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007
1007화 제발 도와주세요
진양은 추격수가 가진 최후의 보루가 무엇인지, 또 그가 왜 대황으로 가려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수의 힘을 이용하여 강풍층을 뚫을 목적으로 신수족과 손을 잡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신수와 같이 강력한 존재가 강풍층에 나타난다면 그만큼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수의 힘을 직접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그것이 강풍층을 무리 없이 뚫을 수 있다는 건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심지어 강풍층을 뚫고도 기껏해야 중상 정도가 전부이지 결코 죽지는 않을 것이다.
대황에 도착하기만 한다면 어디든 뿌리를 내릴 수 있다.
뿌리만 내린다면 금방 다시 회복하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로써 신수족도 더욱 광활한 대지를 손에 넣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으로 보아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
신수족과 추격수가 갈라선 것 역시 이상할 건 없었다.
하지만 이것 외에는 도저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추격수는 신수의 뿌리로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무시무시한 죽음의 기운조차도 뚫고 지나다닐 수 있다는 건 무리 없이 강풍층을 뚫을 수 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뚫고 들어간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강풍층을 지나면 비로소 진정한 시험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놈의 목적을 확실하게 알 순 없었지만,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진양은 곧바로 이족 군락지가 밀집되어있는 지역의 경계선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곳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어서 며칠을 더 날아간 끝에 마침내 수백 리 정도 되는 대지 조각을 발견했다.
진양은 곧바로 그곳을 살펴보았으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이 한때 생명체가 살았던 곳이라는 점은 확실했다.
무엇보다 누군가 대지 조각을 파괴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진양은 습득 능력을 사용하여 대지 조각을 회수했다.
회수가 가능하다는 건 이곳에 살아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 시체조차도 남아있지 않다는 뜻이다.
조금 더 날아가다 보니 크고 작은 대지 조각들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한창 조각을 회수하던 진양은 마침내 한 조각에서 공포에 질린 채 입을 쩍 벌리고 죽은 마른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신은 곳곳이 온전하지 못했다.
마치 썩은 나무토막처럼 조금만 건드려도 바스락- 하는 소리와 함께 일부가 부서져 버렸다.
진양은 손을 얹고 능력을 사용했다.
하얀 광구가 손에 잡히며 시신은 가루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진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시신은 사라져버렸지만 아쉬운 대로 관을 꺼내 남아있는 먼지만이라도 수습해 정성껏 묻어주었다.
이어서 하얀 광구를 살펴보았다.
예상대로 기억 장면이 들어있었다.
지난번 보았던 거대한 허공 궁전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수많은 거인 이족들이 서 있었다.
힘, 생기, 심지어 영혼까지.
궁전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기운에 의해 둘러싸이며 모든 기운을 흡수당했다.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온 것은 궁전 깊은 곳이었다.
진양은 다시 한번 기억 장면을 되돌아보며 눈앞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책자에 적어 내려갔다.
이어서 누군가의 몰래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지자마자 기억을 잘라냈고, 어면안신곡으로 완전히 소멸시켜버렸다.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여기까지 작업을 마치고 나서야 책자에 기록한 것들을 살펴보았다.
이번엔 시간이 충분했기에 대략적인 장면을 묘사해놓을 수 있었다.
진양은 자신이 그린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림 한쪽 구석에 그려진 추격수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한탄이 나왔다.
‘정말 무시무시한 녀석이군. 멸족당한 녀석들도 한때는 전부 녀석의 충신들이었을 텐데. 이렇게 매정하게 전부 죽여버리다니.’
이유 없이 이족들이 멸족 당한 건 아무래도 추격수의 짓이 분명했다.
진양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점점 더 많은 대지 조각과 마주하게 되었다.
수십 리에 이르는 거대한 조각부터 주먹만 한 작은 조각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조각들이 앞길에 펼쳐져 있었다.
얼마나 많은 이족들의 군락지가 파괴된 것인지 도무지 가늠이 불가능했다.
‘도대체 왜 이런 학살을 벌이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소 흉폭한 녀석이긴 해도 이토록 생각이 없는 녀석은 아니다.
이런 짓을 벌이는 게 결국 자기 스스로를 절벽으로 몰아세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모를 리는 없다.
이해가 되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조각을 모두 회수했다.
그리고 곧장 순천사 거점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추격수의 목적지는 아마도 순천사 거점일 것이다.
* * *
추격수는 차례로 이족들의 군락지를 덮치며 학살을 벌였다.
지금까지 그를 따랐던 이족들은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않고 죽어버렸다.
하지만 추격수를 거부하던 이족들은 그를 보자마자 격렬하게 반항했다.
결과적으로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긴 했지만 그래도 일부 극소수는 추격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조금씩 허공 이족들도 추격수가 폭주하고 있다는 걸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소문이 퍼지며 수많은 이족들이 군락지를 옮겼다.
옮기는 도중 위험한 상황과 마주할 수도 있고, 안전한 곳을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한 대지 조각에는 죽음의 기운이 안개처럼 자욱하게 끼어있었다.
억울하게 죽은 이족들이 남긴 원한이 흩어지지 않고 머물러있던 것이었다.
금방이라도 마두가 탄생할 것 같은 그런 광경이었다.
