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463
약먹는 천재마법사 463화
약속이 교차하는 곳(4)
광대의 날카로운 지적에, 레야 역시 생각하는 바가 있었는지 고개를 휙 돌렸다.
“아, 맞아. 빅터 너 그 사람이랑 원래 알던 사이야? 나도 가끔 만날 때마다 말 거는데, 거의 대꾸 안 해주는데 이상해.”
“……방금 그걸 말을 건다고 할 수 있었나?”
레녹이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린 말을 광대가 냉큼 받았다.
“맞아요. 레야 당신이 말을 걸었다고 그럽니까. 덜덜 떨면서 더듬거리는 게 대화를 신청하는 거였군요?”
“아니……!”
“당신이나 저나 크게 다르지 않은데 거 너무 그렇게 구박주지 맙시다. 예?”
“너랑 나랑 하는 일이 전혀 다른데 뭔 개소……!!”
다시 투닥거리기 시작한 광대와 레야를 무시한 레녹이 조용히 로브 안쪽에서 몸 상태를 점검했다.
‘대천사의 눈물을 복용한 효과가 확실하긴 하군.’
구세계의 유물이자 수명을 늘려준다는 지보의 영약.
그 실상은 수명을 늘려준다기보다 체내시간을 수복시키는 형태에 가까웠지만, 레녹은 그것만으로도 영약의 효과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카이우슈에서 밀림까지 쉬지 않고 이어진 작전을 생각하면 지금쯤 레녹의 몸은 넝마가 되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하지만 마법체계 우로보로스를 전력으로 전개하고, 외해를 두 눈으로 목격하고 돌아왔음에도 여전히 의식을 유지하고 있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평소만큼 도핑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체내 컨디션의 저점이 높아졌다는 증거나 마찬가지.
로브 안쪽에서 꾸물거리며 앰플과 영약을 꺼내 들고 하나씩 투여한다.
‘진통제와 각성제를 섞어서 공급하면 밀림을 벗어날 때까지는 버틸 수 있겠어.’
주사를 놓는 어깨 근육 위로 통증이 느껴진다는 것 자체가 레녹에게 있어서는 긍정적인 신호였다.
마드리치와의 전투 때처럼 몸이 완전히 망가지면 통각조차 마비되어 버리곤 했으니까.
적당히 쉬면서 몸이 움직일때까지 진통제가 먹혔다 싶은 생각이 들자, 레녹은 손가락을 까닥였다.
촤락!!
품 안에서 튀어나온 마력사가 무너진 밀림의 수풀 곳곳을 붙잡고, 레녹의 몸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뒤집어쓴 가면을 고쳐쓰고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레녹을 보며 광대가 물었다.
“어라? 빅터, 대답도 안 해주고 어디 가시렵니까?”
“크로켄 아실러스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군. 애초에 그런 여지를 주는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 텐데?”
팔굉성채에서 받아온 그림자원단 로브를 매만지며 레녹이 말했다.
“작전이 끝났다면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든 관심없어. 더 이상 밀림에 머물 필요는 없겠지.”
계백을 틀림없이 외해 위로 쏘아 올려 종말의 눈에 박아넣었음에도, 크로켄은 실패라고 말했다.
그것은 레녹과 광대가 진행하던 계획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크로켄 스스로가 다른 목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일까.
크로켄이 편람을 돌려보낸 방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여곡절 끝에 작전을 끝냈음에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였지만, 레녹은 당장은 크게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계획의 성패와는 상관없이, 이번 작전에서 레녹이 얻어낸 성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승천의 비밀, 초월자들의 이면을 확인한 것은 물론이고 외해의 풍경과 종말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깨달음과 영감을 흡수한 바.
계백의 의식과 동화되며 기아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우물 안팎을 오가며 시공의 교차로를 인지하며 레녹은 날뛰던 마력과 직관이 조금씩 정돈되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것은 마드리치와의 전투로 온전히 구현한 뒤에도 흔들리던 우로보로스 마법체계가 본격적으로 안정화되기 시작했다는 증거.
레녹이 보다 초월적이고 고차원적인 직관과 감각을 통해, 스스로의 힘을 완숙하게 다뤄내고 있다는 의미였다.
당장 작전의 뒷처리를 끝내는 것보다, 본신의 성취를 점검하고 안정시켜야 하는 것이 급선무.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광대는 그런 레녹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뭐 굳이 걸어가야 합니까? 나가는 길은 저희랑 같이 가시죠.”
“…….”
“아까도 말했지만 전 당신이 꽤 마음에 듭니다. 잠깐 할 이야기도 있고 하니, 너무 급하게 굴지 말죠.”
