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ants to Become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32
제132화. 검진과 검사
저택 1층 거실에 모인 서른 명의 마족들.
저택의 모든 구성원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리를 왜 갑자기 모이게 하신 거지?”
“뭔가 조사할 게 있다고 하시던데?”
허나 구성원 중 모인 이유를 아는 마족은 없었다.
곧 그 이유를 알려줄 당사자 브릴리스가 계단을 내려오며 모습을 드러냈다.
브릴리스는 손가락으로 마족들의 수를 일일이 확인했다.
장보기 등의 외부 활동 인원을 제외하고선 모두 모였다.
“저, 브릴리스 님? 저희를 갑자기 왜 불러 모으신 겁니까?”
“제가 아닌 벨져 님께서 지시해주신 사안입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건강검진을 받으실 겁니다.”
“건강검진이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낯선 단어에 모두가 의문을 표했다.
“예. 그동안 자신이 사는 집을 관리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으시다는 군요. 여러분의 몸 상태를 확인하면서 어디 아프신 곳은 없는지, 마력의 상태는 괜찮은지 전부 확인해주시겠다 하셨습니다.”
“어……. 그럼 그 건강검진이라는 건 어떻게 하는 겁니까?”
“한 분씩 저를 따라 벨져 님이 계신 방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무서운 일 절대 아니니, 겁먹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로는 무서운 일이 아니라고 하나, 뭐든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선 모를 일.
마족들은 긴장 반, 호기심 반으로 브릴리스를 따라갔다.
첫 대상은 부엌에서 식자재 조달을 담당하는 시녀 로라였다.
“드, 들어가겠습니다 벨져 님!”
두 번 정도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서니,
“어서 오세요!”
“어, 어서 오십시오!”
늘 그렇듯 밝은 얼굴의 메이, 그리고 긴장한 얼굴의 코흐가 그녀를 반겨주었다.
벨져는 보이지 않았다.
“이, 일단 시력검사부터 하겠습니다.”
코흐는 큰 수저처럼 생긴 도구를 로라에게 건넸다.
얼떨결에 도구를 받은 로라는 시력검사를 시작으로, 구강 검사, 피검사를 비롯해 최근 아프거나 신경 쓰이는 부위가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건강 상담까지 쭉 진행되었다.
상담까진 마친 후에는 메이 쪽으로 인도되었다.
“마력 검사 시작하겠습니다! 잠시만 눈 감아주세요!”
메이의 지팡이 끝에서 발현된 구슬 크기의 마력을 로라의 몸에 갖다 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히 둘러보기를 약 3분 정도,
그 결과는,
“전혀 문제없으세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문제없음이라는 최상의 결과가 나왔다.
검진을 끝낸 로라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방에 나왔고, 이후 다른 마족들도 차례대로 방을 오갔다.
그들도 로라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들어갔을 때와 다르게 웃으며 나오는 마족들도 있었다.
“건강검진이라는 거 생각보다 좋은 거였네요? 괜히 긴장했어요!”
“그러게 말이에요! 마법을 쓰지 않고도 이런 식으로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해요!”
“다음에도 또 해주시려나?”
긍정적 반응 100%.
우려와 달리, 전부 높은 만족감을 보였다.
건강검진이 끝난 후에는 전부 각자의 일로 복귀했으며, 메이와 코흐는 바로 뒷정리를 시작했다.
끝날 때쯤, 벨져와 브릴리스가 들어왔다.
“고생했어. 둘 다.”
벨져의 격려에 메이는 활짝 웃었다.
코흐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받은 거야?”
“예. 외부 활동에서 복귀한 인원까지 포함해 총 32명 전원 완료했습니다.”
“마력 상태는 전부 아무 문제 없이 괜찮았어요! 모두 건강하세요!”
아무 문제 없다.
보통의 벨져였다면 안도의 미소를 지었겠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벨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브릴리스를 돌아봤다.
“브릴리스 너는?”
“예?”
“너도 받아야지. 이 집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구성원인데.”
“아, 전 괜찮…….”
“괜찮긴. 그러다 또 저번처럼 과로로 쓰러지려면 어쩌려고?”
브릴리스의 손사래 쳤지만, 벨져는 물러서지 않았다.
기어이 브릴리스의 어깨를 붙잡고선 강제로 의자에 앉혔다.
“빠지는 거 없이, 남들보다 더 꼼꼼하게 해줘.”
