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383
1383화 결국은 관
한동관은 거의 부서지지 않는다고 봐도 될 정도로 단단했다.
때문에, 이곳에 시신을 넣어둔다면 영원히 썩지 않을 것이다.
육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대비책으로 육신을 넣어두기에 매우 적합한 물건이었다.
영감은 관을 챙겼다.
일단은 새로운 신기를 얻은 셈 치고 보관해두는 것 외에는 별다른 용도가 없었다.
한동 권력은 이미 부서졌다.
아마 꽤 오랜 시간 동안 한동 신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영감은 궁전 뒤편에 새로 마련된 자리에 다시 자신의 저주 위패를 놓아두었다.
그리곤 어떻게 해야 저주 위패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옆에 놓아둔 한동관을 보고 있으니 방금 전 벌어졌던 일들이 다시 떠올랐다.
결국 이 모든 건 자신의 준비가 부족했던 탓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주 위패를 지키는 일에 다른 대신관을 끌어들여 도움을 받고 싶진 않았다.
한참 고민에 빠져있던 영감은 한동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는 지금까지 저주 위패를 보호할 수 있는 적합한 물건을 찾지 못했다.
비록 수중에 수많은 신기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이 중에 위패를 보호하는데 적합한 물건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눈앞에 있는 한동관이야말로 저주 위패를 보관하기에 안성맞춤이 아닌가?
한동관은 쉽게 파괴의 힘도 막아낼 수 있다.
게다가 영감궁 안에 두면 영감궁과 하나가 되므로 잃어버릴 염려도 없다.
지금 상황에서 이보다 더 안전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다른 건 몰라도 일단 파괴의 힘에 의해 부서질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어지게 되는 셈이다.
생각을 마친 영감은 곧바로 저주 위패를 한동관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뚜껑을 덮었다.
이어서 한동관은 천천히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며 이내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이젠 영감궁에 또다시 폭발이 일어난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강한 폭발이라도 한동관을 파괴할 순 없을 테니까.
영감이 한숨을 푹 쉬자 그의 입에서 한기가 뒤섞인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피부도 어느새 이전보다 하얗게 변해있었다.
그러나 그 외에 큰 이상은 없었다.
‘이제야 조금은 안심이 되는군.’
* * *
불가계 밖.
진양이 천천히 눈을 떴다.
이어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제단 앞으로 다가갔다.
그다음 몸을 깨끗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모든 잡념을 머릿속에서 밀어냈다.
며칠 뒤.
진양이 팔을 휘두르자 수십 개의 제기(祭器)가 나타났다.
제기는 스스로 날아가 제단의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진양은 향을 하나 꺼내 피웠다.
이어서 향을 든 채 천궁을 바라보며 정성스럽게 허리를 숙였다.
그리곤 향을 향로에 꽂은 뒤 고개를 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매장(埋葬)!”
향에서 피어오른 연기는 평범한 소리가 되어 구름을 뚫고 올라갔고, 이내 한동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순간 한동관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와 관 전체를 뒤덮었다.
한동관에는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 * *
변화를 느낀 영감은 재빨리 한동관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는 황급히 다시 한동관을 바닥 위로 떠오르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거대한 빙벽이 나타나 영감궁을 둘러싼 것이다.
심지어 하늘조차도 빙벽에 의해 덮여있었다.
뿐만 아니라 영감궁 아래쪽에도 빙벽이 뒤덮여있는 게 느껴졌다.
거대한 얼음 감옥이 영감궁을 완전히 가둬버린 것이다.
영감은 뒤늦게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하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고 말았다.
사실 영감을 죽일 유일한 방법이 저주 위패를 파괴하는 것뿐이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주 위패에 일어나는 모든 상황, 모든 일들이 영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동관의 핵심은 한동 권력이 아니라 관 그 자체가 가진 용도다.
관은 죽은 사람을 수습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물건이다.
그리고 시신이 들어있는 관은 당연히 땅에 묻게 된다.
육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대비책을 보관하는 용도로 한동관을 사용할 수 있는 이유.
그것은 바로 매장된 사람이 직접 관뚜껑을 여는 게 아닌 이상 그 누구도 관뚜껑을 열 수 없기 때문이다.
즉, 관 안에는 외부와는 완전히 단절된 폐쇄된 세계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만약 저주 위패가 이곳에 갇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영감 대신관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다.
영감은 멍한 표정으로 한동관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는 자만심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자만심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잊고 말았다.
바로 관이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였다.
때문에 그는 한동관을 단지 관의 형태를 띠고 있는 하나의 신기라고만 여겼던 것이다.
거대한 얼음으로 만들어진 관에 둘러싸인 영감궁이 천천히 천궁에서 모습을 감췄다.
* * *
같은 시각.
진양은 제기와 제단을 정리한 뒤 몸을 숨기고 불가계 안으로 향했다.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한동관은 이미 진작 진양에 의해 연화되었다.
그리고 진양은 연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대비책을 마련해두었다.
누군가 한동관의 연화를 완전히 지워버리지 않는 이상 대비책은 반드시 작동하게 되어있다.
진양은 매번 진심으로 영감을 제거할 생각으로 그를 공격했다.
