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Beyond Fantasy Smartphones RAW novel - Chapter 171
신을 만드는 방법 (1)
세계는 멸망했다.
아니, 멸망해가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미증유의 대재해로 인해, 그 내부에서부터 천천히 썩어가고 있는 것이다.
길거리를 가득 채우던 사람들은 대부분 안식을 잃어버린 망자가 되었다.
그들은 먹지도 못하고 죽지도 못하며, 끝없이 다른 희생자를 찾아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망자에게 죽은 자는 또 다른 망자가 되었고, 그렇게 생겨난 망자는 다른 이를 망자로 만들었다.
대재해가 시작된지 7개월.
이제 이 도시 안에 사람이라고는 우리 그룹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유성아. 내 말대로 해보자니까?”
물론 샅샅히 뒤져본다면 어딘가에서 생존자 그룹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에서만큼은,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이 생존자의 전부였다.
나는 그중에서도 선두에 선 남자를 바라보았다.
건장한 체격을 가진 남자는 우리 그룹에서도 가장 튀는 인물이었다.
어깨에 걸쳐놓은 삽을 들고 움직이고 있으면, 선두에 서있던 남자가 나에게 아쉬워하는 얼굴로 이야기했다.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
“아니, 지금와서 회사원 흉내를 왜 하자는건데요.”
“내 꿈이 그거였다니까? 회사 사장되는거.”
나에게 말을 걸어온 남자의 이름은 신동현.
명실상부 우리 그룹의 리더였다.
나이로 따져도 가장 윗선이었으며, 몸도 튼튼하고 험한 일을 도맡아서 하기도 했다.
그룹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인 것이다.
다만 그런 그에게는 한이 맺혀있는 목표가 한가지 존재하고 있었다.
스타트업을 차려 사장님 소리를 들어보는게 그의 오랜 꿈이었다.
사업을 벌이기 위해 온갖 궂은 일을 하며 열심히 돈을 모아놨건만, 일을 벌이기 직전에 세상이 망해버렸다는 모양이었다.
“저번에 붕어빵집 발견한거 있잖아요. 그거 들고 회사 앞에서 붕어빵이나 팔죠.”
나는 자칭 사장님에게 건설적인 아이디어를 내며 조언해주었다.
지난번 탐색작업에서 발견한 붕어빵 기계로 붕어빵이나 만들라는 조언이었다.
이 사람이 붕어빵을 만들 수 있는지도 모르고, 그럴만한 재료가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슷한 시늉이라도 한다면 다른 사람들 역시 구매하는 흉내라도 보여줄 것이다.
멸망한 세상에서 오락거리라고 부를만한 것은 얼마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아니, 붕어빵이 아니라 사장님 소리를 듣고 싶다고. 그게 형 꿈이라니까?”
“······사장이 그렇게 좋아요?”
“그게 최고지. 그래서 우리 그룹 이름도 그거잖아. 컴퍼니.”
회사에 홀로 고립되어있던 나를 구해내고서, 우리 그룹의 이름이라며 그가 홀로 붙였던 이름이었다.
이제와서야 그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 이유로 베이스 캠프를 부르는 말도 회사라는 명칭으로 굳어져있는 상황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름 우스운 이야기였다.
멸망한 세상에서 회사라니.
멸망하기 전날에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좋아하지 못할만한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애초에 돈벌어봤자 쓸데도 없는 세상인데 사장이 뭐가 중요해요.”
계좌잔고니, 마이너스 통장이니 하는 것들이 전부 데이터쪼가리로 변해버린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그런 것들에는 일말의 가치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현금이야 땔감으로라도 사용할 수 있다지만, 계좌에 틀어박혀있는 돈은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일생동안 쌓아올린 모든 것이 허무하게 사라져버린 셈이었다.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숫자에는 문구점의 장난감총 정도의 가치마저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취미삼아서 지폐를 수집하는 사람은 많은 편이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자칭 사장님 역시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그동안 가게들 뒤져서 모아둔 돈 있잖아? 혹시 아냐? 나중에 구조대가 우리를 찾으러올지.”
“그거 그냥 태워서 땔감으로 쓰자니까요? 구조대가 올거였으면 진작에 왔어요.”
허나 그는 여전히 돈에 미련이 남은 모양이었다.
동현은 고개를 굳게 저어보이고서는, 나를 향해 눈치를 줄 뿐이었다.
그를 지켜보던 다른 구성원들 역시 키득거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오늘 단단히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이런 농담이 아니고서야 시간을 보낼만한 것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장단에 맞추어주기로 했다.