이른바 특별 검진.
어느새 준비를 마친 메이와 코흐는 곧장 브릴리스만을 위한 검진을 시작했다.
그렇게 남들보다 두 배에 달하는 시간이 흐르고,
검진을 마친 코흐와 메이가 결과를 말해주었다.
“브릴리스 님도 특별한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잠자는 시간을 조금만 더 늘리시면 좋을 것 같군요.”
“마력 상태도 전혀 문제없으세요!”
잔뜩 긴장했던 브릴리스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의외의 진단 결과에 벨져는 턱을 쓰다듬었다.
“의외네?”
“베, 벨져 님이 건강이 최우선이라고 하셔서……. 벨져 님의 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맞아. 건강이 최우선이지.”
벨져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려했던 브릴리스까지 건강하다는 판정이 내려졌음에도, 벨져의 굳은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마치 원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처럼.
이에 메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벨져 님? 표정이 어두워 보이세요.”
“아니야. 그보다 너희도 검진받아야 하지 않아?”
메이와 코흐는 동시에 눈을 깜빡였다.
벨져의 눈은 즉각 코흐에게 향했다.
“우리 의사 선생님이야, 자기 건강은 알아서 검사할 수 있을 것 같으니 그 부분은 패스하고. 마력 검사부터 받자.”
“마, 마력 검사 말인가요?”
“왜? 뭐 문제 있어?”
“아닙니다! 받도록 하겠습니다!”
코흐는 잠시 주저했지만, 후다닥 자리에 앉았다.
메이는 하던 것처럼 지팡이에 마력을 발현했고, 그걸로 코흐의 전신을 훑었다.
“어라?”
이전 마족들과 다르게, 메이는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왜 그래 메이야? 뭐 문제 있어?”
“아니요. 딱히 문제랄 건 없는데…….”
메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코흐의 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훑었다.
이윽고 검사를 끝낸 메이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코흐 님은 왜, 마력이 없으세요?”
“마력이 없다고?”
“네! 생명 유지에 필요한 극소량의 마나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것조차 전혀 없어요! 어떻게 이런 상태가…….”
덩달아 놀란 벨져와 브릴리스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마족이라면 당연히 보유하고 있어야 할 마력이 없다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혹시 했는데, 역시였군요…….”
반면 코흐는 이미 결과를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벨져는 그런 코흐의 앞으로 다가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이봐 의사 선생님. 대체 정체가 뭐야?”
“전, 그러니까, 혼혈입니다. 마족과 인간 사이의…….”
듣도 보도 못한 사실에 메이와 브릴리스는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벨져는 미간만 살짝 찌푸릴 뿐, 크게 동요하진 않았다.
“일단 믿으신다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해드리자면, 제 증조부는 100년 전 인계에서 온…….”
코흐는 그렇게 조금은 긴, 자신의 가정사를 쭉 풀어나갔다.
* * *
마족과 인간 사이에서 탄생한 혼혈.
정말 양쪽 다 살아본 내 입장에서도 접하지 못한 경우다.
“그러니까 넌, 100년 전 마왕의 인계 침공 당시 마계로 넘어온 인간 무리의 시조라는 거지? 할아버지는 인간에, 할머니는 마족인 거고.”
“예. 그 사이에서 태어난 어머니가 인간 무리에서 태어난 아버지와 결혼해서 낳은 자식이 바로 접니다.”
거참 어지간히도 꼬인 족보네.
“인간의 유전자를 받아서 그런지, 전 태생부터 마력을 발현하지 못하는 몸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말씀으론, 어릴 적엔 극소량의 마력이라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성인이 되고 나니, 그마저도 사라진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이런 경우가 정말 가능한 건가 싶으면서도, 얼추 고개는 끄덕거려졌다.
하기야, 인간의 피가 섞인 반의 반쪽짜리 마족이라면 마력을 쓰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라 이해는 되지만,
어째 완전한 믿음이 가지 않는 건 기분 탓일까?
“그럼 너희 부모님은?”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성인이 되기도 전에…….”
“100년 전 마계에 왔다는 인간 무리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에게 듣기론 대부분이 마계 공기에 적응하지 못해 일찍 요절했다고 하더군요…….”
이래서야 그 인간 무리가 무슨 이유로 마계에 넘어온 건지 알 수가 없다.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던 도중, 코흐의 가방 사이로 삐져나온 한 권의 책에 눈길이 갔다.
