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shipping lord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 4000억짜리 쇼핑(3)
“하하. 역시 부산에 오니까 뭔가 기분이 싱숭생숭하니 묘하지 않습니까?”
부산역에 도착한 박한철 대표를 픽업했다. 부산역에 있으면 일하러 왔어도 여행 온 것 같은 묘한 기분에 빠져드는데, 지금 기분은 ‘델마 앤 루이스’보다 ‘덤 앤 더머’ 같다고 할까?
“하하. 부산은 늘 좋지. 저 살찐 비둘기들 좀 봐라. 저게 부산의 참맛이지.”
“진짜 부산의 참맛인 돼지국밥이나 드시러 가시죠.”
“돼지국밥 좋지. KTX에서도 아무것도 안 먹고 꾹 참았다고. 하하.”
오십 대를 바라보는 아재와 함께하는 부산여행에는 돼지국밥으로 충분하다. 밥 먹고 향할 곳도 동쪽의 광안리, 해운대가 아니라 기름 냄새 물씬 나는 서쪽의 공단지역이고. 아주 기대되는 여행이 되겠어.
펄펄 끓다 못해 넘칠 지경인 돼지국밥 뚝배기 앞에서 공깃밥을 흔드는 의식을 마치고 본격적인 흡입에 나섰다. 아따 마, 뜨거워라. 돼지국밥 달라니까 용암을 퍼다 줬나.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지경이라 우리는 대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연성아. 내가 저번에도 얘기했는지 모르겠지만, 난 아무래도 이해가 안 돼.”
“저도 이게 이렇게까지 뜨거울 필요가 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사람이 먹게는 내보내야지, 이거 원.”
“하하. 이거 또 말을 피하는구나.”
돼지국밥 뜨거워서 못 먹겠다는데 무슨 소린지……. 뭐 기껏 번 돈을 왜 돈벌이도 안 되는 기자재업체들 사는데 쓰느냐는 얘기인가.
“너야 너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만, 참 아까워. 돈이 돈을 부른다고 좋은 기회가 얼마나 많은데, 그걸 마다하고 공장이나 사겠다고 하니 말이야. 그러지 말라는 의미라기보다 내 생각이 그렇다는 정도로 들으렴.”
“하루에 몇억씩 평생을 써도 한참이나 남을 정도로 벌었는데, 굳이 더 벌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요. 그 돈으로 스트레스 없이 회사 키우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뭐, 그 말도 일리 있지. 아무래도 내가 금융 바닥에 있어서 이런 말을 하는 건데, 기회는 제조업보다 금융 쪽에 훨씬 더 많아.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 아니냐? 제조업보다는 금융 쪽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어. 제조업도 좋지만, 너무 몰빵하려고 하지 말란 말이지.”
“삼촌도 중국 때문에 우리나라 제조업이 미래가 없다고 보시는 건가요?”
“뭐 IT나 바이오 이런 쪽으론 어림없겠지만, 전통적인 굴뚝산업들은 힘들지 않겠니? 조선업이야 말할 것도 없고. 네가 조선업에 몸담고 있으니 달리 보겠지만, 내가 봤을 때는 여전히 우려스럽긴 해.”
“그러니까 돈을 이 바닥에 몰빵할 생각하지 말고, 적당히 간판 유지할 정도로만 투자해라, 이 말씀이시죠?”
“10을 투자하면 100, 1000을 얻어야 투자 아니겠냐? 그런데 10을 투자해서 15, 20을 얻을 생각만 하니까 좀 안타깝다는 말이지. 내가 뭐 너 하는 일에 이러쿵저러쿵할 생각은 아니지만, 이 정도 조언은 해도 되지 않을까 싶구나.”
“조언은 감사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안 그래도 다양한 분야로 투자를 넓힐 생각이긴 합니다.”
“오호. 그게 정말이냐?”
