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d Newbie RAW novel - Chapter 31
31
광신의 재능
역병의 사도는 여자였다. 그러나 저걸 여자라고 불러야 하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현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한쪽 눈은 어디 가고 눈알 대신 지네가 눈구멍을 기어 다녔고, 몸은 여러 피부를 기워 붙인 것처럼 누덕누덕했다. 색도 질감도 다른 피부 안쪽으로 구더기를 닮은 벌레들이 꿈틀거리는 게 설핏설핏 보였다.
옷가지 하나 걸치지 않고 흉측한 모습을 그대로 내보이는 저 생물은 여자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조건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웩.”
에이네가 노골적으로 헛구역질했다.
“역병의 사도치고 저건 양호한 거야.”
“난 앞으로 역병 근처에도 안 갈 거야. 그러니까 내 도움받을 생각하지 마.”
에이네가 식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두 사람은 이미 사도의 영역 안에 있었다. 벌레가 옆을 날아다니고 마력을 머금은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떠다니고 있는데도 한 사람과 한 안드로이드는 태연했다.
그게 사도의 심기를 건드렸다.
“너희는 누구?”
외견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간드러진 여자 목소리였다.
현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발끝을 땅에 비볐다. 담뱃불을 끄듯이 지그시 지지고, 입가를 비틀었다.
“살기를 풍기며 마주하고 있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한가?”
“아하. 그것도 그렇지.”
역병의 사도가 유쾌하게 외쳤다.
초록과 검정의 파도가 현과 에이네를 덮쳤다. 사방에서 밀어닥치는 그것들을 보며 에이네는 현을 곁눈질했다. 그녀는 괜찮았다. 어떤 질병이든 체내의 나노 머신이 순식간에 항체를 만들어 병에 걸릴 염려가 없고, 벌레 따위는 그녀의 피부를 뚫지 못한다. 바이러스에 섞인 마력은 맛있는 먹이다.
반대로 현은? 현의 싸움은 강强이 아닌 쾌快. 맞으면서 버티는 게 아니라 피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파도처럼 덮쳐오는 벌레들 사이에 피할 공간은 없다. 또 에이네와 같이 완벽한 면역 체계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마력을 무효화하는 능력도 없다.
초록과 검정이 설치는 광장 분수대는 현에게 공기조차 치명적이었다.
현이 에이네를 돌아봤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에이네가 본 현의 눈에 두려움은 없었다. 자신감, 그리고 압도적인 여유.
벌레와 마력이 두 사람을 덮쳤다. 에이네는 눈을 깜빡였다. 나노 머신이 눈으로 움직이며 그녀의 동공을 개조했다. 유리체에 담긴 액체의 성질이 변하고 각막이 교체된다.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온도를 보고 있었다.
에이네의 시야에서 벌레는 푸른색이었다. 푸른색의 파도가 앞을 휘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하나의 적색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그건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다. 벌레가 계속해서 몰아쳤다. 푸른색이 어지러이 움직이는 것에서 에이네는 거친 해류를 떠올렸다. 범선도 난파될 거친 해류 속에서 한 인간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러더니, 이윽고 움직였다.
해류를 뚫고 튀어나간 현이 역병의 사도와 충돌했다. 벌레와 마력이 걷혔다.
은평구로 오며 현은 말했다. 너는 보험이니까 언제든 끼어들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날뛰는 현을 보니 그럴 때가 오기는 할까 에이네는 생각했다.
역병의 사도는 도끼눈을 뜨고 현을 노려봤다.
“넌 뭐야?”
알 수 없는 인간이었다. 느껴지는 마력을 봐선 레벨은 500도 되지 않아 보인다. 첫 번째 벽도 넘지 못한 인간이다. 그러나 그런 인간이 자신의 장기인 바이러스와 벌레의 이중 공격 속에서 멀쩡하게 살아나왔다. 즉효성 독과 같은 전염병과 살을 뜯어먹는 벌레에 파묻히면 뼈도 남기지 못하는 것이 정상일진데.
사도가 현을 밀어냈다. 누더기 같은 그녀의 팔이 찢어지며 안에서 벌레가 튀어나왔다. 폭발적으로 질량을 늘린 벌레에 현이 뒤로 쭉 밀려났다. 팔을 대신하던 벌레들이 폭발하듯 흩어졌다. 검은색 마력을 휘감은 벌레들이 정면에서 현을 노렸다.
