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76
약먹는 천재마법사 176화
등대(5)
“내 고향의 정경이다.”
그리샤가 아련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는 모두 불타 없어져 버린, 다시는 찾아갈 수 없는 오지의 밀림…… 내 부족들을 모두 그곳에 묻어두고 왔지.”
“…….”
“스스로의 심상을 투영한다는 건 이런 의미야. 물론 이런 일을 해내려면 엄연히 스스로의 수행과 경지가 동반되야 할테지만, 결국 영역에 또 다른 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몫이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씩 웃었다.
“소감은?”
“대단하군. 솔직히 말해서 조금 놀랐다.”
멍하니 주위에 우거진 밀림의 풍경을 둘러보던 레녹이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녀만 한 주술사를 만나는 것도 처음이지만, 이만한 수준의 술사가 아무런 적의도 가지지 않고 직접 영역을 내보이는 기회는 쉽사리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지금 이 밀림의 풍경은, 그리샤의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각인되어 있는 심상을 그대로 투영한 것일 터.
다시 말해 그리샤는 스스로의 가장 깊숙한 내면을 레녹에게 꺼내 보여주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뭐, 자신만만한 그녀의 표정을 보면 오히려 이 밀림의 정경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지만…… 레녹은 대충 그녀가 어떤 의도로 이런 행동을 벌였는지는 대충 이해했다.
스스로가 심상을 투영한 영역의 비경은 술사들에게 있어 반드시 지키고 싶은 비밀 중 하나.
그리샤는 그녀가 가진 가장 강력한 패를 하나 공개함으로서, 레녹에게 다른 방식으로 신뢰를 보여주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과감한 행동은 아마 청의 눈이 가진 간절함을 어느 정도 대변한다고 봐야 할 테지.
“그래. 잘 기억해 뒀다가 열심히 연구해 보라고. 너 정도 되는 놈이라면 금방 따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리샤가 살짝 우쭐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레녹은 밀림을 쭉 돌아보고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글쎄.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결국 내게 달린 문제야.”
“뭐?”
레녹은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아리스에게서 심상을 투영하는 자성영역에 대해 들었을 때부터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던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상을 투영하는 기교. 강력한 의지를 구체적인 도구로 빚어내는 노하우는 그리샤의 영역을 보면서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
하지만 가장 중요한 레녹의 심상이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직 이 세상의 주민으로 살아온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레녹의 마음에 담긴 풍경이란 그가 레녹으로서 살아온 시간을 의미할까, 아니면 그가 지구에서부터 살아온 그 시절을 담고 있을까.
‘어려운 일이군…….’
어느 쪽이든 쉽사리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결국 이 고민은 레녹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으니까.
그리샤는 스스로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주술에 섞어서 풀어낸 모양이지만.
레녹은 어떤 심상을 선택해야 할지, 혹은 선택하게 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으니까.
‘영역에 능력을 더한다면, 가능한 전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되도록이면 내 장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방식이 되어야 해. 그런 심상을 직접 골라내서 투영하는 게 가능하느냐가 관건이겠지.’
“뭐, 좋아. 적당히 봤다면 슬슬 끝내자고. 이 짓거리도 주력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터라…….”
그리샤는 침을 퉤 뱉고는 왼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그녀가 다시 손바닥을 떼는 것과 동시에 상처가 감쪽같이 아물고, 동시에 주위를 가득 둘러싸고 있던 밀림의 풍경이 무너져내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레녹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굉장히 이질적인 방식으로 술식을 다루는군. 주술이라는 건 보통 다 그런 식인가?”
“엉? 뭐야, 너 주술사를 처음 보냐?”
“아까 말했을 텐데. 당신만 한 고등 주술사를 보는 건 처음이다. 그 전까지는 당신의 절반이라도 따라오는 주술사를 본 적도 없어.”
거짓말이 아니었다.
레녹이 그동안 가끔 의뢰에서 마주쳤던 주술사들은 아무리 수준이 높아봤자 3레벨에서 4레벨 사이.
