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 * *
깨알 같은 글자가 작은 종이를 채워갔다. 누군가 본다면 그 섬세한 붓놀림에 감탄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글을 쓴 자의 행색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터였고.
거지 차림의 사내가 작은 글을 가득 채운 종이를 작게 접어 돌돌 말았다.
그러곤 한쪽 새장의 전서구를 꺼내 발에 묶었다.
한 마리가 날아가기 무섭게 다른 새가 날아들어왔다.
전서구의 발의 종이를 풀어낸 거지가 말했다.
“소저에게서 신호가 왔답니다. 지금 감시 중이고 첩자는 객잔을 나가서 북쪽으로 가고 있답니다.”
“그래. 절대 놓치지 말라 해. 은신처 담당하는 녀석들에게도 눈 제대로 뜨고 있으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백리 소저 앞에서는 펄쩍 뛰며 반대했지만, 확실히 괜찮은 작전이었다.
오자마자 하루 만에 본거지를 알아내 습격을 한다? 누구도 상상도 못 할 터였다. 그러니 마교도 전혀 대비하고 있지 않을 것이었다.
막개 옆에 있던 다른 거지가 부루퉁하게 말했다.
“그놈들만 우릴 습격하란 법 있나?”
“맞습니다. 그 새끼들도 저희의 심정을 알아야죠.”
무림맹의 습격은 백도 무림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지만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개방이었다.
그들이 눈에 띄는 피해를 본 건 아니었다. 무림맹에서 일하던 방도들이 꽤 죽었으나, 이는 다른 문파나 가문들도 다 똑같았다.
하지만 그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고 하는 이유.
그것은 개방이 전혀 마교의 습격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정보 싸움에서 마교가 개방을 압도했다는 뜻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개방의 정보 체계가 무너졌다는 말이 되기도 했다.
강호 제일의 정보단체라는 신뢰가 산산 조각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요? 기습으로 우위를 가져갈 수는 있겠지만······.”
“백리 세가에서 나서서 마교와 싸우겠다는데 우리야 환영이지.”
개방도들조차 불안해하며 의문을 표하거늘, 신기한 점은 백검단원들이 백리연의 계획을 불만없이 따른다는 점이었다.
‘백리 대협의 영향력인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기엔 대협도 소저의 의견을 바로 받아들였어. 소저의 의견을 그만큼 믿는다는 거겠지.’
그러고 보면 남궁 공자도 그랬다.
그의 재능과 실력만큼 유명한 건 성격이었다. 도통 옆을 내주지 않고 제멋대로인 태도로 유명했었는데, 실제로 본 그는 생각보다 얌전했다.
또한 삼개의 혈고를 찾아냈던 일. 백리 세가주가 조금의 머뭇거림이나 의문도 없이 손녀의 말만 듣고 단번에 판단을 내렸다.
그만큼 손녀의 능력을 확신한다는 뜻이었다.
‘백리연······ 요주의 인물이야.’
감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을 살피며 정보를 다뤘던 경험이 말하고 있었다.
이번 일로 빚을 지울 수 있으면 이득이었다.
막개가 말했다.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도와주고 안 될 것 같으면 그때 몸을 빼면 된다. 동호방은?”
“거긴 별 움직임 없습니다.”
“그래. 혹시 모르니까 계속 지켜보고 있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거지 한 명이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
별다른 인사말 없이 바로 보고를 올렸다.
“마교도와 싸운 백호단원의 행적입니다. 약방이 목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여기 의원에게 받아간 처방전입니다.”
처방전을 건네받은 막개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이건 의원의 묘사에 따라 화공이 그린 백호단원의 얼굴입니다.”
막개가 인물화를 받아 들고는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아시는 분입니까?”
“알다마다! 백호단 부단주잖아?”
“부단주요?”
“그래. 무림맹 본성의 습격에서 그대로 실종도어 사망한 줄 알았는데······ 남궁 소가주와 함께 있었다니.”
