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hise in the Otherworld RAW novel - Chapter 134
제 134화
9. 134화
화려한 궁성.
그곳은 모든 인간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아름답고 반짝이는 옷을 입고 자신의 얼굴이 다 비치는 매끈한 대리석 바닥을 밟는 것은 황홀하기까지 한 일이었다.
더욱이 수많은 이들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두려워하는 눈빛을 보는 것은 왠지 모를 희열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곳은 이런 화려함 속에서 잔인할 만큼 무시무시한 암투가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우쭐대지 마라. 그 비밀은 여전히 유효한 일이니까.”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한 여인의 입술이 귓가에 닿으며 속삭이는 목소리에 등줄기에서는 소름이 돋아났다.
잊었던 공포가 다시금 밀려왔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명령에 다시금 들어온 곳이었으니 도망을 칠 수도 없었다.
더욱이 그녀는 단 한 번만이라도 다시 자신의 아이를 만나고 싶었다.
설령 자신이 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해도 자신의 아들의 얼굴을 매만지고 싶었다.
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하면서도 커다란 문이 열리고 셀라는 왕좌에 앉아 있는 어린 왕을 만났다.
태어난 순간조차도 얼굴 한 번 보지 못했지만 셀라는 자신의 아들임을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여인이 나의 새로운 유모인가?”
“예! 그렇습니다, 국왕 폐하.”
테슬란은 자신의 친모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친모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말해 주지 않은 것이다.
테슬란의 어머니는 반베른 국왕의 아내인 보를레앙 왕비였고 보를레앙 왕비는 역적들의 손에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동안은 레일리 공주가 테슬란 국왕을 보살폈지만 레일리 공주가 회임을 해 테슬란을 돌볼 이가 없었다.
아니 있기는 했지만 눈앞의 셀라로 교체가 되었다.
그 교체도 테슬란의 의지가 아닌 아르센의 의지였으니 테슬란은 불만이 있어도 입 밖으로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테슬란의 친모인 셀라 또한 자신이 테슬란 국왕의 친모라는 사실을 밝힐 수 없었다.
자신이 친모라는 것이 밝혀지면 왕의 정통성에 큰 상처가 나 왕의 자리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것이다.
‘내 아들아. 너무나도 빛이 나는구나. 그래. 그곳이 너의 자리다.’
셀라는 자신의 배에서 낳은 아들이 왕좌에 앉아 있는 모습에 감격을 했다.
비록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지만 비천한 몸인 자신이 행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국왕 폐하를 잘 모시게.”
“예! 아르센 대공 각하.”
셀라는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아르센에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처음 아르센을 보았을 때와 비교를 한다면 아르센도 상당히 늙었지만 여전히 멋있는 남자였다.
세간에서 아르센의 평가는 위대한 영웅이었다.
비록 아르센은 기억을 할지 못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위대한 영웅의 여자였던 순간이 있다는 것도 셀라에게는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아들을 빼앗긴 고통스러운 나날이 길었지만 아르센의 도움으로 테슬란과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그녀는 진심으로 아르센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더욱이 테슬란은 자신과 아르센의 아들이었으니 셀라는 아르센에 대한 원망보다 자부심과 뿌듯함이 더 컸다.
‘왕은 당신의 아들입니다. 당신과 너무나도 닮은 얼굴을 보세요.’
셀라는 뒤돌아서 멀어지는 아르센의 등을 보며 전하지 못한 말을 입속에 머금은 채로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이름이 뭐지?”
“셀라. 셀라라고 합니다. 국왕 폐하.”
“셀라. 이상한 이름이군.”
테슬란의 심기는 편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 자식의 칭얼거림이라는 생각에 셀라는 기쁘게 대답을 했다.
“편하신 대로 불러 주시면 됩니다, 폐하.”
자신을 모시던 시종장도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고 주변에는 온통 차가운 표정의 시종들과 딱딱하고 무서운 기사들뿐이었다.
자신의 질문에도 대답은 짧기만 했고 함께 놀아 줄 만한 이도 없었다.
그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애정에 굶주려 있던 테슬란은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어 주는 셀라를 보며 처음에는 당황하고 말았다.
‘칫! 어차피 나를 감시하려고 붙인 여자겠지.’
아직 어리지만 영특한 테슬란은 자신의 처지가 꽤나 위태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르센에게 왕위를 넘겨주겠다는 말을 했지만 아르센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 갑갑하고 공포스러운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런 소원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테슬란은 자신의 친모인 셀라를 경계심 가득히 대했지만 자신에게 헌신적으로 대하는 셀라의 모습에 점점 셀라에게 의지해 갔다.
어차피 테슬란에게 의지할 수 있는 이는 왕궁 내에서 셀라가 유일했다.
“대체 뭐 하는 짓입니까?”
“뭘 말이오?”
커피 한 잔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던 아르센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자신의 집무실로 찾아온 자신의 아내를 볼 수 있었다.
“그 여자를 어째서 테슬란에게 붙여 준 거냐는 말입니다!”
셀라가 테슬란의 친모라는 사실을 아는 레일리로서는 아르센이 지시한 일이라는 것에 잔뜩 화가 났다.
아르센에게 왕위를 양위하게 시켰더니 시종장의 목을 베어 버린 아르센이었다.
시종장이 쓸데없는 소리를 했음을 알고 놀랐지만 아르센이 그런 자신을 보호하려고 시종장을 죽인 것이라 여긴 레일리는 일단 잠자코 기다릴 생각이었다.
어차피 시간은 자신의 것이라 여긴 레일리였으니 고립된 테슬란이 큰 실수를 하게 되면 자연히 아르센도 왕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계산도 든 것이다.
