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riter in the Corner of the Room RAW novel - Chapter 128
128. 천재가 사랑하는 법. (3).
“노아야. 나 어릴 적부터 너를 좋아했어.”
나의 고백에 아리무라 노아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아리무라 노아는 한참 고민을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미안, 역시 너는 남자친구로는 별로야.”
“아…미안.”
아리무라 노아의 거절에 혼다 다이스케는 황급히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달려가는 길.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이후 대학에 가기 전까지 집에 박혀 스마트폰을 꺼둔 채 폐인처럼 지냈다.
왜 자신이 거절당했는지, 무엇이 부족했던 것인지 미친 듯이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아이돌, 운동선수 무엇하나 이루기 어려운 일인데도 자신은 두 개 다 이루어냈다.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고, 내려진 결론은 그냥 아리무라 노아의 이상형이 내가 아니란 것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집 밖으로 나왔을 땐, 차가운 눈이 녹은 조금 쌀쌀한 봄날이 되었다.
고백도 거절당했으니, 이제 혼자서 대학교를 가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하향 지원하지 말고 원래 가려던 곳 갈걸.’
분명 아리무라 노아가 고백을 받아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긴 시간 동안 자신과 같이 다닐 이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결과는 거절.
이로써 아쉽지만 그녀와의 인연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대학교 입학식 날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야! 꼬봉. 같이 가.”
“….”
아리무라 노아는 그런 자신의 고민을 무색하게 만들듯 평소와 같은 말투로 자신을 불렀다.
그러나 그녀의 부름에 나는 그녀를 피해 달아났고, 그녀는 미친 듯이 나를 쫓아왔다.
무사히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녀는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 너 왜 피하냐? 설마 고백 거절해서 그래?”
“뭐가.”
오랜만에 본 아리무라 노아의 얼굴은 더욱 예뻐져 있었다.
대학에 간다고 새로 산 옷들과 성인이 되어 화장을 한 모습에 다시 한번 그녀에게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가? 아니, 너랑 나랑 13년 지기 친구인데 갑자기 고백하면 어떻게 해.”
“….”
“대답 안 하냐?”
“할 말 다했으면 돌아가 줄래? 나 피곤해서.”
나는 그녀의 말에 차갑게 대답하며 집 안으로 들어와 주저앉아 버렸다.
주저앉은 나의 얼굴은 터질 것만 같았다.
“왜 더 예뻐진 건데….”
포기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마주치니 또 다시 뛰어버리는 심장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는데 문밖에서 아리무라 노아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내일은 학교 같이 가! 알겠어?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이미 마음은 크게 기울어 버렸다.
호구같이….
다음 날 아침.
나는 퀭한 얼굴로 일어났다.
어젯밤 아리무라 노아의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그녀와 다시 함께 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 잠을 자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멍청한 것 같았다.
분명 천재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자기 마음 하나 간수 못 하는 바보였다.
“하아….”
수업을 듣기 위해 문밖으로 나오자 그곳엔 어제와는 조금 다른 모습의 아리무라 노아가 서 있었다.
“야, 빨리와 나 늦었어.”
“어? 어….”
그렇게 그녀와 함께 대학으로 가는 와중 아리무라 노아가 궁금한 듯 물었다.
“그런데 너는 차 안타냐?”
“그냥 대학교가 가깝기도 하고….”
“돈도 많은데 하나 사. 나도 같이 타고 다니게.”
“알…. 생각해 볼게.”
순간 알겠다고 대답할 뻔했지만, 간신히 생각해보겠다는 대답으로 바꾸었다.
이후 아리무라 노아와의 관계는 정말 친한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저 같이 대학교를 다니고 시간이 맞으면 밥을 먹는 사이.
그러던 어느 날 새로 산 차를 타고 학교에 가는 와중 아리무라 노아가 갑자기 생각난 듯 소리를 질렀다.
“야! 나 소개팅 들어왔다.”
“….”
“아, 이건 괜히 말했나? 너 아직도 나 좋아해?”
“….”
나의 침묵에 아리무라 노아도 침묵으로 일관했고,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은 침묵으로 가득했다.
