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115)
#115. 미인계
황인아 감독은 난동 부리는 장윤하를 일별하고 모니터에 집중했다. 컷을 외치기 전에 찍은 장면들이 꽤 괜찮게 나왔기 때문이었다.
‘굳이 첫 키스를 여기서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재인의 감정 표현이 좋았다. 티격태격하면서 앨범을 보던 장면도 그랬지만, 백미는 장윤하를 안고 넘어졌을 때였다.
긴장과 안도, 당혹과 망설임이 섞인 오묘한 눈빛은 차마 NG 컷이라고 쳐 내기 아까울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자신이 장윤하였다면 품에 안긴 순간 반했을지도 몰랐다.
‘이건 킵해야지.’
원작자든 각본가든 이 영상을 보여 주면 첫 키스 신 대신 넣자는 의견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 진짜 잘 어울리네요.”
“그렇지? 한쪽이 어마어마하게 화려해서 균형이 잘 맞아.”
“진짜 그래요. 어떻게 이렇게 잘 어울리지? 좀 전 같은 모습만 보면 원수가 따로 없던데.”
“배우니까.”
황인아 감독의 단정적인 말투에 조연출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트에서 벗어나면 재인은 장윤하 근처로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대화는 고사하고 같이하는 촬영도 최대한 줄이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카메라만 돌아가면 달랐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생명체를 대하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짓궂은 말을 내뱉어도, 거친 행동을 해도 그 바탕에 상대를 귀히 여긴다는 감정을 깔고 연기했다. 로맨스 소설에 나오는 내 여자에게만 따뜻한 남자의 표본 같았다.
“완벽한 파트너에서 연하 직진남을 찰떡같이 연기하길래 이쪽에서도 그 색깔이 남아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말이지. 여기선 또 풋풋한 십 대를 잘 표현한단 말이지.”
“얼굴이 싱그럽잖아요.”
“……그렇지?”
“네. 특히 오늘은 뭘 했는지 더 싱그러워요. 틈만 나면 저도 모르게 멍하니 보고 있다니까요.”
조연출의 말 그대로였다. 오늘 재인은 스물다섯이라는 나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청량했다.
“그나저나 오늘은 진짜 한바탕 난리 나는 줄 알았어요. 감독님 계속 두고 보실 거예요? 아무리 성격 좋은 이재인 씨라도 계속 저러면 가만 안 있을 거 같은데요.”
“1화 방영하고 나면 알겠지. 자기가 뭔 짓을 하든 재인 씨 상대가 아니라는 걸.”
“그래도 모르면요?”
“그땐…….”
장윤하가 만약 촬영 스태프들에게 험하게 굴었으면 진작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계속 두고 본 것은 본인이 고용한 스태프들에게만 성질을 부리기 때문이었다. 본업만 잘한다면 배우 개인사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중이기도 했고.
“뒤집어엎어야지. 조금만 참아. 1화 보고도 못 깨달으면 머리를 깨 줄 테니.”
“예.”
배우로서의 재능이든 태도든 장윤하는 재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지금은 외모에 정신이 팔려 있지만, 1화가 방영되면 알 것이다. 제대로 신경 써야 할 게 무엇인지.
‘화려한 외모 때문에 캐릭터가 묻히는 일이 없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잘생긴 얼굴에 연기력이 가려 손해 보는 배우를 몇이나 봤던가. 재인도 처음에는 그런 배우인 줄 알았다. 외모 때문에 손해 보는.
그러나 실물을 찍어 보고 나선 알았다. 잘생긴 얼굴로 모델만 해도 슈퍼스타가 될 것 같은 인물한테 왜 연기를 시키는 건지.
재인은 잘생김을 연기한다는 모 외국 배우처럼 평범함을 연기하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덕분에 몰입이 깨지는 일도 극 내용 전달에 어려움이 생기는 일도 없었다.
“배우는 배우야.”
“배우는 배우죠. 카메라 꺼지면 비즈니스 동료인데, 카메라만 켜지면 세상 달달한 커플이 되잖아요.”
“…….”
“……그렇다고요.”
“재인 씨 팬 다 됐네.”
“여기 현장에 재인 씨 팬 아닌 사람 없을걸요?”
작품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은근히 재인을 부담스러워하던 조연출이었다. 다른 신인 배우들과 비교해 월등히 뛰어난 기량을 가진 재인 때문에 균형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런 조연출이 지금은 재인이 없으면 죽을 것처럼 굴었다. 콜 타임 안 된 걸 알면서도 수시로 도착을 확인하고 전달 사항도 꼭 본인이 가서 전했다.
‘나도 마찬가지지. 마음 같아선 매일 촬영장으로 부르고 싶을 정도니까.’
촬영장 두 곳을 번갈아 가면서 드라마를 찍느라 쉬는 날도 없이 일하는 걸 아는데도 그런 마음이 들 정도였다.
