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161)
#161. 목장
재인은 물건 하나를 들고 도도도도 제 방에서 달려오는 현서에 터져 나올 것 같은 웃음을 참았다.
소망하던 노란 띠를 딴 아이는 며칠째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높은 텐션이었다. 목장에 가자는 말에 고개가 떨어지라 끄덕이고, 짐 가방과 제 방을 신나서 오가는 것도 전부 노란 띠를 따고 여유가 생겨서였다.
“삼촌 이거도 가져가요.”
“인형은 하나, 둘, 셋, 세 개 챙겼으니까 다른 장난감 챙길까?”
“어떤 거요?”
“덤프트럭이나 포클레인 같은 자동차 장난감이 좋을 거 같아. 모래 삽도 좋고. 목장 근처에 계곡도 있고 차 타고 조금만 가면 바다도 있대.”
“알았어요.”
침대맡에 두는 인형을 전부 싸 갈 기세인 현서를 말려서 다른 장난감을 챙기게 한 재인이 한참 키득거렸다.
말도 또박또박하고 기다리기도 잘 기다려서 의젓한 줄 알았는데, 여행 가방을 싸기 시작하자 아이라는 티가 났다. 가방 절반을 장난감으로 채웠으면서도 장난감이 부족할 걸 걱정해서 또 들고 오는 게 딱 다섯 살 아이다웠다.
-띠리릭!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저녁 거리를 든 재현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재인과 현서가 여행 가방을 싸는 동안 길드에 들렀다 저녁을 포장해서 돌아왔다.
“현서야, 작은삼촌 왔다. 인사해야지.”
“네! 작은삼촌 다녀오셨어요.”
“다녀왔어. 현서, 인사 진짜 잘하네.”
“이히히.”
“저녁 사 왔어. 나머지는 저녁 먹고 챙겨.”
재현은 저녁거리를 테이블에 올려놓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인사하는 데에 재미를 붙인 아이를 귀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일 출발 전에 마트 들를 건데, 너는 뭐 필요한 거 없어?”
“없어. 일하는 사람들 나눠 줄 것까지 간식거리 많이 사 가. 거기 마트 멀더라.”
“알았어. 계곡은 아직 춥겠지?”
“춥지. 어차피 곧 대청소라 해변은 몰라도 계곡은 들어가지도 못해.”
“맞다. 여름 오기 전에 대청소해야 하는구나.”
재인이 돈가스를 잘라 아이 입에 넣어 주는 동생을 안쓰럽게 쳐다봤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매년 두 차례 혹은 그 이상으로 장기간 토벌 작전에 불려 다니는 게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꼭 필요한 일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아도 친동생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쓰였다.
“산마루 길드 지원으로 빠지면 형이랑 현서랑 목장에서 묵어도 됐을 텐데, 아쉽게 됐어.”
“그때까지 목장에 머무를 순 없지. 태권도장 일주일 빠지는 것도 큰 결심이었는데, 대청소 때까지 빠지자고 하면 난리 날걸.”
“그렇겠지?”
“그렇지.”
재현은 입 안의 걸 다 삼키기도 전에 한 조각을 더 넣어 주는 바람에 아무 말도 못 하는 현서를 보고 키득거렸다. 볼이 빵빵한 아이한테 한 조각 더 먹으라고 입에 대 주는 게 꽤나 짓궂었다.
“현서 체해. 천천히 줘.”
“어. 근데 볼 빵빵해서 다람쥐 같지 않아?”
“쓰읍! 하나씩 주라니까.”
“알았어.”
“현서야, 물도 마시면서 먹어.”
재인은 현서의 입에 물잔을 대 주면서 동생을 흘겨보았다. 좋아하는 작은삼촌이 준 거라서 싫다고도 못 하고 받아먹은 걸 뻔히 알면서 낄낄거리다니, 아이가 보고 배울까 걱정됐다.
“너 진짜 자꾸 그럴…….”
돈가스 다음으로 큼직한 롤을 아이한테 먹이려는 재현을 말리려던 순간이었다.
-삐이! 삐삐삐삐!
재현의 핸드폰에서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뭐야? 무슨 일이야?”
“길드 호출. 가 봐야겠다.”
“좀 전에 들어왔는데?”
“긴급 호출이야. 이따 봐서 연락할게. 내일 아침까지 못 오면 먼저 목장으로 가 있어. 나중에 따라갈게.”
“어, 알았어. 어서 가 봐.”
장난스러운 미소를 순식간에 지우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동생을 따라 재인도 일어났다. 안심시키려는 것처럼 나중에 목장으로 따라온다고 했지만, 지난 긴급 호출 상황을 기억하는 그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각성제 사태로 오랜만에 받은 휴가도 반납하고 길드에서 살다시피 했었다. 가끔 집에 돌아올 때도 얼굴만 잠깐 보이고 다시 출근해야 했다. 그때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걱정스러웠다.