“네. 우리 회사를 세계 1위로 만들고 난 후에요. 지금 이렇게 돈 쓰고 있는 것도 1위 자리 앉아보려고 밑밥 까는 거거든요. 왕좌 앉고 나면 여기저기 골고루 투자해 볼게요.”
“에잇. 난 또. 하하. 그래 뭐 목표가 흔들리지 않는 건 좋구나. 이제 먹을 만큼 식었으니까 밥이나 먹자구나.”
그러게 왜 맛있는 돼지국밥 앞에 두고 내 마음을 흔들려고 해. 죽음과 새로운 삶을 경험해 본 내가 무슨 돈 욕심이 있겠어.
나를 죽게 만든 건 우리 회사의 억울한 몰락이었다. 유연성 몸에 들어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내가 할 일은 누구든 함부로 하지 못 하도록 우리 회사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야. 그래서 세계 1위로 만들겠다고 하는 것이고. 그렇게 자연사한다면 더이상 바랄 게 없어.
정말이야? 박 대표야 밥을 먹느라 제대로 못 봤겠지만, 내가 나를 봤다면 연기톤 가득한 표정을 눈치 채고는 속내를 얘기하라고 추궁했을 것이다.
그래, 솔직히 돈 엄청 아까워. 주식투자만 해도 돈이 제곱으로 늘어날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써야 할 돈을 매출 1000억을 내고도 흑자 내기도 어려운 그런 회사를 사들이는데 박아넣고 있으니 원.
어쩌겠어. 내 스스로 회귀라는 불가사의한 일이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저 주식 투자해서 부자 되라고 연성이로 다시 살게 한 건 아닐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과제를 잊지 말자고. 돈이야 동명이가 미국에서 부지런히 벌고 있을 테니까.
투자 얘기하니까 반년 뒤에 독일 람슈타인뱅크가 저지를 만행이 또 떠올랐다. 돈에 욕심 없는 척 연기했지만, 떼돈 벌 기회를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삼촌. 혹시 동명이한테 람슈타인뱅크 얘기 들으셨습니까?”
“람슈타인뱅크? 아무 얘기 없었는데? 왜 또 무슨 촉이 왔어?”
박 대표가 기름기가 잔뜩 묻은 숟가락을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내가 예언하면 개소리로 받아들이는 동명이와 달리 박 대표는 결혼식 길일이라도 받는 것처럼 저리 관심이라니까.
“뭐 촉까지는 아니고 람슈타인뱅크 행보가 수상해서 말이에요.”
“너도 뭐 느낌이 왔나 보구나? 역시 촉 좋은 사람은 다르다니까. 하하. 그래서 뭐 어떤 것 같아?”
“삼촌, 근데 투자는 숫자와 데이터로 하는 것 아닌가요? 제가 무슨 얘기만 하면 너무 솔깃해 하시는 것 같네요.”
“하하하. 이 바닥에 오래 있다 보니까 그리 되더라. 돈 만지는 일을 하면 유물론자가 될 수밖에 없는데, 희한한 것이 어느 정도 경력이 차면 신의 존재를 믿게 되는 거지. 아무리 분석을 하고 예측을 해도 결국 절대자의 결정에 달린 것이구나. 하하.”
“아이고. 직원으로 점쟁이를 뽑지 그러십니까?”
“하하. 안 그래도 수시로 점쟁이 찾아가는 이들이 많아. 나야 뭐 네가 있으니……. 그래서 람슈타인뱅크가 어떤 것 같아? 안 그래도 요새 의견이 분분해. 그놈들 속셈이 뭘까 하고.”
내 말에 이리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니, 올 연말도 아주 따땃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내 돈 불어나는 소리만큼 기분 좋은 소리도 없다니까.
“람슈타인뱅크가 지금 코스피200 종목들로만 계속 사들이고 있는데-”
“있는데?”
“거기가 우리나라 기업들의 투자가치를 높게 봤을 것 같지 않습니다. 아직도 금융위기 여진이 계속되고 있고, 유럽도 뒤집히기 직전인데, 이 타이밍에 계속 사들인다?”
