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429
429화 구지신후로 비롯된 오해
막정유가 화신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흘누는 구지신후가 시신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알고 있기에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진양이 능력을 이용해 흔적을 없앴던 것은 누군가 자신의 뒤를 밟을까 봐 흔적을 지우기 위해 사용했었던 것이었다.
당시 진양이 위장했던 신분은 행동이 상당히 의심스러웠기 때문에 분명 누군가 미행하거나 조사를 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만약 상대가 남만 전체를 통틀어 이런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진양 한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챈다면 어떻게 될까?
막정유가 죽은 뒤, 그는 가장 먼저 찾아와 화신에 남은 흔적을 제거하려 할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일련의 생각을 마친 진양은 막정유를 성불시키는 것을 포기했다.
능력의 효과는 너무나도 완벽했다.
성불만 시키고 나면 백지장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진양 역시 흠천보감을 사용하여 실험해 본 바가 있기에 이러한 특징을 잘 알고 있었다.
심사숙고 끝에 포기하기로 한 진양은 시선을 돌려 노촉인을 바라보았다.
이번 사건 중 가장 죽지 말았어야 할 인물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한 게 있다면 그저 열심히 제일 후계자로서 일한 것뿐이었다.
노촉인의 뺨에 난 작은 칼날자국을 발견한 진양은 한숨을 푹 쉬며 화장 도구를 꺼내 그의 상처를 가려주었다.
그리고 하는 김에 그가 정말로 죽은 것인지도 확인해 보았다.
모든 일을 마친 진양은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구지신후에게 기억을 빼앗길 위험보단 자신이 상대를 성불시킬 수 있을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발각될 위험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둘 다 부정적인 결과라면 차라리 차악을 택하는 게 나았다.
이렇게 된 이상 직접 모험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살펴보는 수밖에.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고.
어느덧 칠 일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조문도 완전히 끝이 났다.
조문이 끝나기 무섭게 관은 곧바로 매장이 진행되었다.
막정유는 비록 불명예스럽게 죽긴 했으나, 그는 조상 묘지에 함께 묻히게 되었다.
종주로서 지내는 동안 세웠던 공적은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막판에 그가 한 행동은 종문을 배반한 엄중한 죄에 속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 죗값을 치러야만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나마 최양평이 나서서 이들을 말렸기에 조상 묘지에 묻히게 된 것이지, 최양평마저 나서주지 않았더라면 막정유는 아마도 평범한 제자만도 못한 취급과 함께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었다.
행상을 나가는 사람은 조영휘 한 사람뿐이었다.
그는 노촉인과 다르게 막정유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어쨌든 사제 사이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도의적인 차원에서 운구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렇게 조영휘가 홀로 관을 들고 앞장서서 장지로 향했고, 그 뒤로 몇몇 무리의 사람들이 뒤따랐다.
운구 행렬이 떠나고 난 뒤.
영당 내부는 텅 비게 되었다.
오늘 내일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쭈글쭈글한 한 노인이 영당의 물건을 하나씩 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있던 은거울을 치우려는 순간.
노인은 저도 몰래 은거울을 꺼내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자 은거울에 며칠 동안 영당 내부에서 발생했던 일들이 거꾸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잠시 뒤.
거울에 떠올랐던 장면은 은은한 빛과 함께 사라졌다.
노인은 계속해서 남은 잡동사니들을 모두 치운 뒤 그곳을 떠났다.
영당을 빠져나온 노인은 마종 내 구석진 위치에 있는 작은 집으로 향했다.
노인은 의자에 반쯤 누운 채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나 그의 숨결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전백, 거기 있느냐?”
문밖에 있던 한 젊은 제자가 대답과 함께 쪼르르 달려왔다.
노인은 품속에 있던 은거울을 꺼내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어떻게든 밖으로 보내도록 하거라. 아직 살아있을 때 마지막으로 쥐어 짜낸 힘으로 얻은 것이다. 대인께 아무 이상 없다고 전하도록.”
그 말을 마지막으로 노인은 숨이 끊어졌다.
은거울을 품속에 챙겨 넣은 젊은 제자는 비통하면서도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밖으로 나갔던 젊은 제자가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다시 죽은 노인의 집으로 돌아왔다.
함께 온 무리에 있던 한 중년인이 노인의 시신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리 못해도 반년은 더 살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씁쓸하구만. 다들 그만 쳐다보고 얼른 움직이자고.”
특별한 재능도 없어 지긋한 나이가 되어서도 고작 삼원 경지에 오른 것이 전부였다.
재능도 실력도 없이 그저 종문 내의 온갖 잡무를 맡아서 하던 터라 정식으로 제자의 칭호도 받지 못했다.
이런 사람의 죽음을 크게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막정유와 노촉인의 장례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을 무렵.
죽은 노인이 남긴 은거울은 젊은 제자를 통해 어디론가로 보내졌다.
그리고 한참을 돌고 돈 끝에 지하 궁전까지 오게 되었다.
한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땅에 엎드린 채 두 손으로 은거울을 들고 있었다.
지도 앞에 있던 남자가 다가와 그것을 집었다.
