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139
열일하는 과금 기사 138화
* * *
지구에는 [선별사]라는 직업이 존재한다. 비전의 술식을 계승받는 그들은 세계 각지에서 공무원으로 활약하며 시청, 동사무소 등으로 찾아오는 대상의 재능을 완벽에 가깝게 파악한다.
속성 : 무(無)
적합 이능 : 없음. 폐급 마나 적성
특성 : 초인적인 운동 신경, 초인적인 정신력, 불가해한 전투 예지, 불가해한 신체 제어
당시, 내가 받은 결과가 이것이었다. 타고난 속성조차 없는 영적 장애인.
여러모로 잔인한 결과지만 그 결과의 정확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나야 절망을 확인했을 뿐이지만 34지구의 모든 인류는 선별사의 힘으로 자신의 적성을 확인한다.
그 후에 그 재능을 따라갈지는 자신의 선택이더라도, 적어도 영능 적성을 몰라서 헤매는 일은 없다는 것.
‘하지만 아르데니아에는 선별사가 없지.’
그저 비전의 술식 하나만 있으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다수의 궁극 마법으로 이루어진 인프라가 깔려 있어야 했기에 아르데니아에서 그걸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
때문에 나는 다른 방식을 적용했다.
바로 삼재육합공(三才六合功)이다.
‘지구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기술이라 찾느라 고생했지.’
삼재육합공은 향후 어떤 방향으로든 성장할 수 있는 기본공이다. 심법 자체에 속성도 없고 특정한 철학이나 이념도 담겨 있지 않은, 문자 그대로 심법의 바탕을 이뤄 주는 게 목표인 기공.
나는 인류제국의 무인 지망생들은 모두가 삼재육합공을 익히도록 조치했다.
삼재육합공은 아무리 느려도 100일, 빠르면 일주일 만에 대성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이는 앞으로 무공의 토대(土臺)를 마련하는 데 의의를 둔 수련법이지만, 동시에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는 게 가능하다.
‘대성에 걸리는 시간을 수련자의 재능에 대한 지표로 삼을 수 있지.’
만일 누군가가 삼재육합공의 대성에 3개월 이상이 걸린다면?
그는 잔말 말고 쾌진공이나 익혀야 한다.
그런 재능으로 신공 같은 걸 익혔다가는 죽을 때까지 일주천 한 번 못해 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불굴의 의지로 모자란 재능을 이겨 내는 것이 없는 일은 아니지.’
그러나 시스템은 대다수의 케이스를 대상으로 짜여야 하는 것.
실제로 현재 인류제국에 가장 널리 보급된 천룡검공(天龍劍功)의 경우, 적어도 50일 안쪽으로 삼재육합공을 대성해야 입문이 허락된다.
‘반대의 케이스도 있고.’
사람의 재능은 천차만별이라 누군가는 3개월을 꽉 채워야 하는 과정이 누군가에게는 10일도 긴 속성 과정에 불과하다.
삼재육합공의 2개월과 10일은 단순한 6배의 시간 차이가 아니라 도달할 수 있는 한계선의 차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소드 마스터가 될 재목은 이 입문공에서부터 두드러지는 성취를 얻기 마련이다.
“응? 알겠어? 두드러지는 성취를 얻기 마련이라고.”
“네…….”
“아니, 검기까지 만들어 낸 녀석이 삼재육합공을 운기조차 못하는 게 말이 되냐?”
에드워드가 검기를 발현한 것은, 분명 사실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녀석을 소드 마스터나 검술 완성자라고 지칭하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또 틀렸어!”
“아오!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해요! 마나만 움직이면 되는 거 아니에요?”
“마나만 움직이면 당연히 안 되지! 아니, 애초에 삼재육합공의 구결이라고 해 봐야 마흔 자밖에 안 되는데 그걸 왜 틀려?”
마나, 그리고 빛 속성에 대한 에드워드의 친화력은 녀석이 인간인지 아니면 추락한 천족인지 의심이 들 정도다. 제대로 된 무공서를 접하자 일주일 만에 검기를 만들어 내는 미친 재능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녀석의 지능.