하지만 셀라의 등장은 레일리도 당황스럽게 만드는 일이었다.
진작에 죽였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놔둔 것이 실수였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얼굴 펴시오, 부인. 그렇게 찡그리면 아이한테 안 좋습니다.”
“대공.”
아르센은 잔뜩 화가 난 레일리의 찡그려진 이마를 손가락으로 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꽤나 독한 짓을 하고는 있었지만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함께해 온 시간 또한 결코 짧지는 않아 나름 정도 들어 있었다.
더욱이 방법이 잘못되었지만 아르센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에 나름 측은함도 드는 아르센이었다.
“어디 우리 아기 잘 있나 한번 볼까?”
“대…… 대공!”
아르센이 살짝 불러 오는 레일리 공주의 배에 자신의 귀를 대자 레일리 공주는 주변의 시종과 기사들을 보고서는 얼굴을 붉혔다.
귀족의 체통에 걸맞지 않은 행동이었기에 당황한 것이었지만 자신의 배에 든 아이를 기뻐하는 아르센의 모습이 마냥 싫지는 않았다.
“요즘 아이의 이름을 무어라 지어야 하나 고민이 참 많습니다. 부인은 생각해 보신 것이 있습니까?”
“예? 아…… 아직. 대공께서 정해 주시면 따르겠습니다.”
아직 나오려면 한참의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벌서부터 이름을 지을 생각인 아르센의 모습에 레일리는 얼굴을 붉혔다.
“하하하! 건강하게만 나와 다오.”
기뻐하고 있는 아르센을 보며 더 이상 화를 낼 수도 없는 레일리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배를 한참 아르센에게 맡기고 있어야만 했다.
아르센이 무슨 생각으로 테슬란에게 친모인 셀라를 붙여 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르센에게도 계획이 있을 것이라 여기는 레일리였다.
‘내가 아들만 낳는다면 당신도 욕심이라는 것이 생기겠지요.’
레일리는 팔불출처럼 자신의 배에 대고 아이와 놀아 주는 아르센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르센을 괴롭혀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레일리는 껄끄럽기는 하지만 아르센의 연인이자 첩인 올리비아를 호출했다.
“부르셨다 들었습니다, 대공 부인.”
“우리 사이에 격식 따위는 필요 없으니 앉아.”
레일리는 올리비아가 예를 표하며 인사를 하는 것에 귀찮은 듯이 손을 내저었다.
귀족 남성에게 첩은 그리 흠이 될 일도 아니었다.
아르센 정도 되는 이라면 오히려 부족할 정도였으니 레일리는 올리비아에게 별다른 질투를 느끼지도 않았다.
어차피 본처는 자신이었고 아르센의 아이를 배 속에 두고 있었기에 과거와 같은 열등감을 올리비아에게 가질 이유도 없었다.
특히나 아르센이 자신의 정통성 있는 자식은 오직 레일리 자신에게서 낳은 아이라 선언을 해 주었기에 더욱더 올리비아를 경계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본처가 후처나 첩을 대하듯이 레일리는 올리비아를 자신의 앞에 앉히고서는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고자 했다.
“셀라 그 여인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예. 대공께서 그 여인을 불러들인 것을 저도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대공께서는 대체 어떤 생각이신지 모르겠네.”
올리비아는 한숨을 내쉬는 레일리를 보며 자신이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에 후회가 들었지만 이제 와서 다시 되돌릴 수는 없었다.
평생 자신이 안고 가야만 하는 업보인 것이다.
“후우! 너도 대공 각하를 지아비로 두고 있으니 대공 각하를 위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예. 당연한 일입니다.”
올리비아는 레일리의 말에 마침내 레일리가 자신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외면해 왔지만 배 속의 아이로 자신감을 가진 모양이었다.
‘딸이면 어쩌려고?’
올리비아는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간 레일리의 모습이 웃기기는 했지만 지금은 레일리를 떠받들어 줘야 한다는 생각에 레일리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호호호호! 그래. 대공 각하께서 그런 면이 있으실 줄은 나도 몰랐어.”
“공주님을 참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나를?”
“예. 제가 질투가 날 정도로 레일리 공주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어찌나 좋아하시던지요.”
레일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마음에 드는 올리비아에 자신이 걱정을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확실히 해야겠지.’
레일리는 올리비아를 확실히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 무엇보다 확실한 방법이 있었으니 레일리는 결코 올리비아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려는 것이었다.
“레딘은 잘 크고 있나?”
“…….”
레일리 공주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에 올리비아의 몸이 움찔 떨렸다.
아르센과 올리비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레딘이었다.
물론 아직도 아르센이 정식으로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지만 분명 아르센의 아들이었다.
“예. 잘 크고 있습니다.”
올리비아의 대답에 레일리는 미소를 지은 채로 말을 했다.
“내가 그동안 너무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 같네. 그 아이가 결코 남도 아니었는데.”
“감사합니다. 대공 부인.”
“호호! 감사는. 나는 요즘 한 가지 고민이 있단다.”
“고민이라면?”
“아! 별것은 아니고 대공 각하의 베네틱 가문이 무척이나 외로운 것이 그 걱정거리란다. 대공 각하께서 자리에 오르신다면 베네틱 가문을 이을 아이가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레딘이라면.”
올리비아는 레일리의 말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아르센의 아들이었지만 천한 상인의 어미를 둔 죄로 꿈을 접어야 하는 아이였다.
어미로서는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는 레일리로 인해 올리비아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짊어지리라 다짐을 했다.
그렇게 레일리와 올리비아는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