현은 피하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았다. 벌레의 이빨은 현의 피부를 뚫지 못했고, 병마를 안고 있는 마력은 현을 비껴갔다. 역병의 사도가 뿜어내는 벌레와 질병은 그를 해하지 못했다. 사도가 죽일 년인 이상 그녀는 현을 죽일 수 없다. 현이 그렇게 믿는 이상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현의 주위는 딴 세상이었다. 현의 믿음이 현을 지키고 있었고, 믿음의 결과로 말미암아 현은 자신의 믿음을 믿었다. 그렇기에 믿음은 깨지지 않는다.
죽일 놈은 죽고, 죽을 놈도 죽는다. 현은 죽을 놈도, 죽일 놈도 아니기에 죽지 않는다. 마법이 되지 못한 이념, 믿음이 현을 녹과 흑의 폭풍에서 지켜주고 있었다.
믿음이 이토록 절대적인 힘은 아니다. 믿음이 힘을 강하게 해주기는 하나, 엄연히 한계가 존재했다. 절대적인 힘의 차이 앞에서는 믿음도 부질없어진다. 눈앞의 존재가 역병의 사도가 아닌 다른 사도였다면 현은 제힘으로 10초를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상성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벌레와 전염병을 다루는 사도. 벌레도 전염병을 일으키는 세포도, 모두 현과 비교하면 약하디약한 존재이다. 둘 사이엔 절대적인 힘의 차이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 힘의 차이가 작금의 광경을 만들었다. 벌레는 현을 상처 입히지 못하며, 병마는 절로 현을 비켜간다.
믿음, 하나의 믿음이 일궈낸 결과였다.
“뭐야? 뭐냐고!”
냉정함을 잃은 역병의 사도가 히스테릭하게 소리쳤다. 닿기만 한다면 죽일 수 있다. 놈이 가진 마력은 대단치 않다. 질병이든 벌레든 한 번만 성공하면 되는데, 그 한 번을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수한 마법을 쓰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믿음을 모르는 그녀는 이토록 불가사의한 존재를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사도는 미지에 대한 대응으로 폭력을 택했다. 은평구를 넘어 신서울 전체로 퍼져나가던 벌레와 질병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도, 역병의 신자 중에서도 선택받은 자리. 화신이 없는 재앙들 사이에서 성인 다음에 위치한 이인자들. 그 힘은 가볍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았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혐오스러운 벌레의 곡선뿐인 은평구 광장에서 현은 때가 됐음을 알았다.
그가 스마트폰을 꺼냈다.
“날 앞에 두고 전화나 꺼내다니!”
분개한 역병의 사도가 팔을 뻗었다. 다시 한번 터져 나오는 벌레의 폭발, 현은 손에 마력을 모아 그것을 쳐냈다.
공격 수단이 벌레라는 점에서 잘못이었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그게 벌레라면 믿고 있는 현에게 큰 위협이 못 된다. 바다가 갈라지듯 벌레가 갈라졌다. 현의 뒤로 길게 벌레의 사체가 줄을 지었고, 기분 나쁜 내장과 체액이 길바닥을 칠했다. 그러나 현에게는 한 방울의 더러움도 묻지 않았다.
현이 전화를 걸었다. 뚜우- 첫 신호가 끝나기도 전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누구야? 또 무슨 일이고?
지긋지긋한 목소리에 담긴 염세는 지난 3년간 더욱 진해져 있었다. 반가운 목소리에 현의 목소리가 조금 들떴다. 누가 배신자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배신자가 밝혀지기 전까진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해도 좋지 아니한가.
수십, 어쩌면 수백이 넘을 사지를 함께해온 동료들을 심증만으로 증오하는 건, 적어도 현에게는 힘들었다.
“나.”
짧은 한 마디. 전화 반대편에 묵직한 침묵이 깔렸음을 현은 짐작했다.
-너냐. 현?
달라진 목소리, 갑작스런 등장에도 상대는, 윌리엄은 현을 알아보았다.
“신서울에 사도 떴다. 여기 애들로는 부족해 보이니까 지원 좀 보내라. 그럼 이만.”
-정말 너냐? 정말 너냐고?! 그 동안 어디서 뭐 했어, 이 자식아! 말은 하고 끊어!
야, 현이라고?! 진짜 현이 전화했어?! 윌리엄의 외침과 함께 전화기 너머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또 하나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현은 윌리엄과 수아람을 무시하고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이 전화 한 통으로 붙잡힌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양자폰의 보안은, 양자폰끼리의 통화에서도 유효하다. 방금 한 행동은 석 달 뒤에 일어났을 일을 조금 앞당긴 것에 불과하다. 현은 조금 떨어져 이 난리통에 지루하다는 듯 다리를 떨고 있는 에이네를 불렀다.