다만 제대로 먹혀들지 않자 어쩔 수 없이 조금씩 간을 볼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도 영감이 가지고 있는 불사 신기의 정체를 알 수 없긴 했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근본적인 규칙만 제대로 파악한다면 대응할 방법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 방법은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방법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진양에게 있을지는 미지수다.
예를 들어, 진양은 망자의 세계에서 확실하게 태호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태호를 망자의 세계로 끌어들일 능력은 없었던 것처럼.
진양은 천궁 밖에 서서 조용히 기다렸다.
영감은 오직 자기 자신과 자신의 능력만 신뢰하는 사람이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중의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진양도 자기 자신을 가장 신뢰한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똑같을 것이다.
영감의 두 다리가 사라진 것으로 미루어봤을 때, 그는 아마도 처음으로 상처를 입은 게 아닌 듯했다.
그래서 과할 정도의 반응을 보인 것이다.
보통 이런 일이 한 번 일어나면 안전의 위협을 느끼게 되는데, 두 번이나 일어나면 그때는 위협이 공포로 바뀌게 된다.
영감궁에는 영감이 만족할 만큼 완벽하게 불사 신기를 보호할 수 있는 물건이 없는 듯했다.
그래서 진양은 위험을 무릅쓰고 한동관의 단단함을 직접 그에게 확인시켜줬다.
진양은 관 안으로 들어가 영감의 공격을 막아내고, 결국엔 어쩔 수 없이 관을 버리고 도망치는 척했다.
이 장면을 본 영감이 어떤 생각을 할지는 너무나도 뻔했다.
영감이 자신의 불사 신기를 한동관 안에 보관하려고 했던 것 자체는 문제가 될 게 없다.
심지어 한동관을 음식을 보관하는 용도로 쓴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것이 관이라는 점은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
진양의 눈에 그것은 관이다.
관을 제작한 진 장거의 눈에도 그것은 관이다.
물건이 만들어진 주된 목적은 관으로서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였으며, 그 외의 것들은 전부 부수적인 것들인 것이다.
진양은 마침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제기도 가지고 있었으며, 관을 완전히 연화시킨 상태다.
그래서 간편하게 마지막 일격을 가할 수 있게 됐다.
상황은 한층 더 재미있어졌다.
매장된 한동관은 관의 절대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외부의 힘에 의해 부서지지 않는 것, 그 누구도 함부로 관뚜껑을 열 수 없는 것, 시간의 흐름을 막아주는 것, 외부 세계와 단절시키는 것 등등.
이 모든 성질은 관이라는 기능을 다하기 위해 더해진 것들이다.
그렇게 빠져나올 수 없는 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졌다.
영감이 밖으로 빠져나오려면 한동관을 열어야만 한다.
그러나 관은 영감궁과 함께 매장되어버렸다.
불사 신기는 완벽하게 한동관의 보호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안전한 상태다.
자살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죽지도 못하고 영원히 영감궁에 갇히게 되었다.
영원히 매장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다.
관을 매장하려면 묻을 곳이 필요하다.
토장이든, 현관장(悬棺葬, 관을 절벽 동굴이나 바위 틈에 두는 장례 방식)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한동관은 영감궁에 매장되었다.
그리고 영감궁은 불사 신기에 의해 강제로 매장 상태가 되었다.
무한의 순환의 고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매장된 땅은 오직 이 순환의 고리 안에서 판정될 수밖에 없다.
판정 결과는 그 어떠한 소식도 밖으로 퍼지지 않는다는 것.
정상적인 결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정상적인 감각에서 사라지고, 정상 중에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
이렇게 영감은 완벽하게 함정에 빠지게 된다.
존재한다면 존재하는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는 그런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 * *
천궁 두 번째 층.
거대한 얼음관이 나타나는 순간 두 번째 층에 머무르고 있던 모든 대신관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영감궁이 얼음관에 의해 뒤덮이는 것과 얼음관이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왜곡을 일으키며 사라지는 것을 모두가 목격했다.
원래 영감궁이 있던 자리는 현재 텅 빈 공터만이 남아있었다.
그 누구도 더 이상 영감 대신관이라는 존재를 느낄 수 없었다.
심지어 영감 권력의 존재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대신관들은 큰 공포감을 느꼈다.
비록 영감이 태호 천제를 대신하여 발언권을 갖고 이런저런 명령을 내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긴 했지만 단순히 불만을 가지고 있던 게 전부였다.
기껏해야 발언권을 빼앗고 싶었던 게 전부였을 뿐이다.
물론 한층 더 나아가 영감이 죽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었다.
어차피 그는 죽어도 다른 사람으로 대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임 영감 대신관은 결코 기존의 다른 대신관보다 우월한 발언권을 가질 수 없다.
말 그대로 ‘신입’이기 때문에 서열도 제일 말단으로 밀려나게 된다.
심지어 아무런 기반 없이 영감 대신관이 된 자라면 기존의 대신관들보다 훨씬 더 못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영감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영감 권력도 사라져버렸다.
일전에 영감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두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영감은 별일 아닌 것처럼 행동하며 일을 덮으려고 했다.
혼자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다른 대신관에겐 도움을 받지 않았다.
다른 대신관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조용히 그가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눈앞에 벌어진 상황은 구경하던 대신관들을 당황스럽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대신관들은 문득 지난번의 일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