“그렇지, 그렇지. 그거 좀 말이 안 되지.”
“옵션 장난질이라도 하면 난리 나지 않을까 싶네요.”
“옵션 장난질이라……. 그게 가능할까 싶지만, 금융위기도 터진 마당에 안 될 일이 뭐가 있겠냐 싶네. 그래서 그 예리한 촉이 봤을 땐 그 장난질이 언제일 것 같아?”
“글쎄요. 올해를 넘기진 않을 것이고, 선물이랑 옵션 만기가 안 겹치는 것이 좋을 테니까, 10월 아니면 11월 중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아, 물론 아무 근거는 없습니다.”
“흐음. 그럼 10월 14일 아니면 11월 11일이겠군. 아무래도 연말 랠리 타야 효과가 클 테니까 11월 11일이겠네. 어때? 그럴싸해?”
점쟁이는 내가 아니라 박 대표였네. 날짜까지 정확히 예측했으니 떼돈 벌 일만 남았구만.
“뭐 근거 있는 얘기는 아니니까, 면밀히 살펴보세요. 혹시나 이상한 낌새가 있다고 하면 동명이한테도 꼭 좀 얘기해 주세요. 그놈은 제가 무슨 말만 하면 안 믿고 본다니까요.”
“그래, 그래. 그놈은 아직 더 배워야 해. 하하.”
대화는 자연스럽게 동명이 얘기로 넘어갔다. 그놈은 왜 한 번을 안 오는가, 정말 뉴요커가 체질인가 등등.
쓸데없는 얘기를 안주 삼아 돼지국밥을 클리어했고, 커피로 입 냄새를 정리하는 것까지 마치고 녹산산단으로 넘어갔다. 부산역 근방을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험악한 부산운전의 진수를 느끼며 짜증이 좀 나긴 했지만, 이건 디폴트값이니까 뭐.
저 멀리 부산신항이 보이는 곳에 위치한 남영중공업. 오늘 첫 방문지이다.
아픈 손가락이랄까? 우리랑 거래하면서 착실하게 잘 크던 회사가 욕심부리다가 파트너 잘못 만나서 나락으로 떨어진 회사.
우리 물량 많으니까 딴 데 가지 말고 우리랑 잘 해보자고 그렇게 얘기했건만……. 업보라고 생각하고 싸게 넘기라고.
“아이고, 유 이사님. 이리 누추한 곳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옆에 계신 분이 그 박한철 대표님?”
“네, 제가 박한철입니다. 우리 대표님 인상이 참 좋으십니다.”
“하하. 요즘 회사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이런 칭찬을 다 듣네요.”
“이렇게 웃으면서 오늘 얘기 잘 나눴으면 합니다.”
“아휴, 그래야지요. 하하. 자, 안으로 들어가시죠. 아니, 일단 공장을 먼저 둘러보는 것이 좋으시겠습니까?”
남영중공업 이성우 사장은 그야말로 신이 났다. 회사가 은행에 넘어가게 생긴 마당에 천사 같은 사람들이 인수하겠다며 찾아왔으니 어깨춤을 춰도 모자랄 것이다.
부디 우리 인수가격을 듣고도 그 텐션을 계속 유지해 줬으면 좋겠네.
“공장은 제가 충분히 봤으니 안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저는 이스턴캐피탈 한국지사 직원 자격으로 왔긴 했지만요.”
“하하. 우리 유 이사님께 잘 부탁드려야겠습니다. 작년이었나요? 재작년이었나? 그때 우리 이사님께서 우리 회사 참 많이 도와주셨는데요. 이거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납니다.”
“지금도 열심히 도와주고 있습니다.”
“하하. 그렇죠, 그렇죠. 유일조선 아니었으면 우리 회사는 진즉 문을 닫았을 겁니다. 아이고, 이거 참.”
“지나간 얘기는 나중에 하시고, 오늘은 우리 할 얘기만 하시죠.”