재인이 촬영장에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온도 차가 컸다. 있을 때는 스태프고 배우고 할 것 없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게 눈에 보였다. 없을 때는 말 한마디 꺼내는 것도 눈치를 보면서 어려워했다.
재인이 딱히 무언가를 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그가 촬영장에 있는 것만으로 평화로운 분위기가 형성되고 하는 일에 의욕이 생겼다.
“장윤하 씨 진정된 거 같으니까. 다시 촬영하자.”
“네.”
황인아 감독은 자기 말에 조연출이 재인 쪽으로 달려가는 걸 보고 웃고 말았다. 드라마 서사의 중심은 황태자비지만, 촬영장의 중심은 재인이었다.
‘장하다, 황인아. 최고의 주연을 뽑았어.’
번쩍번쩍 화려한 연회 의상을 걸친 재인이 세트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최고의 주연을 카메라에 담을 시간이었다.
* * *
재인은 두 드라마의 촬영이 겹치는 기간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거라고 예상했었다. 실제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긴 했다. 이쪽 드라마 현장이 촬영을 쉬는 날에는 다른 드라마 현장으로 출근하느라 시간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고.
‘그래도 적응하니까, 사람이 여유도 생기네.’
시간이 지나자 그런 일정에도 적응했다. 오랜만에 맞이한 촬영 스케줄 없는 오후를 소파에 늘어져서 보내지 않고, 아이와 외출할 만큼.
“킥보드 탈 때는 꼭 헬멧이랑 보호 장비 차야 해, 알았지?”
“네.”
“공원에 갈 때도 혼자 가지 말고, 시터 이모랑 같이 가고.”
“네!”
재인은 제 손을 잡고 걷는 현서에게 몇 번이나 안전을 당부했다. 당부하고 있었지만, 표정은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
‘아직도 내가 어려운가. 뭘 사 달라고 조르는 법이 없네.’
사주는 것과 별개로 갖고 싶은 걸 아이가 조르지 않는 게 무척 아쉬웠다.
촬영이 없는 오후, 같이 점심도 먹고 산책도 할 겸해서 나왔다가 마트에 가게 된 건 순전히 현서의 바람 때문이었다. 아니, 공원 옆을 지나가다 본 아이들 무리 때문이었다.
공원의 한 공터에 모여서 재잘재잘 떠드는 아이들은 저마다 킥보드를 타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킥보드와 헬멧을 착용한 아이들이 떼 지어 공터에서 달리는 게 썩 즐거워 보였다.
그래도 딱히 킥보드를 사 줄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현서는 정수리가 그의 허리에 겨우 닿을 정도로 작았다. 킥보드나 자전거를 타기에는 너무 작아 보였는데, 그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그와 다르게 현서는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무슨 색이 좋아? 파란색? 노란색?”
“우응. 빨간색이요.”
“빨간색? 빨간색 킥보드가 있으면 좋겠다.”
“좋겠다.”
재인은 제가 너무 무심했다 반성했다. 겹친 촬영 때문이라곤 해도 아이를 베이비시터한테 맡겨 둔 뒤 관심을 많이 주지 못했다.
박혜선에 관한 일도 그랬다. 급하게 필요한 물건을 구해 준 뒤 한 번도 찾아가 보지 못했다.
오히려 재현이 시간 날 때마다 현서를 데리고 다니면서 박혜선을 챙기고 있었다. 연락 끊긴 아이 친부모 소식을 알아 오기도 하고.
“혁이 가방은 현서가 멜래?”
“네!”
“뺙!”
마트에 들어가려면 케이지나 가방에 반려동물을 넣어야 했다. 재인은 혁이 들어간 백팩 타입의 투명한 캐리어를 현서의 등에 잘 메어 주었다.
‘시스템 영상 녹화 시작. 둘 다 너무 귀엽잖아.’
한사코 하찬의 캐리어에 같이 들어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혁이라서 따로 캐리어를 구했는데, 잘 산 것 같다.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순간 참지 못하고 사진을 찍어 댈 정도로 말이다.
“이게 진짜 귀여움 한도 초과지. 아이랑 반려동물이 한 컷에 들어오다니.”
“삼촌?”
“응. 잠깐만 몇 장만 더 찍고 들어가자.”
“네.”
킥보드를 살 생각에 마음이 급한 현서를 모른 척, 재인은 마트 입구에서 사진을 몇 장 더 찍었다. 곤란해하는 걸 알면서도 이 장면을 간직하고 싶었다.
비슷한 사진을 수없이 캡처하는 팬들의 마음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 * *
“현서야. 이리 와. 이거 한 입 먹고 타.”
“네에.”
재인은 대답만 잘할 뿐 올 생각이 없어 보이는 현서에 공원 테이블 위에 펼쳐 놓았던 도시락 뚜껑을 덮었다. 닭강정, 새우튀김, 샐러드에 아이가 좋아하는 핫도그까지 있었는데도 먹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진작 사 줄걸. 저렇게 좋아하는데…….’
