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287
287화 그렇게 음흉한 계획이 있었다니
구름층을 뚫고 나온 유령호는 바람을 받으며 허공 위로 미끄러지듯 날아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구름의 바다 위로 수십 리나 이어진 파도가 구름층 아래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공기 중으로 수증기가 모여들기 시작했고, 모여든 수증기는 운해(雲海)를 조금씩 소멸시켜나갔다.
구름층이 조금씩 얇아지며 운해 아래 있던 거대한 파도도 함께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온 세상에 마치 땅과 하늘이 뒤집어지듯이 큰 변화가 일어났다.
운해 아래로는 놀랍게도 빼곡하게 들어선 숲이 대지를 뒤덮고 있었다.
높은 하늘에서 볼 땐 나무에 의해 대지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굵직한 장대비가 대지를 향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산간 골짜기로 몰려든 물은 순식간에 급류를 만들어냈다.
심지어 어떤 곳은 빠른 물살에 의해 거대한 파도가 만들어지며 주위를 휩쓸기도 했다.
겨우 일 각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대지의 구 할 이상이 수면 아래로 잠겨버렸다.
미쳐 잠기지 않은 높게 솟은 봉우리는 마치 섬처럼 수면 위로 둥둥 떠 있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모두들 넋을 놓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 진양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 도착했습니다. 다들 살펴들 가세요.”
“아! 선장님, 반가웠습니다. 그럼 이만!”
“여기까지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연이 닿으면 또 뵙도록 하죠!”
진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들 인사를 남기곤 쏜살같이 배 밖으로 튀어 나갔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변화, 그리고 사방에 농후한 영기까지.
누가 봐도 심상치 않은 곳이 틀림없었다.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엄청난 게 있다는 것만은 확실한 장소였다.
하다못해 영약이라도 찾게 된다면 적어도 이곳까지 올 때 쓴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지도 모를 것이었다.
때문에 모두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방으로 튀어 나가버린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먼저 빛에 휩싸인 채 튀어 나가자 나머지 사람들도 뒤늦게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배에 있던 승객은 전부 사라져버렸다.
심지어 초반부터 함께 여정을 보내온 등종 삼인방조차 인사말도 한마디 없이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텅 빈 유령호에는 선장인 진양과 선원들만 남게 되었다.
“선장님, 그냥 이대로 놓아주시는 겁니까?”
도파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다른 선원들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진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어쩔 건데?”
진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럼 등쳐먹을 거 다 처먹고 이제 와서 뒤통수를 치라는 거야?’
“어휴…….”
진양이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들 철 좀 들어라. 비경에 들어왔다고 해서 안전한 건 아니라고. 괜히 남해에 우리에 대한 악명이 퍼지기라도 해봐. 앞으로 활동하는데 큰 제약을 받게 될 거라고.”
“하지만 아쉬운걸요…….”
한 선원이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뭐가 아쉬워? 너희들 내가 받은 돈 외에도 이런저런 명목으로 계속해서 저 사람들한테 돈 뜯은 거 모를 줄 알아? 이미 빈털터리가 됐을 텐데 뭘 더 뜯겠다는 거야? 속옷이라도 벗겨오게?”
“…….”
모두들 입은 꾹 다문 채 진양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승객들은 영석이 부족해서 가지고 있던 물건으로 대체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확실히 더 이상 뜯어먹을 수 있는 건 없는 듯했다.
“다들 잘 생각해 보라고.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은 제한된 시간 동안만 존재하는 비경이잖아. 겨우 우리들끼리 여기서 좋은 물건을 건져봤자 얼마나 건질 수 있겠어? 사방에 영약과 영초가 널려있다고 한들 우리끼리 주워올 수 있는 양이 얼마나 되겠냐 이 말이지.”
진양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잘 들어. 난 저 녀석들을 속일 생각 없어. 이번엔 정직하게 받을 거라고. 물론 이미 저 녀석들을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저 녀석들이 낸 푯값은 훨씬 넘기고도 남긴 하지만. 어쨌든 돌아갈 때도 정직하게 받고 태울 거니까 그렇게들 알아.”
순간 정적이 흘렀다.
진양의 말이 맞다.
이곳까지 무사히 도착한 배는 유령호가 유일했다.
유령호보다 앞장서서 가던 배들은 전부 박살 나고 없었다.
그렇다면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유령호를 타는 것뿐이었다.
아무리 이곳에 수많은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해도 이곳에 눌러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주위에 살아있는 생명체가 없는 것만 봐도 이곳이 얼마나 척박한 곳인지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이곳이 항상 조용한 곳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지금처럼 비경이 나타났을 때만 잠잠한 것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어쨌든 비경을 떠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유령호를 타는 것뿐!
별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이들은 처음 비경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아니, 이곳으로 오는 여정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이미 진양의 먹잇감이 되어있었던 것이었다.
“아아…….”
한 선원이 털썩- 무릎을 꿇으며 탄성을 내뱉었다.
“그렇게 음흉한 계획이 있었을 줄이야.”
“그러게. 매번 책을 읽고 계실 때마다 그러려니 했었는데, 이제 보니 배운 사람은 확실히 다르구나.”
“듣자 하니 이미 저번에 창고 정리를 하면서 벌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벌어들이셨다던데.”
