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Return to Home RAW novel - Chapter (79)
군웅들의 항의가 격렬해지자 가장 당황한 사람은 심사를 맡았던 오대세가 가주들이었다.
애써 무시하려고 해도 무림맹주 여식인 좌약약까지 거들고 나서자 이제는 입장을 발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 다들 진정하십시오!”
감독관의 거듭된 요청에도 항의가 끊이지 않자, 사천당가주 당경이 단상 앞으로 나왔다.
“무명서생에 대한 면접 심사를 맡았던 심사위원 중 한 명인 사천당가 가주 당경입니다. 오해가 깊은 것 같으니 제가 직접 질문을 받도록 하지요.”
당경의 말에 군웅 중 한 명이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애초 출신내력을 보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유력한 우승 후보를 탈락시킨 이유가 무엇입니까?”
“조금 전 언급되었지만 와룡대주 자리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출신내력을 보지 않겠다고 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전혀 보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뜻은 명문세가든 잘 알려지지 않은 중소문파든 가리지 않겠다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무명서생의 사문인 무명문은 단 한 명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무명서생 역시 어떤 자료도 제출하지 못했지요. 이는 최소한의 조건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중책을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건 억지 같군요. 사문의 이름을 모를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럼 사문 없이 개인적으로 무공을 연마한 사람은 무조건 탈락입니까? 아무리 그럴듯한 변명을 하셔도 결국은 무명서생께서 남궁 가주님을 이긴 사실 때문이 아닙니까? 오대세가의 체면이 떨어져 그 원인 제공자에게 불이익을 준 것이지요. 지금이라도 철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옳소!”
“동의하오!”
군웅들의 반발이 더욱더 커졌다.
당경의 말이 전혀 먹히지 않고 있었다.
좌약약이 말했다.
“신원이 불명한 게 그 이유라면 제가 추천을 하도록 하지요. 그러면 되지 않겠어요?”
“그건 좀······.”
당경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나머지 오대세가 가주들 역시 곤혹스러워했으나, 그렇다고 결정을 되돌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백엽을 구제하면 자신들의 결정이 잘못되었음을 자인하는 것으로, 오대세가의 권위가 떨어질 위험이 컸다.
오대세가 가주들이 당혹스러워할 때.
무림맹 총군사 만통선생이 나타났다.
좌약약이 그를 반겼다.
“총군사님. 마침 잘 오셨어요. 처음부터 들으셨나요?”
“네. 아가씨.”
“좋은 방도가 없을까요? 무명서생 그분은 무림의 인재라 할 수 있는데, 이렇게 홀대한다면 우리 무림의 큰 손실이라 할 수 있어요.”
“동감입니다. 일단 무명선생부터 찾아야 할 듯합니다. 분명 군웅들 속에 있을 겁니다. 무명서생께서는 모습을 드러내 주시겠소?”
만통선생의 말에 군웅들이 웅성거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
백엽을 알아본 무림인 한 명이 소리쳤다.
“여기 계십니다!”
“아! 진짜 무명서생이네?”
군웅들의 목소리가 들린 곳을 쳐다보니 진짜로 백엽이 있었다.
백엽이 매영설과 함께 담담한 표정으로 단상 쪽으로 왔다.
사실 그는 조용히 구경만 하기 위해 처음에는 내공을 이용해 얼굴 부위에 뿌연 기막을 형성했으나, 상황이 반전되자 조금 전 그 기막을 제거했다.
이는 군웅들의 반발이 그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기 때문이었다.
하기야 정파 무림인들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지지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정파 무림인으로 신분을 위장한 이유도 있겠지만, 천마신교 무사들에게서 받았던 그런 깊은 유대의 감정을 이곳에서 느낀 것은 실로 의외였다.
‘역시 핏줄은 속일 수 없는 것인가. 하기야 내 몸에는 정파 무림인의 피가 흐르고 있지.’
백엽이 눈을 빛내며 단상 위까지 올라갔다.
매영설은 단상 밑에서 대기하며 다음 상황을 대비했다.
백엽이 모습을 드러내자 곧바로 군웅들의 반응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
짝짝짝.
함성과 박수에 백엽이 포권으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무명소졸인 저에게 이렇게 영웅 여러분께서 깊은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만통선생이 백엽에게 전음을 보냈다.
「지금이라도 천마암살단의 단주를 맡는다고 약속해주시겠소?」
「놀랍군요. 이런 상황을 처음부터 예상한 겁니까?」
「부인하지 않겠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천마암살단을 맡을 사람은 귀하밖에 없을 듯하오.」
「저를 너무 높게 평가해주시는군요. 하지만 이미 말씀드렸듯이 저는 천마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암살 대상이 칠마종 종주라면 몰라도 천마 암살은 어려울 듯합니다.」
「천마 우선 제거는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 변경할 수 없소. 아쉽구려. 군웅들의 반발이 크지만 내가 돕지 않는 한 시합에 출전하기는 어려울 것이오.」
「그럼 할 수 없지요. 사실 저도 이제 와룡대주 자리에 큰 미련이 없습니다.」
백엽의 단호한 거절에 만통선생이 안색을 굳혔다.
그의 예상이 결정적인 순간에 빗나갔기 때문이었다.
출세를 위한다면 자신의 제안을 거부할 리 없다고 판단했던 그였다.
‘단주 자리를 맡지 않으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칠마종주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유독 천마만 두려워한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만통선생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는 상대가 어떤 사람이라도 일단 의심부터 하는 성격이었다.
실제 그런 예리함으로 간자들을 적발한 적도 많았다.
‘으음, 고집을 부리면 일단 와룡대주 자리에 앉히고 나중에 다시 설득하려고 했는데, 최소한의 검증을 해봐야겠구나.’