마트에서 산 붉은색 킥보드에 형광색 보호 장비를 착용한 현서가 씽씽 달리고 있었다. 이제 겨우 타기 시작해서 다른 아이들처럼 낮은 점프대를 뛰거나 하진 못하고 빙글빙글 공터를 도는 수준인데도 멈추지 않았다.
“뺙뺙!”
“다 먹었어?”
“뺙! 뺙뺙뺙!”
“알았어. 내려 줄게. 너무 멀리 가지 마. 알았지?”
“뺙!”
간식도 안 먹고 킥보드를 타는 현서와 다르게 혁은 순식간에 간식을 해치웠다. 빈 간식 통은 내팽개치고 어서 잔디밭에 내려 달라고 난리였다.
“역시. 형 지켜 주는 건 우리 하찬이밖에 없네.”
“컹.”
“하찬이 육포 한 봉지 더 먹을래?”
“컹.”
발치께에 누운 하찬에게 간식을 먹이는 재인의 눈에 꿀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막간에 가진 휴식 덕분에 촬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코톡! 코톡! 코톡!
혼자 킥보드를 타는 현서 주위로 다른 아이가 다가가는 걸 유심히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야외라서 진동을 못 알아차릴까 봐 소리로 해 둔 코코아톡으로 메시지가 왔다.
-텀블러와 미니 선풍기 샘플 사진입니다.
사진을 바꿀 수 있는 텀블러와 커버 가운데에 스티커를 붙이는 미니 선풍기였다. 재인의 생일 며칠 전에 열기로 한 팬 미팅에서 팬에게 나눠 줄 굿즈였다.
“샘플이 벌써 나왔어? 오! 스티커에 하찬이랑 혁이도 있잖아. 나도 하나 챙겨야겠다.”
원래부터 아이돌을 기획하는 클로버 엔터라서 그런지 일 처리 속도가 남달랐다. 팬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굿즈 기획에서 제작까지 일사천리였다.
“1층 굿즈 스토어에서 팔지 않겠냐고?”
샘플 사진 뒤로 이어진 대화에 재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열성적인 팬을 보유한 아이돌도 아니고, 배우인 자신의 굿즈를 대체 누가 살까? 살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았다. 팬 카페 회원이 많이 늘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게 굿즈 구매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포토 북도 출간하고?”
키링, 머그 컵, 포토 카드, 부채, 에코백, 보조 배터리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제작 가능한 굿즈 목록을 나열한 뒤 제일 마지막에는 포토 북 출간 제안까지 했다.
“어휴. 정말이지. 정도를 몰라요. 뭘 하든 적당히 해야지.”
선물용으로 제작하기로 한 굿즈만 제작하자고 답을 보낸 재인이 고개를 저었다. 굿즈는 아니지만, 광고하는 브랜드에서 브로마이드, 부채 같은 상품을 꽤 나눠 줬었다. 그런 상품도 있으니 굳이 따로 굿즈를 제작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텀블러랑 미니 선풍기가 빨리 제작되어서 다행이야. 안 그랬으면 미안할 뻔했어.”
그렇지 않아도 다음 촬영에 디바인 스타 팬 카페에서 밥차 서포트를 한다는 소식을 들은 참이었다. 팬들이 보내는 애정의 십 분의 일도 돌려주지 못하는 것일 테지만, 보답할 게 생겨서 다행이었다.
‘같은 유치원 아이들인가?’
굿즈 스토어 판매를 거절한 후 대화가 끊긴 메신저에 내일 보자는 인사말을 남긴 재인이 아이가 노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최상호와 대화하는 사이 친구와 둘이 놀던 현서 주변에 꽤 많은 아이가 모여 있었다. 다 같은 유치원 소속인지 똑같은 디자인의 원복을 입고 있었다.
‘우리 현서도 유치원에 갈 나이이기는 한데.’
킥보드를 사 주는데 한동안 고민했던 것처럼 유치원을 보내는 일도 고민이었다. 부모가 아닌 후견인과 사는 현서라서, 다른 아이들과 다른 생활 환경 때문에 혹시라도 주눅 들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유치원 가기 전에 친구를 사귀어 두면 괜찮지 않을까?’
아이들 원복에 적힌 유치원 이름을 기억해 두고 재빠르게 도시락을 챙겼다. 짐을 전부 챙긴 재인은 촬영할 때보다 백 배는 더 친절하고 다정한 미소를 장착한 뒤 아이들 무리로 다가갔다.
“안녕? 아저씨 지금 저기 편의점에 현서랑 아이스크림 사러 가려고 하는데, 너희도 같이 갈래?”
“네!”
“네.”
재인은 홀린 듯 그를 올려다보는 아이들에게 다시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후견하는 아이의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유치원생 아이들에게 생전 해 본 적 없는 미인계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