“그 몸으로 어딜 같이 나가겠다는 건지 모르겠군.”
레녹은 무심코 품 안의 연초를 만지작거리면서 대꾸했다.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온 몸의 뼛조각이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굳어져 버릴 거다.”
상황을 지켜보다 아슬아슬한 순간에 개입해 마무리를 지은 레녹은 몰라도, 승천자들의 전투에 직접 끼어들었던 광대는 상태가 말이 아니다.
온몸의 뼈와 관절이 아작난 상태로 조금이라도 잘못 움직였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후유증을 떠안게 될 터.
무리하지 말고 누군가 증원이 오기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누군가 광대를 극도로 조심스럽게 운반해야 하겠지.
당연하지만 레녹은 광대를 자신 혼자서 떠맡아 밀림 밖까지 옮겨줄 생각은 없었다.
“비행선이 파손된 시점에서 이동수단이 마땅치 않을 텐데.”
“씨, 씨X…… 어쩔 수 없었어. 그러게 누가 나한테 단장의 화물을 맡기라고 했냐고.”
얼굴이 붉어진 레야가 레녹의 말에 더듬거리며 책임을 회피했지만, 레녹은 굳이 거기에 대고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적절한 시점에 비행선을 몰고 화물을 광장에 떨궈준 것만으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낸 셈이다.
하지만 광대는 레녹의 말에도 불구하고 히죽 웃었다.
“판데모니엄의 자금력을 너무 얕보고 있군요, 빅터.”
“뭐?”
“물론 그 비행선이 귀하디 귀한 구세계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물건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두두두두!!!
그 순간, 밀림의 상공에서 거친 엔진음이 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새벽 안개를 뚫고 들리기 시작한 소음과 함께, 공터를 비추기 시작하는 눈부신 조명.
레녹이 입고 있는 로브와, 레야의 화려한 드레스가 풍압에 미친 듯이 나풀거렸다.
밀림의 복잡한 수풀을 헤치고 상공 저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두 번째 비행선에 레녹이 눈을 가늘게 뜨는 것과 함께 광대가 킬킬거렸다.
“그런 물건을 고작 하나만 준비해두었을 리가 없잖아요.”
활짝 열린 비행선 화물칸 뒤쪽으로는, 붉은 안광을 빛내는 여러명의 글렌이 곳곳에 자리 잡고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타타타타!!!
두번째 비행선이기는 하지만, 처음 타고 왔던 비행선보다는 크기가 살짝 작았다.
대신 이 밀림 상공에서 비행이 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굳이 화물칸을 열지 않아도 양쪽 출입문을 열고 밖을 내다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이런 비행선을 몇 척이고 운용이 가능한 복마전의 저력에 주목해야겠지.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며 헬기 출입문 옆 손잡이를 잡고 멀어지는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쌔애액!!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밀림의 풍경.
레녹의 날카로운 마력감지는 그 와중에 밀림 곳곳에 숨어 이곳을 바라보는 다양한 세력들을 눈에 담는다.
괴물들의 전쟁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헤드로 군벌과 레딩 혁명군의 잔당, 혹은 이능개화전단의 정예부대.
자신이 불러낸 코끼리의 먹이가 되어버린 주술사들의 시체와, 그 와중에도 본대의 저력을 잃지 않은 맹록의 주박까지.
그 밖에도 무수한 무력조직들이 밀림 곳곳에서 일이 끝난줄도 모르고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다.
쉴 새 없이 피어오르는 연기와 불길 사이로 비행선이 빠르게 거목 사이를 활강했다.
광대가 온몸에 링거를 덕지덕지 단 채로 아래쪽을 향해 턱짓했다.
“빅터, 보입니까?”
“…….”
아직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밀림 최심부.
그들이 한창 소란을 피우고 지나온 우물이 위치한 멸망한 고대 문명 도시보다도 더 깊은 심처.
그 깊이를 모르고 쉴새없이 떨어져내리는 폭포의 꼭대기에서, 십수명의 사람들이 이쪽을 선명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들의 눈동자는 하나같이 샛노란 안광으로 눈부시게 번뜩이고 있었다.
광대 역시 그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대수림에서 살아가는 혈령족입니다. 이번 일에는 개입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그래도 마지막에는 고개를 내밀었군요.”
“…….”
“별의 움직임을 읽고 미래를 예지한다고 알려진 부족이죠. 한때는 그들의 능력이 외해와 직접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 때문에 밀렵의 대상이 되었지만, 지금은 어떨까요?”
광대가 입맛을 다셨다.
