 수 있게 됐다. 정보가 팔려서 얻은 거의 유일한 이익이었다.
“위원회 놈들이 군침 흘리는 놈이었군. 나를 알아본다는 건 전생에 나와 아는 사이였나?”
“당신의 수금에 몇 번 어울린 적이 있지.”
“묻겠다, 회귀자. 너는 이 일을 알고 있었나?”
이성철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해결할 방법이라면 알고 있다. 언데드의 하늘, 이 규모라면 그다지 오래 유지할 수는 없을 텐데?”
“사설은 옆에 창녀나 끼고 해라.”
“당신의 협력이 필요하다. 보수로는 새로운 종류의 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어떤 독?”
“과학 기술로 만들어내 역병의 권능으로 다듬은 독. 장담컨대 당신도 쉽게 해독하지는 못할 거다.”
“그거 흥미롭군. 하지만 부족해.”
“그러면 이건 어때요? 내 땅에 하고 있는 만행. 그걸 용서해주겠어요.”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의 주인을 보고, 사의는 언데드들에게 대기 명령을 내렸다.
“평범한 인간은 아니군. 재앙의 신자도 아니고, 아예 사람이 아니야. 너는 누구냐?”
“이 도시를 뒤에서 조종하는 흑막. 정도로 해두죠.”
여인, 네티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