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
나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나 때문에 가는 거라고?”
“응.”
야율이 앞머리를 살짝 털며 말을 이었다.
“천귀조를 죽일 수 있으면 죽이고 싶긴 하지.”
성의 없는 표정이 전혀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는 살짝 투정 부리듯 말했다.
“그 인간 얘기가 왜 계속 나오는 거야? 천귀조한테 관심있어? 아, 혹시 네가 죽이고 싶은 거야?”
“······.”
야율의 태연한 모습에 오히려 내가 더 혼란스러웠다.
야율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건 조금 어렵지 않을까? 네가 직접 나서는 건 위험하니까. 천귀조를 산 채로 잡아 와야 할 텐데 천귀조는 신출귀몰한 경공으로 유명하잖아. 거기에 동정호는 너무 넓어서······.”
얘는 무슨 헛소리를 이렇게 진지하게 하는 거야?
나는 손을 내저으며 야율의 말을 막았다.
“아니,아냐!
내가 아니라 너 말이야 너!”
“나?”
“응. 너. 정말 천귀조한테 별 감정 없는 거야?”
“응.”
······그럴 리가?
천귀조에 대한 감정이 이렇게 희박하다고?
그럼 소설 속에서 남궁류청은 왜 그렇게 괴롭혔던 거야?
남궁완 아저씨가 무림맹으로 끌고 간 일로 복수했던 게 아니었나?
게다가 무림맹을 가지고 놀듯 괴롭혔던 것 또한, 증오를 기반으로 한 행동이 아니었던 말인가?
‘너무 이상한데······.’
제게 트라우마까지 남긴 사람에게 별 감정이 없다고? 야율이?
나는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너 다른 사람이랑 밀폐된 공간에 있는 거 엄청나게 싫어하잖아.”
“아······ 티 났어? 맞아.”
야율이 어색하게 눈웃음을 지었다.
야율은 다른 이들과 붙어 있는 걸 질색했다.
밀폐된 공간, 가령 방에 누군가와 같이 있기라도 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온 창문과 문을 열어 놓았다. 그로도 모자라 꼭 열어 놓은 창가나 문 쪽에 붙어 있었다.
“나는 그게 모두 천귀조에게 붙잡혀 있던 일이 트라우마가 된 게 아닌가 싶었거든.”
“트라우마?”
“음······ 정신적 외상이라고 보면 돼.”
“아.”
“그래서······ 네가 천귀조를 증오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네 삶을 망······ 아니, 상처 남긴 사람이니까.”
망가트렸다- 라고 할 뻔한 것을 가까스로 상처로 바꿀 수 있었다.
이렇게 말하고 싶진 않지만, 야율이 평소 사람을 대하는 손속이 잔인했다. 대련할 때 아무렇지도 않게 살초를 펼치기도 했고 바깥에서 떠도는 얘기 또한 살벌했다. 물론 흑도를 상대로 손속에 자비를 둘 필요는 없는 일이었지만.
‘거기다 남궁세가에 있을 때, 길거리에서 화가 났다고 마공으로 죽이려고도 했었지.’
소설 속 악역으로 하던 행동에, 내 목을 쳤던 과거까지.
이런 일들이 쌓여서일까.
나는 야율이 천귀조에게 복수하려, 원한을 갚으려 들거라고 생각했다.
“······.”
나는 생각에 잠긴 듯한 야율을 살폈다.
처음 만났을 때 삐쩍 말라 죽은 눈빛을 한 시체같던 아이의 모습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은 눈 아래의 점 때문일까.
고상하면서도 우수에 찬 듯한 분위기의 귀공자가 있을 뿐이었다.
‘······그래, 그냥 내 편견이었을지도.’
게다가 내가 천귀조와 야율의 대면을 우려했던 것은 야율이 천귀조에게 복수하겠다고 덤빌까 봐서였으니 별 감정이 없다면 그냥 넘어가도 상관없었다.
그때 야율이 결정했다는 듯 말했다.
“천귀조는 이번 기회에 죽이는 게 좋을 것 같긴 해.”
난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좀 전에는 관심 없다며?”
“없어.”
“그런데 왜?”
“백리 대협께 원한을 가지고 있다며? 살려 두면 네 발목 잡을 일이 생길 것 같아.”
결국, 자신의 감정이 문제가 아니라 나 때문이란 뜻이었다.
죽이는 게 좋겠다는 말은 진심인듯 가라앉은 눈빛에 갑자기 확연한 살기가 느껴졌다. 좀 전까진 우수에 찬 귀공자같은 낯이더니 순식간에 바뀐 모습이었다.
나는 야율을 툭 치며 시선을 돌렸다. 순식간에 살기가 흩어졌다.
“됐어. 그보다 류청은 어딨어?”
“몰라.”
“같이 준비하던 거 아녔어?”
“그랬는데 나갔어.”
내가 몸을 돌려 전각을 나가려 하자 야율이 붙잡았다.
“사실은 알아.”
“뭐? 거짓말 한 거야?”
눈을 가늘게 뜬 나를 향해 웃음으로 때운 야율이 앞장섰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그 뒤를 따랐다. 앞서는 야율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불쑥 물었다.
“너 남궁 세가에서 지낼 때 꽤 힘들었겠네?”
당시 난 예민한 눈 때문에 창이란 창은 모두 닫은 채 짙은 비단 가리개를 걸어 놓았다.
그런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야율은 시중을 든다고 계속 내 곁에 붙어있었다.
밀폐된 공간을 싫어하는 야율에겐 무척 힘든 시간이었을 텐데, 당시엔 전혀 몰랐다.
“전혀?”
야율이 가볍게 답했다.
“너는 괜찮아.”
“······.”