“기회가 된다면 하나 표본으로 잡아 연구해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되었습니다.”
“박사와 비슷한 취미를 가진 모양이군.”
심드렁한 레녹의 대답에 광대가 눈을 빛냈다.
“오호……. 이거 정말 신입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언동이군요. 혹시 제가 아는 사람이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고 있는건 아니겠지요?”
“…….”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말이라 레녹은 그냥 무시했다.
광대 역시 진지하게 한 소리는 아니었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말꼬리를 돌렸다.
“뭐, 상통하는 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하는 일은 다르다고 해야할까요. 그는 잡스러운 분야에도 무조건 손을 대지만, 저는 효율이 나쁘면 지양하는 편이거든요.”
그렇게 말한 광대가 분칠이 살짝 지워진 얼굴로 웃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가끔씩 ‘화풀이’를 해야 할 필요가 있거든요. 당신은 이해할 수 있겠죠?”
“우엑.”
뒤에서 글렌이 가져온 휴대폰을 쉴새없이 두들기던 레야가 질색하는 시늉을 했다.
광대는 무시했지만, 레녹의 심정도 레야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아주 뛰어나고 기만한 환술사. 그 능력은 복마전에서도 거물이라 부르기 부족함이 없지만, 정작 속내를 믿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얼마나 거칠 것이 없어야 자신의 치부와 추태를 이렇게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농담거리로 삼을 수 있는 것일까.
그 정도로 정신이 망가진 채 자신과 남을 비웃는 그 모습은 광대라 부르기 부족함이 없다.
그렇기에 레녹은 마지막 순간 외해의 풍경을 보며 손에 넣은 단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직 확신할 수 없는 추측일 뿐이다. 이걸 제대로 확인하고 나서 지금까지의 행보를 돌아보지 않으면…….
“빅터, 듣고 있어요?”
“……계속하지.”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상념은 광대의 말에 툭 끊겨 나갔다.
뒤에서 가만히 대기하던 수많은 글렌 중 한 명이 조용하게 말했다.
“밀림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 행선지를 정해야 합니다. 상대적으로 견제를 받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지요.”
“……견제라고?”
“레딩 혁명군과 헤드로 군벌의 본대는 이 밀림 안쪽으로 들어오지 않고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요.”
글렌이 표정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광대에게 스스럼없이 자신의 심장을 공양품으로 바칠 때부터 그런 낌새가 있었지만, 감정이라는 것이 거의 희박해 보였다.
처음에는 은근히 레녹을 견제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순순히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모습.
이번 작전에서 무사히 살아나온 것만으로도 그 실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말일까.
“특히 혁명군은 본디 공군을 주축으로 구성된 무장조직……. 환술의 힘을 빌린다 해도 감시망을 벗어나려면 애 좀 먹어야 할 겁니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광대가 레녹을 보며 물었다.
“저희는 일단 토커퍼즈로 가서 몸을 추스를 생각입니다만. 아실러스가 남긴 전언도 있으니, 단장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아야겠지요.”
“평소에는 단장과 연락이 닿지 않는 모양이군.”
“이를 말이겠습니까?”
익살스럽게 입꼬리를 말아올린 광대가 웃었다.
“아그네타조차 연락이 닿는 건 단장이 원할 때뿐이에요. 거미보다도 정신망을 잘 다루는 사람을 상대로 특별한 방도는 없다고 봐야겠죠.”
“…….”
판데모니엄 내부에서조차 단장과 연락이 닿는 이들은 거의 없는 건가.
소류가 어째서 단장을 만나고 왔다는 레녹의 말에 그리 과민반응을 했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레녹은 광대의 제안을 생각하듯 물끄러미 밀림의 풍경을 내려다보다, 무언가를 발견한 것처럼 눈을 빛냈다.
“여기서 내리지. 속도를 늦춰라.”
“……진심입니까?”
“하이레아에게 따로 전해야 할 말이 있다. 토커퍼즈는 너무 멀지.”
토커퍼즈가 어떤 곳인지는 레녹도 알고 있다.
유흥과 향락의 도시. 대륙의 유행과 문화를 사실상 선도하는 위치에 서 있다는 대도시들 중 하나.
대륙 역사를 놓고 보자면 비교적 최근에 세워졌지만, 서대륙에서도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해 수많은 외부세력이 경유하는 곳이라던가.
프레이야 칼린스가 남대륙 투어 공연을 준비하던 장소도 역시 그쪽이었겠지.
문제는 토커퍼즈와 발칸 사이에 중앙전선이 가로지르며 횡단을 방해하고 있다는데 있다.
