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뭘 고민하고 있어?”
“이번만큼은······ 확실히 네가 대단해 보였어.”
“이제야 인정을 받다니.”
제갈 세가주가 작게 웃었다. 나도 허탈하게 마주 웃었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제갈 세가주가 갑자기 말했다.
“좋아. 네 일이니까.”
“응?”
“나 잠깐만 지켜 줘.”
말의 문맥을 파악하기도 전에 제갈 세가주가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
“뭐 하는······.”
나는 말을 끝까지 내뱉지 않고 입을 닫았다. 눈을 감은 제갈 세가주가 진기를 순환시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뭐야? 설마 지금······ 운기하는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진기의 흐름이 상단전에 집중되어 있었다.
어쨌든 운기 비슷한 상태로 보였기에 나는 숨 쉬는 것조차 조심하며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호위는 있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제갈 세가주의 호위인 무영의 기척을 볼 수 있었다.
잠시 제갈 세가주를 바라보다가 나도 눈을 감았다. 할 것도 없으니 나도 함께 수련이나 하려는 생각이었다.
자연지기를 수련하는 건 함부로 방해해서는 안 되는 운기와 달리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그렇게 덩달아 수련을 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야밤에 이게 대체 무슨 짓인지.’
갑자기 왜 제갈 세가주와 여기서 수련을 하고 있단 말인가?
얼마나 지났을까? 제갈 세가주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모산파라는 곳 들어 본 적 있어?”
“모산파?”
나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예전에 멸문한 문파잖아.”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하는 건지?
모산파는 오래전에 멸문한 문파지만 강호에 발을 딛고 산다면 한 번은 들어보게되는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산파가 술법으로 아주, 아주 유명했던 문파였기 때문이다.
모산파의 상당히 많은 술법은 모산파가 멸문하고 나서도 각기 다른 문파와 세가로 흘러 들어가 명맥을 이었다. 그런데 그게 또 따지고 보면 웃기는 일이었다.
제갈 세가주가 물었다.
“왜 멸문했는지도 알아?”
“사이한 실험을 자행하다 정파사파 할것 없이 모두 적을 만들어서 멸문당했다고 들었는데.”
그러니까 자신들이 사이하다고 멸문시켜놓고 그 문파의 술법을 가져다 연구하고 쓰고 있었다.
모산파 입장에선 저승에서도 기가 막혀 눈을 감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멸문한 문파의 눈치를 누가 보겠는가?
제갈 세가주가 말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제갈 세가주가 살짝 숨을 가다듬었다.
“이상하지 않아? 모산파가 술법으로 대단한 문하긴 하지만······ 대체 뭐를 저질렀길래 원수보다 더한 정사파가 손을 모았을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지만, 확실히 이상했다.
“모산파가 멸문한 건 사이한 술법 때문이 아니야. 그들이 발명한 독 때문이지.”
“독?”
제갈 세가주가 고개를 끄덕이다 머리를 짚었다.
“무색무취에다가 한번 중독되면 다시는 회복되지 않는 산공독을 만들어 내서야.”
“······뭐라고?”
“어때, 무림인이라면 펄쩍 뛰 만한 무서운 독이지?”
산공독은 내공을 흐트러트리는 독이었다. 남궁완 아저씨와 용봉지회 일원들이 천귀조를 상대할 때 당했던 독이자 남궁류청이 상대하는 악역들이 심심하면 써 대는 독이기도 했다.
강한 주인공을 한순간에 무력하게 만들 수 있는 독인데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
그렇다 보니 산공독은 강호에서는 무척 비열한 독 취급을 받는다.
산공독을 제조하거나 쓰는 걸 들키면 무림 공적이 될 정도였다.
천귀조는 이미 무림공적이었기에 그따위 것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산공독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독된다는 점이었다.
주변에 운기를 도와줄 사람이 있다면 바로 해독도 가능했다.
후유증도 남지 않는다. 그런데도 무림인이라면 산공독에 치를 떨었다.
그런데······ 해독할 수 없는 산공독이라니? 평생에 쌓아 온 내공을 쓰지 못하게 된다고?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미친······.”
“그 존재를 안 순간, 정사를 가릴 것없이 연합하여 모산파를 공격했지. 세상에 그런 사악한 물건이라니! 이 세상에 있어선 안 되지! 안 그래?”
당연했다. 이건 강호의 근간을 무너트리는 독이었다.
그리고 제갈 세가주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
“설마 내 아버지가 편찮으신 게······?”
제갈 세가주가 창백한 낯으로 희미하게 웃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멸문했다며? 제조법을 남겨뒀을 리가 없잖아?”
그 독 때문에 멸문시켰는데, 독 제조법을 남겨 뒀을 리가 없었다.
“맞아. 그렇겠지. 하지만 누군가 그런 게 있는 걸 안다면 재현할 수도 있지 않겠어?”
“······왜?”
왜 하필 내 아버지를?
내 아버지가 이름 높은 고수긴 하지만 이렇게 악질적인 독에 중독될 만한가 물어본다면그건 아니었다.
내 아버지보다 훨씬 유명하고 위협적인 사람이 널린 고이 강호였다.
나는 그저 아버지를 살리고 나도 살아남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글쎄. 어쨌든 지금 내가 찾은 것 중에 가장 비슷한······.”