만통선생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좌약약이 말했다.
“총군사님께서 좋은 해결방안을 마련해주시지요. 일단 신원 보증인이 필요하다면 제가 맡을 의향이 있다는 점을 다시 밝힙니다.”
“감사합니다.”
백엽이 좌약약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장씨세가에서 한번 보기는 했지만, 여전히 면사를 쓰고 있어 얼굴도 모르는 여자였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편을 들어주니 고마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라비와는 전혀 다른 성격 같구나.’
백엽이 좌약약에 대한 생각을 할 때.
만통선생이 오대세가 가주들을 향해 말했다.
“가주들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민심은 곧 천심이란 말이 있으니 영웅들의 의견을 참작해 무명서생의 면접 탈락 결정을 취소하는 게 좋겠습니다. 다만 가주들의 우려 또한 일리가 있으니 신원을 증명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강구하면 될 것 같습니다.”
“다른 방법이라 하심은?”
“전통적인 간자 색출 방법을 사용하는 겁니다. 아, 물론 무명서생이 간자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최소한 간자가 아닌 것만 확인되면 다시 출전자격을 주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으음, 일리가 있군요. 어떤 방법을 생각하십니까?”
당경이 한발 물러섰다.
그 역시 군웅들의 반발이 무척 부담되고 있었던 차였다.
자기 아들이 와룡대주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남궁패의 주장을 받아들였지만, 백엽이 와룡대주가 된다고 해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역시 차기 무림맹주 자리를 노리는 처지에 군웅들의 반발로 인심을 잃는 것이 더욱더 부담되었다.
만통선생이 말했다.
“현재 금마옥에 갇혀있는 마교 놈들 중 한 명을 끌어내 무명서생으로 하여금 직접 처형하게 하는 겁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 정도로 출전자격을 준다면 무난하지 않을까 합니다. 어떻습니까? 가주님들 중에 반대하시는 분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저도 고집하지 않겠습니다.”
“으음······.”
“으음······.”
오대세가 가주들이 침음을 냈다.
하지만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오십만 군웅들의 조금 전 반응이 그들에게 준 충격이 컸다.
다만 지금 그들이 고민하는 것은 만통선생이 제시한 방법이 과연 신원 보증 방법으로 유효한가였다.
그들 생각에 너무나 쉬운 수단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백엽의 생각은 달랐다.
일반 교도의 경우에는 임무 수행을 위해 같은 교도를 희생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그는 아니었다.
수하를 끔찍이 아끼는 그의 성격으로 보아 아무리 그 이유가 타당해도 생각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하하하! 아무도 반대하시는 분이 없군요.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여봐라. 금마옥으로 가서 죄수 한 명을 데리고 오너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무림맹 무사 두 명이 금마옥 쪽으로 달려갔다.
그들을 기다리는 동안 만통선생이 백엽에게 전음을 날렸다.
「내가 졌소. 일단 와룡대주가 되시오. 천마암살단 단주 문제는 나중에 다시 의논하도록 합시다.」
“······.”
백엽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예기치 않은 상황에 대처 방안을 강구 중이었다.
‘내 손으로 수하를 죽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거절하면 의심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백엽이 난감해했다.
하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반역을 한 칠마종 지휘부 고수라면 고민없이 죽일 수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칠마종 무사들은 승승장구해 무림맹에 잡힌 포로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누군지 보고 판단해야겠군. 아무리 본교 소속이라고 해도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렀다면 굳이 망설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고민을 하는 동안 어느새 시간이 흘러 금마옥 죄수 한 명이 끌려왔다.
생각보다 작은 체구였다.
한데 죄수의 머리에 씌운 두건을 벗어낸 순간 군웅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죄수의 성별 때문이었다.
즉, 여자였다.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그녀는 흑의를 입은 채 검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 있었다.
하지만 고문을 당했는지 옷 군데군데 피가 묻어 있었다.
그녀를 직접 끌고 온 금마옥 간수장이 말했다.
“이년은 금마옥에 갇힌 후에도 탈출을 시도하다가 간수 한 명을 죽인 년입니다. 간자 색출에 알맞은 죄수라고 생각해 데려왔습니다.”
“잘했소. 한데 이 계집의 정확한 신분은 파악했소?”
만통선생의 물음에 간수장이 안색을 굳혔다.
“그게······ 워낙 독한 년이라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떻게 잡힌 것이오? 간수가 당했는데 어찌 내가 모르고 있었지?”
“이년은 본맹 식부에 간자로 침입했다가 감찰에 걸린 년입니다. 자백은 하지 않았지만 마교 낙양 분타 소속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알겠소. 지금은 혈도를 찍힌 상태로군. 어떤 이유든 본맹 무사를 죽였으니 처형 대상으로 적합한 것 같소. 그래도 운이 나쁘군. 오늘 이렇게 끌려오지 않았으면 혹시 나중에 포로 교환으로 풀려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야.”
만통선생이 앞머리 때문에 얼굴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여죄수를 쳐다봤다.
여죄수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아혈까지 찍혀 있는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통선생이 말했다.
“계집의 머리를 뒤로 넘겨라. 얼굴을 한번 보고 싶구나.”
“네.”
무사 한 명이 여죄수의 머리를 뒤로 넘겼다.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한데 의외로 천하절색의 미인이 아닌가.
냉기가 흐르고 있었지만 죽이기 아까운 미인이 틀림없었다.
군웅들이 웅성거렸으나 만통선생은 개의치 않고 백엽에게 말했다.
“지금 즉시 저 계집의 목을 베시오. 그러면 곧바로 출전자격을 회복하게 될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