한 줄기의 검은 기운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와 대지 조각에 착지했다.
이어서 거대한 뿔과 네 개의 큼직한 송곳니가 달린 검은 피부의 마두의 모습으로 변했다.
마두는 곧바로 입을 크게 벌려 검은 기운을 모두 삼켜버렸다.
흡사 귀곡성과 같은 비명 소리와 함께 이곳에 뭉쳐있던 죽음의 기운들은 전부 마두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마두의 미간에 새겨진 흑검 징표가 검은 화염을 뿜어내며 불타올랐다.
삼켜진 검은 기운 중 잡념과 원한은 모두 불타버렸고 남은 순수한 힘만이 온전히 흡수되었다.
대지 조각은 다시 죽음과 같은 정적이 흐르는 평화로운 땅으로 변했다.
정리를 마친 마두가 다시 날아오르려는 순간.
그는 돌연 어느 한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몸에서 마기가 뿜어져 나왔고, 이어서 검은 빗방울이 되어 사방에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십여 리에 이르는 거대한 조각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그때, 조각 너머로 얼굴에 두 개의 혈흔이 남아있는 주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작은 차가운 눈빛으로 조용히 마두를 노려보았다.
“추격수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겠지. 나를 녀석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네 존재에 대해 눈감아줄 뿐만 아니라 순천사에도 알리지 않겠다. 단 네가 먼저 순천사에게 도발을 할 경우 뒷일에 대해선 나 역시 장담할 수 없다.”
마두는 잠시 고민을 한 뒤 물었다.
“혹시 화혈마왕에 대해 아시오?”
“모른다.
마두는 다소 실망했다.
마음속에 살기가 피어올랐다.
당장이라도 눈앞에 있는 여인을 살인멸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현재 추격수는 폭주하며 이곳저곳에서 살육을 벌이고 있다.
눈앞에 있는 여인에게도 꽤 강한 기운이 느껴지긴 했으나 추격수의 적수가 되기엔 부족한 수준이었다.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겠다는데 굳이 말릴 이유는 없었다.
괜히 말리려고 했다가 순천사에게 대적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한참의 고민 뒤.
마두는 살기를 간신히 억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추격수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겠소.”
그는 추격수의 뒤를 계속해서 쫓아가며 재미를 보고 있었다.
때문에, 어떻게 해야 추격수를 찾을 수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멸족을 당한 이족들이 뿜어낸 원한의 기운은 결코 쉽게 지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족들이 남긴 원한의 기운은 추격수가 사라진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을 이용한다면 추격수의 뒤를 쫓을 수 있다.
마두는 주작과 함께 원한의 기운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잠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지 조각에 검은 기운이 구름처럼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계속해서 잘려 나온 조각이 튀어나오고, 심지어 그곳에서 튀어나와 사방으로 흩어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대지 조각 중앙에는 거대한 추격수의 허공 궁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도착했소. 약속을 지켜주길 바라오. 난 탄생한 직후로 지금껏 단 한 번도 순천사와 대적한 적이 없소.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은 없소.”
주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손톱으로 자신의 이마를 그었다.
그리고 총 아홉 개의 피로 물든 부문을 새겼다.
부문을 모두 새기고 나니 혈흔은 모두 사라졌고 그녀의 이마도 다시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이어서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허공 궁전을 바라보며 날아갔다.
그녀는 곧바로 피눈물을 흘리는 거대한 새의 형상으로 변했고,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궁전을 향해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
마두는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군.”
마두는 대지 조각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졌고, 적당한 곳에 숨어 추격수가 갈 때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궁전 내부.
안으로 날아든 거대한 새는 검은 기운에 의해 둘러싸이며 부서져 나갔다.
조금씩 주작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추격수는 한편에 앉아 그 모습을 평온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주작은 검은 기운에 의해 둘러싸인 채 점점 메말라가고 있었다.
피와 살이 금방이라도 모두 증발해버릴 것만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평온한 모습이었다.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추격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무언가 얘기하려는 순간.
주작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깊은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는 자신이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수밖에 없었다.
순천사의 주작이 이용당했다는 사실은 그도 알고 있다.
주작의 모습으로 보아하니 그는 이미 죽음을 불사하며 덤벼들 각오가 되어있는 듯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곳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 * *
어느덧 순천사의 외층 방어선에 도착했을 때.
진양은 이곳에서 청우마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멀리서 방어선을 바라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던 청우마는 진양의 비주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진 선생, 마침 잘 오셨습니다.”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진양이 놀란 듯 물었다.
“주작 대인께서 진 선생께 이 편지를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무사히 편지만 전달한다면 진 선생께서 저희 청우마 일족을 도와주실 거라고 하시더군요.”
청우마는 가지고 있던 옥간을 진양에게 건네주었다.
“추격수 녀석이 폭주하며 사방의 이족을 학살하고 다닌다고 합니다.
이대로 가다간 저희 청우마 일족도 전부 죽고 말 겁니다. 진 선생, 제발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진양은 우선 동술과 사자결을 펼쳐 청우마와 옥간을 살펴보았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옥간을 받아들었다.
“일단 내용부터 확인하고 보도록 하죠.”
옥간의 내용을 살펴보자마자 진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