“아무튼 한번 불러봐. 사장님이라고.”
“······네, 네. 사장님.”
마지못해 그가 원하는대로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제서야 기분이 조금 좋아진 것인지, 그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이야기했다.
“그래, 천 이사. 날씨가 참 좋군.”
“제가 이사라고요?”
“너라면 그정도는 해야지.”
“우리 회사 이사 연봉은 얼마나 되는데요?”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그를 향해 물어보았다.
피식.
기분이 좋아진 자타공인 사장님은 한껏 펼친 손바닥을 내밀면서 이야기했다.
“연봉 5억.”
“그렇게 주면 회사 안망해요?”
“다 감수하고 주는거지. 그러니까 형한테 딱 붙어있어라.”
“······아, 예, 사장님. 월급 좀 제때 부탁드립니다.”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어느덧 우리는 바리케이트가 펼쳐진 안전구역의 끝자락에 도착했다.
도로를 가로막고 있는 바리케이트는 망자들을 몰아낸 자리에 세워놓은 것이었다.
우리들 사이에서 개척작업이라고 불리는 행위를 통한 결과물이었다.
물론 오늘 해야할 것은 개척작업이 아니라 확보된 구역의 탐색작업이었지만 말이다.
회사원 놀음도 이제 끝난 셈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그는 사전에 정해놓은 조대로 사람들을 흩어놓기 시작했다.
“자, 오늘도 다들 조심해서 가보자!”
탐색작업의 목적이야 다양했다.
놓치고 지나간 생존자의 탐색. 기호품이나 생필품의 탐색. 보존되어있는 식량의 탐색.
특히나 술, 담배나 식사같은 것을 찾는 것이 주된 목표였다.
라면의 경우에는 마지막으로 생산된 물건조차도 소비기한이 아슬아슬한 경계까지 다가왔기 때문에, 문제없이 먹기 위해서는 가능한 빨리 찾아내야할 필요가 있었다.
2인 1조로 인원을 분배한 그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무전 잘 받고. 문제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예이, 예이.”
“일단 한 번 정리해놓기야 했지만, 혹시나 괴물이 튀어나올지도 모르니까 조심하고.”
“거, 우리가 애도 아니고, 걱정말고 유성이랑 잘 다녀와.”
당연하지만 내 경우는 동현과 같은 조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한 것도 있고, 어느쪽이든 상대방을 선호하는 면도 있는 까닭이었다.
주의사항을 전부 전달한 그는 나와 함께 인적이 드문 거리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시들어버린 거리에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방금전까지 옆에 붙어있던 동료들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순식간에 적막해진 분위기가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갑자기 조용하네요.”
“무슨소리야. 원래 우리가 제일 크게 떠들었어.”
“그래요? 나는 제법 조용했던 것 같은데.”
“유성아. 가만보면 너도 갈수록 양심이 없어지는구나.”
진심이 섞이지 않은 타박에 나는 조용히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 정도야 늘상 있는 대화였다.
“오늘은 여기나 한 번 조사해볼까.”
한참동안 걸어 어느 건물 앞에 멈춰선 동현은, 건물의 외관을 쭉 훑어보면서 이야기했다.
우리가 발걸음을 멈춰세운 장소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이 위태로워보이는 2층 건물이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는 건물이었다.
옆에 세워진 교회의 첨탑이 부러져 건물의 상층부를 때리고 있으며, 외벽과 옥상에 균열이 벌어져있는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언제 무너져도 모두가 이해할만한 그런 장소였다.
“건물 상태가 어째 좀 심각한데요?”
건물의 상태를 지켜보던 내가 그런 말을 남기면, 동현은 웃으면서 무너져가는 건물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반쯤은 합리적이면서, 또 반쯤은 궤변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니까 지금 살펴봐야만 하는거야. 무너지고 나서 탐색하면 안에 있던 것들은 형체도 안남을걸.”
“그거야 그렇긴 한데요.”
“물론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튀어나와야지.”
말을 마친 그는 곧장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끼이익.
삐걱거리는 유리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먼지가 내려앉은 건물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1층은 상점들이 늘어선 상가 느낌이었고, 구석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놓여있었다.
콜록, 콜록.
먼지를 들이마신 입에서 절로 기침소리가 터져나왔다.
“유성아. 내가 1층을 둘러볼테니까, 네가 2층을 확인해봐라.”
상가를 둘러보던 동현은 본인이 1층을 맡겠다며 나에게 이야기했다.