제갈 세가주가 말을 멈추며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찾았다고?”
뭔가 말하는 어조가 묘했다.
원래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마치 방금 떠올린 것처럼, 알게 된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응. 이 얘긴 역사 속에서도 지워진 거니까. 네 할아버지도 모를 걸?”
“······.”
더 의아해졌다.
그렇다면 그런 걸 제갈 세가주가 어찌 안단 말인가? 열 한 살의 나이에 불과한데?
내 의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갈 세가주가 웃으며 나를 보았다.
“그거 알아? 저 고양이에게 건 술법 그거 원래 모산파의 술법이었다?”
나는 놀라며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하필 모산파 얘기를 한 날이었다.
“신기하지?”
“먉!”
나와 눈이 마주친 고양이가 짧게 울었다.
“운명이 느껴지지 않아?”
“뭐라고?”
“저 수많은 별 사이에서 네가 만신의의 능력을 이어받은 것이 운명이 아닐까? 마치 내가 널 만난 것처럼.”
나는 제갈 세가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다.
“너······
방금은 정말 사이비 교주 같았어.”
헛웃음을 터트린 제갈 세가주가 뒤족의 나무를 짚으며 몸을 살짝 숙였다.
“어쨌든 ······고마워.”
헛소리가 고마웠다.
어찌할 바 모르며 침울하게 가라앉던 내면에서 끌어 올려진 기분이었다.
“모산파 얘기 할아버지께 말씀드려도 돼?”
“마음대로.”
“알았어. 그럼 난 먼저 가볼게.”
“연아.”
왜 그러냐는 듯 바라보자 제갈 세가주가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나 못 걷겠어. 업어주라.”
“······.”
나는 말을 잃고 제갈 세가주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제갈 세가주는 절맥으로 병약했지만, 키와 몸은 아주 잘 자란 편이었다.
창백하고 피폐해 보이는 낯과 달리 또래와 비교하면 말쑥이 자랐다고 할까?
그에 비하면 나는 제대로 못 먹어서 또래만도 못했다.
내가 어떻게 어떻게 제갈 세가주를 업더라도 다리가 질질 끌리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기다려. 어른 불러올 테니까.”
제갈 세가주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정말 단호하네.”
나는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아, 맞아. 굳이 어른을 불러올 필요 있나? 저쪽에 있는 호위를 부르면······ 이라고 생각할 때였다.
풀썩.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 * *
백리 세가는 전혀 변한 것이 없었다.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지만 떠난 시간으로 치면 그렇게 길진 않았으니까.
나와 아버지는 곧장 처소로 향했다. 처소를 감싼 담벼락을 넘자 어두를 중심으로 처소 하인들이 모두 마중을 나와 있었다.
언두가 말했다.
“도련님! 아기씨! 어서 오십시오!”
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웃으며 말했다.
“오랜 만이야.”
내게 다가온 언두가 감정이 복받쳐 흐르는 표정으로 바라보다 눈가를 살짝 닦아 냈다.
“무사하셔서 정말······ 정말 다행입니다.”
“······응. 걱정을 끼쳤네.”
내게는 꽤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는데 할아버지부터 언두까지 저런 모습을 보니 내가 정말 여럿을 마음고생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혈색도 많이 좋아지시고 키도 조금 크셨네요.”
“정말?”
“예. 그래도 아직 일곱으로는 안 보입니다.”
나는 입을 삐죽였다. 올라오는 길에 생일이 지나 이제드디어 일곱이었다.
“눈은 계속 그렇게 가리고 계셔야 하는 겁니까?”
“그냥 이게 편해서.”
이어서 나는 내 뒤쪽에 서 있던 이를 소개했다.
“이쪽은 오는 길에 함께한 시비인 금쇄야.”
언두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나는 천천히 이곳에 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금쇄를 소개했다.
남궁 세가에서 함께 지냈고 소부인이 붙여주셨다고.
벌써 하인들 몇몇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먼저 영무표국에서 보내준 짐 정리는 금쇄가 도와줄 거야.”
금쇄가 차분하게 미리 챙겨두었던 장부를 꺼냈다.
“짐 목록은 제가 가지고 있으니, 아가씨 처소를 한번 살피고 바로 정리하겠습니다.”
설명을 들은 언두는 뛸 듯이 좋아했다. 얼떨떨하게 그 모습을 보던 나는 언두의 말을 듣고는 안쓰러운 낯을 했다.
“드디어! 함께 일할 사람이 생겼네요. 어흐흑.”
그간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처소에서 언두가 얼마나 과생했을지 절로 눈앞에 그려졌다.
그때 한 소녀의 목소리가 끼어 들었다.
“······아기씨?
지금 무슨말씀 하시는 거예요?”
당금이었다.
이 목소리를 들으니 내가 정말로 집에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든 나쁘든 말이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금쇄.
이쪽은 내 시비인 당금이야.”
당금은 금쇄가 인사하는 것을 당혹스럽게 보았다.
곧이어 당금은 뭔가 소리칠 듯 입을 열었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 숙였다. 저만치 보이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언두와 인사만 하고 처소를 둘러보러 간 아버지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또한 그런 아버지를 자세히 살폈다. 아버지를 살피는 것은 이제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그날 이후로 같은 현상을 보인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쩌다 가끔 일어나는 일이라는 말은 확실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