“이거 완전 빡대가리 아냐?”
“말이 너무 심하잖아요!”
이 멍청한 놈은 입문공 마흔 자 구결도 못 외운다.
다 외웠나 보면 어느새 틀려서 엉뚱하게 운기조식을 하는 수준.
“아니, 천(天) 자를 왜 목(目) 자랑 헷갈려? 생긴 것도 의미도 완전히 다르잖아?”
“아, 맞아. 하늘이었구나.”
“…….”
상황은 구십구광검세 또한 마찬가지다.
“검기…… 다시 좀 만들어 봐.”
“아, 잠깐만요.”
에드워드가 오른손에 검을 들고는 왼손에 구십구광검세가 적힌 무공서를 들었다.
그리고 약 5분 후.
후우웅!
녀석의 검에서 빛나는 검기가 발현된다.
“성공!”
“에라이!”
버럭 성질을 부리자 에드워드가 항의한다.
“아니, 왜 자꾸 화내요!”
“왜? 왜냐니! 누가 검 들고 싸우는데 한 손에 책을 드냐? 네가 무슨 마법사야?”
폐급 마나 적성 때문에 내공을 제대로 수련하지 못하면서도 정공, 사공, 신공, 심지어 마공 구결까지 줄줄 외우고 다녔던 나로서는 책을 컨닝하며 운기하는 꼴에 속이 뒤집힐 수밖에 없다.
아니, 뭔 오픈북이야? 오픈북 배틀이라도 할 참인가?
“후…… 그래. 머리가 나쁘면 몸으로 배워야지.”
나는 지구로 가는 것도 미루고 에드워드를 가르쳤다.
물론 둘이나 되는 소드 마스터를 보유한 인류제국이지만, 지금 체계로 다음 소드 마스터가 나오기까지는 까마득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틸스톤은 정공 계열의 신공 역근세수경을 무려 20년 동안 수련한 결과가 지금 나타난 것이고, 헤이즈의 경우는 멸망의 시대에서 살아남은 미래의 기억과 경지를 끌어왔으니 새로 수련을 시작한 다른 기사들이 그들을 따라잡으려면 얼마큼의 시간이 필요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아니, 사실 그런 상황이 아니어도 관리할 녀석이긴 하지.’
완성자급 능력자를 십만 넘게 보유한 지구에서도 일주일 만에 검기를 발현한 중딩을 발견한다면 즉시 특별 관리에 들어갈 것이다.
설사 그 대상이 빡대가리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
“다음은 이 자세.”
“네.”
“……아니, 대답은 네 하고 잘하면서 뭐 하는 거야. 발뒤꿈치가 떠 있잖아.”
“이렇게…….”
“아니…….”
그러나 반나절 정도 가르친 결과.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이 자식, 심지어 몸치이기까지 하다.’
아이돌이 춤추는 모습을 눈으로 보았을 때, 누구는 그것을 한 번에 따라하지만 누구는 몇 번을 봐도 엉뚱한 자세만 취한다. 이는 단순히 암기력이 문제가 아니라 신체 운동 지능(bodily-kinesthetic intelligence)의 차이.
신체를 다루는 것에도 재능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이 재능이 모자라면 육체 활용의 끝판왕인 전투에 애로 사항이 꽃 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그, 그렇게 엉망이에요? 제가 이래 봬도 어릴 땐 형들을 이기고 더 자라서는 어른도 때려잡고 다녔는데…….”
“그건 오러의 힘으로 이긴 거지. 어른이 아이를 때리는데 무슨 기술이 필요하겠냐?”
몇 가지 테스트 결과 나는 에드워드가 가진 재능을 정리할 수 있었다.
[신화적인 마나 적성] [불가사의한 빛의 속성력] [빡대가리] [몸치]그렇게 상황을 정리한 나는 깨달았다.
‘나랑 정반대로군.’
입문자 수준의 내공으로 조폭 대가리를 깨고 다닐 정도의 전투 적성을 지녔음에도 폐급 마나 적성 때문에 나아갈 길이 없던 나와 달리 녀석은 어마어마한 마나 적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을 소화할 역량이 없다.