안정적으로 스스로의 화력을 유지시키는 4레벨 정위마법사의 수준에 도달한 주술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사용하는 주술이 상당히 개성적이거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레녹의 기억에도 남아 있기는 했지만, 그리샤만 한 주술사를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레녹의 말을 들은 그리샤의 표정은 묘하게 변했다.
“나 같은 주술사를 본 게 처음이라 이거지…….”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샤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공동을 침식하고 있던 강대한 주력이 조금씩 사라지며, 그녀의 선명한 심상을 투영하던 밀림 역시 천천히 사라져 간다.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조금씩 공동의 원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주술을 아예 모르는 것 같으니 대충 설명해 주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밀림의 중심에서 그리샤가 팔짱을 끼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주력은 굉장히 변덕스럽고 신비로운 힘이라 주술이라는 틀에 가둬놓은 뒤에도 그 한계를 재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트리거라는 일련의 행위나 제물, 매개체를 통해서 술식을 안정시키고 최대한의 효율을 내는 방법을 찾고 있지.”
“…….”
그 정도는 레녹도 알고 있는 지식이었지만, 굳이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자해는…… 그런 트리거들 중에서도 굉장히 강력한 종류에 속하는 술식증강법이다. 자기희생주문을 약식화해서 술식체계에 끼워 넣은 뒤, 억지로 위력을 증폭시켜서 술식의 기복을 줄이는 방법이지.”
“저점을 끌어올려서 안정성을 보충한다는 말이군. 흥미가 가는데. 마법에도 사용할 여지가 있나?”
느닷없이 시작된 대담이지만, 레녹은 거리낌 없이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리샤가 주술에 대해 설명해 주는 순간은 잠깐의 호의.
그러나 레녹은 그 태도 자체가 그리샤가 레녹을 어느 정도 인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만큼 실력 있는 마법사가 청의 눈을 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대답.
그렇기에 지금 빼먹을 수 있는 지식들을 빼먹어야 한다.
특히 그리샤가 사용하는 술식의 트리거. 그중에서도 방금 영역을 전개할 때 사용했던 자해 방식이 과연 레녹의 마법 위력을 높여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함부로 시도해 볼 수는 없겠지만, 연구할 가치는 있다.’
물론 레녹의 몸이 워낙 약한 탓에 섣불리 시도했다가는 득보다 실이 더 많겠지만, 알아두어서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그리샤는 레녹의 질문에 기괴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미친 거냐? 주술에서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 건, 어디까지나 술식체계 자체가 허점이 많고 이런저런 수작을 부릴 만한 여지를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이건 주술체계가 미완성이라기보다는, 고의적으로 개량할 여지를 남겨놓은 것에 가깝지만 마법으로 시도할 만한 일은 아니겠지.”
“흠…….”
고민하는 레녹의 표정을 빤히 바라보던 그리샤가 콧방귀를 꼈다.
“뭐, 그런 게 중요한 일은 아니니까. 어쨌든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영역을 사용하는 방식의 문제다. 술식의 형태를 자유자재로 다루는데 이미 익숙해져 있다면, 형식에 집착할 이유는 없지. 지금 보니 넌 이미 그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듯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확연히 지친 기색이 된 그녀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녀만한 막강한 주력을 가지고도 자성영역을 사용하는 일은 상당히 부담이 가는 듯했다.
“알아들었으면 됐어. 내일 다시 보자고.”
* * *
레녹은 아몬의 안내를 받아서 곧바로 공동을 나섰다.
탑의 지하로 내려가자 널찍한 복도가 인상적인 숙박시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몬은 그중 비어 있는 방 하나를 레녹에게 안내해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굉장히 놀랐습니다. 마법사님께서 이렇게 고강한 실력을 가지고 계셨을 줄은…… 그분께서 직접 전언을 내리신 이유가 있었군요.”
레녹과 그리샤의 전투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터라, 그의 태도는 전에 없이 공손해져 있었다.
그 역시 고위 주술사와 대등한 전투를 벌이는 마법사가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에반 님께서 저희와 함께 해주신다면, 결코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당신만 한 실력자와 함께라면, 자치령의 민심을 되찾는 데도 큰 도움이 되겠지요.”
레녹은 아몬의 말을 무시하고 방을 둘러보려 했지만, 그의 말에서 흘려들을 수 없는 단어를 듣고 입을 열었다.