무림맹 본성에서의 전투 상황도 조금씩 밝혀지고 있었다.
남궁완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맹회가 끝나고 한창 연회가 진행될 때 벌어진 습격.
잠시 맞서 싸우던 무림맹주는 상황이 불리한 듯 싶자 도주했다.
그리고 연회 초반에 자리를 떴던 남궁완은 맹주와 달리 남서쪽 외각에서 끝까지 교전하다가 양민들이 모두 빠져나간 것을 보고 겨우 피신하였다고 한다.
‘맹주와 정말 비교되는군. 이게 영웅의 품격이지.’
한 시진 뒤.
주점들도 대부분 불을 끄고 영업을 종료할 시간.
“찾았습니다. 마영표국입니다.”
“역시 거기였나!”
제일 의심스러운 곳으로 손꼽은 곳이었다.
“가자.”
“막개 선배님도 가시게요?”
“그럼? 전투가 어떻게 될지 직접 봐야 보고를 올리지. 뭐 해?”
“예?”
“너도 따라와.”
“저, 저도요?”
기겁한 거지를 보고 막개가 혀를 끌끌 찼다.
“너보고 싸우는 데 가라고 안 할테니 걱정하지 마라. 넌 백리 소저 옆에 붙어 있어. 뭘 하는지 꼼꼼하게 다 기록해.”
거지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 *
달도 뜨지 않은 밤.
모두가 잠든 시각.
짐을 싣고 내릴 때 쓰는 넓은 안마당에 띄엄띄엄 놓인 횃불만이 유일한 빛이었다.
그런 정문 옆에서 길게 하품을 하며 빈둥거리듯 경계를 서는 무사들.
“아우. 아직도 한 시진이나 남았구먼. 일 끝나면 뭐 할 건가? 가서 한 잔 하겠는가?”
“글쎄. 연 곳이 있으려나?”
쓸데없는 우스갯소리들로 잠을 몰아내는 모습이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로 평범한 표국 그 자체였다. 그리고 횃불이 닿지 않는 어둠을 틈타 은밀한 그림자들이 숨어들어 갔다.
잠시 후 경계를 서던 표국의 무사들이 쓰러지고, 그렇게 쓰러진 무사들이 채 열 명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습격이다!”
댕- 댕 – 댕-!
종소리와 함께 표국 안이 밝아지며 사람들이 뛰어나왔다.
어차피 처음부터 잠입을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이들이 아니었다.
그저 병력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몇 사람만 잠입한 것이었다.
발각되자마자 곧장 대기하고 있던 자들이 담을 넘어 들어왔다.
표국 무사들에게 호위를 받으며 누군가 걸어 나왔다. 호위를 받는 사내는 기름 흐르는 낯에 뚱뚱한 체구로 표국의 고위직으로 보였다.
“다, 당신들 대체 누구요! 우린 마영표······!”
채 말을 끝까지 맺지도 못한 채 누군가의 검에 베여 쓰러졌다.
쓰러진 사내의 부릅뜬 두 눈은 제 죽음을 전혀 예상치도 못한 낯이었다.
분명 호위들 사이에 숨어 있었는데,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표사들 중 누군가 외쳤다.
“너는······ 백리의강!”
백리의강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이었다.
분명 뚱뚱한 사내가 죽자 겁에 질리고 충격받은 표정이었던 표국의 무사들이 순식간에 무표정한 얼굴로 변했다. 표정이 없는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검을 겨누는 모습은 꽤 섬찟한 광경이었다.
사내를 베어 낸 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류청, 여긴 네가 맡거라.”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백리의강이 무사들을 뛰어넘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막아!”
쾅!
벼락이 치는듯한 굉음이 들렸다.
그리고 그 시각, 천귀조 또한 습격을 전해 들었다.
“뭐라고? 습격?”
“예. 백리 세가 사람들입니다. 제대로 준비한 듯싶습니다. 백리의강이 직접 왔습니다.”