망자들을 한 번 정리한 곳이니만큼,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문제라면 오히려 이 건물의 상태쪽이 더 문제였으니 말이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제안을 받아들였다.
둘이 같은 공간을 뒤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하나씩 찾아보는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렇게 하죠.”
“그럼 잘 부탁한다. 문제 생기면 바로 무전하고.”
“소리만 질러도 들릴텐데요, 뭘.”
짧은 대화를 마친 나는 곧바로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물론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혼자 중얼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금 내 마음속에 있는 가장 큰 바람은 라면이었다.
그것도 한동안 먹어보지 못했던 순한맛 라면에 대한 갈증이었다.
“라면이나 좀 나왔으면 좋겠네.”
마음속의 소리를 여과없이 내뱉으면서 2층 층계에 올라섰다.
망자들이 없는 곳이라면 혼자서 떠드는 버릇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실제로 1층의 자칭 사장님을 만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회사에 고립된 채로 혼잣말을 하면서 버텨왔으니까 말이다.
당시에는 그렇게라도 하지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와서는 고치기 어려운 버릇들 중 하나가 되었지만 말이다.
결국은 대재해가 발생하고 나서 가지게 된 버릇인 셈이었다.
“멀쩡한 맥주가 있으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
2층을 둘러보던 나는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인기척에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2층의 어딘가에서 미약한 콧노래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변에 망자가 있나 싶어서 삽을 쥔 손에 힘을 불어넣었지만, 이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귓가에 들려오는 콧노래는 틀림없는 사람의 것이었다.
그것도 여성의 목소리에 가까운 것이었다.
“설마.”
설마 지난번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생존자가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나는 귓가에 작게 들려오는 소리를 쫓아 복도를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콧노래가 울려퍼지는 방향을 찾아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유리문 앞에서, 나는 그 너머에 있는 사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생존자?”
만화카페로 추정되는 가게에서 책을 보고 있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거기에는 몸에 맞지 않는 티셔츠를 입고있는 검은 머리의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카페의 구석에 자리를 잡은 채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책을 읽는 중이었다.
나는 그런 소녀를 지켜보다가, 이내 유리문을 열고 만화카페의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에 들어선 내 발에 가장 먼저 밟힌 것은 찢어진 만화책의 한 페이지였다.
바닥에 잔뜩 늘어선 먼지와 종이들이 그동안의 상황을 증명하고 있었다.
“사람이 들어온 모양이네.”
그리고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책을 읽고 있던 소녀가 입을 열었다.
칠흑의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소녀에게서는 무언가 기묘한 분위기가 전해져오고 있었다.
나는 그런 소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반쯤 망가져버린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찢어진 만화책이 즐비한 것을 제외하고는 큰 문제는 없어보이는 광경이었다.
쿵.
어깨에 걸치고 있던 삽을 바닥에 내려놓고서, 책을 보던 소녀를 향해 인사를 가장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생존자가 남아있을 줄은 몰랐는데. 어디 다친 곳은 없어?”
그렇지만 질문을 받은 소녀에게서 답변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낯을 가리는 모양인지, 그게 아니면 대답이 하기 싫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녀가 어떤 대답을 하던간에, 지금 내가 해야하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허리춤에 매달아놓았던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다른 곳에 있을 동료들에게 생존자 발견에 대한 정보를 전하려고 했다.
“동현이 형, 아무래도 제가······.”
“쉿.”
허나 무전기의 송신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나는 소녀의 행동을 보고 손을 멈춰세웠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던 소녀가 갑작스럽게 손을 들어올린 것이었다.
소녀는 입에 손가락을 올려놓고서 조용히하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보고를 올리려는 것이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이 걱정되는 것인지, 그게 아니면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을 들키는 것이 싫은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다른곳에 있는 사람을 부르는 것을 기피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보였다.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생존자 그룹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려고 했다.
“걱정할 필요는 없어. 내가 이런 말하면 우습겠지만, 우리 회사, 아니 그룹에 나쁜 사람은······.”
“하나정도야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사람이 너무 많으면 자비를 베풀어주기 곤란해.”
“자비라고······?”
“마주한 사람들을 얌전히 보내주기는 어렵다는 뜻이야.”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눈앞의 소녀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기피한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소녀의 태도를 보건데 지금 당장 다른 사람들을 소개하기에는 조금 곤란해보였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언가의 절충안이 필요했다.
나는 잠시동안 특이한 분위기의 소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짧은 결론을 내리고서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뭐, 부끄럼을 많이 타는 것 같은데··· 무리해서 다른 사람을 부를 필요는 없겠지.”
일단은 보고를 보류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