자기한테 고백하고 차인 사람 앞에서 소개팅 이야기를 꺼낸 것에 대한 복수로 오늘은 그녀를 기다리지 않고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야! 너 내가 소개팅한다고 해서 맨날 먼저 간 거냐?”
당연히 아침마다 우리 집 앞에서 기다리는 아리무라 노아였기에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그냥 소개팅남한테 데려다 달라고 하지 그랬어.”
“에이, 남자가 쪼잔하게…그게 뭐냐? 그리고 그 소개팅남은 안 그래도 깠어. 얼굴은 내 타입인데 좀 멍청하더라고. 나는 좀 똑똑한 사람이 좋은 듯. 변호사라던가 의사 어때? 완전 섹시하지 않아?”
“어차피 또 이상형 바뀔 텐데.”
“에이, 연애랑 결혼은 다르지. 역시 나는 가정주부가 딱인 것 같아.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 결혼이라는 단어가 박혀버렸다.
‘결혼?’
마침 자신은 법학부였고, 그녀가 원하는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자신은 천재였으니까.
새로운 목표가 생긴 나는 그날 이후 결혼이라는 목표만 보고 달렸다.
그녀가 중간중간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도 자신은 결혼을 생각하며 그녀의 곁을 지켰다.
물론 아리무라 노아의 까다로움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기에 금방 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은 흘러 28살.
조기 졸업을 제외하고 평범하게 학교와 로스쿨을 다녀 시험을 보고 될 수 있는 변호사의 나이 중 가장 젊은 나이.
나는 그것을 이루었다.
조기 졸업을 할 수도 있었지만, 아리무라 노아와 학교를 같이 다니기 위해 오히려 평범하게 졸업을 한 결과였다.
이젠 변호사가 되었으니, 다시 한번 그녀에게 고백할 차례였다.
연애가 아닌 결혼.
하지만 먼저 들려온 건 그녀의 결혼 소식이었다.
“야, 나 결혼해. 올 거지? 그리고 넌 돈 많으니까 축의금도 많이 해라. 아 그리고 축가도 불러줘. 너 노래 잘 부르잖아.”
“….”
사법 연수 때문에 오랜만에 만난 아리무라 노아에게 건네받은 청첩장엔 한 남자와 웨딩드레스를 입고 찍은 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의 남자는 자신보다 못생기고, 돈도 적은 평범한 남자였다.
“왜 결혼하는데? 너 잘 생긴 남자 좋아했잖아.”
“아…얼굴 그거 다 소용없더라고. 이 사람은 나를 편하게 해줘. 나처럼 감정 기복이 심하지도 않고, 다 받아줘. 무난 무난해.”
“씨발.”
처음으로 그녀에게 욕을 한 뒤 자리를 빠져나갔다.
-야, 어디가!
그 남자보다 자신이 못한 게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무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옆에서 아리무라 노아를 받아주고 챙겨주었다.
그런데 결국 어떻게 해도 그녀에게 친구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나는 큰 무력감을 느꼈다.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들은 날 이후 나는 술에 빠져 살았다.
당연히 그녀의 결혼식은 참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게 축가를 부탁한다는 말에 화가 치밀었다.
그날 이후 나의 스마트폰에는 아리무라 노아가 걸었던 수십 통의 전화 기록과 문자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연락을 받지 않고 무시했다.
그렇게 그녀와의 인연이 끊어졌다고 생각했지만, 결혼식 당일 그녀에게서 사진이 도착했다.
사진 속 그녀는 행복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젠장. 젠장. 젠장!”
사진을 본 내가 버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술뿐이었다.
술에 취해 잠들고 술이 깨면 다시 술을 마셨다.
그러다 집에 남아있는 술이 다 떨어져 근처 마트에 술을 사러 가야 하는 상황도 생겼다.
술을 사러 가기 위해 침실인 2층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가다 발을 헛딛였다.
그 순간 나의 몸은 계단을 뒹굴며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술기운이 돌아서 그런지 몸에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의식만 흐릿해져 갈 뿐.
술에 취해 몽롱한 의식에도 확실하게 느껴졌다.
