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흐트러진 앞머리 사이로 의아한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야율은 내 금안에 대해 알고 있었다.
나는 설명하듯 말했다.
“안에 진법이 펼쳐져 있어서 밖이 잘 안 보였어.”
“진법?”
“응. 길을 헤매게 만드는 용이야.”
“······헤맨다고?”
“응.”
“제갈 세가주가 네가 안에 있다고 나보고 들어가라고 했어.”
“으응?”
“여기서 고자질할 줄이야.”
가벼운 목소리가 긍정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 제갈화무를 돌아보려 했으나 야율이 돌아보지 못하게 나를 꽉 안고 있어서 불가능했다.
나는 애처럼 구는 야율의 머리를 달래듯 토닥였다.
손에 닿는 감촉이 뭔가 오랜만이었다.
잠시 그러고 있던 내가 야율의 어깨를 잡고 밀어냈다.
얼굴과 몸을 살폈다. 고초를 꽤나 겪은 몰골이었다.
“얼굴이 이게 뭐야! 몸은 괜찮아?”
사흘 내내 잠도 안 자고 말을 바꿔 가며 달리다가 말도 나가떨어지고 마지막엔 내공을 써서 직접 달렸다고 들었다.
“내공은 있는대로 다 써서 내상까지 입었다던데. 최소한으로는 남겨 놨어야지! 잘못하면······”
“콜록. 콜록.”
그때 갑작스러운 기침 소리가 들렸다.
“화무?”
고개를 틀고 한숨을 내쉰 제갈화무의 낯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들어가기 전보다 더 안 좋아진 모습이었다.
심지어 살짝 비틀거리기도 했다.
나는 깜짝 놀라 야율을 밀어내고 휘청거리는 제갈화무의 몸을 받쳤다.
“괜찮아?”
좀 전에 닿은 손끝은 시릴 정도로 차가웠지만 스치는 숨결은 뜨거웠다.
이렇게 상태가 나빴다고?
나도 모르게 타박이 절로 나왔다.
“그러게 그냥 돌아가서 쉬어도 된다고 했잖아. 왜 지키고 서서!”
“하하, 누가 갑자기 올 수도 있잖아?”
야율은 막지도 않고 뻔뻔하게 들어가라고 했으면서······!
나는 입술을 깨물며 제갈화무를 부축했다.
“야율,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여기 쓰러진 백검단원들 좀 살펴 줘. 그냥 잠든 거라 혈을 짚어서 깨우면 될 거야.”
* * *
나는 곧장 빈방으로 향했다.
제갈화무를 쉬게 하고, 그를 살피던 나는 고개를 갸윳거리다가 눈썹을 치켜들었다.
이내 입을 열었다가 크게 숨을 내쉬고 일어났다. 몸을 돌릴 때 손목을 붙잡아 오는 손길이 있었다.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
“너 아픈 거 아니지?”
“그럴 리가. 아픈 건 맞아.”
노려보자 제갈화무가 설핏 웃었다.
“늘 아프지. 뭐,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
제갈화무가 몸을 일으켰다.
“조금 무리를 한 건 사실이야. 결이 말이야. 진법에 네가 펼친 기막까지 뚫으려 들다 보니.”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았다. 한숨을 내쉬고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건 그렇다 치고. 넌 왜 자꾸 야율만 보면 심술이야?”
“그럴 리가?”
“심술부린 게 아니라고?”
“나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심술부리는데. 너 빼고.”
“······.”
창으로 들어오는 볕을 받으며 제갈화무가 옅게 웃었다.
병약해 보인다는 것만 빼면 아름다운 낯이었다. 아니 병약해 보이는 모습이 더 시선을 사로잡는다고도 볼 수 있었다.
‘역시 지금 확실히 해 두자.’
언제까지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지낼 수는 없었다.
나는 마음을 정하고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꽤 길게 침묵한 후에 말했다.
“화무,
나는 네 마음에 대답 못 해줘.”
제갈화무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이제 거의 풀려버린 백발이 흘러내렸다.
“만약 내 마음을 얻고 싶어서 도와주는 거라면······ 이제 여기서 끝내자.”
제갈화무가 눈을 깜빡였다. 왠지 나를 약간······
한심하게 보는 눈빛이었다.
“난 또. 심각한 표정을 하길래 무슨 말을 하려나 했더니만.”
제갈화무가 턱을 괴며 말했다.
“정말 그래도 되겠어?”
“······.”
“마교가 너를 노린 사실까지 밝혀졌는데, 앞으로 내 도움이 없어도 자신 있어? 정말로?”
“······어쩔 수 없지.”
“아니면 이제 백리 세가 후계자가 될 테니까 내 도움 따위는 필요 없게 된 건가?”
“그건······ 그냥 고모를 자극하려고 한 말이야.”
“하지만 진실이기도 하잖아?”
백리명이 다시 회복하기에는 시일이 너무 오래 걸릴 테고, 쌍둥이들은 고모의 자식이었다.
남은 건 백리리와 나뿐이니.
이미 벌써 가문 사람들이 모두 수군거리고 있는 얘기였다.
제갈화무가 내 얼굴을 향해 손을 뻗다가 머리칼을 쥐었다.
“나는 그저 네가 어떤 길을 갈지 궁금할 뿐이야. 그리고······.”
* * *
탁.
등 뒤로 문을 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날 불쌍하게 여기기만 해도 돼.”
또다시 한숨을 내쉴 때였다.
“여기 있었구나.”
살짝 숨이 찬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아버지를 뵙는 건 며칠 만이었다.