한눈에 보기에도 굉장히 낡아 보이는 책이었다.
그 시선을 의식했는지 코흐는 책을 꺼냈다.
“이건 할아버지 대부터 전해져온 저희 집안의 유품입니다. 마법에 능하지 않은 레지에타의 인간들이 애용했던 의료술과 건강관리법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걸 바탕으로 소위 저만의 ‘의학’을 익혔습니다.”
메이가 물려받은 크라우넬 가의 마도서와 비슷한 개념인 듯 보였다.
코흐는 직접 확인해보겠냐며 책을 건넸지만, 굳이 그럴 필요성까진 못 느꼈기에 받진 않았다.
즉 결론은 이 녀석도 마력에 문제가 없는 멀쩡한 상태라는 것.
그렇다면 이제 남은 대상은,
“메이야, 이제 네 차례야.”
나와 가장 가까운 마족, 퍼밀리어뿐이다.
내 부름에 메이는 화들짝 놀랐다.
“아, 저도 하나요?”
“물론이지. 너도 이 저택의 구성원이잖아.”
“네 그럴게요!”
지팡이를 내려놓은 메이는 검진 의자에 착석했다.
코흐는 하던 대로 검진을 진행했으며, 머지않아 문제없음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건강검진은 제가 봐 드렸다곤 하나, 마력 검사는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의사 선생님의 병은 누가 치료해주나요?’란 질문이 딱 어울릴 상황.
의문을 표하는 코흐와 달리, 메이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벨져 님께서 확인해주시면 돼요!”
“내가?”
“네! 전 벨져 님의 퍼밀리어잖아요! 주인과 퍼밀리어는 영혼을 계약으로 맺은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의 마력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요!”
뭐야 그런 것도 가능했어?
자리에서 일어난 메이는 내 앞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이내 내 두 손을 맞잡고선, 살며시 이마를 갖다 대었다.
맞닿은 이마로부터 메이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어……, 그래서 이제 뭘 하면 되니 메이야?”
“그냥 느끼시면 돼요. 제 안에 뭐가 있는지 벨져 님께서 구석구석 확인해주세요!”
뭔가 좀 어감이 이상하지 않나?
일단은 메이와 똑같이 눈을 감은 뒤, 명상하듯 마음을 편히 놔보았다.
그러자 눈꺼풀에 뒤덮인 시야 속에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까만 어둠 안에서 밝게 드리워진 한 줄기의 빛.
빛은 스프링처럼 배배 꼬인 고리의 상태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이게 메이의 몸에 펼쳐져 있는 마력의 흐름인 건가?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포근함이 느껴졌다.
감히 예상하건대, 다른 마족이 지닌 마력의 흐름도 이렇진 않을 것이다.
마법을 향한 순수하면서도 열정이 있는 그녀이기에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 본다.
그렇게 흐름은 문제없이 이어지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중간에서 뚝 멈춰버렸다.
뭐지 여긴?
가위로 탁 잘라내듯 끊긴 게 아닌, 웬 커다란 문 같은 게 앞을 딱 가로막았다.
문 같은 게 아니라, 문 맞네.
중간에 문고리까지 버젓이 달려 있다.
이걸 열면 그 너머의 흐름도 볼 수 있는 건가?
대수롭지 않게 문고리를 잡은 순간,
-찌릿!
감각을 저리게 하는 짜릿한 감촉이 느껴졌다.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나를 쳐내기 위해 문이 발생시킨 일종의 거부 반응이었다.
문제는 그 거부 반응이,
내게 무척 익숙한 반응이라는 거였다.
내 느낌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이 기운은 분명,
“성력……?”
그 순간, 정신이 돌아왔다.
어리둥절하게 떠진 눈과 그 눈동자 속에 담긴 해맑은 표정의 메이.
메이는 아직 내 손을 꼭 붙잡은 채, 평소와 같은 상냥하고 순수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떠셨어요? 제 마력 상태는 괜찮던가요?”
그 질문에 내가 하고 싶은 대답은 ‘아니’였다.
네 몸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이 있다고,
그 문에는 나한테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이게 네 마력에 왜 있는 거냐고 물어야 했지만.
나는 메이에게 하고 싶은 대답이 아닌, 해야 할 대답을 해야 했다.
“어. 괜찮아.”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