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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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좋고, 공기 좋고, 경치 좋으니,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이구나. 아, 속세의 근심 따윈 잊어버리고 그저 하염없이 이곳에서 게임이나 하면서 지내고 싶구나.”
고즈넉한 동산을 끼고 만들어진 거대한 인공 풀장이었다. 수영복 차림으로 선베드에 몸을 눕힌 청년은 손에 듀얼쇼크를 쥔 채 게임에 열중이었다. 방수 처리 된, 200인치 대형 UHD 화면에서는 칼을 쥔 캐릭터가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있었다.
한편, 조심스럽게 청년에게 다가가던 노인은 중얼거림을 듣고 옆의 통역에게 물었다.
“뭐라고 했나?”
“예. 그것이…….”
통역은 청년, 유지웅이 중얼거린 그대로 번역해주었다. 노인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하염없이 이곳에서 지내고 싶다고?”
“어, 어지간히 이곳 풍경이 마음에 든 듯합니다.”
“말도 안 돼! 몇 주 정도만 잠깐 머무른다고 했잖나!”
“그것이…… 분명히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만.”
뒷목을 잡을 일이다. 노인은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으나 겨우 참았다. 중심을 딛고 선 노인의 눈빛이 투쟁으로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안 되지, 안 돼. 암, 안 되고 말고.”
“뭐가 자꾸 노노라는 거예요?”
“허억!”
유지웅이 듀얼쇼크를 내려놓으며 얼굴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순간, 노인의 얼굴에서는 조금 전까지 맺혔던 투쟁기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비굴한 표정이 떠올랐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냥 여러 모로 불편하신 건 없나 염려가 되어서요…….”
통역이 얼른 말을 전달했다. 유지웅은 손사래를 쳤다. 통역을 사이에 두고 대화가 이어졌다.
“무슨 말씀을. 대부가 신경 써준 덕분에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거 천년만년 이곳에서 게임이나 하면서 지내고 싶군요. 세상의 모든 시름을 다 잊어버리고 있어요.”
“하하, 제 집이 곳 회장님의 집 아닙니까. 얼마든지 편하신 대로 쉬다 가십시오.”
“아, 당연히 그럴 생각이니까 조금도 불편한 마음은 가지지 않으셔도 돼요. 대부의 것은 곧 나의 곳이나 다름없으니 거리낌 없이 마음대로 쓰라는 말,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
분명 그런 말을 하긴 했다. 하지만 설마 그게 진심이겠나. 그냥 순간의 위기를 넘기기 위한 발로였을 뿐이다.
헌데 상대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이럼 곤란하다. 그렇지 않아도 이쪽이 한 말 대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모든 시설을 이용하고 있었다. 마치 조직의 재산을 자기 것이라도 되는 양 태연히 써댔다.
200인치 TV? 게임기? 그 정도만으로 그쳤다면 코웃음을 치고 말았으리라. 아무리 조직이 쇠락기에 접어들었어도 그 정도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니까.
문제는 유지웅의 금전 감각이 범인의 상상을 초월했다는 것. 소박하게 은신 생활을 누린다면서 지금까지 지출한 비용만 벌써 수천만 달러가 넘어갔다. 이게 사람인지, 돈 잡아먹는 귀신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무슨 일로?”
“아, 혹시 지내시는데 불편한 점은 없으신가 해서…….”
“전혀 없습니다. 미 정부의 눈을 피해 은신해 있는 처지에 사실 불편하고 자시고 따질 게 있나요. 하핫.”
유지웅은 듀얼 쇼크를 내려놓고 밝게 웃었다. 그 모습에 노인은 소총을 갈기고픈 충동이 목구멍까지 솟았다.
하지만.
‘이 괴물 같은 놈!’
노인은 바로 케이넌파의 전대 대부, 고프리켈이었다. 그는 처음 유지웅이 찾아왔을 때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케이넌파의 수뇌부가 전부 구속 수감되고, 어쩔 수 없이 진작 은퇴한 고프리켈이 조직의 정상화를 위해 돌아와야 했다. 당시에는 모든 게 개판이었다. 주요 장부들은 죄다 털렸고, 조직이 보유한 은행도 정부의 집중 수사 하에 놓여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클럽, 샬롱, 카지노 등 부수적인 사업장만 겨우 추려서 챙기며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텍사스주를 주름잡는 거대 마피아다 보니, 부스러기 사업장이지만 싹싹 긁어모으고 보니 규모가 상당했다.
그리고 일이 터졌다.
만신창이가 된 조직이지만 이제 겨우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유지웅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당시 분노한 고프리켈은 앞뒤 사정도 가리지 못하고 공격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수백 발이 넘는 총탄을 맞고도 유지웅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딱 한 마디만 했을 뿐이다.
‘난 지금 은신처가 필요하다.’
그리고 유지웅은 단숨에 거리를 좁혀 고드프리켈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간단한 몇 가지를 요구했다.
‘옷과 먹을 것, 쉴 곳, 그리고 게임룸을 바쳐라.’
수백 발의 총탄도, 비밀리에 고용한 레이더들도 떡이 되어 나가떨어지자 고프리켈은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자신의 후계자이자 지금은 수감된 케이넌파 수장이 조직을 이 꼴로 전락시켰는지 알 것 같았다.