“역시 너희들은 한동안 등대를 비우고 있었던 거군.”
“……예?”
“여기를 봐.”
레녹은 그렇게 말하면서 방의 구석에 놓인 선반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분명 손님을 위해 마련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먼지가 이렇게 쌓여 있어. 침대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지만, 그건 오히려 최근에 급하게 이 근방을 청소했다는 증거지.”
“…….”
“복도에 깔린 융단이 미묘하게 구겨져 있고, 벽을 밝혀야 할 등불은 불규칙하게 꺼져 있었어. 거기에 내가 복마전과 접촉했는지 걱정하면서도 이런 투박한 방식으로 그 진위를 확인하려 했던 라피스의 태도를 생각하면…….”
레녹은 그렇게 말하고 등을 홱 돌렸다.
“라피스는 너희들과 함께 차기 등대지기의 역할을 계승 받기 위해 최근에야 이곳으로 돌아왔던 거야. 내 말이 틀린가?”
“……정말 날카로우시군요. 거대도시에서 마법사로 살아가는 이들은 다 그런 편입니까?”
아몬이 쓴웃음을 지었다.
“저 역시 전쟁터에서 오랫동안 굴렀다고 생각했지만, 에반 님의 직관에는 미치지 못하겠군요.”
“전쟁이라고?”
“에반 님의 말이 모두 맞습니다.”
그는 바이젠이 아직 기절해 있는지를 확인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저희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부의 이름 모를 평원에서 반란군을 도와 저항전선을 펴고 있었으니까요. 공화국 근방에서 발견된 다이질리아 광산을 둘러싸고 복마전이 개입했고, 저희 쪽에서도 대응에 나섰습니다.”
“그리샤 님을 비롯한 청의 눈 전력이 투입되어 해당 일에 관여했던 멤버 두 명을 모두 척살했지만, 둘 모두 별다른 정보가 없는 신생 멤버라 더 애를 먹었습니다. 크나큰 피해가 있었죠.”
“다이질리아 광산이라…….”
강력한 경도와 마력전도율이 없다시피 한 독특한 특성 때문에 같은 무게의 보석보다도 비싸게 거래된다는 희귀금속이었던가.
그런 금속이 묻힌 광산이 발견되었다면 복마전에서 누군가 손을 쓴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이 복마전과의 국지전에서 작게나마 성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겠지.
신생 멤버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 크로켄이나 예의 흑마법사만큼 강한 이들을 상대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청의 눈이 말로만 거창하게 떠들어대는 조직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동안 함께해 오던 많은 이들이 죽고, 또 다쳤습니다. 현재 그리샤 님과 외부 출장을 나가 있는 몇몇 주시자들을 제외하면 복마전에 직접 대응이 가능한 전력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아몬은 그렇게 말하며 전에 없이 강렬한 시선으로 레녹을 바라보았다.
레녹은 그 시선에 담긴 의미를 모르지는 않았지만, 굳이 반응해 줄 생각은 없었다.
이미 라피스와 합의가 끝난 이야기다.
여기서 아몬이 더 간섭할 권한도, 자격도 없는 일이었다.
아몬 역시 그것을 모르지는 않는지,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예의 화염술사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아직 정하지 못한 상태라, 다른 사람들과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네요.”
“잠깐.”
돌아서려는 아몬을 레녹이 잡아 세웠다.
“바이젠을 심문할 생각이라면, 내가 직접 하고 싶은데.”
“…….”
“원래라면 그 자리에서 바이젠을 죽이고 끝냈을 일 아니었나? 놈에게 확인해야 할 일이 있다. 반나절 정도면 충분할 것 같군.”
“저 혼자서는 결정할 수 없는 문제군요.”
아몬이 머뭇거렸다.
“원한다면 상부에다가 허락을 구해도 좋아. 설마 내가 나를 죽이려고 한 놈과 협력해서 무슨 짓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닙니다. 엄연히 에반 님에게 접촉을 한 건 라피스 님이 먼저셨으니까요. 그리고 당신만큼 강력한 술사가 이런 얕은 수작으로 등대를 노릴 거라는 생각도 아니지만…… 알겠습니다.”
