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224)
224. 재계약
“어떻게 식사라도…….”
“괜찮습니다.”
“변호사님은 이 뒤로 일정이 있으시대요.”
“그래도 이렇게 그냥 보내 드리기에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바래다 드리겠다며 김태오 변호사와 같이 나가는 재인의 뒤에서 김 실장이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애써 속으로 삼켰다. 그러는 한편 쓰린 속을 달래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김 실장이 유난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사람, 의미 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사람 등. 재인의 재계약 자리에 동석한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의 방법으로 긴장을 풀고 있었다.
“아이고! 긴장이 풀리니 온몸이 다 뻐근하네.”
“저도요.”
“그래도 오늘은 재인 씨가 같이 있어서 조금 편하지 않았습니까? 지난 몇 번의 미팅은 솔직히…….”
“……힘들었지.”
“……기운이 쪽 빠졌지.”
재계약까지의 과정을 떠올린 사람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험난했던 미팅을 무사히 통과해 결국 사인을 받아 낸 것이 자랑스러울 법도 했으나 누구도 그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저 감추지 못한 짙은 피로만 보였다.
재인은 회사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 주는 배우이면서도 터무니없는 조건을 요구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은 평생 벌어도 못 벌 정도의 계약금을 받긴 했지만, 그 과정은 다른 아티스트와 다를 바 없었다. 클로버 엔터에서 연례행사처럼 일 년에 몇 번씩 진행하는 그런 계약이었다.
“만약 변호사님이 배우 하셨으면 그런 역할을 맡지 않았을까요?”
“조직 보스?”
“킬러?”
“역시 냉혹하고 무서운 그런 역할이 잘 어울리시죠?”
“어, 아주 찰떡이야.”
그런데도 그들이 이렇게 지친 것은 전부 그 계약을 대리하는 변호사 김태오 때문이었다.
서늘한 눈과 마주치면 괜히 죄지은 것도 없는데 등골이 시렸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어깨가 딱딱하게 굳고 가슴에 묵직한 돌이 얹힌 것 같았다. 계약 조건 조율을 위해 만나는 내내 그런 느낌을 뼈저리게 받았다.
“내가 클로버 엔터 들어와서 제일 잘한 건 재인 씨랑 계약한 일이거든.”
“잘한 일 정도인가? 그건 그야말로 업적이지, 업적.”
“맞아요. 지금 회사 상황 보세요. 재인 씨 혼자서 매출 절반 넘게 내고 계시잖아요.”
“만약 재인 씨가 수익 일부를 기부로 돌리지 않았으면 더 많았을 겁니다.”
“그건 그렇지.”
김 실장은 재인과 전속 계약을 맺은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누구나 탐낼 보석을 빨리 찾아내고 계약을 맺었다. 제법 신뢰도 받아서 지금까지 전담 팀을 맡으면서 큰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실수가 있다면…….
“그런데 내가 진짜 실수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하나 있거든.”
“뭔데요?”
사람들의 의아한 눈길이 김 실장에게 모였다. 계약 기간 동안 일을 잘 처리해서 재계약까지 끌어낸 사람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재인 씨한테 계약서를 건네면서 변호사를 찾아가 보라고 권한 거.”
“그게 왜? 다들 그렇게 하잖아.”
“……거기서 나가서 간 곳이 김태오 변호사 사무실이야. 약속 장소 옆 건물이었어.”
“…….”
“그날 말이지. 오늘은 집에 가서 천천히 살펴보고 변호사는 나중에 찾아가 보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그때도 김태오 변호사 사무실로 갔을까?”
“크흠! 그, 그러지 않았을까?”
말은 그렇게 해도 순식간에 안타까운 얼굴이 되는 동료들을 보면 아마 그러지 않았을 것 같았다. 하찬과 동행한 펫 레스토랑과 가까운 변호사 사무실이 아니라 집에서 가까운 다른 곳으로 갔을 가능성이 컸다.
“그냥 딱 하루만 있다가 변호사를 찾아가라고 할걸.”
“괘, 괜찮아. 덕분에 좋은 변호사를 만나셨잖아.”
“그, 그럼요. 변호사님 일 잘하시잖아. 살벌하긴 하지만.”
“……일 잘하시지. 무섭게.”
재인의 전속 계약서를 챙긴 김 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다를 떨면서 놀란 몸과 마음을 더 달래고 싶었지만, 아직 업무가 많이 남아 있었다.
* * *
재인의 배웅을 받는 김태오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김 실장을 비롯한 재계약 자리에 참석한 클로버 엔터의 직원들이 그로기 상태로 회의실 의자에 앉아서 숨을 돌리는 것과 전혀 달랐다.