“걱정하지 마. 우리 팀은 아주 위험한 임무에는 투입되지 않거든.”
“그래?”
“응. 안심하고 휴가 준비하고 있어.”
“알았어.”
아주 위험한 임무에는 투입되지 않는다는 재현의 말은 사실이었다. 박연화의 팀은 재인의 경호 임무가 1순위여서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라면 위험한 임무를 맡지 않았다.
‘지금이 그 어지간한 상황일 것 같긴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는 몰라도 다음 날부터 휴가에 들어가는 길드원까지 전원 소집하는 걸 보면 간단한 일은 아닐 듯했다.
재인은 굳은 표정으로 집을 나서는 동생을 현관 앞까지만 따라갔다가 바로 거실로 돌아왔다. 차를 세워 놓은 곳까지 따라가서 조심하라고 당부하고 싶었지만, 거실에 현서가 있었다. 요란한 경고음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몸을 굳힌.
* * *
다음 날 아침.
재인은 아침 일찍 마트에서 장 본 물건들을 트렁크에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이어서 현서의 좌석 벨트를 꼼꼼하게 채우고, 하찬과 혁의 켄넬까지 잘 고정한 후 운전석에 앉았다. 두 번 세 번 확인하며 동생을 기다렸지만, 이젠 목장으로 출발해야 했다.
“현서야, 이제 출발하자.”
“작은삼촌은요?”
“우리가 먼저 가 있으면 작은삼촌은 나중에 목장으로 올 거야.”
“네.”
나중에 합류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봤다. 그렇게 말하는 동생의 목소리에서 여유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큰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재인의 바람과 다르게 KH 길드는 비상사태나 다름없었다. KH 길드뿐이 아니었다. 군, 경찰, 사설 경호업체 구분할 것 없이 전 기관에 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갑자기 무슨 일이래? 지금까지 조용히 지내더니 왜 급발진하는 건데.”
“모르지. 뭔가 열받는 일이 있었는지.”
“열을 받았어도 그렇지. 정치인에 기업가에 대체 몇 명을 납치한 거야. 파괴된 곳은 또 몇 군데고. 이건 지금 한번 해보자는 거지.”
“해보자는 뜻인지는 모르겠고, 뭔가 바라는 게 있다는 것 정도는 알겠어. 기다리다 보면 곧 요구 사항을 말하겠지.”
언론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며칠 사이 수도권 지방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인 테러와 납치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으로 지목당한 건 빌런 조직 중 나름 신사적이라는 평을 듣는 이클립스였다.
‘습격당한 곳 중에는 연구소와 백신 공장 같은 곳도 있었지만, 숨겨진 별장이나 일반 가정집도 있었어. 대체 뭘 노리고 한 테러인지 모르겠군.’
재현은 옆에서 김나은이 쫑알쫑알 이클립스를 욕하건 말건 테러 관련 자료를 확인하고 있었다. 테러당한 장소들 사이에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싶어서 보고 있었지만, 보면 볼수록 더 이상했다.
납치된 사람들을 살펴봐도 마찬가지였다. 공무원, 재벌 3세, 초선 의원에 유통 회사 임원이 납치 대상이 된 공통점이 있을 텐데, 아무리 조사 내용을 살펴봐도 찾을 수 없었다.
“이거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까?”
“언론?”
“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EL 그룹 총수 일가가 사라진 건 막을 수 없지 않겠어? 분 단위로 움직이는 사람들이잖아.”
“주가 때문에라도 최대한 감출 것 같은데. 온갖 곳에서 틀어막고 있는데, 무슨 방침이 나오기 전까지는 막겠지.”
“그런가.”
꼼꼼히 살펴봐도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재현은 자료를 테이블 위로 던져 버렸다. 그런 그의 옆에서 김나은이 현재 상황에 관해 다시 떠들었다.
“심판자가 외국인이라는 소문 있잖아. 사실일까?”
“그건 그냥 헛소문이잖아. 천룡회인지 뭔지 하는 중국인 조직은 보스부터 조직원까지 다 파악하고 있잖아. 이클립스 보스가 진짜로 외국인이라면 더 빨리 밝혀졌겠지. 동양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에서 지금까지 정체가 안 밝혀진 거 보면 한국인일 것 같아.”
“외국인일 수도 있지. 빌런이 출입국 허락받고 다니는 건 아니잖아.”
“그럴 수도 있고.”
“뭐야?”
진지하게 이클립스 보스에 관해 얘기하는 자신과 다르게 대충대충 대답하는 재현에 김나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렇지 않아도 휴가 직전에 끌려와서 짜증 나는데, 제대로 맞장구도 안 쳐 주는 게 부아가 돋는 것 같았다.
“김나은.”
“왜!”