멍청한 놈. 건드려선 안 될 적을 건드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후계자의 뒤를 따라 그 적을 건드렸다.
그 뒤는?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겨우 살아난 케이넌파는 유지웅의 새로운 은신처가 되었다. 그가 요구하는 것들을 전부 갖다 바쳐야 했다. 심지어 그가 여기에 있다는 비밀도 철저하게 지켜야 했다.
“아! 맞다! 혹시 제가 여기 있다는 게 새어나간 것은 아니죠?”
통역을 들은 고프리켈은 깜짝 놀라서 얼른 손을 내저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비밀을 지키고 있습니다! 회장님의 진짜 정체를 아는 이도 최소한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행이에요. 난 또 대부가 간만에 직접 찾아와서 혹시 연방 정부에 들킨 건 아닌가 했네요. 그랬다가는 참으로 뒷일이 유감스러웠을 텐데 말이죠.”
“……유감스럽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요?”
“에이, 제 입으로 민망하게 어떻게 그걸 말해요.”
유지웅은 다소 부끄러운 듯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매번 FBI에 꼰지르는 것도 창피하다고요.”
“…….”
“아, 혹시 제가 직접 손을 쓰는 걸 바라셨나요? 표정이 영 안 좋으시네요. 그럼 다른 기관 통하지 말고, 제가 직접 봐줄까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혹여, 혹시라도, 그러니까 만약에라도 저희를 징치할 일이 있으시면 차라리 FBI에 제보해 주십시오! 저희가 알아서 증거를 갖다 바치겠습니다! 굳이 고귀한 손을 저희 같은 하찮은 것들의 피로 더럽힐 이유가 있겠습니까?”
“역시 그렇죠? 제가 직접 손을 쓰면 수저로 막을 것을 호미로 막게 되더라고요. 제가 좀 성정이 과한 게 있다 보니…….”
수저로 막을 것을 호미로? 통역을 들은 고프리켈은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 수저로 막을 것을 포크레인으로도 못 막게 되겠지.
“그래, 무슨 일 때문에 왔습니까?”
“저기, 다름이 아니라 회장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 때문에 말입니다.”
“오, 적당히 잡을 만한 괴수가 있나요?”
“예.”
유지웅은 케이넌파의 별장에 눌러앉으면서 가볍게 한 마디를 한 적이 있었다. 괴수가 조직을 귀찮게 하는 경우가 있으면 자신이 처리해주겠다는 것이다. 당시 고프리켈은 그가 예의상 체면을 차리기 위해 한 말인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예의상 한 말이 아니라 진짜였다. 이유도 나름 합리적이었다. 괴수 때문에 케이넌파가 흔들리면 자신의 은신 생활도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예의상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 고프리켈은 또 한 번 유지웅의 상냥한 웃음 뒤에 감춰진 이빨을 봐야 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오금이 저린다.
‘괴수가 곤란하게 하면 나한테 말 하라고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내가 두 번 말하게 만들 겁니까! FBI까지 갈 것 없이 내 손에서 끝장을 볼까요!’
사실 별 일은 아니다. 옐로 몹이 케이넌파의 사업장이 있는 한 도시에서 난동을 피우는 바람에 잠시 도시 기능이 정지 됐을 뿐이다. 다행히 주정부 공격대가 출동하여 별다른 피해 없이 괴수를 퇴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바람에 유지웅에게 배송해야 할 200인치 UHD TV가 잠시 지체되고 말았다.
덕분에 고프리켈은 70이 다 된 고령임에도 유지웅한테 대판 깨져야 했다. 아직도 그때 그가 한 말이 기억난다.
‘난 말이죠. 마피아처럼 폭력으로 남의 등에 빨대 꽂고 사는 것들이 세상에서 아주 싫어요. 지금 내가 존대해준다고 해서 착각을 하지 말란 말입니다.’
평소에 사람 좋게 웃고 다니기에 다소 우습게 봤지만, 속에는 연쇄살인마 못지않은 무시무시한 인격체가 들어있다는 것을, 그때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좋아요. 바로 갑시다.”
“지금 바로 말입니까?”
“물론이죠. 조직의 것이 곧 나의 것이니, 조직의 일은 곧 나의 일 아닙니까.”
“…….”
“물론 은신하고 있는 동안만이지만요. 아하하.”
한동안 연방 정부의 눈을 피해 조용히 은신하겠다. 때가 되면 떠나줄 것이다. 그동안만 보안을 철저히 유지하면 뒤탈은 없을 것이다.
그런 약속을 과연 믿어도 될까. 고프리켈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게임도 이제 지겹네요. 아, 낚시나 해볼까. 혹시 낚싯배 괜찮은 거 있나요?”
“무, 물론입니다! 낚싯배는 아니지만 낚싯배로 쓰기에 적당한 배가 몇 척 있습니다. 아무거나 마음에 드시는 걸로 골라 쓰시면 될 듯 합니다.”
“하하, 그거 다행이네요. 그럼 내일은 낚시나 하러 가죠.”
유지웅이 생각하는 낚싯배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고프리켈은 그리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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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이 말씀하신 낚싯배는 니가 생각하는 그런 낚싯배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