아버지는 그간 바쁘게 돌아다녔다. 고모가 날 주화입마에 빠트렸다는 다른 증인이나 증거를 찾기 위해서였다.
미리 조사해 본 나로서는 쓸데없는 짓임을 알았지만, 막지 않았다.
직접 조사해 봐야 더 확실히 아실테니까.
아버지가 무척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 방에서 나오는 게냐?”
“아, 화무의 상태가 안 좋아져서.
쉬라고 들어간 김에 얘기 좀 하고 있었어요.”
“······.”
“왜요?”
“방에 제갈 세가주와 단둘이 있었느냐?”
“음······ 네.”
아버지의 낯이 심각해졌다.
“너는······ 아직······ 어리니 상관없다만······ 제갈 세가주는 나이가 있으니 말이다.”
나는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아버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앞으로 방에 단둘이 있는 상황은 피해라.”
나는 약간 어이가 없어서 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 모습에 아버지가 왠지 내 눈치를 보는 듯이 말했다.
“그······ 안 된다는 건 아니다. 그저 내가 걱정되서니까. 그러니까 음, 시비를 꼭, 꼭 대동하거라.”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웃었다.
하긴 아직 내가 어려서 상관없지만, 좀 더 크면 이상한 소문이 나기 딱 좋긴했다.
하지만 좀 전에도 그렇고 제갈화무랑은 특히 시비가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을 너무 자주했다.
앞으로도 장담하긴 힘들었기에 나는 답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저는 왜 찾으신 거예요?”
“아, 네가 북쪽 전각에 갔다고 들었다.”
“으음, 네.”
왜 회귀전에도 내가 북쪽 전각에 갔던 적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때도 아버지는 이렇게 물어보셨다.
그리고 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네.’라고 대답했고, 그다음 아버지는 분명-
‘그래. 알겠다.’
“그래. 알겠다.”
기억과 똑같은 말이었다.
“······.”
“······.”
그게 끝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버지는 변한 듯 보이면서도 또 전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와 완전히 변한 것도 있었다.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아버지와 내 관계. 그건 분명 전과는 달랐다.
* * *
그 시각 남궁완은 짜증을 애써 억누르고 있었다.
“그럼, 다들 동의한 것으로 알고 이렇게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소.”
“알겠소.”
찬성하는 이들이 대다수였으나, 몇몇은 침묵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떨떠름한 표정을 대놓고 내보이지 않는 게 그들의 최선이었다.
얼굴에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두툼한 삼중턱의 사내가 일어나 웃으며 두 손을 모았다.
“역시 맹주님, 현명하신 혜안입니다.”
제대로 바람 잡는 모습에 남궁완이 코웃음을 쳤다.
작은 비웃음일 뿐이었지만 기감이 예민한 자들이 많은 곳이었다.
호탕하게 웃던 무림맹주 위지백이 낯빛을 바꾸며 남궁완을 보았다.
“남궁소가주. 할 말이 있으면 그리 비웃지 말고 말씀하시지.”
남궁완이 손도 대지 않아 가득 차 있는 찻잔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글쎄요. 제가 무슨 말을 하든 변하는 건 없을 것 같습니다만.”
“커흠.”
“큼.”
몇 사람이 헛기침을 토했다.
위지백이 다시 말했다.
“남궁 소가주. 불만이 있다면 제대로 말하게. 누가 보면 내가 말하지 못하게 막은 줄 알겠군.”
남궁완은 굳은 낯으로 무림맹주인 위지백을 바라보았다.
서로의 시선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부딪쳤다.
“······.”
“······”
점차 대회의실의 기운이 앉은 이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결국, 무림맹의 군사인 공손방이 웃으며 중재했다.
이윽고
회의가 끝나고 이어진 주연자리.
그 자리에서도 상황은 비슷하게 반복되었다.
남궁완은 굳은 얼굴로 배정된 전각에 들어왔다.
그리고 잔뜩 성질난 얼굴로 짙은 자색 장포를 벗어던졌다.
그 뒤를 황급히 뒤따라온 부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식사를 준비하라 하겠습니다.”
“안 먹는다.”
“주연에서 술만 드시지 않았습니까. 이대로면 속이 상하실 겁니다.”
“너도 굶으라 하진 않을 테니 가서 먹고 와!”
남궁완이 쫓아내듯 손을 내저었다.
“하하, 아닙니다. 저도 배고프지 않습니다.”
성질 더러운 주인을 모시는 부관은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남궁완은 부관이 올리는 차를 받아마시고 말했다.
“내일 바로 돌아가도록 하지.”
“내일요? 그래도······ 보름이나 먼저 떠나는 것은 불만의 모습으로 비치지 않을까요?”
남궁완이 조소했다.
“내가 떠나면 위맹주는 오히려 박수를 칠 게다.”
위지백은 맹회 내내 사사건건 날궁완을 견제하고, 무시하길 반복했다.
“재수가 없으려니.
아주 제 세상이야.”
“호랑이 없는 곳에 여우가 왕 노릇하는 거지요. 특히 이번 맹회는 명문대파에서 온 장로급이 없었으니 더 눈치 보지도 않았겠지요.”
그나마 참석한 이들도 남궁세가를 견제해야 한다 여기는 쪽이었다.
남궁완이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백리 세가주도 못 온다는데. 더 있을 필요 없지.”
이내 다시 성질난 듯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 쳤다.
“아니, 대체 출발까지 했는데 갑자기 왜 다시 돌아갔단 말이야?”
남궁완이 눈을 부라렸다.
“설마 백리세가주의 마음이 갑자기 변한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