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Beyond Fantasy Smartphones RAW novel - Chapter 57
“이 협곡만 지나면 센티리어스 지방을 완전히 벗어나게 됩니다.”
자신을 따라오는 베텡게 남작의 목소리에 마이어 백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마이어 백작의 뒤에는 베텡게 남작을 포함한 수많은 호위병력들이 움직이는 중이었다.
마이어 백작을 필두로 제국의 주요 귀족들에게 발송된 후작의 초청장 때문이었다.
후작가의 금지옥엽이 성인식을 맞이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실제로는 귀족파의 결속을 굳히기 위한 구실이었다.
그런 후작의 초청에 마이어 백작이 응하지 않을 수 없었던 탓이다.
특히나 쿠에베르그의 문제로 황실의 권위가 크게 추락한 지금, 파벌 내부의 결속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그렇군. 그런데 베텡게 남작은 이번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긴 여행길이 벌써부터 따분해졌기 때문일까.
마이어 백작이 자신의 옆에서 움직이던 베텡게 남작을 보며 물었다.
도시를 빠져나오기 전에 있었던 일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탓이었다.
갑작스러운 마이어 백작의 질문에 베텡게 남작이 그에게 되물었다.
“후작님의 초대에 대해 말씀하시는 겁니까?”
“렉스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아… 렉스 공자님 말씀이시군요. 이번에 군사경험을 쌓기 위해 산적 토벌에 보내셨다고 하셨지요.”
마이어 백작은 도시를 빠져나오기 전에 렉스에게 명령을 내리면서 백인대 하나를 붙여두었다.
버려진 요새에 머물고 있는 산적들을 토벌하라는 명령이었다.
마이어 백작 부인의 제안도 있었던 데다가, 장자인 렉스에게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더군다나 렉스에게 붙여둔 백인대장 역시 제법 유능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렉스의 곁에 호위기사가 있다는 점까지 감안해보면, 렉스가 다칠 일은 없을거라는게 마이어 백작의 생각이었다.
“그래. 렉스라면 무리 없이 성공할 것 같나?”
“그 요새는 망가져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곳이 아니었습니까?”
“전략적인 가치가 퇴색되었으니, 요새를 수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게지.”
산적들이 차지한 요새는 제국의 영토가 지금보다 훨씬 좁았던 시기에 건설된 것이다.
외적으로부터 제국의 국경을 수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허나 시간이 지나면서 전략적인 가치가 퇴색되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망가진 애물단지에 불과했다.
이제와서 요새를 보수한다고 하더라도 비용이 얼마나 들어갈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마이어 백작은 산적들을 토벌하는데 렉스를 내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남작은 마이어 백작의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백작을 향해 자신의 생각을 돌려주었다.
“도적의 숫자가 적은데다가 요새까지 망가졌으니, 공자님이라면 쉽게 공략하시지 않겠습니까.”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물론입니다. 보고받은 숫자의 산적들로는 도시의 정예병들에게 맞서지 못할겁니다.”
“자네 생각도 그렇단 말이지.”
베텡게 남작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백작을 향한 조그만 아첨을 추가로 늘어놓았다.
“게다가 렉스 공자님은 백작님을 닮지 않았습니까? 분명 백작님처럼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실겁니다.”
“백작령 전체에서 최고의 무재를 가진 남작이 그렇게 말하니 믿음이 가는군!”
렉스의 토벌 성공을 자신하는 남작의 말에 마이어 백작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경험을 쌓게 해주겠다며 전장에 아들을 내보내면서도 내심 불안했던 탓이었다.
마이어 백작 부인이 아무리 렉스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더라도, 렉스는 마이어 백작에게 있어 소중한 첫째 아들이었다.
그렇게 백작과 호위병력들이 협곡을 함께 나아가던 도중.
행렬의 선두에 서있던 기사 하나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뒤따르던 행렬에 멈출 것을 명령하는 외침이었다.
“정지! 전원 멈춰서라!”
기사의 옆에 서있던 기수가 깃발을 펄럭이고, 이내 전진하던 백작가의 행렬이 멈춰섰다.
행렬을 멈춰세운 기사의 행동에 마이어 백작이 지시를 내린 기사를 바라보았다.
기사는 일행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에 백작의 시선 역시 자연스럽게 협곡의 앞쪽으로 향했다.
백작가의 행렬이 멈춰선 위치로부터 조금 떨어진 앞쪽.
그곳에는 튜닉을 입고 서있는 중년의 남성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너는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선두에 선 기사가 갑작스럽게 등장한 수상한 인물을 향해 정체를 물었다.
협곡을 나아가던 모든 호위병력의 시선이 눈앞의 남자에게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협곡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던 남자였다.