순간 나도 모르게 발을 멈췄다.
야율이 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내 표정을 본 야율이 변명하듯 말했다.
“왜? 진짜야. 이번엔 거짓말 아니야.”
“······.”
“음, 내가 뭘 잘못 말했어?”
계속 말이 없자 초조한 기색마저 보였다. 그 모습에 그간 묻어두었던 생각이 떠올랐다.
‘대체 얘는 내가 뭐라고 이렇게 따르는 걸까?’
내 어떤 점이 저 아이를 이렇게 맹목적으로 만들었을까?
야율에게 내가 무척 특별하다는 건알았다.
당시에는 약간 떨떠름하면서도 반대로 가슴이 간질거리는 기묘한 만족감을 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 존재에 목을 매는, 내 말 하나에 좌지우지되는 아이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달까.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을 거라 여겼다. 어릴 적 일 아닌가. 게다가 천산염제를 따라 멀리 떨어지게 되었으니, 나에 대한 건 좀 희미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쓸데없는 생각이었지만······.’
다시 만난 야율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지금도 모든 게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 나 때문에 천귀조를 만나러 따라가고, 나 때문에 천귀조를 죽이는 게 좋겠다고 말하며.
지금 무슨 표정인지 거울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말했다.
“나를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그게 왜?”
맹목적이라는 건 다르게 보자면 집착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한 사람에게 이렇게 집착한다는 게 과연 좋은 일일까? 지금이야 야율이 내게 바라는 게 별로 없지만······.
“고마워.”
그때 갑자기 내가 서 있는 건물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내가 찾던 남궁류청의 목소리였다.
야율이 제대로 데려오긴 한 듯했다. 야율에게 정신이 팔려서 이렇게 가까워질 때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움직이는 듯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남궁류청이 말했다.
“마교 간자를 심문한 것이 너라고 들었어. 네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알아내기 힘들었겠지.”
보통 간자에게는 혈고뿐만이 아니라 발설을 막는 술법도 걸려 있곤 했다. 삼개의 경우에도 이와 같았다.
운 좋게 간자를 잡더라도 술법을 깨는 동안 혈고가 발작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여기엔 제갈화무가 있었다. 마교의 술법에 관해선 제갈가 만큼 잘 아는 이가 없었다.
남궁류청이 말을 이었다.
“이 은혜는 후일 꼭 갚도록 하지.”
“후일이라······.”
제갈화무의 목소리였다. 조소가 설핏 어렸을 낯이 곧장 떠올랐다. 제갈화무는 미래에 관한 얘기만 하면 늘 그랬으니까. 게다가.
‘화무 저 녀석,
지금 분명 심사 뒤틀렸다.’
괜한 시비가 생기기 전에 말릴 생각으로 다시 발을 뗐다.
하지만 내 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혹은 무시하는지, 제갈화무가 말을 이었다.
“후일까지는 필요 없고, 지금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 있는데.”
“지금?”
“그래. 간단한 거야. 표정이 왜 그래? 혹시 마음이 바뀐 건가?”
살짝 비웃는 듯한 어조가 느껴졌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그리고 남궁류청은 당연하게 걸려들었다.
“······그럴 리가. 말해.”
“너랑 연이랑 혼담이 오고 간 걸로 아는데.”
“뭐? 그걸 네가 어떻게······ 아니 지금 그 이야기는 왜 나오는 거지?”
내 심정이 딱 그 심정이었다!
‘지금 그 이야기가 왜 나와?’
나도 모르게 발을 멈추고 야율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야율은 태연한 낯이었다.
‘뭐야, 얘도 알고 있었나?’
그리고 제갈화무의 말이 이어졌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
“너랑 연이 혼담, 네가 거절해.
“뭐?”
“보은은 그걸로 했으면 하는데.
어때?”
“······.”
‘아니······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이런 상황에, 저런 말이 하고 싶어?
아니, 되려 제갈화무가 아니라면 누구도 이딴 말을 꺼낼 생각은 못할 터였다.
대체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제갈화무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너무 치졸해서 내가 다 부끄러웠다.
부끄러운 것이 진심인지 얼굴에 열이 올랐다. 그리고 더 웃긴 것은······.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남궁류청이 무슨 대답을 할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어느새 나는 엿듣는 청중의 자세로 바뀌어 있었다.
꽤 긴 침묵이 이어졌다.
“······.”
“하하, 보은한다더니, 말이 없네?”
“······.”
“흐음, 네가 말한 보은은 고작 이 정도였나?”
“······.”
“생각보다 남궁 소가주의 목숨이 중요치 않나 봐?”
거기까지 들은 순간 나는 엿듣는 걸 멈추고 뛰쳐나갔다.
“화무! 지금 뭐 하는 거야?”
남궁류청이 깜짝 놀라 나를 돌아 보았다. 제갈화무는 이미 내가 있는 걸 알고 있었던 듯 천연스럽게 인사했다.
“궤변 늘어놓지 마. 네가 큰 도움을 준 건 맞지만 남궁완 아저씨의 목숨을 저울에 올려놓을 정도는 아니야. 누가 보면 벌써 네가 구해 온 줄 알겠어.”
남궁류청이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제갈화무를 노려보았다.
제갈화무가 부채를 느릿하게 흔들었다.
“하아······ 한창 재미있었는데.
시시해.”
“부친때문에 속이 엉망일 애한테 장난질이야?”
제갈화무는 어깨를 으쓱였다.
눈을 내리깐 채 침묵하던 남궁류청이 살짝 인상을 찡그리고 나를 보았다.
“혼담 얘기······ 너도 알고 있었어?”
“응.”
남궁류청의 시선이 야율과 제갈화무에게 한 번씩 닿았다.
“이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해.”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