“그럼 이곳을 떠날 땐 그것보다 훨씬 더 이득을 본다는 뜻이잖아?”
모두들 존경심 가득한 눈빛으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물론 대놓고 강도처럼 탈탈 털어먹는다면 한 방에 크게 당길 순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도 따르고 장기적으로도 손해였다.
괜히 원한을 샀다가 언제 어디서 등 뒤에 칼을 맞을지 모르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눈 뜬 상태로 코를 베어 가겠다는 셈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진양은 꿩 먹고 알도 먹은 셈이었다.
이들은 비록 코를 베이긴 했지만 어쨌든 이득은 얻었다.
물론 결론적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건 진양이긴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진양은 호의적인 차원에서 모두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어떻게 보면 도움을 주고 등쳐먹는다고 볼 수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도움을 받았으니 추후에 진양에게도 협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해적의 세계에선 일에 대한 구분이 매우 칼 같았다.
거래와 이들을 구해준 건 각각 별개의 일이었다.
물에 빠진 이들을 건져주고 이곳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던 약속은 이미 지켰다.
이곳에서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호의를 베푼 것과 다름없었다.
역겹다고 욕을 하던, 등 뒤에서 욕을 하던, 아니면 대놓고 달려들던, 바뀌는 건 하나도 없을 것이었다.
아무리 배은망덕한 자라고 하더라도 그저 머릿속으로 상상만 할 수 있을 뿐 실제로 진양에게 달려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때문에 추후에 진양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 보수가 매우 짜다고 할지라도 말이었다.
이것이 바로 모든 해적이 따르는 규칙, 누군가 먼저 정을 베풀었다면 반드시 갚아야 하는 규칙이었다.
도파는 조용히 선수에 서 있는 진양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상당히 못 미더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감탄스러운 구석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이득만 본 줄 알았더니. 이런 식으로 인맥까지 강제로 만들다니.’
진양의 잔꾀에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도파가 모르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진양이 애초부터 모든 것을 이렇게 계획한 건 아니었다.
진양은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어차피 진양이 이곳에 들어온 목적은 내부에 있는 보물 따위를 얻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재미를 본 건 이곳에 온 김에 본 것일 뿐이었다.
강제로 인맥을 만든 것 역시 운이 좋았던 것일 뿐이었다.
이제 진양은 새로운 문제와 마주하게 되었다.
진양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장해도군이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능침의 입구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리고 지금 가장 골치 아픈 단계와 마주하게 되었다.
한때 보았던 능침 입구의 모습.
그곳과 똑같은 곳은 찾아냈다.
진양은 당시 보았던 장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이 바로 그곳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구 할 이상의 땅이 물에 잠겨버렸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처음 이곳으로 온 진양은 이제 어디로 가야할 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어디로 가야 하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
환한 대낮이었기 때문에 별을 보고 방향을 잡는 건 불가능할 듯했다.
게다가 대지가 물에 완전히 잠겼기 때문에 봉호도군의 능침 입구일 곳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추정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진양은 등종 삼인방이 떠나간 방향으로 유령호를 몰기 시작했다.
등종 삼인방이라면 다른 사람들보다 이곳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중에는 진양이 참고할만한 정보도 분명히 있을 것이었다.
단지 그들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일단 조용히 따라가 보는 걸로 하지.’
“다들 잘 보고 있어. 비싸 보이는 거 있으면 알아서 건져내고 보도록 해. 난 할 일이 있으니까 괜히 귀찮게 하지 말고.”
진양은 선실 안 용연향을 말려둔 곳으로 향했다.
이미 굳기 시작한 부분의 중간을 잘라냈다.
단단하지 않은 말랑한 촉감이었다.
새까만 용연향에선 약간의 비린내가 풍겨오고 있었다.
그러나 손가락으로 가볍게 쓸고 지나가니 미묘한 향기가 풍겼다.
진양은 오동염을 무려 세 층이나 일으켜 용연향을 보호하고 천천히 굽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흑진주 비슷한 덩어리에 진원을 가미하여 강제로 가루로 만들었다.
이어서 용연향 외에도 여러 재료들을 함께 배합하기 시작했다.
결코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니었다.
사용되는 재료, 방법, 수인, 그리고 진원과 손의 사용 유무까지.
모든 것이 세심하게 정해진 방법에 따라 이루어졌다.
진양의 얼굴은 매우 진지했다.
각 과정마다 매우 신중했으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후에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정도였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나니 어느덧 하루가 지나있었다.
진양이 만들어낸 건 총 아홉 개의 얇은 향이었다.
향은 각각 쟁반 위에 올려져 있었다.
진양은 그곳에 진원과 기혈을 쏟아부어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시진 정도가 지났다.
한 개는 흑진주와 같이 새까맣게 광이 났고, 나머지 두 개는 표면은 거칠고 다소 붉은 기운이 도는 검은색이 되었다.
진양은 못생긴 두 개의 향은 과감하게 주머니에 넣어버렸고, 나머지 한 개만 집어 들었다.
다시 갑판으로 올라온 진양은 향대를 놓고 향로를 설치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을 꺼내 뒤쪽에 걸었다.
진양은 조용히 앉아 정신을 가다듬으며 마음을 진정시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