결국 아몬이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바이젠의 존재가 주시자들의 안중에도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아몬이 레녹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
“하지만 일이 끝난 다음에는 상부에 보고를 올리도록 하죠. 그 정도는 괜찮겠습니까?”
“마음대로 해.”
레녹은 곧바로 가지고 있던 간소한 짐을 객실에 내려놓고, 아몬을 따라 한층을 더 내려갔다.
지하 1층에 위치해 있던 널찍한 복도와는 달리 심층부에 존재하는 것은 감옥처럼 만들어진 비좁은 밀실.
마치 누군가를 가둬놓고 지켜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이다.
분명 ‘등대’가 단순한 관측소로만 사용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
하지만 레녹은 별다른 말을 하는 대신 바이젠의 멱살을 잡고 그를 밀실에 집어 던졌다.
쿠당탕!!
“깨어 있는 거 다 알고 있으니 슬슬 일어나지.”
“크, 으헉……!!”
레녹의 차가운 말에 바이젠이 기겁을 하면서 눈을 떴다.
마른 기침을 몇번 한 그가 충혈된 눈으로 레녹을 올려다보며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오랜 시간 동안 묶여 있었던 피로감과 저주가 담긴 단검에 찔린 부상이 여태껏 그를 괴롭히고 있다.
거기에 아몬과 함께 바로 옆에서 레녹과 그리샤가 격전을 벌이는 것을 느꼈을 텐데 아직까지 기절해 있을 리가 없었다.
차가운 테이블 하나를 두고 앉은 두 사람이 시선을 마주쳤다.
아몬은 밀실의 문을 닫고 나갔지만, 분명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겠지.
어차피 이상한 수작을 부릴 생각은 없으니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는 바이젠의 얼굴을 보며 레녹이 말했다.
“네가 왜 살아 있을까?”
“예, 예?”
“분명 윙보트를 타고 내 뒤통수를 친 다음에 닉스의 휘장을 빼앗으려고 했는데, 네가 왜 아직 살아서 숨 쉬고 있는지. 이상하지 않나?”
“…….”
“부하처럼 데리고 다니던 저 마법사가 갑자기 나한테 굽실거리는 이유는 뭘까. 알고 싶지?”
“아, 아닙니다.”
바이젠은 눈알을 뒤룩뒤룩 굴러더니 더듬거리면서 대답했다.
그래도 상당히 눈치는 빠른 놈이었다.
레녹도 오래 시간을 끌기는 싫어서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살려줄 수 있다.”
“…….”
“내가 원하는 조건 하나만 들어주면, 상처하나 없이 너를 이곳에서 지내게 해주마. 지금 네 몸을 갉아 먹는 저주도 해주해 주지.”
물론 레녹은 빈말로라도 그를 여기서 풀어주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바이젠은 레녹이 마약왕의 금고에 접근하는 순간을 위한 아주 귀중한 알리바이가 되어줄 몸이었으니.
하지만 바이젠은 그 뻔한 구슬림에도 귀가 솔깃했는지, 움츠러든 표정으로 레녹을 올려다봤다.
그동안 보여주던 강렬한 허영심과는 달리, 살고 싶다는 감정에 아주 솔직한 놈이었다.
“블레이버 마탑의 고유마법을…….”
“아, 안됩니다.”
“내 앞에서 한번씩만 직접 보여주면 돼.”
“……예?”
고유마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손을 내젓던 바이젠이 눈을 끔벅였다.
레녹은 그 어리벙벙한 표정을 보면서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바이젠은 이렇게 보여도 일전에 그가 상대했던 에덴에도 뒤처지지 않는 마법사.
이만한 재능과 기예를 가진 술사를, 이렇게 보안이 완벽한 공간에서 조질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거기에 타고난 성정이 탐욕스럽고 심약하기 그지없으니, 잘만 구슬린다면 제힘에 취해서 자기도 모르게 정보를 레녹에게 덥석 건네주겠지.
눈대중으로만 확인하고 따라 했던 블레이버 마탑의 고유마법.
화염계열과 염열계열의 주류 학파에 해당한다는 그 마법의 정수를 골수까지 빨아먹을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