“이거 받으세요, 변호사님.”
“으음.”
“저번하고 같아요. 녹색은 정화 성수, 파란색은 회복 성수예요.”
“감사합니다.”
재인은 그가 건넨 성수를 조심스레 받아 갈무리하는 김태오를 보고 속으로 키득거렸다.
김태오에게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도움도 많이 받고 신세도 여러 번 졌다. 그럴 때마다 고마운 마음에 선물을 하고 싶었는데 명품이든 특산품이든 여러 이유를 들며 거절했었다.
그래서 선택한 선물이 직접 만든 성수였다. 그리고 그건 완벽한 선택이었다. 김태오는 살짝 민망한 표정을 짓긴 했어도 성수를 사양하진 않았다.
‘부하들한테 나눠 주는 게 아니었더라면 성수도 안 받았을지도…….’
이클립스 보스라는 다른 신분이 없었더라면 아마 성수도 거절했을 테지만.
“경호 팀은 괜찮습니까?”
“무척 잘해 주세요. 경호는 두말할 것도 없고 다른 부분에서도 많이 도와주세요.”
“그렇습니까.”
“진짜로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경호 팀 없었으면 활동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재인은 경호 팀원을 힐끔 쳐다보는 김태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사회화 방면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경호를 비롯한 의전 부분에선 누구보다 월등했다. 덕분에 해외에서도 안전을 걱정하지 않고 편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재인과 김태오 두 사람이 대화하는 옆에서 경호에 전념하던 경호 팀원이 숨을 들이켰다. 예상 못 한 타이밍에 들은 칭찬에 놀라 호흡이 흐트러졌다.
‘재인 님도 참. 한창 경호 중인데.’
경호 팀원은 좀 전보다 자세를 더 꼿꼿하게 세웠다. 비록 칭찬 때문에 가슴 속 어딘가가 간질거리고 제자리에서 팔딱팔딱 뛰고 싶어서 참기 힘들었지만, 재인의 경호 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멋진 자세로 섰다.
“바쁘시다니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서 헤어져야겠네요. 그래도 다음에는 꼭 같이 식사해요.”
“알겠습니다. 오늘 바로 출국하십니까?”
“네. 계약 때문에 잠깐 들어온 거라서요.”
“촬영 잘 마무리하십시오. 다음에 뵙겠습니다.”
“네, 다음에 봬요.”
긴 시간을 들인 >더 히어로즈>의 촬영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한 달 정도만 더 촬영하고 귀국하면 여유가 생길 것이다.
기실 곧 새로운 작품 촬영에 들어가야 해서 그렇게 여유로운 것은 아니나, 왕복에만 이틀을 써야 하는 해외 촬영과 비교하면 훨씬 나았다. 그때 오늘 못 한 식사도 하고 밀린 얘기도 나누면 될 것 같았다.
“공항까지 배웅하겠습니다.”
“저야 배웅해 주시면 좋지만, 바쁘시잖아요. 회사에 계셔도 괜찮아요, 매니저님.”
“아닙니다. 논의할 일도 있으니 같이 가겠습니다.”
“네.”
재인은 피곤이 짙게 내려앉은 얼굴로 배웅하겠다고 나서는 최상호한테 치유를 걸어 주었다.
논의가 필요한 일은 이미 오전 중에 전부 처리를 끝냈다. 그 사실을 재계약 때문에 내내 붙어 있어서 잘 알고 있었지만, 밴에 올라타는 최상호를 말리지 않았다. 그가 근래 곁에서 챙기지 못한 걸 신경 쓰는 게 보여서였다.
‘매니저님은 진짜 한결같네. 이쯤이면 치유 한 번 걸어 달라고 부탁도 하고, 피곤하다고 엄살도 부리고 할 텐데.’
알게 된 지 햇수로 5년을 넘어서는 지금도 최상호는 여전했다. 진지하고 듬직하고 맡은 일에는 성실했다. 김 실장이 자신하면서 소개할 만했다.
“로드 매니저 후보입니다. 여기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고르시면 됩니다.”
“네.”
최상호가 내민 태블릿을 받아들면서 재인이 웃음을 참았다. 역시나 공항까지 한 시간 거리를 이동하면서 처리할 정도로 급한 업무는 아니었다.
현재 클로버 엔터는 사옥 이전이 한창이라 어수선하고 복잡했다. 그중 사옥 이전과 동시에 인원을 새로 구성해야 하는 전담 팀은 다른 팀보다 몇 배는 더 바빴다. 책임감이 강한 최상호가 현지 에이전시와 경호 팀에 재인의 서포트를 전부 맡겨야 할 만큼.
“몇 명 골라요?”
“마음에 드는 사람 전부 고르시면 됩니다.”