게다가 남자는 이 험난한 협곡에 혼자 덩그라니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홀몸으로 행렬을 가로막고 있는 남자의 모습에 수상하게 여기지 않을만한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자신의 정체를 묻는 기사의 질문에, 남자는 백작이 있는 방향으로 공손한 인사를 올리며 이야기했다.
“저는 교단의 대주교 로안 헤브리스입니다.”
“교단……?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지?”
“위대하신 분을 섬기며 그분의 뜻을 전파하는 가장 미천한 종복이지요.”
교단이라는 이름을 들은 마이어 백작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눈앞의 남자는 악신을 섬기는 이교도가 틀림없었다.
로안을 바라보던 마이어 백작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상대를 향한 멸칭이 흘러나왔다.
“……이교도.”
“이교도라니, 굉장히 모욕적인 발언이군요.”
“이교도가 대체 내 앞에는 무슨 볼일이지?”
그런 이교도가 어째서 단신으로 마이어 백작을 찾아온 것인가.
마이어 백작이 그런 생각을 하며 로안을 바라보면, 로안이 혀를 차면서 백작을 마주보았다.
백작을 보는 로안의 시선에는 광기와도 같은 기색이 어려있는 모습이었다.
로안은 용건을 묻는 마이어 백작을 향해 앞으로 손을 뻗으면서 이야기했다.
“어차피 금방 죽을 상대이니만큼 크게 신경쓰지는 않겠습니다.
“지금 뭐라고……?”
“제가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당신을 죽이기 위해서니까요.”
쉬이익.
로안의 소매를 타고 머리를 드러낸 뱀이 혀를 날름거렸다.
로안이 보인 것은 명백한 선전포고였다.
백작을 죽이겠다는 로안의 협박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무기를 들어올렸다.
상대가 명확하게 적대의사를 표현한 이상, 남은 것은 전투를 벌이는 일 뿐이었다.
선두에 선 기사는 로안을 향해 검을 겨누면서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상대는 이교도다! 전투 준비!”
“전원 돌격! 적을 섬멸하라!”
거센 함성과 함께 백작가의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두에 있던 기사들은 말을 타고 로안을 향해 돌격해오는 모습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로안과 기사들간의 사이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로안은 자신을 노리는 기사들의 모습에도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말을 몰아 돌격한 기사들이 로안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순간.
로안은 소매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던 뱀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베타. 이제 먹어도 좋습니다.”
쿠구구구구구궁!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로안의 그림자가 커다랗게 확장되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늘어난 그림자속에서 뱀의 머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둠을 휘감은 거대한 뱀의 형상.
암영마수. 그림자에 숨어사는 지저의 마수가 지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목격한 마수의 모습에 앞으로 돌격하던 기사들이 황급히 고삐를 당겼다.
“뭐, 뭐야!”
“괴물이다! 괴물이 나타났다!”
“돌격 중지! 이대로 가다간 충돌한다……!”
육안으로 보이는 머리만으로도 충분히 거대해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런 존재가 고개를 완전히 치켜들었다간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 사실에 대해서는 이 자리의 누구라도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암영마수의 형상에, 당황한 기사들은 말을 멈춰세워 충돌을 피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베타가 입을 쩍 벌리며 튀어나오는 편이 더 빨랐다.
어둠속에서 일렁이던 그림자는 금색 눈을 번쩍이면서 쩌억 하고 입을 벌렸다.
– 쉬이이이이이익!
구렁텅이와도 같은 거대한 입을 벌리며 그림자를 빠져나온 베타의 입이 기사들을 집어삼켰다.
큼직하게 벌어진 베타의 입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빛이 없는 심연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심연.
인간의 얕은 감각으로는 그 깊이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이 펼쳐졌다.
사람이나 말은 물론이거니와, 마차까지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공간에 기사들이 빨려들어갔다.
“어, 어, 어어어……?”
“배, 백작님!”
선두에 선 기사들이 베타의 거대한 입속으로 완전히 빨려들어간 직후.
허공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던 베타가 완전히 입을 닫았다.
콰직. 콰드득.
섬뜩한 파열음과 함께 앞으로 돌격하던 기사들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굳게 닫힌 베타의 입 너머에서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악——!”
“아아악! 살려줘……!”
콰드득. 콰득.
사람들을 입속에 집어넣은 베타는 몇차례 더 입을 오물거렸다.
베타의 입이 움직일 때마다 계속해서 섬뜩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베타의 입이 완전히 그 움직임을 멈추었을 때.
더 이상 베타의 입속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끔찍한 참상에 백작이 망연자실한 눈동자로 베타를 바라보았다.
“저, 저게 대체…….”