“공간이동. 준비됐지?”
현은 역병의 사도에게 지지 않을 자신은 있지만, 역병의 사도를 죽일 화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불렀다. 역병을 태워버릴 화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언제든지.”
“이것들이!”
벌레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은 사도가 이번에는 육탄 공격을 감행했다. 그에 에이네가 나섰다. 에이네는 사도에게서 듬뿍 흡수한 마력을 주먹에 담았다.
“네 거니까. 그대로 돌려줄게.”
콰앙! 천마신공 극의 결을 따라 질러진 주먹이 폭풍을 만들었다. 역병의 사도가 뒤로 날아갔고, 벌레와 마력도 잠시간 걷혔다.
“야, 일부러 마력 농도가 높아질 때까지 기다린 건데 그러면 의미 없잖아.”
“더러워서 손대기 싫은 걸 어떡하라고.”
에이네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불평했다. 현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낸 스크롤을 찢으니 공간이동이 시작됐다.
“어딜 도망가려고!”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사도의 의지에 따라 일시적으로 걷혔던 마력과 벌레의 폭풍이 더욱 강맹해졌다. 현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뿐이지, 그 힘은 한 도시를 능히 덮고도 남음이 있었다.
온 몸의 힘을 다한 공격을 때려 박기 직전, 역병의 사도는 뼛속까지 시린 한기에 공격을 멈췄다. 그건 본능이었다. 권능을 몸에 깃들인 인간으로서 가지는 생존 본능. 그녀는 회수한 힘을 모조리 허공 일점에 퍼부었다. 그러나 등골을 따라 찌르르 울리는 섬찟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허공에 모이는 막대한 마력, 공간이동은 섬세해야 한다는 상식을 깨부수고 막대한 마력을 퍼부으며 누군가 공간을 뛰어넘으려 하고 있었다.
찢겨나가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현에게 아주 익숙한 마력이었다. 그가 보호자를 자처하며 거뒀던 아이. 마녀의 여왕이 죽고 여왕의 계보를 잇는 유일한 적자.
마녀 공주 수아람.
찢어진 공간에서 빗자루 끝자락이 보였다. 현이 본 것은 거기까지였다. 공간이동 마법이 완성되며 현과 에이네를 공간 저편으로 날려 보냈다.
***
찢어진 공간에서 빠져나온 수아람은 우선 현부터 찾았다. 중국 출신인 그녀지만 중국의 도시들보다 현이 만든 신서울이 더 익숙했다. 신서울의 상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녀는 단번에 현이 있었다고 짐작되는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찾기는 했지만, 동시에 찾지 못했다. 공간이동의 흔적은 더 강한 마력에 쓸려갔다. 에이네가 일차적으로 빨아들이고 역병의 사도가 가진 마력이 이차적으로 뒤덮은 결과 공간이동의 마력은 흔적도 남지 않았다. 시간의 탐정도 공간이동으로 도망친 사람은 쫓을 수 없다. 유일한 방법은 남아 있는 마력의 흔적을 쫓는 것. 그러나 그마저도 불가능해졌다.
까득. 어금니가 위험한 소리를 낼 정도로 수아람은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눈에는 오직 이 참상의 원인, 역병의 사도만 보였다.
역병의 사도는 몸을 덜덜 떨었다. 그녀가 다루는 역병은 광역 살상으로는 치명적이지만, 그녀 본신의 힘은 사도치고는 많이 약했다.
홀로 사도 몇 명을 상대하는 괴물들 앞에서는 하룻강아지나 다름없었다.
“마녀사냥의 불꽃 속에서 네 죄를 알아라.”
마녀 공주의 입에서 사형선고가 떨어졌다. 주술, 마법과는 전혀 다른 체계의 학문. 그것의 발동에 이미지는 필요하지 않다. 형식을 갖추는 순간, 주술은 이미 끝나 있다.
은평구 광장 바닥에서부터 불길이 타올랐다. 벌레를 태우고, 병마를 태우고 마력까지 태우는 불길이 신서울의 건물보다 높이 솟았다.
마녀사냥의 불. 셀 수 없는 차원에서 셀 수 없는 마녀를 잡아먹은 불꽃, 마녀들의 한이 그대로 담긴 불꽃은 마녀가 적대하는 자를, 마녀를 적대하는 자를 살려두지 않았다.
역병의 사도가 그 몸에 깃들인 수억의 벌레, 수백의 질병과 함께 사라지기까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수백 도로 달아오른 대지에 수아람은 발을 디뎠다. 화풀이가 끝난 그녀는 한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빠. 뭘 원하는 거예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