‘말하자면…… 무의 극(極)을 이룬 생쥐와 막싸움밖에 못 하는 호랑이다.’
만일 예전에 이놈을 만났으면 열등감과 자괴감에 정신을 못 차렸을 것이다. 생쥐 따위가 무의 극을 이뤄 봐야 막싸움 호랑이에게 이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생쥐, 호랑이를 넘어 우주 괴수가 된 내게는 녀석은 가르치기에 충분한 여유와 자비가 있다.
“일단, 이 책은 압수야.”
“주, 준 걸 다시 뺏는 게 어디 있어요!?”
“준 걸 뺏는 게 아니라 너한테 안 맞아. 이제 보니 속성 강화 구결은 없는 게 낫다.”
에드워드가 타고난 속성력은 너무나 강해서 그냥 아무 심법이나 익혀도 빛 속성이 깃들 지경이다. 속성을 발현하기 힘든 보통 인간 대상의 구결은 녀석의 기운을 폭주시킬 뿐이다.
“그럼 뭘 배우는데요?”
“태극권.”
그중에서도 이십사식태극권(二十四式太極拳)이다. 흔히 간화태극권(簡化太極拳)이라 불리는 것으로 국가 체육주관의 무술답게 동작이 부드럽고 균일하며 자세가 바르고 편안하다.
태극권 중에서도 간단한 동작으로 구성된 양식 태극권을 노인과 아이도 쉽게 익힐 수 있도록 개선한 버전. 솔직히 무공보다는 양생법에 가깝다. 무공 중에서도 고난이도에 속하는 구십구광검세에 비하면 난이도가 없다시피 한 수준.
물론 그래도 24개나 되는 동작을 실전에서 쓸 정도로 깊이 수련하기는 어렵겠지만.
‘구결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면 진행이 안 되는 구십구광검세와는 달리 이건 몸으로 때우는 게 가능하니까.’
에드워드 녀석이 빡대가리긴 해도 무슨 장애를 가지거나 한 것은 아니다. 끝없이 암기하며 몸을 움직이면 어떻게든 익히게 되어 있다.
“일단 8글자를 외워라. 허령정경(虛靈頂勁). 함흉발배(含胸拔背).”
“어…… 어? 이건 뜻이 간단해요! 그냥 자세인데요?”
“그래. 정경은 머리와 척추를 바르게 하는 걸 뜻해. 머리의 가마 부분에 끈이 달려 있다고 생각해 봐. 그 끈을 당겨 보면…….”
시간이 지난다.
나는 규칙적으로 생활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레이트 홀의 배우들이 차려 주는 아침을 먹고 오전 내내 에드워드를 가르쳤다.
녀석이 구제 불능의 빡대가리라는 것은 이해한 상태였기에 녀석의 손짓 하나, 발끝의 땅에 닿는 각도까지도 철저하게 통제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다시 오후 내내 에드워드를 가르쳤다.
에드워드는 빡대가리에 몸치였지만 황제라는 인간이 하루 대부분을 자신을 위해 쓴다는 것의 의미를 모를 정도의 멍청이는 아니다.
녀석은 땀을 비처럼 쏟고 때로는 머리에서 김이 날 정도로 구결을 외우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수련에 전력을 다했다.
일주일, 이주일, 한 달, 두 달.
나는 종종 카심을 타고 날아가 아이언 캐슬에서 밀린 일을 처리할 때 말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불꽃성에서 보냈다.
황제인 내가 머물고 있기 때문일까?
수천 킬로미터라는 까마득한 거리에도 어마어마한 인원이 불꽃성에 찾아왔다.
그뿐이 아니다.
염마왕의 납치를 피해서 숨어 있던 신성 제국의 난민들, 이그니션에서 인류제국이라는 세력에 매력을 느껴 찾아온 망명자, 서쪽으로 피신했던 명 제국의 난민과 크리스털 연맹의 아인들.
불꽃성은 그 모두를 받아들여 인구를 불렸다.