백작가의 충성스러운 기사들이 한순간에 괴물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십수년간 백작가의 자금을 쏟아부어 육성한 기사들이 괴물의 한끼 식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눈앞에서 일어난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마이어 백작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지금의 손실은 백작가에게 있어서 쉽게 회복할 수 없는 커다란 타격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두려운 것은, 기사들을 집어삼킨 눈앞의 괴물에게 상처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제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곧 죽을 운명이라고 말입니다.”
“왜 나한테… 이런 짓을 하는거냐.”
베타를 바라보는 마이어 백작의 목소리는 아까보다도 힘이 빠져있는 상태였다.
어째서 자신을 습격하는가.
그런 마이어 백작의 질문에 로안이 미소를 지었다.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를 지은 로안의 눈.
그리고 짙은 그림자의 너머를 꿰뚫고 있는 베타의 황금색 눈동자.
두쌍의 시선이 일제히 마이어 백작에게로 쏟아졌다.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 물었습니까?”
“그, 그래. 나는 백작이다. 이런 짓을 해서 교단에게 좋을게…….”
“왜 좋을게 없습니까? 당신이 죽으면 렉스 공자가 백작위를 물려받게 될텐데.”
로안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뜻밖에도 렉스에 대한 이야기였다.
백작이 죽으면 렉스가 다음 대의 마이어 백작위에 오르게 될 것이다.
로안은 백작을 향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렉스를 백작으로 만들겠다는 말에 백작의 얼굴은 이전보다도 더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렉스가 백작위를 물려받는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
“모르셨습니까? 렉스 공자는 이미 충성스러운 교단의 신도입니다.”
“렉스가 교단의 신도라고?”
“물론입니다. 렉스 공자가 백작위에 오르면 도시에 위대하신 분의 신전을 짓기로 약속했으니까요.”
그제서야 백작의 머릿속에서 모든 퍼즐이 맞추어졌다.
까득.
로안과 대화하던 마이어 백작이 이를 악물었다.
사랑하는 그의 아들이 이교도였다니.
백작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현실이었다.
물론 백작과 로안이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마이어 백작을 위해 움직이는 이는 있기 마련이었다.
백작의 옆자리에 계속 붙어있던 베텡게 남작이 그의 손을 붙잡고서 큰 소리로 외쳤다.
“백작님!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빨리 퇴각하십시오! 시간은 제가 벌겠습니다!”
“남작…….”
“이대로 도시가 이교도의 손에 넘어가는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가능한 빨리 돌아가셔서 백작령을 구원해주십시오!”
베텡게 남작의 결의어린 눈동자가 마이어 백작을 바라보았다.
베텡게 남작은 어린 시절부터 마이어 백작과 함께해왔던 사이였다.
목숨을 걸고 자신을 살려보내겠다는 남작의 말에 백작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마지막까지 충성스러운 부하와 함께하고 있던 자신의 행운에 감사하기 때문이었다.
“남작, 나는…….”
“고작해야 이 정도 숫자로는 저 괴물과 싸워서 이길 수 없습니다!”
“……알고 있네.”
“영지로 돌아가셔서 가능한 빠르게 병력을 모으셔야만 합니다!”
암영마수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규모의 군대를 일으켜야만 한다.
베텡게 남작의 말은 그야말로 정론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군대를 일으키는 것은 백작의 역할이었다.
가능한 빠르게 영지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베텡게 남작을 향해 백작이 있는 힘껏 감사를 전했다.
“베탱게 남작! 반드시 자네의 가족들을 책임지도록 하겠다!”
“백작님! 꼭 살아서 돌아가십시오.”
인사를 마치기 무섭게 말을 돌려 도망가기 시작한 마이어 백작.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안이 도망가는 마이어 백작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이어 백작. 정말 이대로 도망갈 생각입니까?”
“사악한 이교도여! 내가 있는 한 너와 괴물은 이곳을 지나갈 수 없다!”
“굳이 지나갈 생각도 없습니다.”
로안은 베텡게 남작을 무시하고서, 도망치는 마이어 백작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마이어 백작은 호위병력 일부와 함께 백작령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로안은 백작을 향해 움직이기는 커녕,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로안의 태도에 베텡게 남작이 의아해하고 있던 찰나.
스윽.
로안의 품에서 단검 하나가 튀어나왔다.
불길한 기운을 휘감고 있는 아름다운 외형의 단검이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원망하십시오.”
“커허억……!”
콰릉!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려퍼지는 것과 동시에 마이어 백작이 낙마했다.
낙뢰에 직격당한 말은 곧바로 즉사했고, 고삐를 붙잡으며 달리고 있던 백작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바닥에 떨어지면서 머리를 부딪힌 백작의 손발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흐릿해져가는 시야속에서 백작의 시선이 도시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마이어 백작이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