“대체 어떻게 알고······!”
“개방에서 협조한 듯 합니다.”
“거지들 얼쩡거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갑자기 왜······!”
한차례 욕설을 내뱉은 천귀조가 말했다.
“막아. 어떻게든 막아. 알겠어?”
“병력이 분산되어 있습니다. 백리 세가의 병력이 보고와 같다면 막기 힘듭니다.”
“네놈들 목숨을 바쳐서라도 막으라고!”
가서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는 말을 듣고도 상대의 표정은 달라진 바 없었다.
“계획이 있으신 겁니까?”
천귀조가 잠시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곤 지하 방향을 바라보았다.
“백호단 부단주 그놈의 내공을 흡수할 거다. 그럼 상대할 만 하겠지.”
“흡성마공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운기조식할 시간을 벌란 말이다. 알겠어?”
“알겠습니다.”
천귀조는 서둘러 방을 나왔다.
그사이 건물 안까지 들이닥쳤는지, 코앞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칼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전투 소리가 들리는 곳을 피해 서재의 벽을 눌렀다. 책장이 소리없이 움직이며 몸을 숙여야 들어갈 만한 작은 문이 열렸다.
비밀 통로였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빛 한 점없이 어두컴컴했다.
등 뒤로 문이 닫히고 다시 책장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 지하로 내려가던 천귀조가 백검단 부단주를 가둬 둔 곳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몸을 틀어다. 마영표국을 빠져나가는 통로였다.
이 통로는 오늘 그가 죽인 녀석만이 알고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천귀조가 신출귀몰하게 추격을 피할 수 있는 이유.
그건 어디를 가든 늘 탈출구부터 마련하는 자이기 때문이었다.
숨겨진 통로를 알아내는 건 그에게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흡성마공은 무슨 흡성마공?
머저리들 같으니.
적어도 하루는 걸릴 텐데.”
천귀조는 늘 자신이 우위를 지닐 수 있는 상황에서만 싸웠다.
누군가는 비열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천귀조에는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빌어먹을. 그 계집애는 대체 첩자를 어떻게 알아낸 거지? 벌써 그 계집한테 두 번이나 당하다니. 그것만 아니었어도······.”
길고 좁게 이어지던 통로가 갑자기 막혔다. 그리고 허술해 보이는 사다리와 함께 통로가 위로 뚫려 있었다.
천귀조는 사다리를 밟지 않고 단숨에 뛰어 올라갔다.
묵직한 문을 밀어내며 밖으로 나오자 허름한 창고가 천귀조의 시야에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와 전혀 변한 것 없는 모습이었다.
천귀조는 기감을 높여 주변의 기척을 살폈다.
아무 문제 없는 걸 확인한 천귀조가 창고 바닥을 돌아보았다.
그가 열고 나온 문 옆에 커다란 나무함이 밀려난 모습으로 있었다.
나무함을 열자 안에는 갈아입을 옷과 얼굴을 가릴 삿갓 등이 놓여 있었다. 그걸 집으려는 순간이었다.
우드득.쾅!
천장이 부서지며 천귀조가 방금까지 서 있던 자리에 검을 든 사내가 추락했다.
상황을 제대로 인지할 틈도 없었다. 천귀조는 본능적으로 내공을 끌어올리며 양손을 교차했다.
퍽!
천귀조의 양손이 새파란 검을 겨우 막아내고, 상대를 확인한 천귀조가 믿기지 않은 듯이 눈을 부릅떴다.
“백······리의강!”
하지만 검기의 파동마저 모두 막을 수는 없었는지 뺨이 따끔한 느낌과 함께 인피면구 안으로 피가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검을 막아낸 천귀조의 양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조금씩 밀렸다.
천귀조가 이를 갈며 말했다.
“어째서?! 네가 여길 어떻게 알고!”
“너의 방식은 늘 뻔하다고 하더군.”
“뭐?”
곧이어 창고를 둘러싼 기척이 느껴졌다.