죽음이 다가왔다는 것을….
‘나…죽나 보네…. 내 장례식장에는 오겠지?’
나는 끝까지 나를 선택하지 않은 아리무라 노아의 생각을 하며 쓸쓸하게 죽어갔다.
그리고 다음 생이라는 게 있다면….
다시는 이번 같은 사랑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
영화를 보는 김시우는 영화가 생각보다 잘 나왔다고 생각했고, 이해수는 생각이 많아졌다.
‘왜 저렇게까지 하는데 안 봐라봐 주는 거지? 그보다 잘생기고 능력 좋고 착하고…완전 김시우 작가님이잖아.’
콩깍지도 제대로 쓰인 이해수였다.
‘설마 작가님 이상형도 저런 여자인가?’
이해수는 영화에 김시우를 대입해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와그작.
이해수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와중 김시우의 입에서 팝콘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에 이해수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김시우의 팝콘에 손을 넣다가 김시우의 손과 겹치는 아리무라 노아가 보였다. 질투심이 불타올랐다.
‘저 여자….’
조금 전 영화를 본 탓인지 아리무라 노아에 대한 질투심이 불타오르며 비호감으로 보였다.
‘분명 저 여자도 영화처럼 아주 나쁜 사람일 거야.’
그렇게 고개를 돌려 영화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
죽었다고 생각한 나는 눈이 떠졌다.
이내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벼운 몸과 머리.
익숙한 천장.
눈을 뜬 곳은 병원이 아닌 과거 나의 방안이었다.
화장실에서 본 얼굴은 상당히 어려진 나의 얼굴과 볼을 꼬집어 느껴지는 통증은 꿈이 아니란 것을 증명했다.
‘고등학생인가? 아니면 대학생?’
과거로 돌아온 것은 맞지만 정확히 언제로 돌아왔는지는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고3이네.”
고등학교 3학년 시절로 돌아온 나는 얼떨떨하게 아침을 먹은 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학교로 걸어갔다.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말이다.
익숙한 거리를 지나 도착한 고등학교엔 아이들이 앉아있었고, 나는 익숙하게 나의 자리에 앉았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의 자리는 잊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리무라 노아의 자리를 잊지 않았다.
나의 자리는 그녀의 모습이 잘 보이는 자리였으니까.
자리에 앉아 노트를 펼친 뒤 연필을 끄적였다.
새로 주어진 삶.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계획을 세워야 했다.
다시 아이돌의 삶으로 돌아갈지…아니면 야구 선수를 할지 그것도 아니면 변호나사 새로운 직업을 선택할지.
그런 고민을 끄적거리며 시간을 보내던 와중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꼬봉. 너 오늘 뭐야! 말도 안 하고 먼저 가면 어떻게 해!”
그 목소리는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는 목소리였다.
내가 처음으로 좋아한 여자.
마지막까지도 사랑한 여자.
그리고…지긋지긋한 여자.
아리무라 노아였다.
“그냥, 앞으로는 학교에 일찍 오려고.”
“뭐? 갑자기? 너 3학년이라서 그런 거야? 그냥 나랑 같이 가자. 응? 학교까지 혼자 오기 심심하단 말이야.”
아리무라 노아가 원래대로 같은 시간에 같이 가자고 이야기했다.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그런 제안을 했다는 것에 기뻐하며 당장 수락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었다.
“싫은데.”
짧고 무감정한 대답에 아리무라 노아가 크게 당황했다.
“뭐야? 너 갑자기 왜 그러냐? 내가 뭐 잘못했냐? 저번에 아이스크림 뺏어 먹어서 그래? 에이, 쪼잔한 놈 오늘 사줄게. 됐어? 그러니까 그냥 나랑….”
“싫다고.”
나의 단호한 거절을 들은 아리무라 노아의 표정은 당황으로 가득했고, 이내 그녀는 기분이 상했는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쫌생이.”
그날 점심, 저녁 아리무라 노아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교마저도 그녀와 함께가 아닌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한 나는 앞으로 그녀와 점점 거리를 두리라 다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지금 이런 행동이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 상상도 하지 못 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