“그만 생각해. 머리 아프다. 너나 나나 머리 쓰는 사람은 아니잖아. 팀장이랑 민규 형이 회의에서 뭐라도 알아 오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
“아! 맞다. 그렇지. 내가 두뇌파는 아니지. 그런데 내가 왜 이걸 생각하고 있었지?”
“…….”
김나은이 평소와 다르게 범인에 관해 열심히 생각한 이유를 알지만, 재현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범인을 빨리 잡고 저를 따라올 생각으로 열심이었다는 걸 상기시켜 주고 싶지 않았다.
‘휴가는 조용히 보내야지.’
재현은 먼저 목장으로 출발한 재인을 따라갈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다.
목장에 가면 낮에는 현서를 데리고 동물 우리를 돌아보고, 저녁에는 난로를 피운 오두막에서 한적하게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곳에 시끄러운 김나은의 자리는 없었다.
“아오! 답답해! 팀장 빨리 안 오나?”
“그러게. 빨리 좀 오지.”
재현과 김나은은 때때로 출입문을 돌아보면서 대기했다. 두 사람은 회의에 참석한 박연화와 박민규가 이해할 만한 결과를 가지고 문으로 들어오길 기다렸다. 아무것도 못 하고 대기해야 하는 지루한 현 상황을 타개할 만한 그런 소식을 가지고 오길 바랐다.
* * *
“어서 오세요! 기다렸습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짐은 그냥 두세요. 우리가 옮겨 드릴게요.”
“그러세요. 짐은 두고 아이만 안고 이쪽으로 나오세요.”
재현이 길드에서 동료들과 무기한 대기에 들어간 시기 재인과 현서는 목장에 도착했다. 재인 목장이라는 조금 민망한 이름이 붙은 목장에 목장 관리자와 직원들의 환대를 받으면서 들어서고 있었다.
“자, 자. 애기 놀라니까 짐 내리는 거 도울 사람만 남고 가서 일 봐.”
“괜찮아요. 자다 깨서 그런 거예요.”
“괜찮기는요. 애기가 놀라서 눈이 똥그래졌구먼. 인사는 나중에 하고, 일단은 짐 먼저 부려 놓읍시다.”
“제가 옮길게요. 번거롭게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카오옹!”
“뺙뺙뺙!”
통성명도 하기 전에 짐 운반을 맡기기 민망해서 사양하려고 했지만, 타이밍이 나빴다. 오랫동안 차를 타고 온 하찬과 혁이 켄넬에서 꺼내 달라고 성화를 부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물러서야 했다.
관리인이 짐 옮길 사람만 남으라고 했지만, 직원 중 자리를 벗어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인사도 못 나누고 쫓겨날세라 앞다퉈 짐을 집어 들었다.
“아! 그 상자들은 직원분들 드리려고 가져온 거예요. 간식거리하고 선물이에요.”
“선물이요? 아이고, 이게 다 뭐예요. 운동화에 옷도 있고, 가방도 있네. 뭐하러 이런 걸 다 챙겨 왔어요. 그냥 오지.”
“사이즈 맞춰서 챙겨 왔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어요.”
“마음에 안 든다는 놈은 주지 말아요. 물건 볼 줄도 모르는 자기 탓이니.”
“하, 하하.”
관리인은 퉁명스레 뭐 하러 챙겨 왔냐고 타박했지만, 기뻐하는 감정이 목소리에 담겨서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재인이 고생하는 직원들을 챙겨 준 게 적잖이 마음에 든 듯했다.
“올 때 위험한 일은 없었지요?”
“없었어요. 중간중간 고속도로 순찰대가 다니더라고요. 덕분에 안전하게 잘 왔어요.”
“다행이네요. 아침에 올해는 대청소를 일찍 시작한다고 공지가 와서 내가 걱정을 좀 했어요.”
“대청소를 일찍 시작한대요?”
“올해는 KH 길드에서 지원이 늦을 거라더라고요. 그래서 산마루에서 일찍 시작한다고 들었어요. 동생 일인데 못 들었어요?”
관리인의 질문에 재인은 못 들었다고 대답했다. 목장으로 먼저 출발하라는 얘기만 들었지, 지방 협력 길드를 지원하지도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는 건 듣지 못했다.
“계곡이랑 강변 쪽은 가지 말아요. 그쪽 안 가도 우리 목장에서 할 거 많으니까, 심심하지는 않을 거예요. 여기는 수도권이랑 달라서 긴급 대응 박스 숫자도 적고, 구조도 빨리 못 와요. 알아서 조심해야 해요.”
“네. 조심할게요.”
“그래요. 애기도 있는데, 조심해야지요.”
“네.”
재인은 현서의 존재를 일깨우는 관리인의 말에 정신을 다잡았다. 재현의 걱정을 안 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현서와 즐겁게 휴가를 보내는 게 먼저였다. 눈앞의 현실에 충실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