“아, 그럴까요? 하하. 자, 그럼 사무실 들어가서 따뜻한 차 한잔하시죠.”
사무실로 들어가는데, 박 대표가 귓속말을 건넸다.
“저 양반, 통화할 때도 느꼈는데, 아주 들떠있네.”
“그만큼 회사 사정이 안 좋거든요. 하루하루 피가 말릴 지경일 테니, 우리가 얼마나 반갑겠습니까?”
“회사 팔겠다는 사람이 저렇게 넋을 놓고 있으니 원. 가격 후려치는 건 일도 아니겠구나.”
“삼촌 손에 달렸습니다. 수수료 생각 마시고 빡빡 깎아주세요.”
“하하하.”
웃음소리가 너무 컸던 것일까. 이 사장이 발길을 멈추고는 영문도 모르면서 따라 웃었다.
“오시는 길에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아니면 우리 회사 기운이 너무 좋아서 그냥 웃음이 나오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하하.”
“아, 네. 회사 기운이 참 좋습니다. 지금 겪는 어려움은 스쳐 지나가는 성장통일 겁니다.”
“하하. 그래야지요. 서울서 오신 귀한 손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금방 이겨내야죠.”
아따 참말로. 사무실 한 번 들어가기 힘드네.
이 사장의 저 뜸 들임은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프로펠러와 추진축으로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회사이자 연 매출 1000억을 넘어선 덩치까지. 겉모습은 달달해 보이지만, 내면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다. 그 현실을 깨닫고 싶지 않아서랄까?
그래도 우리는 할 말을 해야 한다. 일단 차 좀 마시고. 바닷바람을 쐬어서 그런지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구만.
화기애애할 것 같은 예상과 달리 사무실에 앉아 차를 마시는 동안엔 침묵이 이어졌다. 대면식에서야 웃으며 인사했지만, 본론에 가까워질수록 그럴 수 없는 법일 테지.
서두는 박 대표가 열어 재꼈다.
“저랑 그동안 전화나 이메일로 수차례 얘기를 나눴듯이, 우리 이스턴캐피탈은 남영중공업의 인수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잘 알고 계시죠?”
“아, 물론이죠. 유일조선 대주주로서, 그 뭐라고 합니까, 아, 맞다. 시너지! 시너지를 위해서 그렇겠지요.”
“그렇습니다. 선박에서 중요한 부품인 프로펠러가 제때 공급되지 않으면 아무리 잘 나간다는 유일조선이라도 대처하기가 쉽지 않죠. 저는 수직계열화로 유일조선의 지속적이면서도 안정적인 성장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의 투자가 성과를 내겠죠.”
“그럼요, 그럼요. 프로펠러 이게 말이죠. 하나에 100톤짜리입니다. 요즘 설비들이 좋아져서 기계로 깎아내지만, 결국 마지막엔 사람 손을 거쳐야 하거든요. 야, 그거 쉽지 않습니다. 저희가 그렇게 어렵게 일합니다.”
“아, 네. 그렇군요.”
“그리고 요즘 이게 뭐랄까. 이것도 3D업종이라고 직원 뽑기가 쉽지 않아요. 그렇다고 우리가 월급을 적게 주는 것도 아니에요. 여기서 기술 제대로 익히면 돈도 많이 버는데-”
“사장님, 회사생활의 희노애락은 차차 얘기하시죠. 오늘 저희가 해야 할 얘기가 많습니다.”
이 사장이 노동부 찾아가서 하소연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싶은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말을 끊었다. 하여간 지역을 안 가리고 사장이란 사람들은 틈만 주면 말이 끊이질 않아.
당황한 표정을 짓던 박 대표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본론을 꺼냈다.
“자, 이제 중요한 얘기를 하죠. 거래란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의견이 맞아떨어져야 이뤄집니다. 저희가 제시한 조건이 사장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뭐 여의도에서 유명한 분이니 어련히 알아서 잘 계산하셨겠죠.”
과연 그럴까.
“저희가 책정한 금액은…….”
“뭐요?”
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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