“대인, 황천종주의 장례가 오늘 막 끝났다고 합니다. 그동안 정보를 제공하던 첩자도 오늘 숨을 거두었다고 하고요. 보물을 통해 살펴본바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던 걸로 파악됐습니다. 대인께서 주시하라고 하셨던 인물들 모두 이 일과는 크게 연관이 없는 듯합니다.”
“알겠다. 이만 물러가거라.”
진양이 장지에서 다시 돌아왔을 때.
영당 곳곳에 걸려있던 하얀 천과 깃발은 모두 철거가 된 상태였고, 위패도 어디론가로 옮겨진 뒤였다.
아무래도 마종 사람들은 종주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던 듯했다.
그게 아니라면 장례가 끝나기 무섭게 영당을 깨끗이 치워버릴 리 없기 때문이었다.
한편, 돌아온 조영휘도 영당을 발견하곤 주위를 돌아보며 물었다.
“누가 한 짓이냐?”
조영휘의 물음에 근처에서 빗질하고 있던 한 제자가 새하얗게 질린 채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종주도 죽었고, 첫 번째 후계자도 죽었다.
그러므로 두 번째 후계자인 조영휘가 종주의 자리를 물려받게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
즉, 그의 지위와 신분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뜻이었다.
그때, 진양이 조영휘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중대사를 어찌 감히 일개 제자가 정할 수 있겠는가?
누가 봐도 다른 사람이 시키고 꼬리 자르기를 시킨 게 분명했다.
“다른 건 다 치웠어도 위패 정도는 남겨놨겠지. 위패는 어디 있느냐?”
진양이 주위에 있던 다른 제자들에게 물었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자 조영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한바탕 피바람이 불겠다 싶던 차에, 어느 한 제자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진 조사님,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몰라서 아무것도 말씀드리지 못하는 겁니다. 영당을 치운 건 전 영감입니다. 그런데, 정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대로 죽었다고 합니다.”
“죽었다고? 어쩌다가?”
“원체 나이가 많았던 사람이라 오늘내일하던 상태이긴 했는데, 작년까지만 해도 족히 두 해는 더 버틸 거라던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가버릴 줄은 소인도 몰랐습니다.”
진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작년까지만 해도 두 해는 더 버틴다던 사람이 겨우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죽다니.
어딘가 상당히 미심쩍었다.
흠천보감과 같은 보물을 사용하여 과거를 살펴보기 위해선 수명을 써야 했다.
별다른 방해가 없는 상태라고 가정했을 때, 살펴보는 과거가 짧을수록 사용하는 수명의 양도 적었다.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기에 전 노인의 시신을 살펴보고 싶긴 했으나, 금세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딱히 그럴 필요도 없었고, 얻는 것보단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진양이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휘저었다.
“가서 안 찾고 뭐 하고 있는 게냐?”
진양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제자들은 부리나케 위패를 찾으러 갔다.
조영휘는 조용히 자리를 떠나 매번 술을 마시던 절벽으로 향했다.
뒤따라온 진양은 조용히 그의 술잔에 술을 채워주려 했다.
그러나 그는 진양에게 주전자를 낚아채 가더니 그대로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그건 취생몽사입니다. 답답한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죽으면 안 되죠.”
그렇게 조영휘는 시원하게 몇 사발이나 되는 술을 들이켰고, 진양은 그제야 주전자를 다시 챙겨 넣었다.
조영휘는 아무 말 없이 술이 담긴 조롱박을 꺼내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그만하시죠. 종문 내의 상황을 모르시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비록 종주가 먼저 잘못하긴 했지만. 만약 누군가 사전에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면 단순히 종주 하나 죽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마종도 나락에 떨어졌을 겁니다. 종문 내의 사람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는 건 당연한 겁니다.”
“그냥 답답해서 그럽니다.”
조영휘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전부 이해합니다. 그냥 마음이 불편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도대체 왜 그래야만 했는지 이해가 안 돼서 말입니다.”
“쓸데없는 잡념은 이만 술 한 잔과 함께 흘려보내시죠. 마종이 나락에 떨어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앞으로 어떤 종주가 되어야 할지도 잘 생각해 보시고요.”
진양은 조영휘에게 진실에 대해 얘기해 주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조영휘의 성격을 고려해 보았을 때 진실을 모르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중에 훌륭한 종주가 된다면 그때 얘기해줘도 늦진 않을 것이다.
밤이 깊었으나 조영휘는 계속해서 술잔을 기울였고, 진양은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자리를 빠져나온 진양은 화요에게 편지를 전해 주고, 구지신후가 나타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자신의 추측을 얘기해 주었다.
화요는 마침내 막정유가 오래전에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결코 자신의 조카딸을 양심 없이 버린 게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구지신후로부터 비롯된 오해였던 것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화요의 성격으로 보아 결코 구지신후를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었다.
과연, 두 시진도 채 지나지 않아 화요가 진양의 거처로 찾아왔다.
그녀의 뒤로는 못 말리겠다는 표정의 흘누가 서 있었다.
누가 봐도 화요에게 끌려온 듯한 모습이었다.
“제가 괜한 소리를 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감히 이런 때에 모습을 드러낼 순 없을 걸세.”
흘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순간에 구지신후가 나타날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내키지 않으면 돌아가도 좋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냥 가.”
화요가 날카롭게 쏘아붙이자 흘누는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