복마전이 일을 어떻게 수습하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그쪽에서 발칸으로 돌아가면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레녹이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깨달은 광대가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쩝, 토커퍼즈에도 재밌는 구경거리가 많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안타깝습니다.”
“…….”
레야의 표정이 구겨진 것과, 광대의 성정을 생각하면 그리 유쾌하지 않은 여흥임은 뻔해 보였다.
피식 웃은 레녹이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드러나는 밀림 끝자락을 향해 뛰어내리려던 그 순간.
품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든 광대가 그것을 레녹에게 휙 던졌다.
“이거, 하나 받아가시죠.”
“뭐지?”
트럼프 카드와 비슷한 외관. 문장과 그림은 레녹이 알던 것과 판이했지만, 분위기 자체는 비슷했다.
마력사를 뻗어 아슬아슬하게 놓칠뻔한 카드를 움켜쥔 레녹이 앞뒷면을 돌려보는 사이, 광대가 말했다.
“조만간 발칸 위성도시 근처에서 소집이 한 번 있을 겁니다.”
“소집이라고?”
“구세계의 유물을 회수하는 애들끼리 모여서 가끔 중간점검을 한다고 하던데, 그건가 보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휴대폰 자판을 두들기는 레야의 말에 광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공헌에 따라서 필요 없는 유물들을 분배받을 수도 있을 텐데, 그걸 가지고 가면 아마 도움이 될 겁니다.”
광대는 들것 위에서 몸을 일으켜세우며 씩 웃었다.
“이래 봬도 남부에서 일하는 친구들한테는 좀 잘 먹히는 이름이거든요.”
링거 몇방을 맞고 나니 벌써 컨디션을 회복하기 시작한 것인가.
환술을 주력으로 다루는 것과는 별개로, 광대 역시 강력한 육체능력자라는 것은 틀림없었다.
“구세계의 유물을 회수하고 분배하는 점검이라…….”
아마 크로켄이나 광대같은 괴물들보다는, 하이레아와 소류 같은 각양각색의 실력자들을 보게 될 가능성이 높겠지.
하지만 위치상으로 거대도시 근처 위성도시에서 벌어질 일이라면 한 번쯤 가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했다.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해 두지.”
“잘 되면 제 이름 잊지 마시고요. 다음에 봅시다~.”
“뒤지지 않고 토커퍼즈로 놀러오면 콘서트 티켓 정도는 쥐여줄게.”
손을 휘적거리는 광대와,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끄덕이는 레야의 모습.
하루 전까지 목숨을 걸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매진하던 사람들이라고 믿기는 어렵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온갖 정신병자와 무법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이 조직에서 끈끈한 동료애나 유대감이 존재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진대.
거대도시를 잠깐 떠나온 뒤로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 수확은 도시로 돌아가 정리하고 고민해도 충분했다.
레녹은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헬기 밖으로 뛰어내렸다.
밀림의 후끈한 상공 위로 펄럭인 로브가 어느 순간 점멸해 사라지는가 싶더니,
열풍을 타고 글라이더처럼 활강하며 밀림 외곽을 향해 급격하게 내리꽂힌다.
쿠우우웅!!!
그 충격으로 발밑의 실드가 몇 겹 뭉개지며 사방으로 막대한 충격파를 터트리고.
수풀 사이에서 대치하고 있던 두 세력을 거의 동시에 양쪽으로 쭉 밀어냈다.
“크윽……!!”
“마법사다!!”
“판데모니엄의 개가 여기에는 어째서……!!”
사방에서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마력의 교차.
밀림 곳곳에서 벌어지는 격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지만, 그 상대는 천차만별이다.
“어머, 마침 잘 됐군요.”
그리고 한쪽 세력의 선두에 서 있던 교단의 여성 사제가 빙그레 웃으며 레녹에게 손을 내밀었다.
6사도의 봉인을 풀고 그에게 광증을 다시 내려주었던 장본인.
“시간 괜찮으시다면 잠깐 도와주시겠어요?”
레녹의 이름을 알지도 못하면서, 태평한 표정으로 조력을 요청하는 여성의 모습.
그런 그녀의 등 뒤로 무장한 교단의 사제들이 레녹의 반대편에 선 이들을 주시하고 있다.
여성은 그런 반대쪽 세력의 선두에 선 사람을 가리키며 빙그레 웃었다.
“아무래도 새로운 사도 후보를 찾은 것 같아서, 지금 막 계시를 내릴 생각이었거든요.”
“미쳤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제정신이 아니군.”
그런 그녀의 반대편에 서 있던 타티아나 치글렛이 이를 악물었다.
“사도 따위는 될 생각 없으니까 저리 꺼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