불꽃성으로 터전을 옮긴 플라워와 크롬 왕국의 일을 마치고 찾아온 헤이즈, 그리고 강철십자 기사단을 끌고 온 스틸스톤이 그들을 분류하고, 훈련시키고, 심지어 일부는 플레이어로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에드워드를 가르쳤다.
“도권굉(倒捲肱).”
훅!
양발을 퇴보(退步)로 물러나는 가운데 교차하며 원을 그린다. 그 모든 동작이 물 흐르듯 빠르고 안정적.
놀라운 것은 그 동작을 취하는 에드워드의 전신에 빛이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단 한 자의 속성 구결도 없는 태극권. 그마저도 간략화 된 무술에서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녀석의 하단전에 머물렀던 오러가 척추를 따라 기화(氣化)되어 연정화기(煉精化炁)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의미기도 했다.
뇌가 자극되니 타고난 광 속성이 트이고 그것이 피부를 따라 흐르며 마치 옷처럼, 갑주처럼 육신을 보호한다.
“가볍게.”
“네, 폐하.”
“부드럽게.”
“네.”
녀석을 이렇게 오래 가르칠 생각은 없었다. 천재적인 재능이 있을 테니 발전된 지구의 무학을 던져 주면 적당히 쓸 만한 무력이 될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빡대가리 녀석을 가르치며…….
뭔가 느껴지는 게 있었다.
“천천히. 그리고 더 가볍게.”
“네, 폐하.”
“더.”
“네.”
단 한 번도.
무학, 혹은 초식에서 추구하는 자세 때문에 고민한 적이 없다. 자세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고민하지 않아도 최적의 자세를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 눈만 감아도 거리감을 상실하는 것이 인간이다. 땅이 조금만 기울어져도 균형감에 오류가 생기고 자신의 팔다리조차 완벽히 통제하지 못한다.
신체가 피곤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그저 통증으로만 이해하고, 심지어 통증이 느껴져도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조차 모르는 것이 보통의 인간.
그러나 나는 다르다.
어떤 자세, 어떤 지형에 서 있어도 나는 내 육신을 완전히 통제한다. 남근을 손가락처럼 움직일 수 있고 심장 박동마저도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다. 배가 아플 때 그게 간이 아픈 것인지 위가 아픈 것인지 아니면 소장인지 대장인지까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존재.
그러나 오히려 그 때문에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무학에서 자세가 가지는 의미. 육신의 움직임에 따른 힘의 흐름.
똑같이 팔을 들라고 해도 전혀 다른 각도로 들고, 발을 내디디라는 지시에도 5센티 앞을 밟았다, 8센티 뒤를 밟았다, 뒤꿈치를 땅에 내려놨다 들었다 하는 에드워드의 대환장 파티 속에서, 나는 내가 지금껏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무의 일면을 조금씩 보았다.
“흐름…….”
그것은 어디에나 있었다. 내가 내뱉는 호흡에, 발걸음 하나에도 그것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알게 되었다.
고오오…….
“폐하?”
“모두 물러나.”
“쉿. 조용히 빠져라.”
어느 순간 내 무학에는 흐름이 사라졌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레벨이 오르고 컬렉션을 완성하며 내 육신의 성능이 너무나 높아졌기 때문.
모든 공격이 단타로 해결 가능한데 왜 흐름이 필요하겠는가? 심지어 나는 싸우기 위한 무학이 아니라 공업용 무학인 랜드 브레이커를 주력으로 삼을 정도로 흐름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흐름은 단 한 번의 공격에도 존재하며.
나의 육신 그 자체에도 존재한다.
덜컹!
새로운 요소가 [완성]되어 심상 세계에 새겨진다. 그것이 단순한 요소가 아닌, 스스로 존재하는 소우주가 열리자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앎]이 폭포수처럼 머릿속에 쏟아졌다.
그리고 그렇게 영겁처럼 긴 시간이,
아니 어쩌면 한순간에 불과한 시간이 지나고 조용히 눈을 뜬다.
“……좋군.”
공모전 마감일이 다가오는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