“네.”
그래서 최상호가 잠시라도 같이 시간을 보내려 업무를 핑계 삼았다는 걸 알면서도 장단을 맞춰 주었다.
* * *
“대니! 저녁 먹기 전에는 꼭 들어와야 해, 알았지? 할아버지랑 할머니 오시기로 했어.”
“알았어요.”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들의 뒤꽁무니에 크게 외친 덕분에 알았다는 대답을 들었지만, 대니 어머니 표정은 그다지 개운하지 않았다.
주말만이라도 가족이 전부 모여 시간을 보냈으면 했는데 몇 주째 그런 시간을 갖기 어려웠다. 전부 하나밖에 없는 아들 녀석이 무슨 뽑기에 빠져서였다.
“대니는? 벌써 갔어?”
“갔어요.”
“거, 녀석. 용돈 좀 주려고 했더니 그새 갔네.”
“용돈 준 지 얼마 안 됐는데, 뭘 또 줘요?”
“기특하잖아.”
그렇지 않아도 주말마다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나 들어오는 아들이 불만인데, 용돈? 아예 나가라고 등을 떠미는 꼴이 아닌가. 분위기 파악 못 하는 남편의 말에 대니 어머니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인상 풀어, 여보. 놀러 나가는 것도 아니고 봉사 활동 하러 가는 거잖아.”
“아무리 봉사 활동이라도 그렇죠. 벌써 몇 주째예요?”
“아픈 친구한테 치료받을 기회를 얻어 줄 거라잖아.”
“그게 되겠어요? 차라리 로또 되는 게 더 쉽지.”
“안 되면 또 어때서. 우리 대니가 노력했다는 게 중요한 거지.”
태평한 남편의 말에 대니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 성실하게 일하고 가정을 꾸려 왔다. 아들 대니 역시 그렇게 살길 바랐다. 로또보다 희박한 확률에 기대는, 그런 요행수를 바라지 않았으면 싶었다. 무엇보다…….
‘현실을 깨닫기엔 대니는 아직 어리다고요.’
친구를 위해 치료받을 기회를 얻으려는 게 아니더라도 봉사 활동을 반대할 마음은 없었다. 주말에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게 아쉽긴 해도 대견하단 느낌이 그보다 커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대니 어머니가 주말마다 어김없이 잔소리하는 이유는 대니가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거나, 보답 없는 노력에 지치고 포기하는 상황을 겪지 않길 바라서였다.
“엄마! 아빠!”
“무, 무슨 일이야?”
“대니? 왜 그러니?”
“여기! 여기 좀 봐 주세요! 이거랑 이거 숫자 같아요? 같죠?”
핸드폰 화면을 컴퓨터 모니터 앞에 들이밀며 숫자가 같은지 확인해 달라는 말에 부부는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계속된 재촉에 곧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 화면 속 숫자와 모니터 중앙에 뜬 숫자를 비교했다.
“숫자는 같은데, 이게 뭐니?”
“같아요?”
“같아. 그래서 이게 무슨 숫자인데?”
“이야호! 됐어요! 이제 됐어요!”
그런 걱정은 그만둬도 괜찮을 것 같았다. 주말 저녁 요란하게 부부를 찾는 아들이 보여 준 화면에 해결 방법이 있었다.
“이거면 이제 릴리도 나을 수 있어요.”
“이게 뭔데?”
“재인이요! 재인이 릴리를 치료해 줄 거예요.”
“?”
핸드폰 화면의 숫자는 대니가 봉사 활동 경력을 인증하고 받은 코드이고 모니터 속 숫자는 재인이 선행 동참자 감사 이벤트 뽑기에서 뽑은 숫자라는 설명은 대니의 흥분이 가라앉은 다음에야 들을 수 있었다.
“네가 뽑혔다고?”
“네!”
“신이시여!”
“세상에! 대니 네가 해냈구나!”
그 말도 안 되는 확률의 뽑기에 당첨됐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해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저 아들이 상처만 받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는데, 뽑히다니.
아들의 친한 친구가 회복될 기회를 얻은 것도 기쁘고, 아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도 기뻤다.
“엄마 연락 오면 같이 받아요.”
“그래, 같이 받아 줄게.”
“릴리가요. 한국에 가서 치료받고 싶댔어요.”
“한국에서?”
“네. 전에 그랬어요. 치료받고 다 나으면 클로버 엔터에 갈 거래요. 거기서는 온라인 몰에서 안 파는 재인의 굿즈도 판대요.”
완치된 릴리와 같이 한국을 여행하는 상상이라도 했는지 대니의 목소리가 커졌다. 부부는 다다다다 늘어놓는 아들의 말을 웃으며 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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